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과 황민현에게 사랑받는 법
세 번 째
어제랑은 달리 평화롭게 전공 수업을 다 듣고, 잠깐만 볼 일이 있다며 동방에 와달라는 친구의 말에 여주는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되게 급한 일같아서 동방에 뛰어가니, 소파에서 자고있는 재환과 거울을 보고 머리를 다듬고있는 친구를 발견했다. 이게 무슨 언발란스한 조합인가... 여주는 재환이 깨지않게 조심스레 동방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의자에 앉으니, 그제서야 거울을 보던 친구가 여주를 발견했다.
"어, 잘 됐다, 여주야!"
"...?"
"나 대신 과팅 좀 나가줘."
"에? 나 CC 안 할 거인거 알 잖ㅇ,"
"아니, 그냥 갔다 오기만 해줘. 알겠지?"
"아니 싫은ㄷ,"
"내가 뭐든지 다 할게."
뭐든지 다 한다는 말에 여주는 귀가 쫑긋, 세워졌다. 평소 저를 많이 부려먹던 친구인지라 꽤 구미가 당기는 부탁이었다. 결국 여주는 고개를 주억였고, 가겠다고 말을 했다.
"뭐든지 다 한다는 거 진짜지?"
"어, 당연하지!"
그저 친구를 놀릴 생각에 신이 난 여주는 친구에게서 언제, 어디서 하는지를 받아내었고, 그대로 동방을 나갔다. 여주가 동방을 나가자마자 재환은 벌떡 일어섰고, 여주에게 과팅을 제안한 친구를 보고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알 리가 없는 여주의 친구는 인상을 찌푸리며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나갈려고 준비를 하였는데... 재환의 말에 발걸음이 우뚝 세워졌다.
"이거 민현이 형한테 말해도 돼요, 선배?"
"걔는 갑자기 왜."
"그냥, 여주 누나 휴학하고 나서 맴돌던 소문 있잖아요. 민현이 형이 여주 누나때문에 성격이 바뀐거다, 라고."
"진짜겠냐... 그나저나, 너 말하기만 해봐. 그냥, 콱."
"농담이죠, 뭐."
재환은 아하핰, 하고 웃었고, 여주의 친구는 묘하게 찝찝한 마음으로 동방을 나섰다. 나오는 길에 재환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지자, 여주의 친구 팔엔 소름이 오도도 돋았다. 그 소문 진짜일까... 친구는 잔뜩 정돈한 머리를 매만지며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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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째
"안녕하세요, 체육교육과 15학번 강다니엘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유아교육과 14학번인데 1년 복학해서 아직 3학년인 이여주입니다..."
인사만 하고 얼어붙은 분위기에 여주는 말 없이 음료만 마셨다. 체교과랑 유교과 과팅이라니... 물론 나오고 싶어서 나온 것도 아니지만. 여주는 다니엘을 힐긋 쳐다보다 입 떼는 것을 머뭇거렸다. 다니엘은 여주가 제게 할 말이 있는 거 같다는 걸 눈치 채고선 물었다.
"할 말 있으세요?"
다니엘의 물음에 여주는 눈만 도르륵 굴렸다. 그렇게 제 얼굴에 티가 많이 났었나... 여주는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선 입을 뗐다.
"제가 친구 대신에서 과팅 나온 거라서... 저 CC 할 생각 하나도 없는데...요......"
"아, 저도 친구 대신 나온 거라서요. 저도 CC 같은 거 할 생각 없고요."
"...아."
CC 같은 거 할 생각 없다는 다니엘의 말에 여주는 고개를 혼자서 끄덕였다. 하긴, CC 진짜 불편하긴 하더라. 헤어지고 나서가 제일 불편하지. 혼자서 고개만 끄덕이다가 문뜩 종현이 제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 송아지같은 눈동자에 눈물이 고인 채로 '너 민현이랑 헤어져서 휴학한 거 학교에서 소문 다 났대...'라고 말하는 종현의 말이 여주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잠만, 그러면 내가 CC였는 거 알고 있는 거 아니야?
