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친을 과팅에서 만나는 게 어딨어
0 1
여깄다.
ⓒ전팅
우리는 꼬박 7년을 사겼다. 뭣도 모르고 그냥 애들이 사귀라 해서 사겼던 13살부터 20살까지 우린 참 쉬지않고 사랑했는데,
"야. 오분에 카톡을 몇개나 보내냐. 친구랑 놀고 있다고 했잖아!"
[닥쳐. 내 맘이야.]
"말 좀 이쁘게 해 병신아."
[성이름 일찍 들어가라 제발 좀.]
"즐."
우리라고 다를게 뭐가 있었겠냐. 우리는 서로가 너무 편해져 버렸고.
"그래서 내가 있잖아 걔한테 이걸 줬..."
"......어디보냐?"
"어...?"
"어디 보냐고! 너 저 여자 봤지! 어?!"
"아, 아니야 무슨 소리야..!"
"말 나오니까 하는 얘긴데 너 어제 뭐 했길래 연락이 안돼?"
서로에 대한 믿음도 깨지면서 자잘한 싸움은 점점 잦아졌다. 그렇게 남들과는 다른 연애를 하고 있단 내 자부심과는 다르게 어느 커플들과 전혀 다르지않은 평범한 이별을 했다. 그래, 7년이면 오래 사겼지. 우리는 초 중 고도 모자라 대학교까지 같이 가자며 고3때 자세잡고 함께 공부를 열심히 한 덕인지 나름 알아주는 대학교에 같이 갔다. 그때까진 좋았다. 왜냐면 우리는 미성년자 때만 사겨봤으니 다른 여자, 술자리 이런 것들로 골머리를 앓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앞서 말했듯 우리는 고3때 자세잡고 공부한 탓에 성인 라이프에 목말라 있었고 고삐가 풀린 후 우리는 그저 망아지들이었다. 그러다가 티격태격은 했었어도 싸움은 없었던 우리들이 처음으로 싸웠던 날도 20살이었다. 헤어진 날도 20살이었다.
그런데 헤어지고 일주일 후 빌어먹을 하성운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단 소식이 들렸다. 과도 다르고 학교에서 우리가 사겼던 걸 아는 사람도 없었고 하성운은 여초과인 우리 과에서 조금 유명했기 때문에 종종 친구 입에서도 서슴없이 그런 얘기들을 들었다. 당연히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이런 기분을 느낄 때 마다 내가 드라마 볼 때 마다 제일 싫어했던 전여친의 모습을 내게서 보는 것 같아 기분이 꺼림칙해서 그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헤어졌으니 미련같은 건 가지지 않는게 당연하니까.
하지만 그래도 니 모습은 꼴도 보기싫어서 나를 마주치며 니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도 나는 그냥 옆에 있는 친구와 웃으며 지나갈 뿐이었다. 그렇게 2년 조금 덜 보냈다. 그 사이 하성운은 그 여자친구와 얼마안되서 헤어졌단 소식이 들렸고 그 후에 바로 군대에 갔다고 하더라. 그렇게 점점 잊어가는 줄 알았다.
전남친을 과팅에서 만나는 게 어딨어
"이름아!"
언제들어도 이 년이 나를 성을 떼고 부르는 건 익숙하지 않다. 꼭 무슨 부탁이 있는 거 였거든. 항상.
"왜. 지금 돈 없음."
"빌려줄게!"
"...뭔 개소리야."
내게 돈을 빌리려 할까봐서 한 말이었는데 다짜고짜 나에게 와서 돈을 빌려주겠다는 친구의 말이 이해가 가질 않아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
"과팅 한 명 빵꾸난거 니가 좀 채워주라!"
과팅이라면 며칠 전 부터 잡혔던 우리 과와 공대의 만남이었다. 난 애초에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한다고 말도 안했는데 동기 중 한 명이 어제 너무 달리다가 완전히 뻗었다고 하더라. 평소 같았으면 세차게 거절했을 나였겠지만 친구가 내 눈앞에서 흔드는 힙페 티켓은 날 완전히 돌아버리게 만들었다. 내가 엄청 가고 싶었던 건데 당연히 나는 티켓팅에 실패를 했다. 친구와 나는 서로의 이득을 채웠다. 자리 한 번 나가는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뭘. 가서 꽁술이나 실컷 마시고 와야지.
나는 함께 가는 동기와 함께 만나기로 했던 맥주집에 들어갔다. 먼저 와 있던 남자들이 우릴 반겼다. 얘네는 며칠 전 부터 단톡방 하나를 새로 팠어서 서로 나름 안면은 있는 듯 해보였다. 어색해 하는 나를 이끌고 은지는 나를 자리에 앉히며 날 대신 소개해줬다.
"얘는 성이름! 이쁘제. 오늘 그 아영이가 몸이 너무 안좋아서 얘가 대신 왔다."
"아 진짜? 안녕."
"안녕, 근데 또 한명은?"
"방금 막 할머니 입원하셨대서 대타도 못 구했다."
처음 하는 과팅은 굉장히 신세계였다. 우리 학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처음보는 잘생김들이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
"은지랑 친구 맞지? 그럼 우리 동갑이야. 너도 친구하자!"
