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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We Want

Written by.흑지

 

 

 

*

 

 

 

올해의 끝자락이었다. 수능이 끝난 뒤로 자동적으로 고3이 된 아직 열여덟 살인 학생들은 모두 일시적으로 혼란을 겪었다. 벌써 고3이네부터 시작해서 어서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까지. 다만 변함없는 것은 특별반 학생들이었다. 귀찮게 되었네. 굳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대학을 가지 않고 바로 사업을 물려받는 크리스와 같은 경우가 그랬다. 캐나다계 중국인인 탓에 유창한 영어실력. 그러나 이해할 수 없어 매번 찍어서 냈던 문학. 수학은 그럭저럭 풀었는데 한국어를 이해하며 문제를 푸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과적으로 영어 이외의 과목은 모두 젬병 이였다. 그래도 딱히 공부에 신경 쓰지 않았던 이유는 어차피 크리스는 외동이었고 20대 초반에 사장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특별반에 예외는 없었다. 선생님들은 모두 바쁘게 30명에 아이들의 부모님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리고 남아야만 하는 이유를 말하며 부정적인 어머님, 아버님을 설득했다. 차별을 둘 수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처음으로 학교에서는 학교라는 울타리로 학생들을 가뒀다. 여태 늘 학생들에게 붙잡혀있었기 때문에 부모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진짜 우리 결국 특별반 하는 거야?”

“당연한 소리.”

“30일이 방학식이고 애들 아무도 안 나오는데 31일 날 화요일인데 우리 나와야 하는 거?”

“자꾸 당연한 거 묻지 마라. 입 아프니까.”

 

 

 

 

평상시에 학교 나오듯이 주5일에 토요일 선택이라는데, 누가 토요일을 선택하겠어? 말하는 학생들은 집안도 다 고만고만하고 중상류층의 학생들이었다. 하긴 상류층의 학생들이 특별반이 될 리가 없었다. 크리스만 예외로 두고 모두들 적당한 집안의 자제들이었다. 그렇다고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과 비교하면 안됐다. 이 들은 적어도 평균 60~70점은 겉돌았다. 그럼에도 하위권인 것은 국제사립고의 학생들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가늠케 했다. 물론 앞서 말했듯, 크리스와 찬열은 예외다. 더 둘러보면 또 낮은 성적을 가진 학생들이 있겠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각자 저들마다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

 

 

 

 

“종인아, 너 이번에 전교 40등 정도라며?”

“어, 아, 동점자들이 너무 많아서 뒤로 막 밀려났네.”

“그 소리 나한테 하면 욕하고 싶은 거 알지?”

“그러게 엎어져서 잠만 자지 말고 한 문제라도 더 보지. 내 필기 보여줄 수도 있는데.”

“나 앞으로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도 돼?”

“넌 내일 학교 나오지만 난 안 나오는데. 갑자기 공부하는 척 하기는.”

“앞으로 뭐가 될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어. 공부도 조금씩 해보고.”

“그게 고3입에서 나올 소리야? 이틀 뒤에 열아홉 살인데?”

“그러는 넌 뭐가 되고 싶은 게 있어?”

“…나야, 뭐. 아버지 회사도 있고.”

 

 

 

 

아버지 회사? 찬열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너 뉴스도 안 보지? 종인이 한심하단 듯 쳐다보자, 뉴스? 무슨 뉴스? 하고 물었다. 종인은 차분히 어제 저녁에 나왔던 기사를 떠올렸다. 여덟시 뉴스에도 나왔고 기사에도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SR제강 오의진 사장의 인터뷰. 지난 사건으로 인해, SR그룹과 연계된 기업들과 주변사람, 그리고 고객들, 저희 그룹에 신뢰를 주시고 지지해주던 다수의 분들, 그리고 한국의 제강을 대표하는 기업으로써 저희 그룹을 믿어주셨던 모든 분들,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좀 더 일찍 대처했어야 했는데. 안일하고 느린 대처로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인터뷰에 앞서 오의진 사장님의 말씀입니다.

 

인터뷰내용은 바로 세훈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종인의 존재까지. 종인은 정부의 아들이 아니라, 이미 사고로 돌아가신 오의진 사장님의 옛 연인으로 밝혀져. 세훈의 친모이자, 식을 올렸던 부인 고 송미연씨와의 사이는 두터웠던 것으로…, 항상 가정에 충실했었다는 기사 내용과 함께. 종인을 세훈과 다를 바 없이 첫째 아들로 생각한다는 것, 둘은 전혀 다르지만 쌍둥이가 한낱 한시에 같이 태어나듯, 형, 동생 구분 없이 첫 번째로 늘 생각하고 두 아들의 이름을 동시에 떠오른다고 답했다. 그리고 후계자에 대한 언급도 아끼지 않았다. 후계자는 언론이 당연히 예상했던 대로 세훈일 거라는 추측을 빗겨나가 종인 역시도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확신 섞인 답을 내놓았다.

 

 

 

 

“너 머리 나빠서 길게 얘기하면 못 알아듣지?”

