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순간
W. 로맨틱 캔디
P - 1 너에게 설렜던 순간
고등학생, 그 어리다면 어렸던 시절. 나는 너를 좋아했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웃을 때 휘어지는 눈과 그 옆에 잔주름, 청량함을 가득 품은 네 웃음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의 마음에 바람을 불어일으켰으니까.
단지 너의 웃음만으로 너를 좋아하게 되었던 건 아니었다. 알게모르게 나를 챙기던 네 세심함, 사소한 배려, 너에게는 의미 없는 장난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수많은 순간 속에서 나도 모르게 너를 내 마음에 담았을 거다. 그 순간들은 단언컨데 내 많은 나날들 속에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을 거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너를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사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너라서 좋았고, 떨렸고. 순수히 너라는 사람을 좋아했으니까.
보답받고 싶은 사랑은 아니었기에 네 곁에서 그저 너를 홀로 좋아하면서 그저 바라보고, 곁에 머물렀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아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홀로 하는 사랑이란 그렇게나 가슴이 아리고 고독한 싸움이었다. 나 자신과의. 너와 점점 가까워질수록, 마음도 점점 커져만 갔다. 그에 비례해서 홀로 우는 시간도 늘어났다. 네게 향하는 마음이 점점 주체할 수 없을만큼 커져갔을 때 쯤에. 나는 근 1년간을 숨겨왔던 내 마음을 너에게 전했다.
단지, 전하고 싶을 뿐이었다. 네가 내 마음을 받아줄거라고도, 나와 마음이 통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네게 마음을 전하는 순간, 너의 얼굴에 떠오른 곤란함이 다른 말 없이도 너의 심정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보답받길 바란 건 아니었지만, 네 표정을 보자 온 몸에 찬물을 뒤집어 쓰기라도 한 것 마냥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와 더 이상 친구조차 할 수 없을 까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온 생각을 장악하고 빠르게 쉬지 않고 뛰어대던 심장은 점점 빛보다도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사실은 네 입에서 나올 거절이 두려웠다. 나는 한 없이 작은 겁쟁이였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대답, ...하지마'
'...'
'그냥 내 마음이 그랬었다고 근데 이제 접을거야'
'...'
'걱정마'
너의 답을 듣지 않는 것이었다. 결과를 알고 있었지만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네 입에서 나오는 말로 또 다시 확인받고 절망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지금처럼 아무일이 없었던 것처럼 네 곁에 머물고 싶었다. 웃을 수 없는 순간임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나는 너를 안심시키려 나오려는 눈물을 꾹- 눌러삼킨 채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였다.
내 말에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이 없던 너는 그 순간 안도했을까? 억지로 눈물을 삼키느라, 너의 표정을 보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다. 돌이켜보면.
그 날 이후로 종이비행기를 접듯이 한 번에 내 마음을 정리했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온 힘을 다해 너를 향한 마음을 차곡차곡 접어서 마음 한 구석에 묻어두었다. 완연히 없애버리기에 너는 내 기억에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건, 내 보물상자와도 같은 추억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소중했고, 예뻤던 순간이라 살며시 웃음이 나오지만 다시는 그 기억으로, 그 감정으로도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지날수록 네게 향하는 감정이 신기하게도 점점 무뎌져갔다. 그렇게 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순간 울고, 밀어냈는지 너는 알지 못할게 분명했다.
대학에 막 입학 할 때까지도 네게 고백했던 고3의 여름 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그 날의 풀내음, 너와 나를 감싸던 후덥지근하던 바람. 강렬하게 내려쬐던 햇살. 그 모든 것들이 선명했지만, 입학한 지 2년이 다 되가는 지금. 그 기억들조차 점차 희미해져갔다. 이제는 정말 네 곁에 아무렇지 않은 친구가 된 것 같았다.
"한여주, 무슨 생각해"
그래, 정말 '친구' 가 된 게 분명했다. 이렇게 다정하게 물어오는 너에게도 이제는 예전만큼 설레고 아릿한 감정이 들지 않는 걸 보면.
"그냥, 옛날 생각"
이젠 너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마음으로 웃어보일 수 있었다.
*
P - 2 너에게 아무렇지 않게 된 순간
"한여주-"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전정국이 서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그 웃음을 지으며 내게 성큼 다가온 전정국은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팔을 올렸다. 전정국의 습관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나를 떨리게 했던 너의 행동이었다.
"점심 먹었어?"
"아니, 아직"
"나랑 먹을려고 안 먹었구만, 뭐 먹을래?"
