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사람을 좌우하는건 80%가 기분탓인것 같다.
이렇게 책상이 무너져라 가득 쌓인 서류를 보면서도 전과는 다르게 웃음이 나왔으니까.
2팀 반장님은 일이 그렇게 많은데도 생글 생글 웃는 모습이 예쁘다며 칭찬도 해주셨다.
잠도 못자고 사건자료 정리, 취조, 사건보고 등등의 일을 해야하는데도 왜 그렇게 웃음이 냐느냐고 굳이 묻는다면 이제야 모두가 안전하게 돌아왔으니까, 우리 뿐만 아니라 우리를 그렇게 괴롭히던 조직이 뿌리채 뽑혀버렸으니까, 청장님이 직접 우리 사무실로 들어와 고생했다며 악수를 한번씩 하시고 가셨으니까. 뭐 그정도로만 정리해 두겠다.
물론 기분 좋았던 일만 있는건 아니었다. 수사에 적극 협조는 물론, 나를 살려주고 도와준 우진이 법적으로는 범죄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어 조사를 마치고 검찰로 송치당할 예정이었다.
그런걸 알면서도 그저 조사내역에 '수사에 적극적인 협조는 물론 목숨을 걸고 잠입형사를 도왔으며, 위험을 무릎쓰고 직접 증거물을 확보해 마약밀거래를 막음.' 이라고 어떻게든 좋은 내용을 적어 검찰에 보고하는게 나의 최선이었다.
그런 우진과 함께 병원에 입원중인 다니엘은 누구도 알아서 안되는 잠입이었던 만큼 그 우리팀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감사인사 따위는 듣지못했다. 뿐만 아니라 다니엘이 이번 작전에 세운 공은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조직에 몸을 담고, 조직원들에게 상해를 입힌 죄를 조용히 덮어주는 딱 그정도의 보상밖에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나, 여기 김재환 의사쌤 진짜 좋타. 내 웃느라고 상처도 안아물것 같은데 우짜죠." 하며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듯 심심할 때 마다 전화를 걸어오는 다니엘이었고, "다니엘아, 진짜 미안한데 취조만 끝내고 다시 전화할게." 하며 일에 쫒겨 얼른 전화를 끊을 수 밖에 없는 나였다.
얼른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책상에 내려둔 대신 굵직한 서류파일들을 안아 들었다. 보스를 취조하는 반장님을 보조하러 취조실로 가야했는데, 높게 쌓여버린 서류만큼 취조해야할 조직원들도 쌓여있어서 모두 빠듯하게 취조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읏차."
높게 쌓인 서류 뭉텅이를 안아들고 취조실로 걸음을 옮기면, 몇걸음 가지 못해서 급하게 반장님의 책상에 서류파일들을 내려놓았다. 서류철 밖으로 자료가 튀어나올만큼 알찬 서류라서 그런걸까, 이건 도저히 사람이 들고갈 무게가 아니었다. 번거롭지만 여러번 나눠서 파일을 옮기는 수 밖에.
가장 위쪽에 있는 파일 두개를 안아 들었다. 하나를 더 가져갈까? 고민 하고 있으면, 익숙한 손 하나가 내 손에 들린 서류파일까지 가져아 안아들었다.
"이리줘."
무거움으로 나에게 애를 먹이던 서류파일들은 황형사님의 손길에 쉽게 안아들렸다. 무거우니 절반을 달라는 나의 말에도 불구하고 황형사님은 취조실 앞에 다다를 때 까지 혼자 파일을 드셨다.
가끔 반팔을 입고 숙직실에서 마주칠 때 조금의 움직임에도 강력하게 자기주장을 내 뱉는 팔근육이 나의 시선을 빼앗아갔는데, 오늘은 셔츠안에 숨어버린 팔근육 대신 손의 힘줄이 '나 열일중이에요!' 하고 말하고 있었다.
"오늘 반장님 취조 보조하는거지?"
"네. 황형사님 취조하시는 모습 또 보고싶은데.."
"오늘은 안돼. 다음에 봐."
