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초 지났잖아! 빨리 말해 그 다음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데?”
쪼잔하게 핸드폰 타이머로 60초를 정확하게 잰 형이 묻는다. 이상한데서 꼼꼼하게 머리 쓴다니까. 평소에 이렇게 머리 굴리면 얼마나 좋아? 그럼 진작 호구 탈출 했을텐데.
“그 다음은”
***
“..알고 있었구나.”
“그래. 알고 있었어.”
“미안하다.”
형은 더 이상에 변명 없이 바로 사과를 한다. 철렁 심장이 내려앉는다. 차라리 변명을 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변명을 하면... 티끌만큼이 나마 나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다고 기대 할 수 있다. 한순간의 실수 였어. 미안해. 라고 진부한 대사를 덧붙이기라도 했다면.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나와의 관계를 지속 할 마음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형은 그냥 미안하다 깔금하게 말한다.
“....변명은?”
그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 당장 나가 개새끼야. 소리쳤어야 했다. 근데 난 구질구질하게 형에게 변명을 요구 하고 있다. 참.. 가지가지 한다. 홍진호. 저 딴 놈 뭐가 좋다고 이렇게까지 찌질 하게 구냐?
“없어. 미안. 근데.. 진호야. 난.. 아직도 네가 좋다. 그 사람도 좋지만.. 너도 그래. 네가 내가 싫어졌다면.. 어쩔수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 우리 관계 계속 하고 싶어.”
***
“뭐야 개새끼잖아. 나쁜 남자가 아니라 나쁜 새끼네 어떻게 그 상황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형은 막장 드라마를 보며 아이구 저 피 말려 죽일 놈. 접시 물에 코 박아 죽을 놈 역정을 내는 어머니들 마냥 욕을 한다. 내가 그런 말을 할거 라고 생각 하는건 아니지? 처음 나쁜 남자 운운한건 본인이면서 불안한 얼굴로 내게 묻는다. 큭큭큭 웃으며 아니 그럴수도 있잖아. 안 그래? 말한다.
“야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럴 일 없어. 절대 없어”
“왜 없어. 나쁜 남자 하고 싶다며.”
“그건 그러니까 나도 한번 널 휘어잡아 보고 싶다 뭐 그런 의도 였지.”
알지. 우리 관계에서 폭군인 쪽을 고르라면 나 일테니까. 한번쯤 왕좌에 올라보고 싶다는 거잖아. 그래서 내가 스토리를 짜주고 있는 거고. 형은 다 됐어 포기. 나랑 안맞는 것 같아. 그리고 그럴리 죽어도 없지만 내가 한 눈 팔면 너가 가만히 있겠냐? 묻는다.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면 계속 들어보면 돼잖아.”
***
머릿속에 오만가지 상황이 그려진다. 그대로 형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나.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욕설을 퍼붓는 나. 그대로 형을 집밖으로 쫒아 내는 나 등등등. 통쾌하고 명쾌하고 당연한 행동들이 그렇게나 많이 떠오르는데... 나는
“....똑바로 정해 그 쪽하고가 바람이야 나하고가 바람이야?”
라고 대답한다. 형은 식 웃으며 내 머리위에 손을 올려놓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콩이 첫 번째지.”
정말 미워 죽겠는데. 첫 번째 라는 말에 풀어지는 내가 한심하다. 더 이상 예전처럼 날 봐주지 않아도. 웃어주지 않아도. 그냥 그래도 내가 첫 번째라는 입바른 소리에 만족하는 내가 초라하다. 형의 핸드폰이 울리고 진호야 잠깐만. 말하고 나가는 형을 돌려 세우고 내 앞에선 그 사람이랑 연락 하지마 말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내가 싫다.
“...어디 갔다 왔어?”
“상민이 형이 잠깐 불러서 한잔 했지.”
“내가 형이랑 노는거 별로라고 했지? 어젠 또 풍이 형 집에서 외박했더라?”
어제 내가 풍이 형 집에 갔던건 너가 집에 안들어 와서 였잖아. 형이 집에 안들어 올꺼라는거 알았고. 형 없는 집에 홀로 남아 있는게 싫어서 갔던 거다. 같이 어거지라도 웃고 떠들면 덜 우울 하니까.
