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 로망과 현실 사이
아이유 - 비밀의 화원
"뾰루지가 또 났네..."
결혼이란 걸 하기로 한 건 사실이나 그게 그렇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트레스만 받으면 볼록볼록 뾰루지가 고개를 내미는 예민한 피부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과장님, 아니 오빠는 딩동딩동 누르면 되는 버튼이냐며 장난을 쳤지만, 나는 어쩐지 그마저도 웃고 넘길 수가 없었다. 예민해진 피부만큼 성격도 예민해진 탓이다.
우리 엄마와 아빠를 봤다고 한들 결혼 이야기를 들고 찾아뵙는 건 전혀 또 다른 문제였기 때문에 일단 그게 하나의 큰 일이었고,
마땅한 곳에 결혼식장을 예약하고, 웨딩촬영 날짜를 잡고, 그를 위해 웨딩드레스를 보러 가야 하고... 그러한 일련의 일들이 아무리 서두른다고 한들 족히 6개월은 여유가 있어야 했다.
결혼을 서두른다고 하더라도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한 큐에 해치우고자 할 마음은 없었다. 인생에 한 번 뿐인(한 번 뿐이면 좋을) 결혼을 그런 식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점에 대해서는 오빠도 충분히 동의하고 있었다. 요즘 결혼이 힘들다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걸 본인도 느꼈기 때문일 거다.
"안녕하세요. ○○○라고 합니다-"
하나 뿐인 손자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캐나다에 계시던 시할머니, 그러니까 오빠의 외할머니가 한국에 잠시 들어오셨다. 캐나다에 함께 산다고 하시는 이모님도 함께.
따뜻하긴 해도 다정다감한 성격은 아니라는 말이 꼭 맞았다. 오래간만이에요, 할머니. 하는 오빠의 말에 딱 한 마디 하셨다. 너, 안 온다는 이유가 있었구나. 라고.
오빠는 웃어 넘겼지만 왠지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그 한 마디 안에서 조심스럽게 묻어나는 아쉬움과 서운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라고, 이름을 말하는 내 말 뒤에 ○○가? 얼굴만큼 이름도 예쁘네. 하고 쿨하게 한 마디 얹어주셨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마음에 안 들지는 않은 것 같아서.
시할머니와 이모님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 상견례를 해내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빠르게 움직였다. 덕분에 근 한달 정도의 주말을 완전히 반납했다.
첫 번째 주말에는 오빠와 함께 결혼 이야기를 꺼내러 우리 집에 갔어야 했고, 두 번째 주말에는 시할머니와 이모님을 모시고 오빠의 부모님 산소에 갔어야 했다.
세 번째 주말에는 상견례할 장소를 알아보고, 네 번째 주말에 진짜로 상견례를 앞두고 나니 한 달이 훌쩍 흘러가 있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반년이 이런 식으로 날아가 버리겠다 싶어 후우,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한숨에는 상견례에 대한 어렴풋한 긴장과 걱정도 담겨 있었다.
"걱정돼?"
"...네."
"너무 걱정하지마. 양가 분들 다 좋은 분들이셔서 별 일 없을 거야."
"꼭 무슨 일이 있을 거라 걱정하는 것보단..."
"응. 알아. 그래도 너 걱정하는 거 싫으니까."
긴 말 않고 손을 맞잡아 오는 오빠다. 줄곧 예민해져 있었기 때문에 별 말 아닌 것도 괜히 거슬리곤 했다. 그래서 내가 못된 걸 알면서도 오빠에게 투정을 부리고 그랬다.
물론 그 때마다 오빠는 잘 받아주곤 했지만.. 종종 본인도 짜증이 나는 것 같은 날이 있기도 했다. 그게 혹여 싸움으로 번지진 않을까 싶어 노심초사한 것도 맞다.
결혼이라는 과정, 그러니까 그걸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힘들고 만만치 않은 일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두 사람 사이의 감정 문제였다. 누구나 공감하는.
상견례는 큰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내가 다니엘 외할머니에요, 하며 인사하시는 할머니와 우리 아빠는 악수를 했다. 엄마는 이모님과 손을 맞잡았고.
어느 분 하나 말씀을 강하게 한다거나, 뜻하는 바를 밀어붙인다거나 하시는 경우는 없어서 무난하게 이야기가 흘러갔다.
