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 사랑이구나, 싶었다
소란 - 나만 알고 싶다
(강다니엘 시점)
"안녕하세요-"
"어, 오래간만이네. 김과장."
"그러게요. 출장은 잘 다녀오셨어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김재환을 만났다.
활짝 웃으며 안녕하세요- 하는데 웃어도 웃는 것 같지가 않다. 1팀 팀장님이 요즘 부쩍 예민하다셨는데, 그 때문에 그런 건지 영 표정이 어둡다.
그래도 괜히 내가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기가 좀 그랬다. 사람 떠보는 것도 아니고... 속 없이 건네는 말 때문에 더 스트레스 받을까 싶어서.
응, 잘 다녀왔어. 대답하니 옹과장님은 마무리 잘하고 가셨어요. 도착도 잘 하신 모양이더라고요. 한다.
같은 과장이라도 입사는 나와 성우형이 먼저였던 터라 선배랍시고 꼬박꼬박 존댓말을 해주는데, 나로써는 고마워해야 할 일이 맞다.
"그래요? 다행이네."
성우형이 내게 먼저 연락을 해오지는 않았다. 그런데 김과장이 성우형의 안부를 묻고 있는 걸 보면 누군가에게 전해들었거나, 본인이 먼저 연락해본 듯했다.
게다가 성우형이 가기 전에 나와 화해(라고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하고 갔다는 걸 모르는 김과장 입장에서는 내가 성우형이 잘 도착했는지의 여부를 알고 싶어도 알 방법이 없을 거라고 생각할 테니,
이렇게 알려주는 것도 고마워해야 하는 게 맞았다. 나는 고맙다는 의미에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재환은 여전히 얼굴에서 웃음을 걷어내지 않았다.
"아, 그 있잖아요. 옹과장님 송별회 때 ○사원이랑 겸상을 했거든요,"
겸상이라... 이런 말도 쓰네. 괜히 대화의 주제와는 상관없는 생각을 해보다 다시 김과장의 말에 집중했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려는 건가 싶어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타려고 했던 엘리베이터는 내려간다는 의사를 표하는 버튼조차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사원이 참 씩씩하더라고요. 싹싹하고 예의바른 건 알았는데 사람 참 괜찮더만요. 이어지는 칭찬이 전혀 내가 예상했던 바가 아니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 그래? 하며 멋쩍게 내민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재환의 칭찬이 이어졌다.
"하나밖에 없는 사수가 너무 급하다 싶을 정도로 훌쩍 떠나버리는데도, 씩씩하게 본인 할 건 다 척척 해내더라고요."
"....."
"저 같았으면 못 그랬을 텐데.... 볼수록 참 괜찮더라고요. 선배 챙길 줄도 알고."
재환이 나와 ○○의 관계를 아는지 모르는지 나도 확신이 잘 안 섰다. 성우형과 치고박고 싸웠던 날에 ○○가 나를 데리고 가는 모습을 김과장이 봤던가, 못 봤던가.. 기억이 잘 안 났다.
설령 그 모습을 보았더라도 그 관계를 확실히 규정짓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내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뭘까.
하기야, 내가 아니라면 이런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는 게 사실이다. 그 '하나밖에 없는 사수'라는 성우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업마케팅부서 내에서 그렇게 연관성이 높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기분이 이상한 거다. 분명 ○○가 칭찬을 하는데 왜 기분이 좋지 않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저야 직접적으로 같이 일해본 적은 없어서, 일로 엮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
"남자친구 없으려나? 대리 정도면 나이 좀 맞을 텐데.. 전략팀 애들이 참 괜찮은데. 황대리 같은...
황대리야 결혼했지만, 다른 대리들은 아직... 뭐..."
김과장이 혼잣말처럼 하는 말에 차마 안돼. 또는 걔 남자친구 있어. 그게 나야. 할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나와 ○○의 관계를 모르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게 됐다. 그런데 모른다는 게 전혀 좋은 것 같지가 않다. 이쯤 되니 알고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그래도 어쨌든 소개팅은 안 된다. 이건 뿌리부터 확실히 잘라야겠다 싶어서 단호하게 말했다.
"요샌 상사가 잡아주는 소개팅도 강제성 있으면 안 된다더라. 징계사유래."