“하지마. 나 싫어”
자기만 보라는 듯 내 턱을 붙들고 눈을 억지로 맞춘다. 피하고 싶지만. 피하고 싶지 않는 눈을 마주보며 형을 꼭 끌어안는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언제까지 이 비정상 적인 줄다리기가 끝이 날까. 난 이미 형에게 끌려 갈대로 끌려가 더 끌릴 줄이 남아 있지 않은데도 계속해서 질질질 형에게 끌려가고. 형은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숨이 턱턱 막혀서 벗어나고 싶지만. 막상 자유로워지는 순간 끝없는 절벽에서 뛰어내려 산산 조각 날 것 같아 그럴수도 없다. 숨 막히는 상황에서도 다른 이와 내가 함께 있는게 싫다 이기적으로 구는 모습에 또 기대하며 하루 하루를 비틀 비틀 나아간다.
***
“..에이 말도 안돼 네가 그럴거라고?”
“어.”
“소설 그만 써라. 내가 아는 홍진호가? 내가 아는 넌 내가 딴생각 하자마자 짐싸서 집밖으로 내 쫒을 놈이야. 연락 싹 끊고 번호 바꾸고 날 봐도 아는 척도 안하고”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근데 이 형이 결정적으로 모르는게 있다. 난 그랬을 거야. 번호도 바꾸고 비밀 번호도 바꾸고 연락고 끊고. 근데 바랬을거다 바꾼 번호를 형이 알아주고 연락해주기를. 바뀐 비밀번호를 알아내서 뚫고 들어와서 나에게 귀찮게 굴기를. 술에 잔뜩 취해서라도 쌀쌀 맞게 구는 내 앞에 서 주기를.
“정말?”
“어.”
“....왜?”
형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다는 얼굴이다.
“그야 형이 보고 싶을 테니까.”
이번에는 귀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 입을 멍청하게 헤 벌리고 손으로 볼을 꼬집는다. 그걸로 성이 안차는지 볼을 툭툭 치길래 내가 시원하게 짝 소리나게 양손으로 형의 볼을 붙잡는다.
“형도 알잖아 내가 툴툴거리는게 100% 진심 아닌거. 그거랑 똑같은 거지 뭐... 자존심 상하니까 형밀어 내면서도.. 형 좋으니까 완전 떠나는건 안바랄거야. 그 순간에 내가 다른 생각 할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 내 생각은 그래.”
내가 투덜 투덜 거릴때는 실수로 툭툭 던지는 진심들을 귀신처럼 잡아내서 능글 능글 놀려 대더니 막상 툭 까놓고 말하자 민망한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혹시 얘 술 마셨나? 의심하는게 다 보인다. 나 맨정신이거든요?
“그리고..내가 그랬잖아. 갑자기 사람이 바뀌면 죽으니까 180도 바뀌진 못하고 5도씩 정도 차근 차근 바꿔 보겠다고. 바뀔 생각이 없었던 전에 나라면 그렇게 행동했을거고.. 지금의 나는 또 내가 말한 얘기 속 나처럼 행동할지 몰라.”
한번 뼈저리게 느꼈거든 형이 날 기억하지 못할 때. 임요환 이란 사람이 내 인생에서 갑자기 사라지게 되면... 얼마나 기분이 더러워지는지. 내 일상이 망가지는지. 무서워지는지. 놓치고 싶지 않아 구질 구질한거 자존심 같은거 다 밀어 두고 형이 하자는 대로 질질 끌려 다닐거다. 한동안 내 진심에 뭐라 답하지 못하던 형은 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이상해. 말한다.
“나쁜 남자 포기. 그리고 방금 전 엉켜버린 스토리를 바로 잡아 보면. 난 한눈을 팔지 않았어. 그냥 요즘 일 때문에 자주 미팅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 사람이랑 붙어 있는 시간이 많고 연락도 자주 하는 바람에 네가 질투를 하게 된 거야.”