“…헐. 지금 나 무시해? 말귀는 잘 알아듣거든?”

“그 이틀 전 기사에 내 얘기 나왔어.”

“갑자기 네 얘기가 뜬금없게 왜 나와?”

“아버지가 후계자 관련 질문에서 세훈이로 마음대로 추측하지 말라고 언론에 내 존재를 밝혔어.”

“…넌 괜찮은 거야? 후계자 자리 욕심 있었어?”

“아니, 딱히 욕심이 있진 않지만, 아버지가 나를. 세훈이를 많이 생각하시더라.”

“예전에 세훈이한테 들었는데. 아버지 바쁘셔서 한 달에 한 번들어오면 많이 들어오는 거라던데.”

“집에 잘 안 들어오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우리 생각 꾸준히 하시고 걱정하고 계시더라.”

 

 

 

 

찬열은 종인의 말을 듣는 내내,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분명 세훈이가 아버지는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가정엔 관심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래서 세훈이 어머님이 아프실 때도 몇 번 보지 못했고 또 임종시간도 지키지 못해, 뒤늦게 2시간이 지나서야 집에 왔다고 하던데. 링거를 맞고 있던 손목이 힘없이 바닥을 향해 떨어뜨려질 때, 세훈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기껏해야 초등학생이었던 세훈은 제 어미의 주검이 눈앞에서 싸늘하게 식어가는 걸 지켜보며 눈물을 떨어뜨렸다. 그래서 세훈의 마음속엔 항상 응어리가 져있었다. 어쩌면 가정보다는 일에 충실했던 아버지. 하나뿐이 없는 어머니의 죽음.

 

 

 

 

“그래서 넌 후계자가 되고 싶어?”

“글쎄. 세훈이가 원한다면 후계자자리는 욕심 부리지 말아야지.”

“참, 웃기네. 세훈이가 원하면 그 자릴 포기할 수 있다고?”

“응. 후계자 자리 아무것도 아니야. 어차피 내 자리도 아니었고.”

“아버지는 네가 후계자여도 괜찮다고 말하셨다며.”

“그래도 아버지보다는 매일 같이 있던 세훈이 우선이지.”

“오세훈한테 완전 넘어갔네.”

 

 

 

 

나쁘네. 너도. 찬열이 작게 말했다. 그렇게 못되게 굴던 애가 뭐가 좋아서. 종인을 향한 질책이 다분한 그 말을 들으며 종인은 자조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좋으면 그 뿐이야. 어떤 자리도 욕심나지 않아. 오세훈이 늘 원하던 자리가 내가 가질 수 있는 자리라면 내어줘야지. 나는 모든 걸 다 놓고 갈 수 있어. 단지 오세훈을 놓고 도망가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너도 똑같이 미련해. 오세훈이나 너나. 변백현이나 도경수나 너나, 나 빼고 다 미련해.”

“그거 무슨 뜻이야? 누가 미련하단 거야. 내가?”

“쓸데없이 자존심세우지 마. 오세훈이 좋아서 넌 뭐든 할 수 있겠다고 했잖아.”

“그게 미련한 거야?”

“아니….”

“전혀 그런 거 아니야.”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오세훈까지 놓아야할 상황이 온다면 그 땐 어떡할래?”

“글쎄? 생각 안 해봤는데.”

“그 땐, 나한테 와라.”

 

 

 

 

찬열의 말에 순간적으로 답을 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이던 것을 멈췄다.

 

 

 

 

“…무슨 뜬금없이 너한테 오래. 네가 무슨 힘이 있다고.”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보다 비정상적인 게 오세훈이랑 김종인의 관계잖아.”

“무슨 소리야. …멋대로 추측하지 마.”

“안 좋아하면, 그냥 평범한 형제였다면 그럴 수 있어? 응? 너 오세훈 좋아해서 그러는 거잖아.”

“…찬열아, 그래도 그건. 다 그럴만한 사정이.”

 

 

 

 

더 이상 핑계될 구실을 잃었다. 두서없이 말을 내뱉느라 잊고 있었다. 오세훈에게 절대적으로 헌신하고 있는 마음을 생각 없이 드러내놓고 말았다. 다른 사람이면 안했을지도 모르는 말을 찬열이 편해서 간과하고 있었다. 찬열 역시도 다른 아이들과 같은 눈으로 저를 볼 수 있다는 걸. 백현과 경수가 눈치 보며 생활하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세훈도 그들과 멀리하면서도 종인에게 몇 번씩이나 조심하자고 말했었는데. 종인은 제 자신을 다독였다. 자기합리화를 시키기로 한 것이다. 제 감정을 들어 내놓는 건 찬열이 마지막이고. 이미 알고 있는 백현이나 혹시나 눈치 챘을지 모르는 지금은 등 돌린 세훈의 옛 무리 친구들까지도. 모두 비밀에 부쳐두기로 한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인 셈이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야. 어차피 네 일 아니잖아.”

“…못돼먹었네. 그럼 너 좋아하는 사람은 희망도 가지면 안 되겠네?”