허례허식에 힘 주지 말자는 데에서 예단과 예물은 최소화하고, 필요한 것들만 적당히 준비해서 같이 살게끔 하면 그 후는 굳이 어른들이 힘쓰지 않아도 될 거라는.. 그런 이야기들.
이런 부분에서 말이 통하지 않으면 힘든데, 이야기가 잘 합쳐져 쌍방의 동의를 얻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나는 맞은 편에서 날 바라보고 있는 오빠와 다행이라는 눈빛을 주고 받았다.
"음식이 입에 맞으신지 모르겠어요. 신경써서 고르긴 했는데..."
사근사근,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엄마에게 말을 건네는 오빠다.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시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엄마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엄마는... 오빠를 좋아하는 게 맞다. 그것도 많이. 딸만 달랑 하나 있는 집안에서 엄마 노릇하느라 힘들었는데 이제 사위도 들어오겠다, 사위가 아들 노릇 싹싹하게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터였다.
그래도 딱 그것 뿐이다. 이모가 키워내는 박지훈이 얼마나 힘든지를 경험했으니 그 이상은 바라기 싫은 거다.
딸 같은 며느리가 어불성설이듯, 아들 같은 사위도 그와 마찬가지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기 때문에 나는 엄마를 잘 안다.
아들 같은 사위라고 해봐야, 그래봐야 지 엄마 아들이지 내 아들이겠냐고. 대부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엄마는 내게 여러 번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도 이렇게 오빠만 보면 서글서글 웃음이 난다는 것은 그저 오빠가 좋기 때문일 것이다. 기대하고 생각해왔던 것 이상으로 오빠가 훌륭한 사윗감이라는 생각에.
"엄마가 생각해봤는데 너희, 살림부터 합쳐."
"응? 살림부터?"
"그래. 결혼하는 데 하루이틀 걸리는 거 아니야. 요즘 결혼이 얼마나 힘든데."
"...."
"요즘 월세 비싸. 네 집이야 전세다만, 그리고 처음부터 엄마는 그거 너 결혼자금으로 주려고 생각하고 있었어.
엄마랑 아빠가 대줄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야. 나머지는 네 몫이야."
"엄마..."
끝까지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상견례가 마무리되고 난 뒤에는 잠깐의 티타임이 이루어졌다. 음식이 걷힌 자리에 커피가 놓이니 마음이 한 결 편해지셨는지 많은 대화가 오갔다.
편하지만은 않은 자리지만 대화주제는 꽤 편해진 걸 보니, 그간의 노력이 쓸 모 없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함이 들어찼다.
티타임 후 해산하려던 찰나, 엄마는 잠깐 이야기 좀 하자며 오빠에게는 적당히 둘러대고 슬쩍 빠져나오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엄마가 반찬 줄 거 있나 봐요. 하면서 무난하게 핑계를 댔고, 오빠는 대강 눈치를 챈 것 같은 태도로 나를 순순히 보내주었다.
잠깐 마주한 엄마는 내게 살림부터 합치라는 이야기를 해왔다. 그 말은 곧, 상견례는 성공하였으며 결혼도 99.9% 확정이라는 것이었다.
나머지 0.1%에 대해서는 '결혼은 예식장 들어가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다.'라는 말에 의한, 혹시, 아주아주 호옥시라도 모르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확률이었다.
살림부터 합치라는 이야기가 엄마의 입에서 나올 줄 몰랐던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엄마를 쳐다봤고, 엄마는 뭘 그렇게 놀라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네 엄마 구닥다리 사고방식 아니야. 그리고 네가 알아서 잘할 거라는 거 알아."
"......"
"그래서 그래. 그리고 이렇게까지 왔으니까 최악의 상황은 생각하기 싫고."
살림을 합치는 것에 대한 확신이 든 상황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나를 이렇게까지 믿어주는 엄마에 대한 고마움은 그 최대치를 100으로 봤을 때에 110쯤 꽉 채워진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엄마를 꼭 껴안고 뽀뽀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다 큰 딸이 들이대는 게 징그러울 것 같아서 꾹 참았다. 그리고는 딱 한 마디 했다. 믿어줘서 고마워, 엄마.
엄마는 그래. 하면서 슬쩍 웃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우리 엄마 최고!
아빠의 의견이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물어보려 들지는 않았다.
