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완성 오르비스 14 |
14. 여름 방학을 일주일 앞둔 날이였다. 이제는 얇은 소재의 하늘색 하복셔츠가 익숙해진지 오래였다. 학기초와는 달리 갈수록 빡세게 잡혀있던 긴장은 점점 풀어지고 고삼임에도 '공부가 뭔가요? 먹는건가요?' 라는 마인드를 가진 애들도 심심찮게 나타났다. 그건 경수도 마찬가지였다. 황금같은 야자시간. 경수는 책상 위에 엎어져 잠을 자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작은 어깨가 깊이 잠들었다는 걸 보여주었다. 자리에서 공부를 하던 찬열이 살짝 고갤돌려 엎드려 있는 경수를 애정어린 눈빛으로 보았다. 가려진 팔 사이로 눈을 감은 단정한 얼굴이 보였다. 긴 속눈썹 밑으로 드리운 그림자와, 색색이며 가벼운 숨소리를 내뱉는 작게 벌어진 도톰한 입술이 은근히 위험하게 보였다. 찬열은 비어있는 경수의 앞자리로 앉아 계속해서 경수의 얼굴을 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어린애의 얼굴이다. 잠시 말이 없던 찬열이 작게 경수를 불렀다. " 경수야. " " ……. " 손가락으로 이마를 가린 경수의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겨주었다. 잠든 얼굴이 눈썹까지 드러내며 그 모습을 완전하게 드러냈다. 찬열의 손이 경수의 콧날을 훑고 분홍빛 입술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그 앞에서 잠시 멈춰섰다. 입술로 내뱉어지는 뜨거운 숨이 느껴졌다. 입술과 손가락이 거의 닿을 뻔 한 그 순간 찬열이 흠칫 놀라며 손을 치웠다. 저도 모르게 일어난 일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순간 경수의 입술을 보있었고, 또 만지려하고 있었다. 혹시 본 아이들이 있을까 주변을 두리번 거렸지만 모두 자거나, 딴짓을 하기 바빠보였다. 찬열은 안도의 한숨을 후, 내쉬었다. " 경수야, 자? " " ……. " " 경수야? " 규칙적으로 내뱉는 숨소리만이 들릴뿐 경수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경수의 귀에 꽂혀있는 검은색 이어폰을 발견한 찬열이 아, 하고 짧게 말을 뱉었다. 이거 때문에 대답 안 했던거구나. 경수의 귀를 꽉 막고있는 이어폰이 마치 지금의 상황과 비슷했다. 애타게 원하고 있는데도 경수에게 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네 앞에 이렇게나 가까이 다가왔는데도 너는 모르고 있잖아. 몇 초간 그 잠든 모습을 바라보다 찬열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곤히 꿈나라를 헤매는 경수를 깨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그냥 찬열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저 눈을 감은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야자가 거의 끝나갈 무렵 다시 공부에 집중하고 있던 찬열은 한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경수의 옆자리에 앉아 엎드린 경수를 흔들어 깨우는 종인이 보였다. 비몽사몽 잠에서 깨어난 경수가 정신을 못차리자, 종인이 귀에 꽂힌 이어폰을 쭉 잡아 뺐다. 둘은 무어라 작게 대화하다가 어느 순간 서로 마주보며 웃고있었다. 언제부터 저렇게 경수가 밝게 웃었던 걸까. 제가 아닌 사람에게 보여지는 경수의 웃음을 보자 샤프를 잡은 손에 힘이 쭉 빠졌다. 이제 더 이상은, 감출 수가 없었다. * 삼일 후 그 날밤, 종인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종인이 발신자를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라는 말이끝나지도 않았는데 핸드폰 저편에서 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 종인아, 나 이제는 더이상 안되겠어. " " 뭘? " 종인이 찬열에게서 온 전화를 받자마자 들리는 말이였다. 종인이 침대에 나른하게 누운 상태로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10시가 넘어가고 있다. 이 시간에 전화해서 다짜고짜 알 수없는 소리를 하다니. 대체 무엇때문에 찬열이 이렇게 안달이 나있는걸까? 궁금해지려는 찰나 찬열의 목소리가 들렸다. " 나 지금 경수한테 고백하러 가. " " 뭐? " 아무 생각 없이 찬열의 말을 듣던 종인의 상체가 스프링처럼 벌떡 튀어올랐다. 아니 갑자기 왜……! " 삼십분까지 나오라고 했어. " " 야, 박찬열. 