"너 먹고 싶은 거 먹자. 난 아무거나 괜찮아"
"쓰읍, 또.또. 아무거나. 내가 아무거나 하지 말랬지"
능청스레 자신과 먹으려고 먹지 않았냐고 말하며 메뉴를 묻던 전정국은 아무거나 먹자는 내 말에 쓰읍.하며 장난스레 인상을 구기고는 내 입가를 손가락으로 톡톡치며 나를 혼내듯 말을 이었다. 그런 녀석에 나는 결국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을 터뜨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전정국은 내 어깨를 잡아당기고는 가자-. 라며 나를 이끌었다.
결국 도착한 곳은 전정국이 좋아하는 음식점이었다. 자리에 앉자 전정국은 고민도 없이 평소 자주 먹던 음식들을 시키고 얼음이 든 물을 한입 마셨다. 그리고는 내 이름을 불렀다. 한여주. 라고. 갑작스레 불린 이름에 고개를 들어 전정국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응"
"너 끝나고 수업있어?"
"아니, 오늘은 없어. 왜?"
"없으면, 오랜만에 우리집 갈래?"
여유롭게 묻는 말투와는 달리 눈빛에서는 어쩐지 긴장이 흘렀다. 왜 전정국의 눈에 긴장이 보이는지 나도 모를 노릇이었다.
전정국에게 대답을 하려던 순간, 누군가 녀석을 불렀다.
자연스레 돌아간 고개가 마주한 것은 왠 여자아이였다. 부끄럽다는 듯, 그러나 당당하게 전정국에게 인사를 건네는 여자아이의 눈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것과 닮아있었다. 꼭, 예전의 나처럼.
"안녕, 정국아"
"어, 안녕"
"여기 밥 먹으러 온거야?"
"그럼 여기 왜 왔겠어"
옆에 있는 내가 서운하리만큼 무심하게 대답하는 전정국에 내가 다 민망해져서 눈짓을 했지만, 전정국은 그런 나를 보고도 일관된 태도를 유지했다.
물론, 그 여자아이도 포기하지 않고 게속 말을 걸었다.
"여기 좋아해?"
"...어"
"와, 나도 이 식당 좋아하는데, 다음에 시간되면 같이 밥 먹자"
"..."
여자아이의 제안에도 대답을 않는 전정국에 민망해진 건 나였다. 그 아이가 계속 나를 힐끔대고 있었으니까. 대답 없는 전정국을 바라보던 아이는 꿋꿋하게 녀석에게 맛있게 밥을 먹으라며 자기의 자리로 돌아갔다. 어쩐지 그런 꿋꿋함이 부러웠다.
여자아이가 자리로 돌아가자마자 나는 녀석의 종아리를 발끝으로 차버렸다. 야-. 라며 낮은 신음을 흘리던 전정국은 뭐가 문제냐는 식의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럴 때면 나는 괜히 그 날의 전정국이 생각나서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고는 했다.
아까보다 어색해진 자리에 말 없이 앉아있던 차에 전정국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그래서 너 우리집에..."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의도치 않게 그 순간 나온 음식이 전정국의 말을 잘라냈다. 순간, 웃음이 풋- 하고 터져버려서 한참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음식을 나르던 직원은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지만,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틀어막을 수가 없었다. 한참 후에서야 고개를 들자.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꼭, 나를 계속 보고 있던 것처럼. 아주 정확하게.
의미 모를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전정국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을 피하며 신이 난 듯 음식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이상한 부분이 많은 녀석이었지만,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
P - 3 너에게 궁금했던 순간
음식을 다 먹고 나오는 길에 전정국은 또 다시 같은 질문을 해왔다.
"그래서 너 시간있어?"
"어? 아마 그럴..."
순간적으로 강한 힘에 의해 뒤로 몸이 끌려갔다. 나를 끌어당긴 전정국은 놀랐는지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짜증을 터트렸다. 조심 좀 해 . 무슨 의미냐고 전정국에게 물으려던 순간 내 앞으로 차가 빠르게 지나갔다. 지나가는 차를 보자 내가 사고가 날 뻔한 상황이었다는 게 인지되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놀라서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을 뻔 했지만, 나를 붙잡는 전정국에 의해 다행히 주저 앉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조심 좀 하라고..."
전정국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제 머리를 헝클이고는 부축하던 손으로 나를 제대로 세우더니 어깨에 양 손을 얹고는 마주서서 눈을 맞추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사고의 여운으로 떨리는 내 어깨를 알아챘는지 나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겨서 아까보다는 훨씬 누그러진 목소리로 나를 달랬다. 이제 괜찮아. 아무 일도 없었잖아. 라면서. 그 순간 여름의 향기가 다시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그 때보다는 좀 더 성숙해지고 진해진 풀내음과 좀 더 부드러워진 바람이 우리 주위를 감싸왔다.