"혹시 저... 모르시죠?"
"네? 뭔 말씀이신지..."
"아뇨, 아뇨. 괜찮아요."
"아, 이름이 이여주...라고 하셨나."
"네... 그런데요?"
"친한 선후배로 지냄 좋을 거 같아서요. 아 복학하신 거니깐 동기인가."
해맑게 웃으며 선후배 사이로 지내자는 다니엘의 말에 여주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같은 애랑 친하게 지내겠다고? 진심인가... 여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저, 저랑 친구요?"
"네, 그럼 안 되나요?"
"아니... 되, 되는데...요."
"아, 그럼 말 놓아요. 괜찮아요, 여주 선배."
강아지같은 눈동자로 물어오면 여주는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ㅡ여주는 강아지를 너무나도 애정한다, 그것도 대형견.ㅡ어디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는 여주를 보고선 다니엘을 눈을 접어가며 웃어보였다. 여주는 그런 다니엘의 웃음 보다가 나지막히 말했다.
"그... 너 지인짜 강아지 닮았다."
"선배님도요, 강아지 닮았어요. 자그만하고 귀여운 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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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째
집으로 황급히 돌아온 민현은 가방을 빠르게 바닥에 던져두고선 소파에 앉아서 재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리를 달달 떨면서 재환에게 전화를 거는 민현의 모습을 과자를 먹으며 바라보던 종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호음이 몇 번 안 가고, 재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막 강의가 끝났나보다. 전화를 받은 재환의 목소리가 힘이 잔뜩 없었다. 민현은 건조한 입술을 혀로 적시고선 물었다.
"그거 진짜야?"
"뭐가요... 형?"
"이여주 과팅 진짜냐고."
"아? 그거 구라래요."
거짓말이라는 재환의 말에 민현은 그제서야 떨던 다리를 멈추었다. 바닥에 앉아서 과자를 먹던 종현은 여주가 과팅을 나갔다는 말에 휙 돌아보았지만, 여주 성격이라면 스스로 나가진 않았을 거라 생각해 다시 과자를 먹으며 티비를 보았다. 민현이 한숨 고르고 있었는데 전화기 넘어로 사뭇 진지한 재환의 물음이 들려왔다.
"근데 형, 그거 사실이에요?"
"뭐...?"
"형이 여주 누나때문에 성격 바뀐 거요."
민현은 잠시 머뭇거렸다가 침을 삼키고, 혀로 촉촉히 입술을 적시고선 대답했다.
"...나중에 말해줄게."
재환은 전화기 넘어 들려온 민현의 뜻밖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소문인 줄만 알았는데... 재환은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민현은 재환과의 전화를 끝내자마자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 종현은 과자를 입에 담은 채로 중얼거리며 민현에게 물었다.
"와아... 미녀니 너 대박이다. 진짜여써?"
"애들한테 못 들었어, 종현아?"
"와, 나 빼구 다 알아? 허얼..."
"내가 과자 사줬잖아..."
"그건 그거구!"
종현은 과자를 오물오물 먹으며 민현을 밉지않게 흘겨보았다. 종현의 시선에 민현은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애들이 이야기 안 해줬나... 민현은 소파에 내려가 과자를 먹고있는 종현의 옆에 앉았다. 그리곤, 확신에 찬 눈빛으로 종현의 손을 꼬옥 잡아주곤 말했다.
"내가 오후 강의 갔다와서 말해줄게, 종현아. 약속."
"응, 약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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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째
어느새 같이 학식 먹고, 술 마시고 싶을 때도 같이 마시는 사이를 약속하게 된 다니엘과 여주는 친해진 기념으로ㅡ물론, 둘 다 술이 마시고싶은 날이었다.ㅡ술 한 잔 하기로 하였다. 카페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곳에 포차가 하나 있었는데, 다니엘이 추천을 해,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카페에 있는동안 다니엘과 얘기해본 결과, 다니엘은 쓸데없이 다정하고, 매너있었다. 뚫어지게 여주를 쳐다보기도 했다. 여주는ㅡ민현을 제외한ㅡ완벽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아, 선배님. 근데 누나라고 불러도 괜찮아요?"