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을…! " " 갑자기 내린 결정 아니야. 나도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계속 생각해봤는데… " " ……. " " 이젠 안되겠어. 한계야. " 목이 턱 막히는 기분이였다. 표정을 굳힌 종인이 초조하게 다리를 떨며 다시 벽걸이 시계를 보았다. 10시 6분. 핸드폰에서 찬열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에도 초침은 계속 멈추지 않고 째깍째깍 움직였다. " 잘 될 수 있게 빌어줘. " " ……. " " 끊을게. 종인아. " 뚝, 통화가 끊겼다. 손에 꼭 쥔 핸드폰을 놓을 수가 없었다. 온몸이 싸해지며 사고회로가 이상해졌다. 어떡하지? 종인은 잇새를 꽉 깨물었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채웠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안절부절 못하며 방안을 배회했다. 무조건 둘이 만나는 일은 막아야 했다. 재빨리 핸드폰으로 경수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신호음이 들리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저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고 있을정도로 초조함은 배로 늘었다. 제발 받아라. 제발. 제발… 도경수. 그 순간 하늘에서 내려준 구원마냥 명랑한 경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 여보세요? " 도경수, 너 지금 어디야? " - 그건 갑자기 왜…, " 지금 어디냐고, 급해! " - 그게… 잠깐 찬열이가 할 말 있다고 만나자 해서 버스 탔는데? " 탔다고? " - 으응. 혹시 무슨 일 있어? 젠장. 속으로 욕을 씹어넘기며 서둘러 책상위에 올려둔 오토바이 키를 챙기고는 현관으로 나왔다. 고개를 꺽어 핸드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끼우며 신발에 대충 발을 구겨신었다. 급한 맘에 손이 자꾸만 떨렸다. 차라리 찬열이 오는 길에 사정이라도 생겨 늦게되면 좋을텐데…. 찬열보다 먼저 경수를 만나야한다는 생각하나로 온몸을 급하게 움직였다. " 지금 당장 박찬열한테 못 만날 것 같다고 해. " - 뭐? 찬열이도 지금 나왔을텐데? " 잔말말고 지금 못 만난다고 하라니까! " -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알았어. 그런데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이야? 현관문을 부술듯이 열고 나오자마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리는 이미 미친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현관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종인이 말했다. " 응, 존나 중요한 일이니까 가지마. " * 종인과의 통화를 끝낸 찬열이 가끔가다 지나치는 차 몇대가 전부인 횡단보도 앞에 멍하니 섰다. 고백을 한답시고 경수를 불러내긴 했는데 막상 집을 나오니 마음 한켠에 돌을 얹은 듯 무거웠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약 20분 정도가 남았다. 경수를 만나면 먼저 뭐라고 해야할지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과연 무슨 반응을 보일까, 찬열은 20분 후 보여질 경수의 모습을 상상했다. 살짝 당황한 얼굴로 얼굴을 굳히고는 어색하게 웃겠지. 답답한 마음에 고갤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캄캄한 어둠속에서 달이 빛을 뿜어냈다. 조금은 막막하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했다. 하늘을 올려다 본채로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저 밝은 달빛의 힘을 빌어 소원했다. 경수가 제 고백을 들어주게 해주세요. 고개를 내린 찬열이 살며시 눈을 떴다. 어느새 신호등이 파란불로 변해 깜박이고 있었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마음을 추스린 찬열은 횡단보도를 건너려 한발을 내딛었다. 다섯 발자국 정도 걸었을 때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점점 커지는 자동차 엔진소리였다. 