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지난지도 한참 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형들이 잔뜩 사다준 축제표며 공연표며 그런 것들은 다 4월달을 가르키고 있었다. 내 생일날 맞춰서 사면 발렌타인이라 더 비싸다나 뭐라나, 아무튼 선물도 지들 하고 싶은대로다. " 으아! 해방이다! " " 아니 형, 이게 내 생일기념표에요 아님 형 휴가표에요? 생일도 다 지난 사람한테 벚꽃구경같은 소리야. 난 눈 올때 태어났는데. " " 아 어차피 소극장 가는 길이잖아아, 가는 길에 벚꽃도 보고 얼마나 좋아? " " 내가 미쳐요 진짜 형때문에. " " 헐. 원식아. " " 내가 원식이라고 부르지말랬죠. 하비. 아니 싫으면 라비라고 부르라니까. " " 아니 내가 이 타국와서 맨날 프랑스어 씨부리는데, 너한테까지 프랑스어를 써야 돼? 어?! " " 워워 미안해요. 얼른 보러가.. 형. " " 뭐. " " 저 여자.. 저거 한국인 아니야? " " 아 몰... 어 진짜? 가서 말이라도 걸어볼까? " " 워워. 제가 해볼께요. " 프랑스의 아름다운 거리 한복판, 그 거리보다 아름다운 여자가 내 눈 앞에 서있었다. 동양인인건 분명하고, 제발 한국인이길 바라던 찰나, 그녀의 가방에 살짝 삐져나온 한국어가 보인다. 오 신이시여. 제가 앞으로 정말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러니 이 여자만 제발 " 안녕하세요 " " 네? 아, 한국..분? " " 반가워요. 프랑스에서 한국분을 이렇게 볼줄이야. " " 아.. 네 반가워요. " " 원식아!! " 망했다. 내 이름이 뒤에서 불리자마자 그녀가 풉하고 웃는게 보였다. 저 형을 진짜 죽여 살려 " 안녕하세요- 저도 한국사람인데, 반가워요! 프랑스 이름은 데니스, 한국이름은 이재환." " 아, 네. 반가워요 재환씨. " " 형, 초치려고 왔어? 가요 좀. " " 그럼 우리 원식이, 아니 라비랑 좋은 시간 보내세요! 형 간다! " " 아..저..혹시.. 저 데이트신청 받은거에요? "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그녀는 이 곳의 분홍빛 벚꽃보다 아름답다. 아마 22년 인생 최고의 생일선물일 것이다. " 어디 앉아서 얘기나 할까요? 저도 한국사람을 오랜만에 만나서. " " 아, 그럼 저기 앉아서.. " 프랑스는 풀밭에도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지금 이렇게 쓰일 줄이야. 벚꽃나무 밑에 커피와 크로와상을 하나씩 들고 앉으니 꽤나 순정만화같다. " 여기 벚꽃은 한국이랑은 많이 다르죠.. 분홍빛도 꽤 진하고. " " 그러게요. 한국은 꽃이 폈을라나 " " 유학 온거에요? " " 아니요. 자유여행이요. 프랑스에서 세 달, 이탈리아에서 세 달, 영국에서 세 달. " " 우와. 여기 온지는 얼마나 됐어요? " " 지금 이주째에요.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 " 전 2년됐어요. 유학왔거든요. " " 아, 원식씨는 프랑스어 전공한거에요? 이름도 그렇고.. " " 어, 아.. 아니요 딱히 전공은 안했고. 그냥 뭐. " " 진짜 멋있는것 같아요. 여기. " " 그것도 계속 살다보면 질리죠 뭐. " 크로와상을 건네니 웃으며 한 입을 깨물고는 다시 나를 바라본다. 여신이 따로 없네. " 저.. 전화번호 알 수 있을까요? " " 왜요? " " 아, 아니 그냥.. 한국가시면 연락하시라고.. " " 이거 제 번호에요. 저도 스물 두살. 전 그럼 공연 시작해서, 먼저 가볼께요. 나중에 또 봐요 원식씨. " " 아, 조심해서 가요. 연락 할께요. " 생글생글하게 웃으며 자리를 떠나는 그녀의 밑으로 벚꽃송이들이 후두둑, 하고 떨어졌다. [ 만나서 반가웠어요. 목소리도 진짜 좋구. 제 번호랑 이름은 밑에 있어요. 나중에 가면 꼭 연락할꺼죠? 한국가면 진짜 교제도 생각해봐요 우리ㅎ 너무 무리수인가:-) ] 번호를 저장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 듯 했다. 여유롭게 프랑스 여자들의 몸매를 펴다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던 형을 불러내어 공연장으로 가는 발걸음 조차 가볍다. " 어? 원식씨? " " 어? 이공연 봐요? " " 네! 우와, 진짜 인연이네요. " " 그러게요. " 운명이라면 오늘부터 운명론자가 될 수도 있었다. 아니, 이건 정말 하늘이 주신 기회이다. 생일선물 못받았다고 이렇게 좋은 선물을 주시다니요. " 끝나고 같이 밥먹어요. " " 그래요. 좋아요. " 공연이 시작하고 끝날때까지, 극장은 어두웠다. 아니 뭐 다른 뜻은 없고, 어둡다는건데.. 사실 2시간30분의 러닝타임동안 우린 계속 깍지 껴 손을 잡고 있었다. 벚꽃과 함께 찾아온 나의 생일선물은 그렇게 향기로웠다. 원식아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