“…자꾸 너 나 꼬드기는 거 이상해. 헷갈리게 하지 마. 넌 내 친군데. 이제 얼마 남지도 않은 친구.”

“…너랑 친구할 생각 없어.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좋아해, 김종인. 처음으로 용기있게 내뱉은 고백이었다. 이미 많이 늦어버린 뒤지만. 찬열은 후회하지 않았다. 너랑 어색해지기 싫어. 종인의 대답을 곱씹어보며 찬열은 느릿하게 대답했다. 받아달란 말 안했어. 그냥 오세훈이 아니어도 널 좋아해줄 사람이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 종인은 찬열이 제 옆의 짝꿍이라는 것에 안심했다. 누가 들었으면 어쩔 뻔했어. 이야기가 진지해지면 진지해질수록 언성은 높아졌지만. 찬열은 꼭 중요한 말은 귓속말로 했다.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마지막 말을 마친 뒤, 종인은 무의식적으로 귀를 문질렀다. 간지럽다. 박찬열 목소리.

 

 

 

 

“너랑 어색해지잔 말 아니야. 쌩 까려고 꺼낸 말도 아니고.”

“…그럼 내가 네 말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데.”

“지금보다 더 편하게 생각해. 힘들면 기대고 아무것도 안 바라고 다 들어줄게.”

“…나보고 미련하다고 하더니. 네가 더 미련하잖아.”

“어쩌면 이런 게 처음이라, 더 미련할 수도 있지.”

 

 

 

 

나, 이미 한 번 실패했거든. 백현이 했던 말을 곱씹어 봤다. 자꾸만 뒤늦게 뒷북치는 게 우습다고 했다. 그래, 생각해보니 정말 우스웠다. 처음도 아니고 벌써 두 번째다. 아마도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그 떠도는 속설이 거짓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땐 고백할 타이밍도 놓쳤고 이미 좋아하던 그 둘을 갈라놓을 자신이 없었다. 변백현도 친구였으니까. 그래도 이번만큼은 달랐다. 오세훈과 친구였지만 뭔가 계약이 얽힌 친구였고 조금 불편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리고 작년 학기 초부터 김종인을 못 잡아먹어 안달 난 오세훈은 심술부리는 7살 떼쟁이 아이와도 같았다. 지금은 많이 달라진 거 같지만 찬열은 항상 종인을 동정했다. 어쩌다 저런 놈과 마주하게 되었을까. 세훈의 아버지 얘기를 몇 번 들은 적이 있어서 더 그랬다. 종인의 어머니와 바람이라도 났던 걸까? 그래서 오세훈이 저렇게 괴롭히나?

 

종인은 작게 한숨 쉬며 답했다. 네 마음대로 해. 내가 너한테 마음이 없어도 네가 있다는 데. 그걸 거절해가면서 너한테 상처주긴 싫다. 나중에 돼서 원망해도 그건 네 몫이야.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친구가 이래서 솔직히 당황스럽고 부담되는데. 그래도 난 친구가 너라도 있어야 하니까.

 

 

 

 

“날 이용해도 괜찮아.”

 

 

 

 

어쩌면 박찬열은 김종인보다 더 미련한 놈일지 몰랐다.

 

어떻게 내가 널 이용해? 종인은 종용하듯, 책상위에 올려진 찬열의 손을 매만졌다. 그러지 마. 그러지 않아도 널 이용할 일은 없어. 난 네게 가지 않을 테니까.

 

 

 

 

*

 

 

 

 

멋대로 이루어진 상견례는 백현을 당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분명 갑작스러운 건, 원치 않는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어른들 앞이라서 정중하게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기업과의 거래에 있어서 이런 약혼은 아무것도 아니지. 어차피 결혼이 보장된 것도 아닌데.”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그래도 갑작스러운 건 싫다고 분명 말씀드렸잖아요.”

“네가 말로 했으면 이 자리에 잘도 나왔겠다.”

 

 

 

 

여자측은 이미 백현에 대해 알고 있었다. 김승연, 그녀는 국제사립고의 학생이었다. 백현과는 안면이 거의 없었다. 반도 처음부터 멀었고 승연은 문과였기 때문이다. 이과 반에서 돌던 소문을 승연이 못 들었을 리 없었다. 승연도 백현만큼이나 뛰어난 집안의 여식이었다. 한신그룹의 사장의 딸, 그녀는 백현과 데칼코마니로 불릴 정도로 유한 성격과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지금은 백현이 주춤하고 있긴 하지만 한 때는 백현의 얘기도 많이 전해 들었었다. 저와 비슷한 환경에 비슷한 성격. 승연은 전부터 백현에 대한 관심을 꺼두지 않았다. 백현은 올해 들어 도경수라는 아이와 같이 다니기 시작하더니 얼마 전 커밍아웃을 했다고 했다. 하긴, 얼굴도 반반하니, 성격도 좋은 애가 왜 중학교 시절부터 여자 친구가 없었나 했다. 게이였나? 승연은 얼굴에 궁금증을 풀지 못한 채, 동그란 눈을 끔뻑이며 백현을 빤히 바라보았다.