"헐... 진짜요? 너무 팍팍하다... 괜찮은 사람끼리 만나게 해주는 건데 그게 그렇게..."
"우리 의도는 그래도 받는 입장에서는 아닐 수도 있으니까."
"하긴... 흠. 그러면 뭐 다리만 놔주든지 해야겠네요."
"....."
아니야, 그것도 아니야. 내 속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그걸 보이도록 할 수는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남자친구 있다고 확실히 이야기하는 건 좀 위험했다. 혹시라도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나에게 속은 것처럼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내게는, 김과장이 눈치껏 알아들어주기를 바라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재환이 ○○를 욕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것 같냐고 떠보는 식으로 물어본 것도 아닌데 왜 기분이 안 좋은 건지.
나도 이런 내 마음을 모르겠어서 일단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자리를 뜨고 난 다음에 내가 기분이 나쁜 원인이 무엇인지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래서 손을 뻗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아, 맞다. 근데 어디 가세요?"
"인사총무팀. 팀장님이 부르시더라고."
"팀장님이요? 무슨 일이시래요?"
"글쎄. 하반기 공채 이야기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맞다, 맞다. 그러네요- 얼른 가보세요."
"응. 고생해-"
신나게 떠들던 재환이 금방 자취를 감추고, 정적 속에 홀로 남아 엘리베이터를 타니 귓가에 아까 재환이 말했던 게 다시 맴돌았다.
'볼수록 참 괜찮더라고요. 선배 챙길 줄도 알고.'...선배를 챙긴다는 말은 어떤 의미였을까. 겸상을 했다고 했으니 그때 잘 챙겼다는 걸 말한 건가.
김과장과 겸상했다는 이야기는 물론 송별회가 어땠는지에 대해서조차 이야기하지 않은 ○○였다.
그렇다고 그게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혀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한 상태에서 김과장의 말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그런데 뭐... 딱히 갑작스러울 내용도 없는데. '챙긴다'는 의미가 뭔지 궁금할 뿐이지. 생각할수록 나만 소심해지는 것 같다. 이런 기분, 낯설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인사총무팀으로 걸어갔다. 사원, 대리들과 과장이 앉은 자리를 지나 팀장님께 왔는데 왠일인지 ○○가도 여기 있었다.
어쩐 일인가 싶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마음에 나도 몰래 눈인사가 먼저 나왔는데, ○○는 깍듯하게 소리내어 먼저 인사해왔다.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그런 ○○의 목소리를 듣는데 문득 아, 여기 회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몰랐던 건 아닌데 그만큼 깍듯하고 군더더기 없었다는 뜻이다.
나는 뒤늦게 네, 안녕하세요. 하고 소리내어 인사했다. 팀장님은 ○○를 향해 그럼 정리해서 저한테 보내주세요. 메신저 쪽지로 주시면 돼요. 하셨다.
○○는 알겠습니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감사합니다. 하는 말을 끝으로 팀장님이 건넨 종이를 들고 나서려 했다. 조금 바빠 보였다. 성우형이 없으니 당연했지만.
그런데 그래도... 돌아가는 길에 눈길 한 번 정도는 마주쳐줄 줄 알았는데. 칼같이 휘적휘적 걸어 나가버리는 ○○다.
아쉬움에서였을까. 괜시리 내 시선은 ○○의 뒷모습을 좇는다.
"아, 강과장. 다른 게 아니고 하반기 공채 말인데요-"
예상이 맞았다. 하반기 공채 이야기였다. 상, 하반기로 나눠지는 공채는 매번 공고가 나가기 전에 각 팀 과장들에게 충원해야 하는 숫자를 확인 받는다.
나야 몇 차례 해봤지만 마케팅팀은 성우형이 없어 과장이 공석이니 ○○에게 맡겼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제 갓 들어온지 반년 조금 더 된 애가 뭘 안다고.
물론 어려운 일도 아니고, 마땅히 이 일을 할 사람이 없는 것도 알겠지만 괜히 ○○가 떠맡는 일이 너무 많아지는 게 아닌가 싶어 좀 걱정이다.
일이 많아지는 것까지는 어찌 되었든 본인이 해야 하는 일인 거니까 알겠는데, 같은 팀이 아니라 도와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게 답답한 거다.