아빠보다 엄마의 권한이 아주 강력한(심지어 아빠도 그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우리 집에서 엄마가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는 거면 아빠의 의견은 이보다 더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저 엄마, 그리고 아빠에게 고마워서라도 예쁘게 잘 살아야겠다는 어떤...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게 들었다. 잘 해야지. 잘 해봐야지.
믿어주시는 만큼, 실망하지 않도록. 내가 잘 해야겠다는 의지가 마구 솟구쳤다. 하나밖에 없어 애지중지 소중하게 키운 딸래미 시집 보내는 것, 후회하지 않게 해야겠다고... 말이다.
-
"키가 크고 마른 편이셔서, 머메이드 라인도 잘 어울리실 거예요-"
"...아..."
"저희가 머메이드랑 A 라인 쪽으로 예쁜게 많아서, 몇 개 보여드릴게요."
"네...."
엄마가 말하는 그 살림을 합친지 근 한 달, 일어나야지. 하는 오빠의 목소리에 세상 가장 무거운 눈꺼풀에 힘을 줬다.
드레스를 보러 가는 날이다. 평일에 가야 많이 볼 수 있다고들 해서 나란히 월차를 썼다.
대충 이러이러한 몸매니까 이러이러한 게 잘 어울린다고, 인터넷에서 본 게 있긴 했지만 그게 입고 싶은 것과 완벽히 맞을 수는 없는 법.
드레스를 직접 보고 골라야겠다는 생각으로 일단 샵을 방문했다. 언니들(무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서...)이 추천해준 스타일은 머메이드와 A 라인.
드레스를 둘러보면서 오빠에겐 들리지 않을 만큼의 목소리로, 내가 입어서 예쁜 것도 중요하지만 신랑이 입을 턱시도와도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니 신랑 분 피지컬이 워낙 좋으셔서 웬만한 건 다 잘 어울리실 테니, 신부 분은 본인이 입고 싶은 거면 다 입으셔도 상관 없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내 남자 피지컬이 좀 대단하긴 하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괜시리 웃음이 났다.
"일단 이게 제일 마음에 드는데요. 이거 한 번 입어볼게요."
머메이드 라인으로 시원하게 쭉 뻗은 드레스가 맨 처음 눈에 들어왔다. 나 여기 있어요, 나 좀 입어주세요. 하고 드레스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 일단 그걸 가리켰다.
하나 더 골라주세요. 하고 오빠에게 말하니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딱 하나를 가리키는데, 그건 마침 내가 가리킨 드레스였다.
사람 눈 다 비슷하구나 싶어 첫 번째로 입어보기로 했다. 보이는 것 만큼 잘 어울려주기를 기대하면서.
피팅이라는 게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실은 그렇게 녹록치가 않았다. 이왕 하는 결혼이니 여러 드레스를 입어보고 맞는 걸 고르면 좋겠다 싶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내 눈에, 그리고 오빠 눈에 훌륭하면 그게 제일 좋은 거란 생각이었다.
"커튼 걷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보면 뾰로롱, 하는 배경음악이 나오면서 샤랄라 반짝이는 효과를 막 주던데. 오빠의 눈에도 내가 그렇게 보이려나, 아니려나. 혼자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거울을 마주본 채로 커튼이 걷혀져서 순간적으로 드러난 오빠의 표정이 어떤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주춤주춤 뒤를 돌아 오빠를 마주봤는데, 연애하는 동안 본 적이 없는 표정으로 날 보고 있어서 사뭇 놀랐다. 반쯤 얼이 빠져 있기도, 나머지 반쯤은 황홀한 것 같기도 한... 그런 표정.
나는 웃음이 났고, 오빠는 그대로 얼마 간을 아무런 말도 못하다 겨우 입을 열었다.
"....예쁘다."
군더더기 없는 단순한 말이었지만, 그 말에 담긴 진심은 충분히 읽혔다. 옆에 자리한 언니들은 머메이드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분들은 꼭 머메이드를 입어줘야 한다며, 내가 머메이드를 골랐으면 좋겠음을 강조했다.
드레스를 한 번, 한 번 갈아입을 때마다 그 드레스의 형태와 느낌을 메모할 거라며 챙겨온 수첩과 볼펜은 잊은 지 오래. 오빠는 그저 내게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적어야죠. 하며 손을 들어 적는 동작을 취해 보이니 아, 맞다. 하며 그제야 슬쩍 수첩과 볼펜을 든다. 그 모습도 여전히 절반은 넋이 나간 상태라 난 웃음이 나왔다.