 

 

 

 

“저번에 말 안했는데 우리 승연이도 국제사립고에요.”

“…네? 아 그래요? 본 적이 없는데.”

“1학년 때는 반이 멀었고 2학년 때부터는 문과, 이과로 갈리면서 백현군과 만날 기회가 없었대요.”

“…아.”

“우리 승연이는 백현군에게 예전부터 관심 있었다고 하던데. 백현군은 아예 모르는 눈치네요?”

 

 

 

 

…아, 백현은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이 자리가 몹시도 불편했다. 그저 외식을 하러간다고 하기에 따라 나온 건데. 자리에는 승연과 승연의 부모님이 앉아계셨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 앞자리에 앉으며 백현에게 앉으라고 권하던 제 부모님이 원망스러워졌다. 우아하게 머리를 묶은 중년의 여성이 살갑게 백현에게 말을 붙여왔다. 승연? 아, 문과 쪽에 마당발. 그냥 이름만 들어본 적 있는 그녀의 이름을 곱씹으며 메인 메뉴를 입에 넣으며 우물우물 거렸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자리 많이 불편한가보네요. 눈도 안 마주치고 음식만 드시면 제가 민망한데.”

“아, 갑작스러워서.”

“부모님과 같이 만나지 않으면 못 만날 거 같아서.”

 

 

 

 

승연은 손을 내려, 미리 알아두었던 백현의 번호로 동기화시켜놓았던 제 카카오톡 창을 열어, 백현에게 카톡을 보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 소문 들었어. 두 개를 연이어 보냈고 백현은 울리는 진동에 제 폰을 꺼내어 확인했다. 그리고 승연에게 의아한 듯, 다시 승연에게 시선을 맞췄다. 승연은 대놓고 답을 하지 않고 또 카톡을 보냈다. 부모님께는 아직 말하지 않았어. 네가 좋아하는 사람 남자지? 아, 사귀던 말든 유무는 상관없고. 그냥 약혼하면 네게 손해될 것은 없을 거 같아서. 기업 간의 협력도 증진시키고 유대관계를 이어가면서 기업주가도 올리고 양쪽 기업이 다 뛰어난 건 어느 누가 보아도 아는 사실이니까.

 

딱 문과 같은 여자애 말투였다. 아무리 백현이 공부를 어느 정도 해도 여자아이의 말을 단번에 알아듣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 양쪽 다 좋다는 거지? 백현이 답을 했다. 계속 카톡창을 켜두고 있었던지, 카톡창의 일은 보이지도 않았다. 승연은 손가락을 접어 오케이자를 그린 후, 백현에게 식사하는데 끊어서 미안. 밥 먹어. 하고 답했다.

 

 

 

 

“일단 이번 약혼이 성사되면 양쪽 다 손해 볼 일은 없을 거예요. 오히려 득이 되면 득이 됐지.”

“득 되는 건 알겠지만. 손해 볼 일이 없다고 확신을 가질 건 없죠.”

“…손해 볼 일 있다고 생각해요?”

“네, 저는 조금 손해일 것 같은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백현아.”

 

 

 

 

옆에 있던 어머니가 백현의 등을 두드렸다. 아, 얘가 참 쓸데없는 걱정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백현의 어머니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손해 볼 것 없을 겁니다. 그쪽회사에 충분히 이익이 될 겁니다.”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던 승연의 아버지가 말했다. 꽤나 정중하고 묵직한 음성이었다. 백현은 그 기에 눌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밥 다 먹고 자리 피해줄 테니까. 승연이랑 얘기 좀 해요. 그냥 나가지 말고.”

“아, 네.”

 

 

 

 

입 안에서는 이 여자애랑 할 말 없어요. 라는 말을 내뱉을 뻔했지만 백현은 생각보다 좀 더 현실적이었다. 그래, 얘기나 들어보자, 학교에서 소문을 들어서 경수를 제가 좋아한다고 커밍아웃을 한 걸 알 텐데, 알면서도 이런 약혼을 하려는 이유가 뭔지. 얘기나 들어보자. 그럼 득이 되던 이용을 하던 무시를 하던, 어떻게든 해볼 텐데.

 

 

 

 

“입맛에 안 맞아? 잘 못 먹네.”

“아, 아니, 그냥 묻을까봐.”

 

 

 

 

갑자기 말을 놨는데도 어색하지 않게 받아친 승연이 제 부모님께 눈치를 줬다. 백현이가 제게 관심을 돌렸으니, 그만 일어나도 좋다는 뜻이었다. 승연의 부모님은 백현의 부모님 역시 같이 일어날 것을 권유하며 커피나 마시며 얘기하죠. 하고 부모님과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리에는 승연과 백현만이 마주보고 앉아있었다.

 

 

 

 

“이런 자리 어색한 거 알지? 너도 학교에서 얘기 다 들었을 텐데.”

“알아, 그래서 약혼 하겠다고 조른 거야.”

“…뭐, 졸라? 네가 약혼을 하겠다고 먼저 말했다고?”