"영업2팀이 해원에서 제일 사람 안 바뀌고 오래 가네요. 강과장 덕인가?"
"저희야 팀장님이 워낙 잘하시니까..."
"대리랑 사원들 관리는 그래도 강과장이 하는 거 다 아는데 뭐.
강과장이 잘하니까 다들 힘들어도 계속하는 거지-"
"...감사합니다."
팀장님이야 좋은 뜻으로 한 칭찬이었겠지만 사실상 내가 들었을 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었다.
영업이야 1팀, 2팀 나눠서 계속 해왔던 일이니까 잘하면 칭찬을 받는다 쳐도, 마케팅은 그게 아니니 잘해도 티가 안 나고 못하면 욕을 먹는다.
그러니 마케팅팀 내에서 사람이 바뀌고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다. 충분히 알고 있었다. 성우형과 사이가 틀어져 있을 때에도 그 하나 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 마케팅팀이 칭찬 받고, 잘한다 소리를 듣는 건 철저히 성우형의 능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건 확실했다.
물론 성우형이 관둔 가장 큰 이유는 일한 만큼 대우받지 못해서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러나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다.
어쨌든 마케팅팀에서 사람 하나를 또 잃었고, 그에 따라 마케팅팀은 잡음이 많은 팀임을 확신할 이유가 생겼고, ○○는 마케팅팀의 일원이었다.
나는 그게 싫었다. 영업2팀 사람들이 계속 고여있다고 한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가락질 받는 마케팅팀에 ○○가 있는데 그 칭찬이 내게 달가울 수가 없었던 거다.
인사총무팀이야 사람의 들고 나감만 확인하면 되니까 그렇다 쳐도, 그 속내를 바라보면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래서 길게 이야기하기 싫었다.
"가보겠습니다. 저도 메신저로 드릴게요."
"고마워요. 이번에 2팀에 또 좋은 인재 들어올 수 있게 열심히 찾아볼게요."
"감사합니다."
좋은 인재야 별 것 없었다. 일단 태도가 좋으면 키워볼만 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뽑히면 문제가 되는 거였다. 운 좋게도 우리 팀에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우리 팀이야 그렇다 쳐도, 마케팅팀이야말로 좋은 인재가 뽑혀야 할 타이밍인데 담당 과장이 없다고 해서 신경을 덜 써줄까 괜한 우려가 됐다.
그렇다고 마케팅팀 좀 잘 챙겨달라고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와 ○○의 관계가 공공연했더라면 상황이 조금 나았을까 싶다.
사내연애라. 애초에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일이지만 만약 하더라도 공개는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랬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사람 감정이란 게 정말 한 치 앞을 모른다.
역시 결혼 발표를 일찍 해버리는 게 답일까. 하지만 아직 ○○의 마음을 알 수 없다. 확실히 정해지기라도 하면 말문이라도 열어보겠는데. 어렵다.
내가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 아닌데. 도통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으면서도, ○○의 당찬 뒷모습이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귀여워. 나도 모르게 나온 혼잣말에 내가 더 놀란다.
팀장님이 준 종이를 들고, 고개를 저으며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가 지나간 길에 ○○의 향기가 배어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
마침 내일이 주말이라 ○○가 우리 집에 왔다. 나는 나대로 바쁘고, ○○가도 ○○가대로 정신 없는 때라 퇴근이 늦어졌다.
서두른답시고 밥도 안 먹고 일했는데도 어느덧 시간은 밤 9시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다 쳐도 ○○에게는 뭘 좀 먹여야 했는데, 하루종일 생각이 많았기에 그 생각은 퇴근을 하고 나서야 불쑥 떠올랐다.
원래대로라면 달걀이라도 튀겨 뭐라도 해서 내줬을 텐데, 종일 너무 많은 생각과 씨름한 탓인지 그럴 의욕이 없었다.
그런 나를 일이 너무 많아 힘들어서 쉬고 싶은 거라고, 잘못 읽어낸 ○○가 팔을 걷어붙였다.
"뭐 좀 하려고 해도 너무 늦어가지구.. 과장님 라면 괜찮아요?"
"응."
"네. 제가 끓일게요."