"상관없어... 짜피 나 복학해서 선배도 아닌데."
"그래도 한 살 많잖아요."
"아마 정신연령은 너보다 낮을 걸."
포차로 가는동안 다니엘과 여주는 별 시덥지도 않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니엘은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여주에 같이 웃어왔다.
얼마 안 가 새까만 거리를 환하게 밝혀주는 포차가 나왔다. 여주가 먼저 들어가고, 다니엘이 뒷따라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이모님.'이라 정답게 인사하는 여주를 보곤 방싯 웃음을 짓다가 다니엘도 곧이어 인사를 하였다. 입구와 가까운 쪽에 둘이 자리를 잡았고, 다니엘이 자연스럽게 소주 2병, 맥주 2병과 파전 하나를 시켰다. 여주는 신기하다는 듯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야, 나 파전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감이죠, 감. 또 제가 얼마나 촉이 좋은지 서사를 길게 늘여볼까요, 여주 누나?"
"그거 듣다가 날 새겠다."
"날 새면 좋죠, 안 그래요?"
"능글맞기는..."
여주는 베시시 웃으며 소주를 흔들고선 열었다. '소맥, 아님 그냥?' 여주의 물음에 셀러드를 먹고있던 다니엘이 젓가락을 허공에 휘저었다. 아마도, 소맥을 먹는다는 뜻이겠지. 맥주잔에 소주를 반 정도 담고, 맥주도 병따개로 따서 반 정도 넣어 젓가락으로 잔 바닥을 쳤다. 잔 속에 술들이 파도처럼 울렁거렸다.
"술 잘 마셔, 다니엘?"
"못 마시는 편은 아니에요."
"다행이네."
"뭐가요?"
"내 주위에 사람들은 거의 다 못 마시거든."
여주는 말을 끝내고선 잔을 다니엘에게 건넸다. 다니엘은 잔을 받고선 고개를 작게 숙였다. 여주는 소주잔에 소주만 따라서 다니엘을 쳐다봤다. 서로의 시선이 맞닿자 다니엘이 먼저 술잔을 들었다. 여주 역시 술잔을 들어서 다니엘이 건넨 잔에 부딪혔다. 잔끼리 부딪히는 소리와 포차 속 대화를 나눈 사람들의 소리가 고요하게 들려왔다. 다니엘은 맥주잔을 들고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관리한다고 못 마셨는데, 오랜만에 마시니 쓴 느낌보단 단 느낌이 드는 거 같았다.
여주 역시 술이 달게 느껴졌다. 어제 이런저런 일이 있기도 했어서 그 마음을 풀 곳이 없어, 마음 속이 꽉 막힌 기분이 들었기 때문일까, 술이 목울대로 넘어갈 때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술을 잘 마시는 여주였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더웠다.
"다니엘, 너는 개명한 거야?"
"네. 사람들이 전에 이름을 발음 잘 못해서요."
"그렇구나... 궁금한데, 물어보면 안 되겠지?"
"괜찮은데. 원래 제 이름 강의건이었어요, 강의건."
"의건... 강의건... 귀엽다."
술 기운때문인지 붉어진 얼굴을 하고 절 보며 귀엽다는 여주를 보는 다니엘은 괜히 여주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먼 곳을 쳐다본 채, 잔 속의 술을 마셨다.
"그나저나, 누나,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으응... 괜찮아."
사뭇 진지한 말투로 물어보는 다니엘에 파전을 먹기좋게 찢던 여주가 고개를 들어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정말로, 궁금한 것이 있나보다. 파전을 젓가락으로 찢은 여주는 한 입에 넣었다. 다니엘은 여주가 다 먹을 때까지 입을 떼지 않았다. 그저 여주를 바라보며 술만 마실 뿐이었다. 다니엘은 상대방이 무언갈 먹고있을 때 질문을 안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방을 위한 배려였다.