“그래, 내가 손해 보더라도 해야겠다고 다짐했어.”

“무슨 뜻이야?”

 

 

 

 

“너한테 말도 못 붙여봤는데, 모르는 남자애가 너랑 사귄다니. 좋아하는 남자가 동성애자라는 건 진짜 비극이잖아.”

“…그래서?”

“멀쩡한 척해. 나랑 약혼하고 평범하게 살아.”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승연은 무리하게 백현을 감싸려들었다. 이 약혼만 하면 학교 애들 시선도 달라질 거고. 네가 후에 누구랑 결혼을 하던 네가 좋아했던 그 남자애는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을 거야. 당장 잊으라고 말하는 거 아니야. 그냥 약혼이라는 연막을 사용해. 네가 멀쩡하게 한 기업의 사장이 될 수 있도록, 나는 밑거름이 되어줄게.

 

 

 

 

“…안 믿긴다. 하나도. 네가 굳이 그럴 이유가 없을 텐데.”

“…좋아해서 그런 거야. 좋아해서.”

“이런 짓 해봤자, 나한테 실질적으로 득이 되도. 내가 좋아하는 애는 힘들어할 거야. 내가 분명 말을 하고 안심을 줘도. 걔는 정서가 불안한 아이거든.”

“…뭐 정서가 불안해? 그런 애랑 왜 사겨?”

“내가 널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처럼. 나도 이유는 단순해. 걜 좋아하니까.”

“…그래.”

 

 

 

 

물어볼게. 물어보고 확실한 답을 줄게. 섣불리 움직이지 마. 저번처럼 또 오늘처럼 막무가내로 날 불러서 자리 만들지 않았으면 해. 그런다고 내 마음이 쉽게 유해지진 않을 거야. 나는 분명 나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그 애가 먼저야. 그래서 말했던 거야. 나랑 사귀는 거 맞으니까. 건들지 말라고.

 

 

 

 

“학교에서 네 애기가 요새 안 들리더라. 원래 조용한 일이 없었는데.”

“내 얘기가 그렇게 많이 돌았나? 오세훈이나 크리스같은 애들 얘기가 더 많이 돌지 않아?”

“아니, 내가 궁금해서 내 얘기 전해 들었었거든.”

“…뭐야, 언제부터 그랬는데.”

“작년 여름부터.”

“아.”

“너 올해 들어서 조그맣고 귀엽게 생긴 남자애랑 다니더라. 너랑 사귀는 애 걔맞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지. 그렇게 콕 집어서 말하면.”

“…맞구나.”

 

 

 

 

승연이 제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사실 뒷조사를 좀 했어. 혼자 살더라. 부모님 안 계시고 사회자배려 층. 아, 그런 눈으로 볼 건 없어. 나쁜 의도로 알아본 거 아니고 그냥 단순히 네가 좋아하는 애는 어떤 앨까 궁금해서 찾아본 거니까. 그 애, 도와주던 애가 원래 오세훈이었다며? SR제강그룹 후원자던데. 물론 이건 국제사립고 일반 학생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사실이지. 오세훈과 사이가 멀어진 거 같던데. 이젠 누가 챙겨줘야 하지? 너? 승연이 손가락으로 백현을 콕 집어 가리켰다.

 

 

 

 

“그러려고 했어.”

“…역시나.”

“누구보다도 걜 가장 먼저 챙겼어야 하는 건 나야.”

“…오세훈은 걜 왜 도와 준걸까?”

“동정이야. 나는 오세훈보다 그 앨 먼저 도와줄 수 있었어.”

 

 

 

 

백현이 제 관자놀이를 짚으며 말했다. 좀 더 일찍 물어볼 걸, 왜 힘들었냐고 다 털어놓아도 괜찮다고 내가 먼저 다가갈걸. 후회했어. 이제 그런 후회 안 해. 이제 내가 다 해결할 수 있으니까.

 

 

 

 

“아직 열여덟밖에 안 되면서 되게 어른인 척 한다.”

“그럼, 어떡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

“그 애, 진짜 많이 좋아하는 구나.”

 

 

 

 

승연은 제 입술을 가만히 놔두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자꾸만 입술을 매만지며 거스름을 뜯어냈다. 너무 좋아하는 티 내지마. 내 앞에서는 비참해지잖아. 승연이 말했다. 백현은 그저 어색하게 미소 지었을 뿐이다.

 

 

 

 

“일월 초에 약혼식 올릴 거야.”

“그런 갑작스러운 건 싫다니까. 나랑 상의 좀 해보고 알려주면 안 돼?”

“안 된다고 할 거잖아.”

“…그렇겠지.”

“이 방법밖에는 없었어. 어차피 방학한 뒤니까. 괜찮겠지.”

“하나도 안 괜찮아.”

 

 

 

 

너 안 그런 척하더니. 되게 이기적이구나. 백현의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을 욱신거리게끔 했다. 그래도 사랑이었는데. 일방적인 사랑이여도 외사랑 이여도 사랑은 사랑이었는데.