이래저래 생각이 많다 보니 차 안에서 ○○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건넬 힘도 없었고, 집에 와서 먼저 씻으라고 말할 힘도 없었고,
찬장에서 라면을 꺼내는 ○○를 말릴 힘도 없었다. 생각이 많은 게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한다.
라면을 끓이는 ○○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내가 끓인다고 씻으라고 할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끓이면 됐는데.
실은 씻을 힘조차 없어 옷도 채 갈아입지 못하고 ○○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흘끗 뒤돌아본 ○○가와 눈이 마주쳤다.
○○가도 많이 지쳐보였다. 힘들겠지. 힘들 텐데.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드세요. 김치 꺼낼게요."
나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말하는 ○○다.
나는 셔츠에 라면국물이 튈까봐 단추를 풀었다. 웃옷을 벗어내니 맨살이 드러나는 게 그래도 옷은 입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급하게 방에 가서 반팔티를 하나 집어왔다.
금방 다녀온답시고 다녀왔는데 식탁 위에는 그릇 두 개와 수저 두 짝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라면을 끓이고 테이블을 세팅하기까지를 ○○가 다 한 셈이다.
나는 의자를 꺼내 앉았고, 내 맞은 편 의자를 꺼내 앉은 ○○는 잘 먹겠습니다. 하고 젓가락을 들었다.
그 모습을 보니, 옹과장님 송별회 때 ○사원이랑 겸상을 했거든요. 볼수록 참 괜찮더라고요. 선배 챙길 줄도 알고. 하는 김재환의 말이 또 생각났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 이렇게 되는 게 답답했다.
한숨을 내쉬면서 맨손세수를 했다. ○○가 라면을 먹다 말고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이게 아닌데.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망했다, 싶다.
"...저 집에 갈까요?"
"....."
"그냥 내일 다시 만날래요?"
"......."
탁, 소리가 나게 식탁 위에 젓가락을 내려놓은 ○○가 말했다.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음을 머리는 아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잘한 게 없는 내가 미간을 좁히고 ○○를 향해 말했다.
"....라면 먹자."
"과장님이 자꾸 그러는데 라면을 어떻게 먹어요.
저한테 뭐 화나신 거 있어요? 단순히 힘들어서 그런 거 아니잖아요.
말을 해야 알죠, 제가."
".........."
너한테 화가 난 것도, 단순히 힘들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런 내가 적응이 되지를 않고, 해명하고 싶은데 속 좁아 보일까봐 말이 안 나와서.
한껏 답답한 마음인데, 그 마음을 숨길래야 도저히 숨길 수가 없어서... 어른스럽지 못하니까. 혹시라도 너가 실망할까봐. 그래서.
나도 이런 내가 싫은데 너도 내가 싫어지면 어쩌나 하고. 그런 노파심에...
"말 안 하실 거면 저 가요. 집에."
".........."
"...저 답답해 죽어요, 진짜."
"....잠깐 나랑 얘기 좀 해."
울상 짓는 ○○를 앞에 두고, 더 이상 이렇게 버티다가는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난 채로 성큼 걸어가 식탁 위에 올려진 ○의 손을 잡아 끌었다. 차마 여기서는 말을 못하겠어서. 소파에 편하게 앉아 이 불편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털어내고 싶었다.
○○는 얼떨떨하지만서도 내 손에 끌려 따라와주었고, 나는 그대로 ○○를 소파에 앉혔다. 그 오른 편에 나도 앉았다. 빈틈 없이 맞닿은 채로 말문을 열었다.
"짜증나서 그랬어."
"뭐가요."
"....김재환. 인사총무팀 팀장님도."
"왜요."
"........"
나오는대로 아무말이나 해버리면 분명 횡설수설하게 될 게 뻔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건 ○○를 집에 보내기 싫어서였다. 같이 있고 싶으니까..
성우형 송별회 때 김재환이랑 같이 앉았다면서. 나는 너한테서 그런 이야기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김재환이 너를 막 칭찬하는 거야.
사람이 괜찮다면서, 씩씩하다면서. 거기까지 했으면 됐는데 갑자기 전략팀 대리들이 괜찮다고, 소개시켜주려는 생각으로 말하는데 내가 짜증이 나, 안 나.
그러고서 바쁘다고 일단 김재환 보내고, 인사총무팀으로 갔는데 네가 있는 거야.