아니, 누가 뭐랬나. 그냥 그렇다구요. 가끔 이상한곳에서 단호함을 나타내는 황형사님은 그냥 보고싶다는 말을 했을뿐인 나의 말에 제법 단호하게 선을 그으셨다.
역시 일에 있어서는 확실한 사람이라고 한번더 곱씹으며 황형사님이 건네준 파일들을 받아들고 취조실안으로 들어섰다.
오늘 반장님의 취조가 두번이나 있어서 그런건지 안에는 또 다른 보조역할을 해줄 성우가 먼저 도착해 앉아있었다. 내손에 가득 들린 서류를 본 성우는 빠르게 그것들을 받아들었고 그 때 부터 또 특유의 깐족거림이 시작되었다.
"너는 이걸 들고 여기까지 어떻게 왔냐? 이 팔뚝이 괜히 굵은게 아니였어."
"........"
"친구로서 너는 여기가 아니라 태릉에 가서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하는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이 굵은 팔뚝에 한번 제대로 맞아볼래?"
결국 또 등짝을 아프게 맞고 나서야 잠잠해진 성우였다. 그렇게 둘이 티격태격 장난을 치다가도 반장님의 질문이 시작되면 둘다 빠르게 집중을 시작했다. 하지만 단 한번도 입을 열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하는 보스의 행동에 절로 기지개와 하품이 나왔다.
벌컥-
"어, 여기 두명이네. 나 화장실이 너무 급한데 한명만 2호실좀 잠시 봐줄래?"
화장실이 정말 급하셨던건지 윤형사님은 문도 제대로 닫지않고 그대로 저 멀리 화장실을 향해 달려가셨다. 경찰은 기본적으로 2인 1조로 움직이며 활동을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취조실 안에서 1:1로 취조를 하고 있으면 누군가 한명은 꼭 밖에서 취조현장을 지켜봐야 했다.
그래서 자리를 비운 윤형사님 대신 한명이 그 자리를 대신해줘야 했는데, 2호실에서는 황형사님의 취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걸 꿰뚫고 있는 나는 성우를 배려하는척 먼저 일어나 2호실로 향했다.
2호실 문을 열고 유리창 안으로만 볼수있는 취조 모습을 보며 푹신한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취조실 안에서는 이곳이 보이지 않게 제작된 특수유리인데다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황형사님이라서 황형사님이 내가 온것을 알 수 없었고, 보고 싶던 황형사님의 포스가득한 표정도 볼 수 없었지만 널찍하게 자리한 듬직한 어깨는 뒷모습만으로도 심장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저 둘뿐인 공간에 황형사님이랑 마주보는 저 조직원도 부럽다, 여자 범죄자랑은 절대 취조실에 같이 못있게 해야지. 하는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 연결된 스피커로 황형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좋아. 지금까지는 대답을 잘했으니까, 이제 좀 다른 대화를 해볼까?"
황형사님은 포스를 한가득 풍기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자동으로 두 사람을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 앞에 가시더니 갑자기 그 카메라를 꺼버리셨다.황형사님의 돌발적인 행동에 내 앞의 컴퓨터 화면에도 영상녹화가 중지되었다.
유리창 너머의 황형사님은 자리에 앉지 않고 책상에 살짝 걸터 앉아 팔짱을 끼셨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든 황형사님의 표정은 무섭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 네가 여주 때린놈이야?"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을 뿐인데도 황형사님 특유의 포스에 그 조직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자신의 보스를 대할 때 보다 더 깍듯하고 비열하게 죄송하다고 연신 외쳐댔다.
"때릴 때가 어딨다고 때려."
고개를 하늘로 들며 화를 참는듯했던 황형사님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조직원의 어깨를 토닥였다. 물론 그 토닥임에서도 말할 수 없는 무거운 힘와 압박이 묻어났다.
"몇배로 때려버리고 싶은데, 너 같은 놈이 되기 싫어서 참는다."
황형사님은 여전히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말했고 점점 조직원의 어깨는 밑으로 내려가며 꽉 깨문 입술에서는 신음이 조금 새어나왔다. 짐작이 가지 않지만 화를 참고 있는 황형사님이 어깨를 세게 잡으며 무언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형사님은 다시 카메라를 켠 뒤 자리에 앉으셨고, 그제야 조직원은 자신의 어깨를 감싸쥐며 괴로워했다.
