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링킹 요구르트 :: 그 남자의 번호 따기
[ 고객님의 택배가 HG택배로 발송 되었습니다.]
오, 시발. 드디어 몇날 며칠을 목빼고 기다린 샤방이가 도착하는 구나. 콜라 한잔 시켜놓고 두시간동안 맥날에서 버티던 난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맥날은 왜 콜라 리필이 안되는거냐며 아까부터 얼음만 씹어먹던 수정이가 한심하단 듯이 바라보았다.
" 니 또 질렀냐. 나 먹을거 사준다며."
" 콜라 실컷 먹었잖아."
이딴 콜라 천원 밖에 안하는거!! 안그래도 심기에 거슬린다며 빨간 폭탄머리를 째려보던 수정이가 이젠 테이블을 엎으려고 작정한 듯이 자리를 박찼다. 워워, 아까부터 눈치주던 직원과 담판을 지으려 하는 수정이를 가까스로 말렸다. 맥도날드라고 인테리어 곳곳이 빨간색이라 그런가 왜이렇게 흥분을 해. 지가 무슨 황소여.
" 알았어, 밥 사주면 되잖아."
" 그래. 뭐 니가 사준다면야."
눈 딱감고 한시간만 샤방이 못본다고 생각하자. 한시간이야, 한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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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 울려대는 초인종에 샤워 중이던 홍빈이 대충 옷을 걸치고 급하게 뛰쳐나왔다. 물기도 채 닦지 못해 푸른 색 티는 부분부분 짙게 물들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한기에 머리카락들도 바짝 섰다.
" 누구세요."
" HG택밴데요. 이게, 택배가 옆집에 온건데 착불이라서요."
본인 확인 같은건 안하나. 심하게 단출한 배송과정은 황당함 자체였다. 어쩌다 보니 제 지갑에서 2500원을 털린 홍빈이 뻘하게 택배상자만 들고 서있었다. 아니, 나도 어제 처음 본 사람인데 무슨 수로 전해주란 거야. 택배상자를 이리저리 뒤집던 홍빈은 휘갈겨쓴 열한자리 번호를 뒤늦게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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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배 도착했는데요. 착불비 2500원이예요. 옆집이니까 일 끝나면 찾으러 오세요.]
한시간은 개뿔. 정말 뷔페 기둥을 뽑으려는지 걸신들린듯 먹어대는 수정은 아직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기는 종류별로 한 접시씩 먹는 거라고 말도 안되는 낭설을 중얼거리며 정말 꾸준히 먹어대는 모습은 가히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 야. 나 택배 도착했대. 작작 먹고 가자고, 좀!"
" 뭐래, 아직 곱창도 남았고 양념갈비도 남았거든? 여기 디저트가 그렇게 맛있대."
들어처먹어야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쉰 난 반쯤 포기하고 옆집에게 문자를 보내는 편을 택했다.
[ 죄송해요 ㅠ.ㅠ 지금 시간이 ㅇ벗어]
...?
뭐래, 미친 고자손이. 요새 너무 많이 먹었나. 그래서 손가락에 살찐거지? 하지만 충분히 이해했으리라 믿고 쿨하게 휴대폰 액정을 꺼두었다. 뭐 문자를 취소할수도 없고.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보다야 내 앞의 티라미수를 신경쓰는게 효율적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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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빈은 수능 D -300 을 기념하자며 한판 뛰자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취소했다. 다짜고짜 벗으라는 밑도끝도 없는 멘트를 날린 옆집 고딩은 세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올 생각을 안했고 부부동반 여행을 떠나신 이모와 이모부께선 내일 모레정도에 돌아오신다고 하셨으니 제가 나가면 가엾고도 경우없는 고딩을 맞아줄 이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 낯짝이나 한번 보자고. 양심이란건 남아있어서 티비를 켜서도 EBS로 채널을 맞춰두던 홍빈은 쇼파에 누워 짜증스레 발을 굴렀다.
솔직히 처음엔 순수한 의도로 불쌍한 옆집 애를 구제해주고자 하는 마음에 자처해서 인간 우편함이 되고자 했지만. 택배가 온걸 알았으면 빨리 오기라도 하던가. 남의 사생활도 있는데!! 티없이 맑고 깨끗한 뇌구조를 가졌음에 틀림 없다. 그러니까 이렇게 개념도 없고 경우도 없고. 씨발, 나도 몰라.
딩동딩동딩동- 딩동딩동-
박자감각 철저한 초인종 소리가 고요하던 집안에 울려퍼졌다. 기다렸다는듯 쇼파에 뒹굴던 몸뚱아리를 일으켜 세웠다. 드디어 온 모양이다. 한마디 해주려고 비장한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 아, 죄송해요. 제가 정말 일찍 오려구 했는데요. 사정이 좀 있어서. 착불비 그쪽이 내주신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당장 드릴게요!!"
요새 애들은 원래 이렇게 다 말이 빠른가. 끽해봐야 한살 차이뿐인 홍빈이 아까의 기세는 어디로 가고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어.. 잠깐."
키가 어림잡아도 두뼘은 더 큰 홍빈에게도 지갑사정은 뻔히 들여다보였다. 뒤져본다고 없던 돈이 생기나. 다급한 표정으로 동전지갑까지 탈탈 털어 나온건,
" 저기 진짜 죄송한데."
일단 90% 할인 좀.. 저희 옆집이잖아요! 이웃사촌 DC!! 죄송해요!!
제 손에 쥐어진 250원을 처량하게 들고 있는 홍빈은 뒤늦게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단 사실이 떠올랐다. 한숨이 새어나오는 것은 분명히 밝히지만 제 의사가 아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