파전을 삼키고선 다니엘을 보며 여주가 고갤 갸웃거렸다. 여주가 다 먹은 걸 보고선 다니엘은 천천히 입을 뗐다.
"누나, 왜 복학했는지 알 수 있어요?"
"......나?"
"네. 궁금해서요."
"남들이보면 그거 가지고 복학했냐 했을 수도 있는데..."
"괜찮아요. 안 그럴게요."
여주는 한숨을 푹 쉬다가 술잔에 담긴 술을 입에 털어놓고선 입을 떼었다.
"너 우리 과 황민현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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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째
- 여주의 시선 -
대략 2년 반쯔음 전이었을거야. 악착같이 공부해서 내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고 막 들떠있을 때에, 걜 만났어. OT였을 걸... 가지도 않는 걸 내 친구가 같이 가자고 부추겨서 갔거든. 그래서 얼굴에 짜증이 이만저만 아니었어. 아는 사람도 없는데, 굳이 가야하나 했었거든. 심지어 버스 탈 때 같은 자리에 앉아준다던 내 친구는 이미 대학와서 사귄 친구랑 같이 앉아버리지, 난 혼자서 앉아있지... 얼마나 쪽팔려. 그런데, 그때 걔가 내 옆에 앉은 거야. 아마도, 그때였을 걸. 내가 걔한테 반한게. 왜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옆에 아무렇지도 않게 앉는 걔를 보자마자 난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거 같았어.
글쎄, 표정 변화없이 앉으며 내게 하는 말이 뭔지 알아?
"여기 앉아도 되는거지?"
그렇게 물으며 앉는데 자꾸만 시선이 가더라, 걔한테. 걔도 내가 자기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는지,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이어폰을 빼는 거있지. 난 거기서 또 죽어났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되게 철없지. 어쨌거나, 걔가 이어폰을 빼고선 내게 무슨 말 했는지 알아? 되게 신경쓰여서 짜증난다는 느낌으로,
"그만 좀 쳐다보지. 다 보이는데."
"아... 미안. 근데 이름이 뭐, 뭐야?"
"민현, 황민현."
그 말을 듣고선 또 심장이 울렁거렸어. 어쩜, 이름도 잘생겼을까...이런 생각만 하고 버스 밖 풍경을 쳐다보니, 더 황홀해서 미치겠는거야. 봄이라서 그런지 벚꽃이 만개했더라고, 그때 내 마음처럼 말이야. 다니엘, 네가 생각해도 내가 이해 안 가지? 사실, 나도 내가 이해 안 가. 그땐, 걔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남자라고 생각했었어. 근데, 아니더라. 세상엔 걔보다 좋은 남자 훨배 많아. 니엘이 너처럼 말이야.
쨌거나, OT에서 걔랑 만난 건 그때가 다였어. 술게임 하는데도 잘 보이지 않더라고. 근데, 알고보니 걔가 술을 잘 못해서 미리 양해를 구했다더라. 그렇게 OT를 보내고, 매번 전공 수업때마다 마주치는 걔에게 빠짐없이 나는 잘생겼다고 말했거든. 그 있잖아, 사실적으로 말하자면... 소위 '치댔다.'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지. 그때, 어려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쪽팔렸어.
"민현아, 오늘도 잘생겼다!"
"......"
"어쩜 그렇게 잘생겼지?"
"시끄러우니깐, 조용히 좀 해."
근데 알잖아, 매번 하는데, 매번 깨지는 거. 근데,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그런 말을 들어도 난 헤헤헤 웃었다? 지인짜 바보같지... 거의 1년동안 고백하고, 또 고백했거든. 1년이 지나면서, 내 마음도 성숙해졌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힘들더라고. 그래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고백했다? 근데, 나도 상상 못했어. 걔가 내 고백을 받을지.
"...마지막이야, 민현아. 나 너 진짜 좋아해. 나랑 사귀자."