심상치 않음에 고개를 돌리자 어둠속에서 검은 승용차가 라이트를 밝히며 달려왔다. 멀지 않은 거리가 빠른속도로 좁혀졌다. 아……. 차마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전조등 불빛에 찬열은 반사적으로 눈을 크게 떴다, 감았다. 당연히 몸을 움직일 생각 조차 들지 못했다. 이내 빠르게 달려온 자동차는 그 자리에서 찬열을 덮쳤다. 텅-. 화려한 비행을 하듯 찬열의 몸이 붕 날아올랐다. 몸이 공중 떠오르는 아주 짧은 그 순간, 새까만 하늘 속에 박힌 둥근 달이 보였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소원을 빌었던 아주 커다란 둥근 달이. 그 환한 빛의 잔상이 찬열의 눈동자에 오래도록 맺혔다. 아, 홀로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경수가 생각났다. 경수야….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 치는 세글자를 차마 내뱉지 못한 채 찬열의 몸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저편으로 곤두박질쳤다. 달이 유난히도 밝던 어느 여름 밤의 일이였다. * '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음성사서함으로…… ' 익숙한 음성에 경수는 핸드폰을 귀에서 뗐다. 벌써 세번째였다. 종인의 말대로 버스 정류장에서 그를 기다리며 찬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나 기다리고 있을 찬열에게 못 나간다고 전화는 해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전화는 꺼져있는 상태로 통화가 되질 않았다. 혹시 몰라 집전화로 전화를 해보니 이미 밖으로 나온듯 받질 않았다. 배터리가 나갔나? 핸드폰 시계를 보니 벌써 약속시간으로부터 3분이 지났다. 혹시라도 엇갈릴까 경수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때마침 버스 정류장 앞에 종인의 오토바이가 끽 소리를 내며 멈춰섰다. 어찌나 급하게 왔는지 후줄근한 반팔에 트레이닝 차림인 종인이였다. 빠르게 헬멧을 벗어던지고 경수의 앞에 섰다. 훌쩍 앞으로 다가온 종인이 거칠게 숨을 뱉으며 다짜고짜 물었다. " 박찬열 만났어? " " 아니, 아직. " 고개를 좌우로 젓는 경수의 모습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아, 다행이다. 그런데 말이야…… 경수가 잠시 말꼬리를 늘이며 말을 이었다. " 그런데… 찬열이가 전화를 안받아. " " 뭐? " " 찬열이한테 못간다고 말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핸드폰은 꺼져있다고 나오고… 약속시간도 지났는데…. " 어떡하지? 나 막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니야? 어둠에 묻힌 경수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이런 상황이 될줄은 생각도 해보지 못한 종인이기에 스스로도 조금 당황스러웠다. 전화를 안받는다고? 그렇게까지 기다리던 도경수 전화를? 경수의 두 손에 꼭 쥐여있는 핸드폰을 바라보다 주머니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찬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 핸드폰이 꺼져있음을 확인하자마자 통화를 종료했다. 자신의 바램대로 경수와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은 좋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만은 찝찝했다. 주머니에 핸드폰을 집어넣는 손이 편치가 않았다.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종인을 보며 경수가 말했다. " 약속 장소 한번만 가보자. 혹시 계속 기다리고 있으면 어떡해. " " 그래. " 종인도 그 말에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 장소로 가기위해 경수를 오토바이 뒷자리에 태우고 이내 출발했다. 자꾸만 몸을 잡아끄는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 " 없어. " " ……. " " 분명 여기가 맞는데. " 분명 틀림 없는데. 만나기로 한 곳에 도착해 오토바이에서 천천히 몸을 내린 경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간판 불빛이 눈아픈 상가들도 보이고 벤치도 보이고 나무들도 보였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찬열은 보이질 않았다. 