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루민] 새벽이 싫은 사슴 02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d/d/a/dda0ec684e0e6b0dd3bee81527da7c43.jpg)
[루민] 새벽이 싫은 사슴
W. 아카시아
남자는 종종 민석의 앞에 나타났다. 나타나는 장소는 한정되어 있다.
스타벅스 앞 벤치.
항상 공허한 눈빛으로 다리를 꼰채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남자의 옆에는 담배 꽁초들이 수두룩 했다.
민석이 커피를 좋아해서 스타벅스에 가는일도 많았지만, 실상으로는 그 남자가 궁금해서 가는 이유도 있었다. 이유는 호기심 이었다. 단순한 호기심.
스타벅스에서 의뢰인과 상담을 마친 민석은 찌뿌등한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켰다.
먹구름이 가득했던 회색빛의 하늘은 어느새 어둑 어둑 해가 사라진지 오래였다. 민석은 반사적으로 창밖을 보았다.
어두워 지긴 했지만, 여름인지라 간신히 루한의 형태를 알아볼수는 있었다. 꺼지다만 담배씨가 어둠속에서 반짝였다. 그것도 잠시였다.
민석이 서류를 정리하고 가방을 들었을때에는 투둑, 투둑, 빗방울 들이 세차게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우산 없는데.
우산을 가져가라는 경수의 말을 들을껄 그랬나 보다.
"밖에 비 많이 오나봐요?"
"그러게요."
"우산 빌려 드릴까요?"
"아니요. 친구 부르면 되요."
달달한 커피 시럽 냄새가 민석에게 풍겨왔다. 자신의 머리보다 한뼘정도 큰 찬열이 웃으며 민석을 내려보자, 민석은 창밖만 바라보며 찬열의 호의를 거절했다.
매번 자신에게 말을거는 찬열이 딱히 달갑지는 않았다.
치이, 친구도 귀찮을 텐데.
찬열이 입을 삐죽이며 볼멘 소리로 중얼거리자 민석은 푸흣, 웃음이 나왔다. 큰 키와 안어울리게 어린 아이가 투정 부리는거 같아서 귀여웠다.
주세요. 민석이 손을 내밀자 찬열이 씨익, 웃으며 들고있던 우산을 쥐어 주었다.
다시 전해주긴 귀찮았지만 조만간 스타벅스에 또 올것 같았다.
"커피를 마시러 여기 오는 거에요, 남자를 보러 여기 오는 거에요?"
"둘다요."
"이유는?"
"호기심."
민석은 찬열에게 고맙다는 눈짓을 한 뒤 스타벅스를 나왔다. 비릿한 빗물의 냄새가 저절로 코끝을 찡그리게 하였다.
남자는 없었다. 오늘도 담배꽁초 몇대만 보일뿐이었다. 남자는 항상 민석이 나올때면 자취를 감췄다. 익숙하다.
민석은 우산을 펼쳐 어깨에 걸쳤다. 혹시나 비를 맞고있지 않을까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보이는것은 캄캄한 어둠 뿐이었다. 빗물이 튄 팔은 끈적거리고 찝찝했다.
서둘러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민석이 발걸음을 떼자, 그자리에서 다시 멈출수 밖에 없었다.
어두워서 안보였던 것이었다. 루한은 주머니에 손을 꽂은채 천천히 민석에게 걸어왔다. 알싸한 담배 냄새가 빗물의 비릿한 냄새와 함께 섞여 민석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멀미가 날것만 같다.
살짝 살짝 건물의 불빛에 비쳐진 하얀 와이셔츠는 홀딱 젖어 있었다. 비에 젖은 노란 머리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며 얼굴을 타고 내려왔다.
콧잔등 위에 맺힌 물방울이 민석의 손등에 뚝 떨어졌다. 민석은 멍하니 루한만 바라보았다. 표정없는 얼굴. 딱 남자의 얼굴 이었다.
"돈 좀 빌려주세요."
"……"
"담배가 다 떨어졌거든요."
루한은 민석의 앞에서 빈 담뱃갑을 탈탈 털어 보였다. 빈 댐뱃갑을 바라보던 민석은 선뜻 가방에서 지갑을 꺼냈다.