질투라는 대목이 썩 마음에 드는건 아니지만 내가 지어낸 이야기 보다 이쪽이 더 가능성 크긴 하다. 그래 그 다음은?
“그래서 나에게 화가 난 너는 상민이 형이나 풍이 형이랑 술자리가 잦아지는 거지. 난 나대로 그걸 질투하는 거고. 그 와중에 네가 아프게 됐는데. 난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는게 아니라 요즘 일이 바쁘고, 정신이 없는 데다 너가 완벽하게 괜찮은 척 연기를 해서 못알 아 채는 거야. 하지만 단단히 오해를 한 네가 나한테 물어 보는 거지.”
***
“.......나.. 알고 있는데”
“뭘?”
“...형한테 다른 사람 생긴거.”
요즘 진호가 뭔가 나에게 화가 난 것 같은데 그걸 직접적으로 나에게 따져 묻지 않고 피하며 상민이 형과 풍이 형과 어울리는게 거슬렸었다. 언제 날 잡고 왜 나에게 화가 난건지 물어야 겠다 생각하고 있던 도중에 날벼락을 만났다. 하... 그러니까.. 나한테 화났던 이유가.. 이거 였어?
“무슨 소리야. 어쩌다 그런 말도 안돼는 생각을 하게 된 건지 모르겠는데. 네가 생각하는 그런거 절대 아니야”
“...절대 아니긴 뭐가 절대 아니야. 맞잖아.. 그런거.”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긋 난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진호 상태를 보아 하니 오해를 단단히 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기분이 어때야 하는지도. 지금 내 눈에 날 오해하고 눈물 까지 보이는 녀석을 보며 미안해 하고 속상해 해야 하는 것 같은데..
“..풋.”
웃음이 나온다.
“....나쁜 새끼야. 웃음이 나오냐 지금?!”
“아니.. 그게.. 귀여운걸 어떻게 하냐”
결론적으론 질투해서 화내고 울기 까지 한다는 건데. 다른 누구도 아니고 홍진호가?-가뜩이나 안 좋은 딕션 눈물까지 섞여서 나쁜 떼끼야 이렇게 들려서 더 귀엽게 느껴진다.- 귀엽다는 소리에 얼굴을 굳히고 일어난다. 콩콩콩 방 안으로 들어가는 녀석을 쫒아 안으로 들어가 꼭 아는다.
“이거 놔 안놔?!”
“싫은데~ 아 기분 좋다. 너가 질투 해줬다 그거지?”
“....죽는다 진짜!”
“죽여봐~ 난 환영인데. 어떻게 죽여줄껀데? 어?”
“...음란한 새끼.”
“참나 난 별말 안했다. 이상한 생각 하는 네가 음란한거 아니냐?”
***
“이렇게 되는 거지. 우리 사이에 진지한게 더 이상해. 진지한건.. 음 시트콤 정도? 시트콤에서도 왜 가끔 진지해 지잖아. 우린 그게 딱 어울려”
형은 만족스럽게 식 웃는다. 아.. 됐어 됐어. 여기서 마무리. 그 후는 그동안 두 사람은 행복하게 지지고 볶고 살았습니다다 됐지? 헤헤 웃는다. 본인 스스로도 내 이야기를 각색한게 썩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그 다음은?”
“어?”
“그 다음엔 어떻게 돼는데. 정말 그게 끝이야?”
좋게 마무리 된 것 까진 좋은데. 너무 전체관람가다.. 이거지. 조금 우리 나이에 맞게 가는것도 좋을 것 같은데...? 떡밥을 던지고. 형은 그렇지. 너무 밍밍 하긴 했지? 덮썩 물며 나를 들어 올린다.
“그 다음은. 말로 하는 것 보단”
“행동이 먼저지.”
역시 이럴때는 죽이 척척 맞는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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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 자주 못와서 아쉽네요 ㅠㅠㅠㅠㅠ
그럼에도 기다려 주시는 분들 너무 감사드립니다.... ㅠㅠㅠㅠ
뭔가 이도 저도 아닌 편이 돼버린것 같지만...
귀엽다는 분들이 계서서 행복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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