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도령에게 시집가기
글 잎련
너를 처음 본 것은 한달 전 여름이었다.
"아버지! 이것 좀 보세요. 어때요?"
"가락지는 집에 많지 않느냐?"
"에이, 다르게 생겼잖아요~"
날씨가 무척이나 덥고 해가 쨍쨍한 날이었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송글송글 맺혀 별로 나가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곧 물려받을 가게에 일을 보러 아버지와 함께 장터에 갔었다. 갓을 써도 가려지지 않는 햇빛에 인상을 쓰고 걷고 있었는데, 그런 내 눈에 들어온 한 여인이 있었어. 작은 갑판에 놓여진 여러 가락지를 이손 저손에 껴보며 아버지라는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이 참 어여쁘더구나. 마침 아버지도 다른 가게를 구경하시느라 여념이 없어 보이길래 슬쩍 나도 그 가게로 다가갔지.
"설마 그 여인이 저에요?"
.. 그래. 이제 너라고 칭할게.
"크흠. 이것은 얼마요?"
"다섯 냥입니다요!"
너와 눈이라도 마주쳤으면 해서, 일부러 네가 아까 만지작대던 가락지를 들어올려 가격까지 물었건만 너는 내 쪽을 쳐다보기는 커녕 다른 장신구만 구경하느라 바쁘더구나. 괜히 머쓱한 마음에 너의 옆모습만 슬쩍 쳐다보다가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갔지. 혹시라도 남편이 있는 여인이면 어쩌나, 싶기도 했고. 네가 시집을 안갔을줄이야 몰랐지. 그때의 너는 곱다라는 말로도 부족하다고 느꼈으니까.
그 날은 너를 그렇게 본 게 다였어. 분홍 치마에 밝은 색의 저고리가 잘 어울리는 여인. 너에 대해 아는 건 생김새와 가락지를 좋아한다는 것 뿐이었는데, 그날 내내 생각이 났어. 가지런하게 땋은 머리와 옅은 다홍빛이 돌던 볼도. 이렇게 말하니까 좀 이상한가. 아무튼 네 생각을 하다가 그날은 잠에 들었지.
"아버지, 간밤에 안녕하셨습니까."
"어 그래. 인사하거라. 나의 벗이다."
다음날 문안 인사를 하러 갔더니 아버지께서 벗이라는 한 분과 함께 계시더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그 분을 쳐다본 나는 한눈에 너의 아버지라는 걸 알아봤지. 어제의 모습과 겹쳐보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너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참 많이 닮았었거든. 어쩌다보니 셋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참 좋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당연히 이런 분이 부모님인 너도 참 바른 아이겠구나 생각했고.
"그러고보니, 딸은 잘 지내는가?"
"도통 시집 갈 생각을 하지 않아 걱정이네."
그러던 와중에, 네가 시집을 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어. 놀라웠고,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기뻤지. 네가 나의 여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우리 아버지와 너의 아버지는 너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걱정섞인 한탄을 하셨지. 남편감은 알아보고 있냐는 나의 아버지의 물음에, 너의 아버지께서는 작게 고개를 저으셨어.
"내세울 것이라도 있어야 좋은 곳에 보내지 않겠나."
"뭐가 부족하다고 그런가, 자네도 참."
"항상 미안한 마음이네, 그 아이에게는."
"그럼 우리 재환이는 어떤가?"
농담 섞인 아버지의 말씀에 너의 아버지의 시선이 나에게로 돌려졌고, 나는 괜히 어깨를 더 펴고 좋은 인상을 남기려 노력했다. 농담이 진담으로 넘어가길 바라며. 그런데 너의 아버지께서는 정말 농담으로만 알아들으신건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시곤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셨어. 그날 나는 결심했지. 너와 혼인을 하겠다고.
"아버지."
"그래."
"혼인하고 싶은 여인이 있습니다."
며칠 뒤 어머니와 아버지께 찾아간 나는 너와 혼인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놀라신 아버지는, 그 여인이 너라는 말에 한번 더 놀라셨지.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나의 말을 들어주셨다. 며칠 뒤 너의 아버지와 부모님이 진지하게 대화하시는 모습을 얼핏 보았거든. 물론 나도 너의 아버지와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그때마다 많이 긴장하고 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리려 노력했고.
"잘 보이려구요?"
정확히 말하면, 너와 혼인하기 위해서지.
그렇게 며칠 뒤, 우리 부모님과 너의 아버지께서 모두 동의하셨고 나는 그 순간이 정말 꿈만 같았다. 처음 봤던 그 날 이후로 다시 못 본 너를 부인으로 맞이하게 되었으니까.
"진짜 좋았겠다. 제가 부인이 되어서."
"아까 놀렸다고 지금 이러는거야?"
"아닌데요?"
지금도 너만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래, 나는 너를 연모하였다.
연모하다 ; 이성을 사랑하여 간절히 그리워하다.
-----------------------------------
오랜만에 왔는데 넘나 짧아서 미안해요 ㅠㅠ
저도 현생에 치이는..사람인지라..
3화도 초록글+추천17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
5화도 최대한 빨리 올려볼게요!
오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