어느정도 떨림이 진정되고나자 녀석이 나를 안고 있는 게 부담스러워서 천천히 밀어냈다. 그런 내 행동에 팔을 풀고서 내 눈을 맞춘 전정국은 장난스레 입꼬리를 올리더니 나를 놀렸다.
"아, 한여주는 너무 겁이 많아. 겁쟁이야"
"아니, 그 상황에서 어떻게 겁이 안 나"
나를 놀리는 전정국에 괜히 욱하는 마음에 덤비는데 장난스레 말하던 녀석의 눈에 갑자기 씁쓸함이 채워졌다. 입꼬리는 아까처럼 장난스런 모습 그대로인데 눈만은 달랐다. 왜 너는 그런 눈을 하는데 전정국? 의문스레 녀석을 쳐다보자.
"너는 항상 너무 겁이 많아. 알아?"
다시 장난스레 눈꼬리까지 휘어가며 웃으며 내 볼을 손가락으로 톡톡 쳐왔다. 분명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내가 예민한 탓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시간은 있는거지?"
"어?"
"우리 집에 갈 시간 있냐고, 오랜만에 갈거야?"
"응, 그래 진짜 오랜만에 가겠네"
정말로 오랜만에 가게 되는 녀석의 집인 것 같았다. 최근에 워낙 바빠서 한 동안 가지를 못했으니까. 한 2달쯤 가지 못했던 것 같았다.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같이 다닌 우리가 친하게 지내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내가 고백한 순간 잠시 어색해졌었지만, 내가 마음을 접으면서 우리는 오히려 전보다 더 친한 사이가 되어있었다. 그 덕에 2달이라는 기간은 우리에게 굉장히 오래된 시간이었다.
천천히 오랜만에 걷던 길을 걸어갔다. 전정국의 집으로 향하는 길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이었다. 아니, 낯설고 싶은 공간이었다. 이 길을 걸어가다가 녀석에게 고백을 했고, 그리고 내 마음은 끝이 났으니까. 혼자 생각에 잠겨있던 나에게 녀석은 말을 걸어왔다.
"근데, 너 왜 요새 우리 집에 안 왔어?"
"어? 좀 바빠서..."
"특별히 너가 바쁠게 뭐 있다고, 내가 너 뭐하는 지 다 아는데?"
나를 응시하지 않은 채 말하고 있었지만, 긴장했는지 목을 긁적이는 녀석이 이상했다. 그 질문이 뭐라고 저렇게 긴장을 하는 건지. 바쁘다는 내 말에 따지듯 나의 행적을 다 아는데 왜 거짓말이냐는 투의 전정국의 말에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내가 전정국에게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말하지 않았었다는 걸 떠올렸다.
"아, 내가 너한테 말 안 했구나"
"뭘?"
내 말에 궁금함이 생겼는지 아까보다 훨씬 집중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전정국은 이어지는 내 말을 듣고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눈동자에 당황, 슬픔, 열망? 같은 것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 남자친구 사귀잖아"
나는 그 순간 정말로 너에게 묻고 싶었다. 너는 왜 그런 눈을 하는 거야 전정국.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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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현생과 무엇보다 쏟아지는 떡밥에 정신을 못차리던 터라 글을 못 써왔습니다 ㅠㅠ.
왜 또 윤기 편을 들고 오지 않았냐고 하신다면, 조금 변명을 보태자면 그거 쓰는데 굉장히 오래걸립니다 ㅠㅠ
썰 형식인데 전혀 가볍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매직이랍니다 ㅠㅠ
그리고 저번에 올린 글을 삭제했습니다. 좀 더 다듬어서 들고오려구요. 댓글은 제가 다 캡쳐를 해뒀답니다!
이건, 음 갑자기 너무 쓰고 싶고 그래서 그냥 무작정 들고 왔습니다.
프롤이라서 음... 어떨지 모르겠어요. 반응보고 괜찮으면 연재하고 아니면, 다시 제 글쓰기 함에 고이고이 들어가는 걸로...
이 글은 만약 암호닉을 받으면 따로 받을 예정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이 글에다가 암호닉 신청해주면 돼요.
오늘의 질문
Q. 한여주의 남자친구는 누구일까요?
- 맞추시면, 음...뭘 드려야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