너 버거워 보이는데도 난 하나도 도와주지를 못하는데, 팀장님은 영업2팀 사람 잘 안 바뀐다고 좋다고 또 칭찬을 해.
그런데 난 하나도 안 좋은 거야. 결국 네가 힘든 건데 나는 도와줄 수가 없잖아.
우리가 어떤 관계라고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게 말할 수 있기라도 하면 덜 속상한데, 그럴 수가 없으니까 답답하고.
하루종일 짜증나서... 그래서 그랬어. 괜히 너한테... 내가 심통부렸어.
"...과장님."
"...응."
"김과장님한테 느낀 그거는 짜증 아닌데?"
"...뭐?"
"질투인데."
"......."
"그리고. 팀장님한테 느낀 그것도. 짜증 아닌데?"
"........"
"그건 과장님이 날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건데."
진지한 표정으로 건네는 말에 차마 반박조차 할 수 없어서 얼이 빠진 채로 듣고만 있다.
하루종일 '짜증'으로 치부해버렸던 내 감정들을 전혀 다른 정의로 규정해버리니 놀라워서 할 말을 잃어버린 거다.
"김과장님이 어떻게 생각하든 뭐가 중요해요. 어차피 나 과장님 건데.
누가 뭐 괜찮다 하든 어쩌든 무슨 상관이에요."
"......"
"그리고. 그렇게 과장님 거라고 떳떳하게 말하고 싶으면 데리고 살아야지, 뭐.
본인이 그런다고 그랬던 거 아니었나?"
".....너,"
"아- 이 정도면 힌트를 너무 많이 준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는 야무진 얼굴로 한 마디, 한 마디를 꼬집는다. 하는 말마다 맞는 말이라 흘러가듯 듣고 있으니 어느덧 마지막 말까지 닿았다.
힌트... 힌트라. 머리가 알아채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알아챈 그 말에 눈이 매섭게 떠졌다.
진심이야?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에게 묻는다. 그런 나를 보며 가만히 눈을 맞춰오는 ○○다. ○○는 조금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를 보는 내 가슴이 쿵쾅쿵쾅, 정처 없이 뛰어댄다. 나는 마른 침을 삼킨다. ○○의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아져 있던 손을 끌어당겼다.
어어, 하면서 엉겁결에 네가 내 품에 안긴다. 좋은 향기를 담은 짧은 바람이 훅 불어온다. 나는 틈을 주지 않고 네게 입을 맞춘다. 너는 숨이 막힌지 콩콩 내 가슴팍을 두드린다.
나는 입맞춤의 사이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네가 숨 쉴 틈을 준다. 그대로 소파의 남은 공간 위에 너를 눕힌다. 너와 내 몸은 틈 없이 겹쳐지고...
나와 템포를 맞춘 네가 내 목 뒤로 팔을 감아온다. 나는 입술을 떼고 너의 눈을 마주보며 말한다.
".....결혼하는 거지, 나랑?"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너에게 금방 다시 입맞추고 싶어지는 걸 꾹 참으며 나는 말했다.
....대답. 너의 대답을 바라는 나의 두 글자짜리 재촉에도 너는 쉽게 대답해주지 않는다. 입맞추고 싶은 충동이 한계에 달하려 한다.
조금 각도를 틀어 다시 네게 입맞추려는데,
"....알았어요."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얼어버렸다. 생각지 못한 타이밍에, 생각지 못한 대답이라니.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당돌한 너는 그렇게 항상 내 예상 밖에 있다. 우습게도 나는 그런 네가 좋다. 너무 좋아서 이렇게 있다간 큰일이 날 것 같아.
너는 언제 내 시선을 피했냐는 듯, 얼이 빠져있는 나에게 쪽, 귀여운 소리를 내며 짧게 입을 맞춘다.
"....알았다고요. 결혼해요."
나는 네 말을 끝으로 눈을 감고, 네 입술에 내 입술을 맞대어 꾸욱 누른다. 내꺼라는 도장을 이렇게 남겨두고 싶은 거다.
나를 따라 스르르 눈을 감는 너. 마주한 네 심장과 내 심장이 서로를 향해 뛰고 있다. 쿵, 쿵, 어느새 원래의 제 템포를 찾은 내 심장.