비에 젖은 민석의 손이 지갑을 잡자, 미끄러지듯 바닥으로 추락했다. 민석이 엉거추춤 무릎을 굽혀 지갑을 주웠다. 루한은 그저 바라보기만 하였다.
오천원 네장. 만원 여덟장. 오만원 일곱장.
잠시 고민하던 민석은 오만원을 건내 주었다. 남자의 얼굴은 여전히 알수없는 표정 이었다.
온몸이 다젖은 남자의 손에 쥐어진 돈이 빗물에 젖어들어 갔다. 탁, 탁, 돈을 밎고 튕기던 빗방울은 어느새 돈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남자의 향기가 습기와 함께 점점 진하게 느껴졌다.
오천원 주세요. 담배는 삼천원이면 사요.
남자는 민석의 손에 오만원을 쥐어주며 지갑을 가져가 오천원을 빼갔다. 닿았던 루한의 손은 서늘하고 창백했다.
담배값을 모르는것은 아니다. 한때 흡연자였던 민석이 모를리는 없었다. 그저 이 감정을 연민이라 창하고 싶었다.
어렸을적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자주 놀러 갔었다.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돈을 구걸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는데, 나는 그곳을 지나가지 못했다.
항상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고 해맑게 그사람들에게 돈을 쥐어 주었다. 이남자도 그때의 동정과 연민의 감정인가?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왜 항상 여기에 있어요?"
"궁금해요?"
남자가 민석에게 되물었다. 궁금하긴 했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담배만 피우는것이 궁금하긴 했다.
네.
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루한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빗물이 루한의 속눈썹을 타고 내려왔다. 긴 속눈썹이 물방울이 맺혀 파르르 떨렸다.
당신이 나보려고 커피사러 오는거잖아요.
허를 찌른 루한의 말에 민석이 멈칫 했다. 맞는 말이다. 인정해야 하는건 인정해야 한다. 민석은 지갑을 가방에 넣으며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밥먹으러 가야겠어요. 담배. 말을하는 남자는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루한이 발걸음을 돌리자, 머뭇 거리는 민석의 말이 루한의 발을 잠시 멈추게 하였다.
제대로된 밥은 안먹어요?
담배가 밥이에요.
그런거 말고…
말끝을 흐리며 애꿎은 땅만 발로 툭툭 치자, 루한이 다시 뒤를 돌았다. 처음 보았을때 보다 헬쑥해지고 많이 야위여 있었다.
같이 밥이라도 먹을래요?
빨려 들어갈꺼 같은 루한의 눈을 바라보던 민석은 무언가에 홀린것처럼 무의식 적으로 대답을 했다. 네.
-
루한이 민석을 이끌고 온곳은 작은 분식집이었다. 루한은 익숙한듯 모퉁이의 구석 자리에 민석을 앉혔다.
대학교 졸업 이후로 분식집은 자주 오지 않았던 민석은 신기한듯 분식집을 두리번 두리번 둘러 보았다.
아줌마, 떡볶이 이천원 어치 주세요.
주문을한 루한이 물을 떠와 민석의 앞에 놓았다. 말할때는 몰랐지만 루한의 목소리는 무거운 미성이었다. 루한의 외모와 잘 어울리는 목소리 였다.
비를 맞아서 그런지 목소리는 더욱 가라앉아 있었다.
홀짝 홀짝 물을 마시던 민석의 앞에 김이 펄펄 나는 떡볶이가 놓였다. 입에 저절로 군침이 돌았다. 분식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보는 떡볶이는 매우 반가웠다. 루한은 젓가락을 들어 떡볶이를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이 모이를 먹는 병아리 같기도 했다.
루한의 눈치를 보며 떡볶이를 안먹고 있던 민석에게 루한이 떡볶이를 건냈다. 민석도 젓가락을 들어 조심스럽게 떡볶이를 집어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떡볶이는 정말 맛있었다. 오고가는 대화는 없었다. 성인 남자 두명이서 먹기에는 충분히 부족한 떡볶이는 금세 거덜났다.
루한은 빈 떡볶이 그릇과 민석을 번갈아 보았다. 남자의 창백했던 입술이 선분홍 빛을 띄고 있었다.
"전재산이 이천원이라 이거밖에 못사주네요."
