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헐. " 분명 소파에서 잠들었는데, 어느새 네 방 천장이 널 반기며 눈을 떴어. 살짝 주위를 둘러보니 네 바로 옆엔 홍빈이가 널 바라보며 누워있어. 살짝 몸을 틀은 자세로. " 깼어? " " 어? 나 오래 잤어? " " 음.. 한 삼십분? " " 미쳤다. 배고프지. 미안. 진짜 미안해. 어제 늦게 자가지고.. " " 왜 늦게 잤어. 밥 다 식었겠다.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되니까 얼른 나와. " " 계속 여기 있던 거야? " " 뭐 밥 차리는데 한 십분 걸렸으니까.. 20분 정도 여기 누워있었네. " " 깨우지.. " " 평화를 유지하는 평화군의 잔머리랄까. " " 얼른 나가자. 너 배고프겠다. " " 야. " " 왜에? " " 먼저 키스한 남자의 속마음? 그런걸 지식인이 어떻게 알아. " " 어? 뭐라고?! " " 속마음은 키스한 남자만 알지. 뭔 지식인같은 소리야. 내가 진짜 보다가 웃겨가지고. " " 너! 너 그거 어떻게 봤어! 어?! " " 니 컴퓨터 켜져있더라. 전기세 나가는 소리가 후덜덜덜 " " 미친.. 미친.. 미친!! " " 또 키스 해버리기 전에 빨리 나와 밥먹어. 나 배고파. " " 미쳤어... 미쳤어.... " 머리카락을 벅벅 비비며 좌절하는 너를 보더니 보조개가 깊숙하게 패인 미소를 지으며 널 바라보는 이홍빈이야. " 왜, 절망스러워? 암담해? " " 아니! 아니아니야. 너 이 숟가락 좋아하지? " " 어떻게 또 기억하고 있대. 진짜 나 좋아하는거 맞구나? " " 아 됐고. 티비보면서 먹을래 식탁에서 먹을래. " " 기왕이면 식탁이 낫겠다. 내가 어쩌다 이런 애한테 빠졌나 차근차근 뜯어보기도 할 겸. " " 꺼져라. " " 맛있게 먹어- 헤 " 활짝 웃으며 네 머리를 쓰다듬고는 그대로 밥을 먹기 시작하는 이홍빈이야. 고개도 한 번 안들고 꾸역꾸역 먹더라. 그렇게 으름장을 놓더니 말이야. " 맛있어? " " 그럭저럭? 니가 하는 건 다 맛있지. " " 많이 먹어. 더 갖다줄까? " " 적응 안된다. 맨날 그만 쳐먹어 돼지야 그러다가. " " 이제 말은 예쁘게 해줄게. " " 말은? 말만? 왠지 느낌이 싸하다? " 홍빈이는 익살스럽게 웃으며 깨끗하게 비운 밥그릇을 개수대에 넣어놓고는 아직 밥을 먹고 있는 네 앞에 다시 앉았어. 할 말이라도 있는 듯이. " 너 밥 다먹으면 마트갈까? " " 이 날씨에? " " 날씨가 이러니까. 마트나 가서 돌아다니자. 응? 아 응? " " 생각 좀 해보고. " " 첫 데이트 장소치고 마트는 좀 그런가? " " 됐다. 또 어딜 끌고 다닐라고. 마트가 제일 나아. " " 움직이는건 겁나 싫어해 아무튼. " " 잘 먹었습니다- " " 오냐. 이제 나가자! " 씻고 나올테니 기다리라고 티비를 켜두고 넌 그대로 화장실로 들어와. 그리고 그때, 노크소리가 들려왔지. " 저랑 키스하신건 풀메이크업 한 당신이지 쌩얼인 당신이 아닙니다. 물론 쌩얼도 이쁘긴 하지만. " " 그래서 화장을 하라는거야 말라는거야. " " 안해도 예쁘긴한데, 제 안구를 위해서 봉사해주시죠. " " 진짜 말만 예쁘지 뜻은 똑같네. 아 꺼져 씻을꺼야. " " 우리 앞에 문이 있는데 뭐가 두려워? " " 꺼져. " " 네. " 어차피 방은 화장실 바로 옆이라서 씻고 나오자마자 그냥 수건으로 몸을 꽁꽁 싸매고 들어와 잽싸게 문을 잠궜어. 소리없이 샥샥. 화장도 다했는데, 이걸 입을지, 아님 어제 홍빈이가 준 옷을 입을지 겉옷 하나때문에 한참을 고민 끝에 결국 홍빈이 옷말고 그냥 자켓을 걸치고 나가려고 문을 연 순간 " 엄마!! " " 목 빠지는줄 알았다. " " 놀랐잖아 개새야! " " 왜 이거 입었어. 내꺼 입어 내꺼. 안에 있지? 저깄네. " 성큼성큼 네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자기 옷을 집어들고 와서는 니가 걸치고 있던 자켓을 벗기고 자기 야상을 입힌 이홍빈때문에 넌 살짝 굳었어. 어색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괜히 예전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너와의 키차이 때문에 더 설레기도 하고. 살짝 허리를 구부려서 야상 지퍼를 올려주고는 홍빈이가 다시 말을 이어. " 나한테 예쁘게 보이려고 얇은거 입는거 까진 좋은데. 그러다 감기걸리면 나 니 시중들잖아. 몸종은 거절한다. " 여기까진 그래도 참 예뻤는데. " 정 그렇게 얇게 입고 싶으면 집에서. 어? 아무것도 안입어도 돼 집에서는 그냥 편하게 원시인마냥 다 벗 악! " " 꼭 매를 벌어요 매를. 예쁘게 봐줄라고 해도 참.. " " 아무튼, 마음은 전달된거지? " " 그럭저럭? " " 가자. 오늘 홍빈님께서 차도 끌고 왔어. " " 에? 니가? 왠일로 차를? " " 녹차말고~ 붕붕 달리는 차~ " " 아. " 니가 제일 싫어했던거. 초등학교때 처음 만났을때도 이홍빈은 참 잘생겼었는데. 애새끼가 얼굴을 믿어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이렇게 가끔씩 시덥잖은 이상한 개그를 칠때가 많았어. 다 받아줘도 이건 진짜 7년동안 한번도 받아주지 못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범위인게 확실해. 지금까지도 이렇게 싫은 걸 보면. " 삐친거야? 에이, 왜이래- 화났어? 오구오구. 얼른 나가자. 응? " " 이응. " " 웃차- 얼른 가자! " 한 팔로 네 어깨를 감싸고 난 뒤 너 춥다고 계속 손을 잡아 주는 홍빈이를 보며 아까의 마음은 눈녹듯 사르르 용서가 되어버렸어. 세차도 했나보네. 광이 나는 홍빈이의 차를 바라보면서 넌 웃으며 차에 올라타. 앞으로 펼쳐질 이홍빈의 깜찍한 계략은 상상도 못한 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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