"신랑 분이 넋이 나가셨어요- 저 여기서 3년 일했는데 여태 본 신랑 표정 중에 제일 리얼하네요."
"아, 그래요?"
"네. 보통 처음에는 놀라다가 갈수록 적응이 되어서 괜찮아지시는데, 우리 신랑 분은 아니셔서 제가 되려 신기해요-"
우리의 대화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듯, 오빠는 반쯤 벌어진 입을 닫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볼펜을 열심히 움직였다. 중간중간 나와 시선이 마주치는 건 덤이었다.
나 또한 오빠의 이런 표정은 처음이라 신기하면서도 재밌었다. 두 눈이 온전히 나를, 그것도 예쁜 나를 향하고 있는 느낌.... 조금 쑥스럽긴 해도 절대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쿵, 쿵, 설레오는 심장을 샵 직원 언니들에게 들킬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 후로 두세 벌 더, 그리고 다른 샵으로 옮겨가서 두어 벌을 더 입어봤는데도 처음 입은 머메이드 라인의 그것보다 예쁘고 잘 어울리는 것을 찾지는 못했다.
공연히 힘 더 빼지 말고 첫 번째 드레스를 예약해야겠다 싶어 첫 번째 샵에 전화를 걸었고, 그대로 첫 번째 입은 그 드레스를 선택했다.
첫 드레스의 충격에서 헤어나온 지 오래, 옷을 여러 번 바꿔 입어본 나도, 비슷비슷해 보이는 드레스를 여러 번 지켜본 오빠도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지칠만한 사실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난 요리도 잘 못했다. 청소라고 꼼꼼히 하는 것도 아니었고, 설거지야 엄마 돕다 보니 깨끗이 하긴 하지만...
생각이 더 나아갔다. 아이라고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키워본 적 없으니 당연했다. 동생이라도 봐본 적이 있으면 덜 했겠는데 동생도 없었고.
박지훈이라고 해봐야 내가 키운 건 아니었기 때문에 육아에 대한 경험은 정말 1도 없었다. 결혼을 한다 쳐도 경험치가 워낙 없으니 그 어떤 것도 만만하지가 않았다.
"....후우."
"왜 한숨이야?"
"....지칠대로 지쳐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응."
"더 생각해 보니까... 할 줄 아는 것도 거의 없어서요."
"할 줄 아는 게 없기는."
"그렇잖아요.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손이 야무져서 청소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애는 어떻게 키우며...."
"요리는 내가 잘하고. 청소는 같이 하면 되고."
"....."
"벌레 잘 잡잖아. 그럼 됐지."
얼마 전, 오빠가 으악, 하며 소리를 질러서 무슨 일인가 하고 가보니 생전 처음 보는 벌레가 있었다.
워낙 세상에 무서운 게 그리 많지 않은 나라서, 성큼성큼 걸어가 신고 있던 슬리퍼로 쿵, 하고 벌레를 때려 잡았다. 오빠는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또 성큼성큼 휴지를 가지고 와서 슬리퍼 바닥에 붙은 벌레를 슬쩍 떼어냈다. 오빠는 으으... 하면서 얕게 앓는 소리를 냈다.
저 벌레 잘 잡아요. 하며 씨익 웃었더니 오빠는 다행이다... 하면서 긴장을 풀었다. 하얗게 질려 있던 얼굴에는 금방 화색이 돌았다.
같이 있을 때 벌레를 본 건 처음이라서, 매사에 무덤덤하고 무뚝뚝한 편인 오빠가 벌레를 무서워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오빠는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다행이야... 하고 한 번 더 말했다. 솔직히 좀... 귀여웠다. 이런 식의 귀여움은 처음이었다.
"그런가..."
"그럼."
"그냥... 드레스 입어보고 하는 게 너무 보통 일이 아니어서 좀, 지쳤나 봐요."
"....응."
"뭐 하나 만만한 일이 없어서.. 다 생각보다 어렵고."
하소연을 하려던 건 아닌데 어째 흘러가는 분위기가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았다. 나 뿐만 아니라 오빠도 힘들 텐데. 내색해봤자 딱히 좋을 건 없는데.