"괜찮아요."
빈그릇만 바라보던 루한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매케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자, 민석은 자동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것을 썩 좋게 보진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싫어하는 편이다.
민석의 시선을 느끼 루한이 담뱃재를 툭툭 털어내자, 민석의 표정은 더더욱 일그러져 갔다. 민석의 표정변화는 티가 안났지만 루한은 알수 있었다.
루한이 낮은 목소리로 쿡쿡 웃자, 민석은 민망한듯 시선을 돌렸다.
이름이 뭐에요? 남자의 질문이었다. 뜸을 들이던 민석은 작은 입을 열어 이름을 알려주었다.
김민석.
보통 이럴때면 상대방의 이름을 묻고 자신의 이름도 알려줘야 하는거 아닌가? 루한은 여전히 담배만 물며 재털이를 손으로 톡톡, 치기만 했다.
기본적인 예의가 없나. 민석은 살짝 화가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루한에게 뭐라 할수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상처가 가득한 얼굴과 온몸이 물에 젖은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오려던 말도 저절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재털이만 치고있던 루한이 먼저 일어났다. 민석도 우산을 들고 급하게 루한을 따라 일어나자 루한은 민석을 제지했다.
천천히 와요.
루한의 숨결을 타고 달큰한 담배냄새가 민석의 코끝에 아른거렸다. 담배냄새는 싫었지만 이남자의 특유의 냄새는 좋았다.
"…루한."
"예?"
"내 이름. 루한이에요."
한참을 망설이던 루한이 입을 동그랗게 모아 루, 한 정확한 발음으로 민석에게 이름을 말했다.
루한은 말을할때 한국 사람이 아닌것처럼 끝을 뭉게면서 말하는거 같았는데, 자신의 이름만은 정확히 대답 하였다. 얼굴을 보니 혼혈인 같기도 하다.
민석, 잘가요.
나는 왜 이나이 먹고도 저남자 한테 아무말도 못하는걸까. 루한은 인사를 하고 민석에게 등을 돌렸다. 말을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루한의 뒷모습은 겨울에 핀 꽃처럼 외롭고 힘이 없어 보였다.
"루한."
"……"
"밖에 비와요."
민석은 빠르게 걸어와 루한의 옆에서 우산을 폈다. 루한이 살짝 웃은거 같기도 하다. 옆에 있으니 루한의 체취가 강렬하게 민석의 머릿속을 자극했다.
키가 조금 더 큰 루한을 배려해 우산을 더 높게 들었지만 여전히 불편한건 마찬가지 였다.
민석이 끙, 소리를 내며 우산을 고쳐잡자 루한이 민석의 우산을 가로채 갔다. 내가 들께요. 늦은 밤이라 조요한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세차게 내리는 빗방울이 투두둑, 우산을 맞고 강렬히 전사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루한이 어디 사는지는 잘 모르지만 발걸음은 민석의 집을 향하고 있었다.
조금 말라있던 루한의 왼쪽 어깨는 금새 축축히 젖어들었다.
"잘들어가요."
"우산 빌려드릴께요."
"괜찮아요."
"스타벅스 앞에서 주세요."
루한이 하는수 없다는듯 피식, 웃으며 우산을 받아들었다. 캄캄한 어둠속을 걸어가는 루한은 잘 보이질 않았다.
멀어지는 루한의 모습을 바라보던 민석은 푹푹 한숨을 쉬며 집으로 들어갔다. 더운 습기와 루한의 냄새를 씻어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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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때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는건 안비밀....
댓글 달아주신 독자님들 너무 감사드려요ㅠㅠㅠ 암호닉은 그대로 가는게 기억하기 쉽지 않을까요...? 저는 신청해주시는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지만ㅠㅠ
암호닉이셨던 새송이님♡ 눈사람님♡ 첸첸님♡ 호빵님♡ 으갸갹님♡ 블루베리님♡ 백오십님♡ 후니님♡
이번 글도 봐주셔서 너무 감사해요ㅠㅠㅠ 이 브금이 중독되서 못바꾸겠다는것도 안비밀....헤헿ㅎㅎ
어째 글이 산으로 가는거 같기도 하고.... 내손을 탓해야지 우럭우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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