내 뒷머리를 헤집는 너의 손길이 느껴지고, 나는 네가 인도하는 천국에 갈 준비를 한다. 너만이 데려가줄 수 있는. 바로 그 곳으로.
-
"치킨 배달왔습니다-"
밥도, 라면도 제대로 못 먹어 배고플 너를 위해, 그리고 하루종일 날 괴롭히던 '짜증'에서 헤어난 나를 위해 치킨을 시켰다.
어느덧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나는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곯아 떨어진 너를 두고 치킨을 받으러 나갔다.
식탁 위에 다 불어버린 라면을 버리고, 꺼냈던 김치를 다시 냉장고에 넣어두고, 비닐봉지에 담긴 치킨상자를 꺼내는데 괜히 웃음이 나왔다.
우으.. 하면서 부비적부비적, 눈을 비비며 걸어온 네가 내 허리를 안아왔다. 잠에서 깨어 엄마의 등을 찾아 보채는 아기같다.
나는 몸을 돌려 너를 안는다. 너는 어디 간 줄 알았잖아요.. 하며 내 품에서 웅얼대고, 나는 내 손으로 네 머리를 감싸며 말한다.
"내가 너 놔두고 어딜 가."
"가지 마요. 가면 안돼.. 과장님 내 거예요."
"응. 그럴 일 없어."
나는 네 이마와 눈, 코에 차례로 입맞춘다. 내 입맞춤을 온전히 받아낸 너는 얕게 앓는 소리를 내며 배고프다고, 치킨 먹자고 보챈다.
치킨 다 먹이고 더 안아줘야지. 미안한 마음에 고마운 마음을 더한 만큼 몇 번이고 안아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질투 때문에 짜증이 나다가도, 너를 너무 좋아해서 또 짜증이 나다가도,
그래도 네가 있어 행복한,
예쁜 너를 나만 알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
이게 사랑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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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Y사원입니다. 저는 여행을 마치고 서울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종종 암호닉을 정리하다 보면 언제부터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동일한 암호닉을 사용하고 계시는 분들이 보일 때가 있어요. 제가 보이면 늘 확인차 여쭙곤 하는데, 미처 보지 못하고 넘어간 게 있을까봐 늘 노심초사합니다... 본인 암호닉인 줄 알고 사용했는데, 알고 보니 신청이 되지 않은 경우가 있거든요.. 그러면 차후 메일링을 못 받는 등 불이익이 생길 수 있어요. 지금이라도 암호닉 신청해서 사용하고 계시는 분들은 몇 차때 신청했고 저의 확인 댓글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꼭 체크해주시길 바랍니다. 완결 후 메일링 때 어차피 말씀해주셔야 하니 미리 확인해 두시면 편리할 것 같아요~
지난 편에서 성우가 여주한테 뽀뽀하는 거 강과장이 보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하셨던 분들 엄청 많았는데요ㅋㅋㅋㅋ 그동안 제가 강과장 쓰면서 얼마나 독자님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는지... 새삼... 느꼈습니다...ㅋㅋㅋㅋ 만약 다니엘이 지켜보고 있었더라면 강과장은 로맨스가 아니라 스릴러가 되었을 거라는... 하핫
오늘은 옹과장이 아닌 이유로 한 다니엘의 첫 질투...? 를 그렸던 것 같아요. 원래 질투라면 성우한테 한 것밖에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깊어진 다니엘의 마음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결혼합니다 도장을 꽝꽝 찍을 수 있었네요. 호호 뿌듯합니다.. 참, 그리고 오늘 키스신은 응답하라 1997에서 윤제가 시원이에게 프로포즈 하는 장면을 모티브로 썼습니다. 응칠은 제 인생드라마ㅜㅜ흑흑 이 장면 보시면서 같이 응칠 추억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여튼 오늘도 즐겁게 읽어주셨기를 바라요~
우리 원은 어째 홍콩 가서 더 빛나고 예쁘고 잘생기고 다 해먹는 것 같네요ㅠㅠㅠㅠ 코디랑 헤어 저렇게 한국에서도 해주라 줘....ㅠㅠ엉엉엉 떡밥 따라갈 시간 생겨 행복한 추석입니다...♡ 저는 다음편에 미리 가있을게요! 늘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저녁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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