아직 오토바이에서 내리지 않은 종인이 물었다. " 지금 몇 신데? " " 10시 56분. " 약속 시간으로부터 거의 삼십분이 지났다. 종인이 아는 찬열은 절대로 이런 애가 아니였다. 자신과의 수없이 많이도 만나왔지만 한번도 약속시간에 늦어본 적이 없는 애다. 특히 시간에서만큼은 철저히 냉정하게 반응하는 찬열이였다. 그런데 그런 찬열이 지금 약속 시간을 30분이나 훌쩍 넘겼음에도 코끝배기도 보이질 않는다. 이건 거의 말이 안되는 일이였다. 휑하게 바람만이 부는 텅 빈 약속 장소를 보자 감이 좋지 않았다. 분명 무슨 일이 있는거다. 틀림없이. 그때 경수의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혹시 찬열일까 싶어 얼른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확인했지만 찬열이 아닌 이상한 번호였다. 경수는 아쉬움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 안녕하세요 혹시 박찬열씨와 아는 분이세요? 처음 경수의 귀에 들린건 전혀 의외의 인물인 가녀린 여자 목소리였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찬열의 이름이 나오자 경수는 조금 반가움이 느껴졌다. 혹시 찬열이가 어딨는지 아는건가? 경수가 힘있는 목소리로 상대방에게 보이지도 않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네, 그런데요? " - 아, 여기는 OO대병원입니다. 그게… 박찬열 환자가 지금 교통사고로 저희 병원에 실려오셨어요. 가장 최근 통화목록에 계시길래 전화 드렸는데. 네……? 그게 무슨…. 순식간에 싸해진 얼굴을 하고 경수가 쉬이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간호사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 그게 무슨 소리예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랑 만나기로 했는데… " 내가 잘못 들은거겠지. 그래, 내가 잘못 들은걸거야.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올라가있던 입꼬리는 파르르 떨리며 굳어지고, 핸드폰을 잡은 손이 의도치 않게 자꾸만 덜덜 떨렸다. 절대 들어서는 안될 이야기를 들어버렸다. 하얀 백지마냥 질린 얼굴처럼 머릿속도 하얗게 번져갔다.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는 사고회로 속으로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귀를 타고 넘어왔다. - 지금 박찬열 환자 상황이 잘못되면 심각한 정도까지 갈 수도 있어서 빨리 병원 와주셔야해요. " ……. " 차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그냥 가슴 속이 뻥 뚫려 텅 비어버린 것 마냥 허했다. 저절로 손과 팔에 힘이 풀어져 핸드폰을 쥔 팔이 툭, 하고 허공으로 내려졌다. 바지주머니께에 쥐여있는 핸드폰에서 간호사의 외침이 미세하게 들렸다. 도경수씨, 듣고 계세요? 도경수씨? 경수가 마치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허망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 속 둥근 달이 빛을 뽐내듯 유난히도 밝게 빛났다.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정신이 이성의 저편으로 멀리 아득해졌다. 대답이 없자 전화가 끊겨버린 휴대폰을 잡은 손이 아직도 미세하게 덜덜 떨렸다. 어떡해야해? 통화 내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종인이 경수의 어깨를 잡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 대체 뭔데 그래? " " 우리, 우리 이제… 어떡해? ' " 무슨 소리야. " 왠지모를 불안함에 대답을 재촉하는 종인이였다. 한참을 넋놓고 있던 경수가 서서히 고갤 돌려 종인을 보았다. 항상 맑기만 했던 경수의 눈동자가 촛점을 잃고 미친듯이 흔들렸다.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시선 속에서 종인은 아주 강하게 끌어당기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 찬열이가… 찬열이가… " 틀림없이 분명히, "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 불길한 일이, " 잘못하면 위험해질수도 있다고……. " 일어날거라고. " ……어떡해야해? " 눈물이 가득 차오른 경수의 눈을 보는 순간 방금 전까지 했던 찬열과의 통화가 머리속에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 나 지금 경수한테 고백하러 가. ' '잘 될 수 있게 빌어줘. ' ' 끊을게. 