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씨, 새끼들.."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시선이 정한이에게로 몰렸다. "야, 윤정한 취했냐?" "누가 얘 집 좀 데려다줘라- 또 지랄거리기 전에." "아오, 정한아.. 다 괜찮은데 애가 왜 술만 들어가면.." 팔을 붙잡자 뿌리친다. 오늘 훈련까지 잘 받아놓고 왜 이래 또.. 등줄기에 찬소름이 어린다. 한순간 술이 훅 깬다. "아, 놔봐 놔봐. 걸을 수 있어."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그런대로 걷는다..? 쿠당탕- 싶기가 무섭게 넘어진다. 선배들의 한숨에 땅바닥이 꺼진다. 조마조마한데, 저거. 이마를 짚은 혜경 선배가 손짓과 함께 딱 한마디 한다. "쟤 보내." - [바니바니 ㅜㅜㅜ 혼자 보내서 미안해 분위기 봐서 도우러 갈게] 체. 어지간히도 오겠다. 안그래도 오늘 중간 점검 받고 팔 떨어질거 같은데, 무슨 178의 거구까지 업어다 자취방에 내려놓아야 하는 팔자라니. 선배 눈치 보느라 일어나지 못한 동기 녀석을 탓하는건 아니지만, 오늘 운 참 억세다. "아이, 놔봐. 나 걸을 수 있다니까?" "윤정한. 3걸음 걷고 넘어지는건 걷는게 아냐." 그나마 내가 평행봉이라 다행이지, 어후. 아직까지 쓸 팔 힘을 남겨둔게 신기하다. 기계체조, 특히 링을 하는 정한이는 중간점검을 하고서 술자리까지 온 것만도 용하다 했다. 별명이 체육관 도비라고, 파스에 붕대에 응급 키트를 몇 개씩 사다놔도 얼마 못 가 비어버리도록 링만 붙들고 2주. 중간점검을 할 수 있는 몸이었다는게 신기한데? 어제는 어깨에 3장. 그제는 허리 빙 둘러 6장. 파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우, 독해. "그러게 왜 기를 쓰고 기어와서 술을 떡이 되도록 마시냐고, 윤정한. 나도 힘들어 죽겠구만." "아씨, 내가 마시겠다는데.." "마시는건 너지만 케어하는건 나라고, 좀. 걸을 순 있어야지. 너 주사 예사롭지 않댔잖아." "에이, 바니바니 화나쪄여?" 아오씨, 그러게 내 별명은 왜 바니바니여서. 남자애라 그런가 여자애들과 다르게 무겁긴 확실히 무거웠다. 그래도 어지간한 애들은 거뜬히 업었는데, 오늘은 좀 부친다. "야야, 좀만 쉬자. 나 다리 아파서 못 가겠다." "바니바니, 화내지마." 근처 오피스텔 입구에 널브러져 한 숨 돌리고 있는데 정한이가 속도 없이 피익 웃는다. 머리를 아주 산발을 해선 눈엔 졸려죽겠다고 써있다. 자알 한다. 자기 딱 좋지, 가로등도 은은하고? 니네 집 여기서 최소 반 키로는 더 가야돼, 임마. 뭐 좋다고 웃어. "아씨, 화내지 말라고, 토끼새끼야-!" "그러는 니가 왜 더 화내는데?"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아, 난 몰라. 동네 사람들 다 나오세요! 정한이 여기 있네. "아니, 니가 가니까," "내가 뭘. 어디를." 말을 하다말고 자니, 왜. 끝나지 않은 뒷말이 궁금해 패대기쳐진 정한이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내가 뭘 가냐, 정한아. 어딜 가, 내가." "아니, 니 가니까, 내가 갔지.." 졸다가 말을 걸면 또 픽 깨서 흠냐흠냐하고 또 존다. 왜 새록새록하게 귀엽냐. "정한아, 나 봐. 내가 어딜 가는데?" "아니, 씨, 회식 간다메." 아. 중간점검 회식. 오늘을 끝으로 긴긴 중간점검이 끝났고, 만신창이가 된 체대 애들을 격려해주러 선배님이며 교수님이며 옹기종기 다 모여앉아 만든 방금 그 회식자리. 그거 뭐? "니가 회식 간다메.. 난 찐따잖아.. 놀아줘야지.." 턱을 괸다. 비스듬하게 정한이 얼굴을 올려다본다. 자다가 슬쩍 눈을 떠 나를 보더니 또 웃는다. "에헤, 좋다." 머리를 동여맨 고무줄이 다 풀려있다. 과잠을 입은둥 만둥 하고 벽에 목이 다 꺾여 여기서 쟤 정말 잔다. 포롱포롱하게 코골아가면서. 이게 왜 웃기니. 나 왜 웃지, 지금? "하.. 너 어떡하니." 내가 너 때문에 못 살아, 윤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