그렇다고 내색하지 않기에도 참아왔던 것이 워낙 많아서, 지금 만큼은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다. 내뱉으면 속이라도 시원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오빠는 아무런 대꾸 없이 내 이야기를 들었다. 성격상 이렇게 혼자 열심히 이야기하다 곧 그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후로 시간이 제법 흘렀다는 걸 느끼는 건 이럴 때다.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주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
나를 바삭히 알고 있는 오빠로서는 내가 하소연하면 결국 오빠도 힘들어지는데, 그 힘들어지는 것을 미안해한다는 것까지 간파하고 있을 터.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훤히 들여다 보는 것은 부끄럽고 때로는 수치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은 그런 부정적인 감정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그저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투정부리듯,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야, 저기 봐."
그렇게 중얼대던 내 입을 막아버리는 게 있었다. 차창 너머,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가족의 모습이었다.
꽤 젊어 보이는 엄마와 아빠. 해봐야 오빠와 나 사이 정도, 한 중간 즈음의 나이로 보였다.
그 사이에는 엄마와 아빠 손을 한 쪽씩 잡은, 이제 막 걷기를 넘어 달리기를 할 줄 아는 정도의 아이.
대강 보기에 엄마와 아빠는 커플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엄마와 아빠의 보폭을 맞추기 위해 달리듯 걸어가는 아이도 비슷한 형태의 어린이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예쁘다... 나도 모르게 나온 말에 오빠의 나즈막한 웃음이 이어졌다.
"응, 예쁘다."
"......"
"우리, 저렇게 살자."
"......"
"나 닮은 아들이랑, ○○가 너 닮은 딸 하나씩 낳고,"
"......"
"저렇게, 예쁘게."
오빠는 제 오른 손으로 내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둔 왼손을 잡아왔다.
빨간 불이라 잠시 멈춰 있던 차가 초록 불로 바뀌면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과 동시에 오빠는 제 입술로 내 손등을 가져갔다. 짧게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커플 신발 사이에 어린이 운동화, 한동안 자주 듣던 노래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잔뜩 지쳐버린 몸에 조금은 생기가 도는 듯했다.
우리, 그렇게 예쁘게 살 수 있겠지. 나 닮은 딸, 그리고 오빠 닮은 아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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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Y사원입니다!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연휴입니다.. 시간이 느린듯 빠르네요.. 흑흑 일단 여러분들께 정말정말 감사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신알신 수가 무려 1800을 넘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신알신 해주시고, 그 신알신에 따라 정주행 함께해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편 BGM은 제가 평소 좋아했던 이상은님의 비밀의화원이라는 곡을 아이유님이 이번 앨범에서 부른 버전으로 넣어보았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변화된 한 사람의 모습을 잘 표현한 곡이라고 생각되어서, 여주 시점에서 꼭 넣어보고 싶었는데 최근 발표된 아이유님의 앨범에 이 곡이 있어서 정말 기뻤어요. 이미 듣고 계셨던 분들도 있겠지만, 새로이 알게 되신 분들도 잘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글 속에 나온 곡은 방탄소년단의 Miss Right이라는 곡입니다. 가사를 들을 때마다 와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쓰지... 하면서 감탄했는데요. 여주와 강과장이 결혼하고 나서 그 가사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넣어보았습니다. 많은 독자님들이 공감하시면 저는 정말 뿌듯할 것 같아요~
다음편은.... 두구두구두구두!! 완결입니다~ (짝짝짝) 제가 완결 편수를 알려드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막바지인 줄 아시면서도 어렴풋이 짐작만 하셨을 것 같은데요. 제가 완결 편수를 알려드리지 않았던 건 그 완결을 바라보면서 여러분들이 안타까워하는 게 싫어서였습니당...ㅠㅠ 그런데 정말정말 완결을 바로 앞둔 이 순간에 아무런 말도 없이 대뜸 완결 가지고 오는 건 여러분한테 너무 갑작스러울 것 같아서요. 마음의 준비를 하셨으면 하는 바람에서... 미리 알려드립니다! 끝까지 힘내어 달려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달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늘 사랑해주시고, 제가 답댓 자주 못 다는데도 진심 담아서 긴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힘내어 완결 들고 오겠습니다. 평안한 밤 보내세요. 애정합니다 독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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