 

 

 

 

“나한테 조금만 다정한 척해주면 안 돼?”

“겨우 두 번 만나놓고 다정함을 바라?”

“그 앨. 질투할지도 몰라. 어쩌면 너한테 나쁜 여자로 남을지도 모르고.”

“질투하던 말든 내 알바 아니지. 다 알면서 약혼하자고 한 건 너잖아.”

 

 

 

 

까짓것 네가 그 애 못살게 굴면 파혼하면 되는 거고. 백현은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 오히려 당당해야 할 쪽은 승연이었는데. 백현의 담담함과 담대함에 승연은 그만 기가 눌리고 말았다. 내가 알아서 잘 할게. 그러니까 파혼 얘기는 밀러두자. 결혼하잔 거 아니잖아. 그냥 약혼만이어도 되고 조금만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길면 좋지만 네가 싫다면 짧게 일 년이어도 괜찮으니까.

 

 

 

 

“…사업적인 약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좋아해, 백현아.”

 

 

 

 

네가 이제 어깨 피고 학교 다녔으면 좋겠어. 예전처럼. 조용한 변백현은 어울리지 않아. 예전처럼 다시 돌아갔으면 해. 그 도…, 아,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애랑 같이 다녀도 상관없어. 근데 지금처럼 애들이 널 두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거 원치 않아. 그냥 참아보려고 했어. 졸업하면 어차피 남남일 테고. 넌 외동이니까 어차피 사장자리 그대로 물려받을 거고. 근데 변백현이 작아졌다는 게 내가 다 자존심이 상하더라. 그런 애 아닌데. 여자 문과 쪽에 김승연이 있다면 남자 이과 쪽에는 변백현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변백현은 교우관계도 좋고 두루두루 친하고 집안도 좋고. 그냥 어디 모자랄 곳 없는 아인데.

 

 

 

 

“이 고백, 들어도 못 받아주는 거 알지?”

“알아, 알면서 했어.”

 

 

 

그녀는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

 

 

 

 

하굣길에 세훈과 종인은 기자들에게 발목이 묶였다. 분명 오사장이 기자들이 학교에 찾아오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엄포해두었는데, 그 말은 허투루 들렸는지, 기자들은 대여섯 명 가량 서있었다. 세훈은 자꾸만 종인을 붙들고 쉴 새 없이 말을 내뱉는 기자들을 쳐냈다. 종인의 손목을 붙든 남자기자의 팔을 쳐내고 종인을 제 옆으로 끌었다. 세훈의 옆에 딱 붙여두자, 기자들의 타깃은 종인에서 세훈과 종인 둘에게로 바뀌었다.

 

 

 

 

“인터뷰 좀 해주세요. 아버지 인터뷰에 대한 아드님들의 생각은?”

“후계자 자리에 두 사람이 같이 반열에 올랐는데 두 분은 어떠신가요?”

“형제라서 싸움도 잦을 거 같은데. 이번 일이 있고나서 어땠나요?”

“두 사람 실제로 보니까 전혀 닮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 이질감이 들진 않았나요?”

 

 

 

 

쉴 새 없이 질문을 내뱉는 기자들을 저지하며 세훈이 익숙한 체를 해대었다. 한 사람씩 물으세요. 어디다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부터 물을게요. 한겨레신문 신현석 기자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후계자 자리에 두 사람이 같은 위치에 서있다고 들었는데, 그에 대한 두 분의 생각은?”

“아, 저는 일단 아버지께서 저희를 얼마나 아끼시고 있는지 깨달았고…”

 

 

 

 

아니, 사실 거짓이었다. 어떻게 먼저 키웠던 세훈과 종인이 동급일 수가 있을까. 세훈이 아무리 애정이 깊어져 종인을 위해서 모든 포기할 수 있다고 한들, 아버지의 결정에 세훈은 조금의 반발심이 남아있었다. 종인이 미워서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미웠다. 일전에 일들을 덮어주겠다고 약속한 점에 대해서는 정말 고마웠고 사그라졌던 부자간의 정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의문이다. 우리 엄마를 좋아하긴 했을까. 종인의 엄마를 더 많이 사랑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종인에게 그토록 호의적이었던 게 아닐까. 어쩌면 내 처음의 자리가 김종인의 자리가 아니었을까.

 

 

 

 

“종인이와 싸울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누군가가 후계자 자리에 오르겠죠.”

“보통 다른 형제들은 피 튀기며 경쟁하던데, 공식적인 인터뷰자리여서 사실대로 말하기가 껄끄러우신 건 아니고요?”

“전혀요. 저희는 진심으로.”

 

 

 

 

좋아해서 그럴 일이 없어요. 하고 속에서만 말을 했다. 형제간의 우애가 두터워서. 처음에는 조금 다투기도 했지만 저희는 동갑이고 또 친하기 때문에 서로 친구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얼굴 보는 사이에 매번 다투는 것도 성가시고 저희는 아마 성인이 되면 경영수업을 같이 받을 예정입니다. 물론, 후계자 자리가 그 전에 결정 날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 성격에 그렇게 성급하게 결정하실 것 같진 않고요.