종인아. ' 설레임과 떨림으로 가득찬 저음의 목소리가 자꾸만 귓가에서 맴돌았다. 나는 대체 무슨 짓을……. 몸을 지탱하고 있던 종인의 힘풀린 다리가 바람에 날리는 갈대마냥 휘청였다. 이와중에도 종인은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버텼다. 깊고 어두운 심해속에 빠진 한낱 나약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숨을 쉴 수도 없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어 그저 밑도끝도 없이 가라앉을 뿐이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릴 하는 간호사의 말과 찬열의 마지막 목소리가 섞여 종인을 저 바다 밑바닥 끝까지 끌어내렸다. 아득한 저 밑으로 가라앉는 이성이 한치 앞도 보이지가 않는 깜깜한 어둠 속에 잠식되었다. 어떡해야…하지?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두려운 거였다. * 병원까지 대체 어떻게 왔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종인은 오는데까지 모든 신호를 다 무시하고 미친듯이 병원까지 오토바이를 몰았다. 뒤에 타고있던 경수는 종인의 허리를 꾹 안은채 덜덜 떨면서 눈물을 흘렸다. 찬열이… 괜찮겠지? 괜찮을거야…. 누군가 그렇다고 대답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바램으로 끊임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경수나, 계속해서 씨발, 씨발, 하고 거칠게 욕짓거리를 내뱉으며 떨리는 손으로 오토바이 속도를 올리는 종인이나, 두 사람 모두 제정신이 아니였다. 대충 아무렇게나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종인이 경수의 손목을 잡고 응급실로 달렸다. 갑자기 빠른속도로 달리는 종인의 속도에 못 맞춰 잠시 넘어질 뻔했지만 다시 중심을 잡고 달렸다. 응급실을 돌아다니는 아무 간호사의 손목을 턱 잡고는 종인이 말했다. " 박찬열… 박찬열 어딨어요? 네? " " 네, 네? " " 박찬열 어딨냐구요! " 아무래도 완전히 패닉상태에 빠진 것 같아보이는 두 소년에게 둘러쌓인 간호사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사렸다. 급박해보이는 종인과 경수를 번갈아보며 간호사가 잠시 기억을 떠올렸다. 박찬열 환자요…? 아, 방금 교통사고로 실려오신 분인가? " 그 분 방금 수술실로 들어가셨어요. " 당연한 말인데도 수술실에 있다는 간호사의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얼이 빠진 표정을 한 종인이 스르륵 간호사의 손목을 놓았다.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급한 얼굴을 했던 두 소년이 잠시 표정을 굳히고는 말이없자 간호사가 종인과 경수의 어깰 툭툭 쳐주었다. 괜찮을거예요. 걱정말아요. " 수술실 앞에 보호자분들 다 계세요. 따라와요. " 두 사람은 먼저 걸어가는 간호사의 뒤를 따라 걸었다. 여러 환자들이 돌아다니는 복잡하고 단촐한 응급실을 뒤로하고 조용한 복도를 따라 걸었다. 수술실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쿵, 쿵 뛰었다. 수술실이라 쓰여있는 간판에 빨간 불이 빛을 내며 켜있었다. 시뻘겋게 들어온 불이 꼭 자신을 탓하는 것만 같아 종인은 무서웠다. 절대 이런걸 바란게 아니였다. 단지 경수와의 만남을 막으려고, 찬열의 고백을 막으려고 했을 뿐인데…. 그냥 오는 길에 조금 늦었으면, 하고 생각했던 일이 정말 실제로 일어나버렸다.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외면하고도 싶었지만,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린다고 그 커다란 태양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거대한 산보다 무거운 죄책감이 종인을 짓누르고 뭉갰다. 결국 모두 나 때문에 그런거였다. 그러니까 무조건 살아. 꼭 살아야 돼. 종인은 불안정한 눈빛으로 엄지 손톱을 마구 물어뜯었다. 극도로 초조할 때마다 나오는 종인의 안좋은 습관이였다. 수술실 입구 옆으로 찬열의 아버지가 의자에 착잡한 표정을 하고 앉아계셨다. 