"......"
"이번만하고 안 할거야. 거절해도 돼."
"그래, 사귀자."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심장마비로 죽을 뻔했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고백했는데 받았잖아. 그렇게 좋아하고, 좋아하면서 걔랑 앞으로 펼쳐질 캠퍼스 로맨스 같은 거 생각하고 있었거든. 근데, 전혀 아니더라. 문자건, 카톡이건, 전화건 내가 다 먼저하고, 데이트도 몇 시간 안 하고 끝냈어. 밥 먹고, 영화보면 끝? 에이, 거짓말하지 말라고? 내가 이런 걸로 거짓말을 왜 하겠어. 다니엘, 내가 그렇게 할 짓 없어보여? 아닌 거 같지?
아...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아, 사귀고 나서? 맞다, 맞다. 사귀고 나서 전부 내가 먼저했다고 말했잖아. 그렇게 의미없이 사귄지 한 8개월 정도 됐을 걸? 그때부터 뭔가 마음 한 구석이 텅 비어지더라고. 내가 왜 얘랑 사귈까? 하는 생각만 하고 지낸 거 같아. 그러다가 결국은 정말 걔가 내게 아무런 애정도 주지 않는다면 헤어지자고 해야겠다,라고 다짐했어. 근데, 다니엘 그거 알아? 사람은 참 모순적인 거 같아. 그렇게 다짐하고 나서 걔를 만날 때마다 잘해주는 거같이 느껴지는 게 있지... 나 바보같다고? 알고 있어... 굳이 그렇게 말 안 해도 괜찮아.
그렇게 무의미한 1달이라는 시간을 또 보냈다? 아, 참 이벤트같은 거 없었냐고? 생각해봐, 걔가 해주겠냐. 전부 내가했지... 이제 정말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할 때쯔음 처음으로 걔한테 문자가 오더라.
민현이
여주야, 우리는 여기까지인 거 같다. 미안해. 헤어지자, 우리.
알잖아, 나 너한테 애정 없었던 거. 너만 고생시킨 거 같네. 미안.
그게 얼마나 가슴을 후벼파는지. 아, 안 울거든, 다니엘. 그 문자만 보고 펑펑 울었다? 진짜 사람이 이정도로 울 수 있을까, 생각 가질 정도로 웃었어. 나는 장난인 줄 알았지... 걔가 무슨 낯짝이 있다고 나한테 헤어지자고 하겠어. 근데, 아니더라... 그 이후로 연락 한 통도 없었거든. 너 국어국문과 14학번 김종현 알지? 걔가 황민현한테 말했나봐, 그러니 걔하는 말이 뭔지 알아?
"민현이가 너 심각하냐구 물어봐써... 그래서 많이 심각하다니깐 표정 되게 안 좋던데... 걱정하는 거 아닐까?"
"...걱정했으면 오겠지. 걔가 우리 집을 몰라, 뭘 몰라?"
"그렇네..."
생각해봐, 그렇게 나한테 무심하게 대해놓고선 헤어지고나서 걱정해주는 게 말이 되냐고, 다니엘. 아, 목 막혀. 아니, 안 운다니깐? 어쨌거나 김종현 붙잡고 하루종일 울고불고 했지... 걔가 그거 생각날 때마다 나 놀리고 하는데. 아, 이야기가 산으로 가네.
본론만 말해달라고? 왜 휴학했는지? 왜겠어. 학교가면 전공 수업때마다 봐야하는 황민현 안 보고, 걔 목소리 안 듣고 마음 접으려고 그러는 거지. 그리고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거 같아서. 진짜 조증 걸린 거 같았거든. 하루에도 수십번씩 기분이 바껴. 그래, 다니엘 네 말대로 그땐 진짜 미친거지. 다시 얘기하니깐 머리 아프고, 그러네. 다니엘 근데, 표정 왜그래? 왜 울 거같이 그렇게 있어. 나도 안 우는데. 근데 나 너무 졸리다, 왜그럴까.