 

 

 

 

“이런 상투적인 말 듣자고 기다린 건 아닌데.”

“…저희 인터뷰하시면서 더 뭘 바라고 이러시는 건지.”

“교우관계에 대해서도 묻고 싶습니다.”

“…뭐, 사업에 관련된 질문만 하실 줄 알았는데 쓸데없네요.”

“이제 종인군한테 물을게요. 세훈군만 자꾸 답하시니까. 종인군에게 물을 게 없네요.”

“아, 네.”

“고등학교 1학년, 국제사립고에 진학하면서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던데.”

“…네?”

“아, 지나가던 학생들에게 물어보니까. 고등학교 1학년 때, 폐쇄적으로 인간관계가 닫혀있었다고 엄청 말수도 적고.”

“근데,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 지금 잘 지내고 있으면 된 거죠.”

 

 

 

 

세훈이 종인의 말을 가로막았다. 더 이상 답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쓸데없는 건 더 이상 묻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저희가 공인도 아니고 아직 일반 학생일 뿐인데. 너무 주제 넘는 질문을 하셨네요. 사생활이 보장받아야 마땅한데. 그렇게 아무한테나 물어서 뒤를 캐낼 거면 인터뷰는 왜 해요? 그렇게 뒤를 캐내실 거면 법적인 조치도 취할 겁니다. 기분 나빠서 더 이상 여기 못 있겠네요.

 

 

 

 

“종인아, 가자.”

 

 

 

 

교문에 대기되어있는 흰색 세단의 차에 올라탔다. 종인은 달싹이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평소 때 보아왔던 세훈보다 조금 더 단호하고 강단 있는 태도였다. 세훈은 말없이 종인의 손 위로 손을 올려 손을 잡았다.

 

 

 

 

“불리할 땐, 이렇게 피해도 괜찮아.”

“…불리하진 않았어.”

“말하기 곤란했잖아.”

“….”

“앞으로 널 내가 매번 구해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어.”

 

 

 

 

좀 더 결단력 있게 행동해. 세훈은 말을 멈추고 종인의 손을 매만졌다. 손 차다. 자기 손도 차가우면서 그런 말을 했다.

 

 

 

 

“집 가서 영화나 보자.”

“아, 뭐보게?”

“그냥 케이블 뒤적거리다가 찾아보면 되지.”

 

 

 

 

그렇게 집에 와서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가 결국 세훈은 케이블 메뉴로 들어가, 영화 하나를 샀다. 무슨 영화야? 영화 제목은 화양연화였다. 엄청 오래된 거 같은데. 화양연화(2000) 무려, 2000년대 영화였다. 월드컵하기도 전에 영화였다. 종인은 모르겠다는 눈으로 세훈의 눈치를 봤다. 무슨 영화인지 알고 구매한 거야? 묻자, 세훈이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불륜 로맨스.”

“…허, 참. 무슨 영화보자고 해서 뭐 보나 했더니만, 국내영화도 아니고….”

“그렇게 어이없어할 영화 아니야. 대작이랬어.”

“누가 불륜 로맨스를 대작이라고 표현했어?”

“많은 영화 칼럼니스트들이”

“…아, 그래.”

 

 

 

 

종인은 괜히 소심해져서 말을 줄였다. 영화는 시작되었다. 홍콩을 배경으로 한 화양연화는 이름에서 대충 짐작했듯, 중국영화였다. 같은 아파트에서 서로 다른 부부 둘, 그러나 영화는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다. 오히려 슬프면 슬펐지. 한 쪽이 바람을 피워서 남겨진 한 사람이 아파하는데, 양쪽부부가 다 똑같은 입장이었다. 남겨진 한 사람은 아파하다가 자신과 비슷한 또 다른 부부의 남겨진 사람을 보고 서로 위로를 하며 다독거려주다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매일 같이 스쳐지나가야 했고 엇갈려야만 했다. 서로 다른 가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헤어질 걸 알면서도 사랑했다. 헤어질 것을 생각하며 사랑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색감은 옛 영화라고, 구식이라고 표명하기에는 결코 예스럽지 않았고 분위기 있었다. 붉은 적색의 조도 애틋한 그들의 사랑.

 

 

 

 

“…왜 울고 그래.”

“….”

 

 

 

 

간간히 훌쩍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안았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먹먹한 감동을 느꼈다. 알면서도 결국 알면서도 서로를 가졌다. 그리고 후에는 그것을 추억이라고 말하고 있다.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

 

 

 

 

“…우리도 결국, 저들과 다를 바 없잖아.”

“무슨 소리야. 우리가 저 사람들보다 나쁜 것도 아니고.”

“안 되는 사랑인 거 알면서 끝까지 붙들고 있었잖아.”

“…안 되긴 뭐가 안 돼. 확실히 쟤네보다는 우리가 상황이 더 낫잖아.”

“…그럴까?”

“응, 확실해.”