"어... 어 그래."
"차례대로 얘는 옹성우고 쟤는 황민현. 근데 한 놈이 안보이네."
"아 걔 담배피러 갔어. 들어올 때 못봤어?"
"어 안비던데."
한 명이 조금 늦는 모양인지 황민현이란 사람은 자리에 없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휴대전화를 놔두고 간 모양인지 전화기는 테이블 위에서 울려댔다. 왠지 익숙한 노래가 내 귀를 때렸고 그 노래를 찬찬히 생각하니 결국 그 끝에는 하성운이 불러주는 모습이 생각이 났다. 로맨틱 겨울, 제목까지 생각난 후엔 황민현이 전화를 끈 탓에 노래가 끊겼다. 괜히 가슴이 답답하고 기분이 나빴다.
"폰도 놔두고 갔네. 뭐 편의점이라도 갔나봐. 우리끼리 먼저 시킬까?"
"그러자. 이모 여기 오뎅탕이랑 똥집이랑 소주 두병 맥주 네병이요."
은지가 자연스레 주문을 했다. 옹성우는 누가 제일 잘생겼냐 술은 잘 마시냐 같은 질문을 물어왔고 질문들에 대답을 하면서 나도 그 분위기에 점점 적응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점점 올라가는 중에 문이 열렸고 나는 은지와 얘기 중이었기 때문에 문이 열린 줄도 모르고 있었다.
"야 하성운 뭐하다가 왔냐."
이 한 마디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 미안 담배피는데 지성이형 만나서 얘기 좀 한다고."
진짜 하성운이었다. 난 그 2초 동안 동명이인이길 바랬다. 흔하지 않아서 내 인생에 하성운이란 이름은 딱 한 명 뿐이었는데 바보같이 동명이인이길 간절히 바랬다. 나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팍 숙였다. 재수없게도 남자 쪽 빈 자리는 내 앞자리 뿐이었다. 진짜 재수없다.
"니 늦었으니까 이차 니가 쏴라."
"뭐야 여기 끝내고 이차 또 간다고?"
"당연하지. 야 뉴페이스랑 인사해라."
쭈욱 나랑 마음이 잘 맞던 처음으로 은지가 미웠다. 누가봐도 이상하게 고개를 팍 숙인 내가 이상한 듯 그 자리의 네명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질 정도로 정수리가 따가웠다. 지금 이대로 나갈까? 나 제일 안쪽에 앉았는데 어떻게 나가.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하지만 숙일수록 민망해지는 건 나고 내 얼굴에 피만 쏠릴 뿐이었다. 내가 잘못한게 뭐가있냐. 난 당당히 고개를 들었고 하성운이 흠칫하는 표정은 볼만했다.
"미친."
"왜 니도 이뻐서 반했나."
"......"
우리 둘은 서로를 노려보는지 쳐다보는지 모를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입모양으로 눈깔아 를 내뱉고 나서야 하성운의 눈빛은 내게서 돌아갔다.
"뭐야 이 분위기. 자 다들 소지품 꺼내시고."
"뭔데, 진짜 촌스럽다 니."
은지는 깔깔 웃으며 타박을 주면서도 가방을 뒤적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은지가 하는 행동만 쳐다봤다.
"아, 이거 소지품 꺼내서 마음에 드는 소지품 골라서 그 소지품 주인이랑 게임하는 거 뭐 그런거 있다. 아무거나 꺼내라."
"딱히 꺼낼게 없는데..."
은지는 내 가방을 슬쩍 보더니 향수 하나를 꺼냈다.
"이래 좋은걸 두고 뭘 고민하노."
남자 쪽도 소지품을 다 골랐는지 서로 테이블 아래에서 정신없이 소지품을 섞었다가 다 같이 소지품을 꺼냈다. 난 진짜 병신이었다. 왜 하필 지금에서야 생각이 났을까 일분 전 아니 십초전에만 생각 했어도 바로 다른 걸로 바꿨을텐데. 아무거나로. 하성운이 사준 향수가 아닌 아무거나로.
"풉-"
이미 머리 끝까지 열이 오른 나에게 들린 하성운의 비웃음은 주먹을 꽉 쥐게 만들었다.
"아 굉장히 익숙한 향수네... 내가 썼던 것도 아닌데 왜 그러지..?"
하성운은 바로 그 향수를 덥석 잡았고 음흉한 미소를 내내 띄었다. 정말 안면에 주먹을 날리고 싶다.
"뭐야 하성운 벌써 선택한 거?"
"참 냄새가 좋네요~ 그래서 가방에 가지고 다니시나봐요."
계속 깐족대는 하성운을 가만히 볼 수만은 없었다.
"정말요? 저 그거 선물받은 건데, 냄새가 너무 짜증나서... 가지실래요? 누가 저런 걸 선물로 주는지 참... 너무 센스가 없죠?"
"... 그래요? 난 괜찮은 것 같은데?"
"아니요 냄새도 맡기 싫어서 깨박살 내고 싶어요."
바야흐로 전쟁의 서막이었다.
듀근듀근 ㅇ.ㅇ
암호닉 받습니다. 오타나 치환오류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작인데 재미없어도 재밌게 즐겨주십사......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