아 맞다, 이거 너만 알고 있어, 다니엘. 나 아직 황민현 좋아하는 거 같아...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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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째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풀어놓던 여주는 탁자에 붉어진 얼굴을 기댔다. 덥다, 더워. 여주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무거운 눈꺼풀에 눈을 감았다. 앞에서 여주를 바라보던 다니엘은 한숨을 푹 쉬며 언제 또 채워진 건지 넘칠 것만 같은 술잔을 들이켰다. 왜이렇게 바보같은지.
"왜 이렇게, 바보 같아요, 여주 누나?"
"......"
"왜 그런 사람을 좋아해요."
아무런 대답도 없는 여주만 바라보던 다니엘이 머리를 한 번 쓸어넘겼다. 답답한 마음에 술잔만 연거푸 들이킨 다니엘은 어느새 자기도 술기운이 올라오는 거 같아서 슬슬 나갈 준비를 하였다. 탁자에 퍼질러 잔 여주를 바라보다가 다니엘은 여주를 업고선 계산을 다하고 포차를 빠져나왔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자, 확실히 밤엔 바람이 꽤 불었다.
"여주 누나."
다니엘은 아무런 말도 없는 여주를 굳이 불러보았다. 움찔거리는 여주에 다니엘이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여주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그때, 여주의 휴대전화가 울렸고, 발신인을 확인해보니 다니엘의 얼굴이 굳어졌다. 울리는 전화의 액정 위엔 '황민현' 이 세글자가 반짝였다. 다니엘이 전화를 받자, 민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여주야?"
"...여주 선배님 술 취해서 자는데요."
"아, 그럼 전화받는 사람은 누구신데요?"
"체교과 강다니엘입니다. 여기 학교 근처 사거리 포차 근처예요."
"바로 갈게요."
몇 분 안 가 민현이 멀리서부터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말없이 여주를 업고있던 다니엘은 민현이 오자 민현에게 건넸다.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얘한테 무슨 헛짓거리 안 했죠?"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황민현 선배님. 선배님이나 여주 선배한테 허튼 짓 하지마시죠."
"......"
민현은 다니엘의 말에 아무런 대답없이 여주를 업고선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다니엘은 그런 민현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뱉곤 기숙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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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째
여주의 자취집으로 향하는 민현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무작정 여주에게 전화를 건 것도 민현이 아무런 생각없이 충동적으로 저지른 행동이었다. 그런 복잡한 민현의 마음을 모르는지 여주는 더욱 민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여주에 민현은 잠시 놀랐다가, 쉼호흡을 하고선 다시 자취집으로 향했다. 가다가 근처 편의점에 들려 숙취해서 음료를 샀다. 여주를 위한 것이었다.
여주의 자취집 문 앞에 선 민현은 혹시 몰라 제 생년월일로 비밀번호를 누르니 들어가졌다. 아직까지 안 바꿨나보다. 문을 열고 들어가, 여주를 침대에 눕히고 침대 옆에 앉아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서랍 속에서 포스트잇을 꺼내어 꾹꾹 글자를 눌러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이거 마시고 해장해, 여주야. 내일 보자.
-민현-
글씨를 다 적고 포스트잇을 떼서 숙취해소 음료에 예쁘게 붙힌 민현은 여주를 한동안 쳐다보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가기 전, 민현은 곤히 잠든 여주의 손등을 쓰다듬다가 나지막히 말했다.
"내가 널 사랑할 자격이 있긴 할까, 여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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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후 벌써 서브 남주 등장입니다요~! 많은 관심 너무 감사드려요 ㅜㅜㅜㅜ 항상 좋은글로 보답하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네요...
이번화도 급하게 썼습니다!!! 다니엘이 과연 여주를 좋아하는 건지 아닌지는 나중에 다 알려지게쬬??
암호닉
[유교과_김여주] [숮어] [민현아 어디봐] [황팔구] [0226] [쩨아리] [황민현] [빈럽] [핑핑핑핑] [☆탱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