수술실 앞에 선 간호사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찬열의 아버지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간호사의 뒤로 졸졸 따라온 경수와 종인을 흘끔 보았다. " 환자분 친구들인 것 같아서요. " " 종인이…구나. " 힘없이 말하며 찬열의 아버지는 맨손으로 마른 세수를 했다.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수술을 받고있는데 당연히 마음이 편할리가 없었다. 종인과 찬열의 아버지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찬열의 아버지를 보자 종인은 차마 후들거리는 두다리로 서있을 수가 없었다. 경과를 묻는 말이 절로 더듬어졌다. " 차, 찬열이는 어떻게, 어떻게 됐어요? " " 수술 경과를 봐야 한다는구나…, 그래도 생사가 위험할 정도는 아니라곤 하는데……. " 차마 아저씨는 말끝을 맺지 못하셨다. 망연자실한 표정을 한 종인이 비틀거리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래도 다행이였다. 살아있다는 사실은 알아냈으니까. " 얘들아, 일단 집에 돌아가렴. 수술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거고, 이렇게 시간이 늦었는데 내일 학교도 가야하잖니. " " …네. " " 찬열이는 걱정말고 내일 다시 와. " 그렇게 말하며 찬열의 아버지가 종인과 경수를 밖으로 보냈다. 경수는 아직 그치지 못한 눈물을 닦지도 못한채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왔다. 종인도 목례를 하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복도를 빠져나왔다. 터벅터벅 걷는 발소리에 힘이 없었다. 아무도 입을 열고 있지 않을때 경수가 먼저 입을 조용히 열었다. " 찬열이… 괜찮을까? " " …응. " 사근사근한 목소리와 함께 경수의 오른손이 먼저 텅빈 종인의 왼손을 잡았다. 아무생각도 안하고 있는 와중 갑자기 닿아오는 따듯하고 묵직한 느낌에 종인은 깜짝 놀라 고갤 돌렸다. 경수가 아직도 닭똥같은 눈물을 바닥으로 뚝뚝 흘리며 걷고있었다. 먼저 잡아온 손을 보니 희고 작은 경수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종인은 사이사이 손가락을 벌려 깍지를 끼어 꽉 잡고는 말했다. " 괜찮을거야. " 그러자 경수의 작은 손의 떨림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서로를 잡고 있는 손이 희망의 끈처럼 느껴졌다. 세게 잡으면 잡을 수록 기적처럼 찬열이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종인을 집어삼킨 검은 바다속에서 경수는 한줄기 손을 내밀어주었다. 어쩌면 이 차가운 물속에서 빠져나갈 수도 있겠다는 희망과 함께. 그리고 만약 네가 없었더라면 나는 이 잔인한 현실 속에서 버티지 못했을 거라고. 굳게 맞잡은 손이 서로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
| 14화를 마지막으로 |
안녕하세요 렁넝입니다^//^ 지금까지 써놓았던 미완성 오르비스를 틈틈히 글잡에 올리고 있었는데 14화가 지금까지 제가 써놓은 마지막 편이 되었네요ㅠㅠ 사실 제가 글을 시간을 잡고 틈틈히 써놓는 편이라서 지금까지는 그나마 연재 텀이 (제딴에서는 나름)빨랐지만 이제 여유분이 바닥난 지금에는 연재텀이 조금 많..이 느려질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ㅜ0ㅜ.. 이제 곧 연말이고, 또 연초이니 준비해야할 것도 많고 책임질게 많아지더라구요 연재 중단이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그냥 연재텀이 지금보다는 확연히 느려질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잊혀질지도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연재해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ㅠㅠ 그리고 그 사이 막간을 이용해서 예전에 써놓았던 몇몇 단편들도 올릴 예정이여유 지금까지 이 글을 봐주신 분들 모두 감사하고 앞으로도 봐주실 분들에게도 모두 감사드려요~ 13화에서 암호닉으로 댓글 써주신 치약님, 도경자님, 이층버스님, 오렌지님, 뽀로로님, 사물카드님, 몽쉘님 모두 제 사랑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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