 

 

 

 

그 확신 섞인 세훈의 답을 듣고 나니 거짓말처럼 눈물이 멎었다. 흘러내린 눈물이 볼을 축축하게 적셨다. 종인은 손으로 제 얼굴을 매만지며 볼을 닦아대었다. 영화는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그들에게는 잠깐 스칠 수 있는 교차점이 인연의 전부였다. 그 기억 하나만을 가슴에 담고 평생을 살아가는 것, 그들은 끝끝내 서로를 오래토록 잊지 못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주인공인 양조위가 어딘가에 제 비밀을 묻는다.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 그 비밀은 여주인 장만옥을 향한 사랑 이였음이 분명했다.

 

 

 

 

“감수성 풍부한 건 알았는데, 영화보고 울 줄은 몰랐네. 나한테 맞아도 울지도 않더니.”

“이걸 일 년 전에 봤으면 울지는 않았을 거 같은데.”

“감정이입이라도 했어?”

“응, 많이.”

“괜히 불안한 생각하지 마.”

“넌 보고 뭘 느꼈는데? 넌 아무것도 느낀 거 없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근데 저들보다는 확실히 우리가 낫다는 그런 생각했어.”

 

 

 

우리는 나중에 좋던 싫던 계속 봐야하는 사이잖아. 나는 그게 좋아. 네가 내 형제라고 묶여있는 게 좋아. 세훈의 말에 종인은 느릿하게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너는 그래서 좋다고 말하지만 나는 절대 아니야, 나는 네가 오세훈이여서 좋은 거지. 형제여서 좋은 게 아니야. 형제가 아니었다면 오세훈의 아버지와 연관성이 전혀 없었다면 우린 못 만났겠지. 그냥 그것보다도 나는 우리가 결국은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이임이 불안할 뿐이야. 지금은 충분히 사랑을 쏟을 만큼 쏟고 내일도 또 내일모레도 그럴 수 있겠지. 그런데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는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이잖아. 남자랑 남자도 멸시받는 세상인데. 형제라니…, 가끔은 그냥 오세훈에게 다 말해버리고 싶다. 나는 너와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라고. 더 이상 묶여있을 이유가 없다고. 이 집을 나가게 되면 세훈과 지금처럼 자주는 못 보더라도 떳떳하게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종인은 또 다시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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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모야... 연재텀.. 시망...일주일 안에 왔으니 된거라고..

사실.. 접고 싶음.. 이 www.왜이렇게 초반의도와는 다르게 진지해졌음..? 쓸맛안나게..

정말.. 연중하고 싶은 마음이.. 22편부터 굴뚝같았지만.. 참고 쓰고 있어요.. 보는 사람들이 있쟈나...ㅠㅠㅠㅠ

근데.. 꼭 필요한 구도여서 넣긴 넣었는데..ㅠㅠ 빨리 지지고 볶는 세종도 쓰구여.. 백도달달한것도 써올리겟습니다..

이거 대체 언제 완결나려나... 한 35편?ㅋㅋㅋ 30편을 예상하고 썼는데 쓰면 쓸수록.. 대 장편이 되어가는 기분..

아르바이트.. 괘 바뻐여... 진짜.. 이게 아르바이트인지 고정직인지 모르겠음.. 돈은 잘벌어서 조은데.. 12월의 기적이나 사야겠어여..

 

암호닉 끌구올게여

72%님 슈슈님(늘 감사합니다. 슈슈님 덕분에 힘 많이 얻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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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님 퐁퐁님 호호님 짜요짜요님
디니님 비밀님 파레라님 aa님 백백님 정모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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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판다입니다아아ㅏㅠㅠㅠㅠㅠㅠ으어지금딱12월의기적듣고있는데짱짱짱ㅠㅠㅠ정말짱잘어율려요ㅠㅠㅠㅠㅠㅠ근데진짜...어...백도세종..꼭행쇼했음좋겠구요...분위기진지해도작가님글이좋아요ㅠㅠ작가님이힘내셨음좋겠습니다ㅠㅠㅠ작가님힘내세요ㅠㅠㅠ♡날씨추우신데옷도따깟히밥도잘드시고다니시구여ㅠㅠ♥오늘도작기님글잘읽고가겠습니다!!!!!
10년 전
독자2
72%에요@!아정말종인이랑세훈이랑형제아닌거언제밝혀질런지그게너무궁금한에ㅛㅠㅠㅠㅠㅠ백현이도잘결정하길..ㅠㅠㅠ
10년 전
독자3
잉여에요! 종인이가 알고있는 사실을 두려워서 세훈이한테 얘기 못하고있다는게 안타깝네요..ㅠㅠ 백현이한테 저런 패기녀(?)가 붙을 줄이야..! 어떻게되건 경수가 잘 받아들여야할텐데말이죠..ㅠㅠㅠ 알바 많이 힘드시죠ㅠㅠ흑지님 파이팅!!!! 감기 조심하세요..! ♥닥흑찬♥
10년 전
독자4
텐더입니다 백현이 정말 약혼 하는건가요 ㅠㅠㅠㅠ 담편이 기다려 집니다 ㅠ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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