그 뒤로도 길고 긴 취조는 계속 되었다. 아까의 일이 있은 후 그 조직원은 더욱 더 성실하게 조사에 응했다.
"쟤가 왜저렇게 협조적이지?"
어느새 화장실에서 큰 일을 치루고 돌아온 윤형사님은 엄마처럼 귤을 까 자신의 입에 한입, 내입에 한입 넣어주시다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을 뱉으셨다. 물론 그 이유를 아는 나는 애써 미소를 감출 수 밖에 없었지만.
덕분에 빠르게 끝난 조사는 마무리 되었고 자리에서 자료를 정리한 황형사님이 드디어 취조실 안의 문을 열고 나오셨다.
"황형사님, 역시가 역시입니다!"
황형사님의 문을 열고 나오시자마자 황형사님에게 쪼르르 달려가 엄지를 척 내밀었다. 내가 이곳에 있는걸 본 황형사님은 조금은 당황한 눈치셨다.
"아, 김여주. 돼지같은게 내 발 밟았어!"
무작정 황형사님께 돌진하는 나에게 밟을 밟힌건지 아파하시던 윤형사님은 이윽고 전매특허인 등짝 스매싱을 날리셨다.
"아! 윤형사님. 제가 때릴 때가 어딨다고 때리십니까?"
".....아..."
나의 말에 잠깐 생각하시던 황형사님은 상황파악을 끝내신듯 눈을 질끈 감고 빨개진 귀와 함께 급히 취조실 밖으로 나가셨다.
그렇게 단호하게 취조실에 오지말라고 한 이유도, 오랜만에 빨개진 귀를 보이며 도망가는 황형사님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황형사님을 부르며 따라나가면, 이미 빠른 발걸음으로 저 멀리 사라져버린 황형사님이었다.
***
지독하게도 우릴 괴롭혔던 조직과의 길고 긴 싸움이 끝이나고 모든 자료를 검찰에 보냄으로써 사건은 종료되었다.
하지만 사건종료와 동시에 우릴 기다리고 있는것은 포근한 이불이 아닌 강력반 야유회였다.
더욱더 우릴 힘들게 하는건 '우리에게 잠은 없다'라고 늘 외치는 강력반이기에 오늘 밤부터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이난다는거였다.
"이왕 온거 뒤지지않게 또 놀아보자."
그래도 성우와 내가 전입하고 다같이 함께하는 첫 야유회라 그런지 들뜬 반장님은 방에 누워 퍼져가는 우리를 동그랗게 불러 모았다. 한가득 깔린 초록병들이 우릴 먼저 환영했다.
모두가 한번씩 돌아가면서 한마디를 하고, 최소 6잔을 마시며 술이 좀 들어갔을까 반장님이 할말이 있으신듯 진지한 분위기를 잡아가셨다.
"자, 이제 슬슬 이야기를 꺼내볼까."
그말에 갸우뚱 하며 모두를 바라보면 성우는 벌써 부터 무릎꿇고 앉아있었다. 차분해진 분위기에 황형사님이 먼저 차분히 웃으며 말을 열었다.
"그동안 여주 너도 알다싶이 우리가 너한테 일부러 차갑게 대하고 모질게도 대했어. 강력반에 들어와서 근무한 시간 만큼이나 병원에서 보낸 시간이 많은데 그런 네가 또 다쳐버리면 그땐 우리도 너무 미안해서 감당이 안될것 같았거든. 근데 의도치않게 이번 사건 겪으면서 모두 똑같이 생각했어, 우리한텐 여주가 없으면 안되겠다고.
그래서 그동안 힘들게하고 차갑게 대했던거 진심으로 사과할게. 미안해 여주야."
간간이 윤형사님의 귀띔으로 형사님의 생각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것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황형사님께 전해 들으니 이미 오래전 풀려있던 마음이 살살 녹는것만 같았다.
굳이 이렇게 먼저 이야기해주시지 않아도 알고 있던 마음이었지만, 그간 조금은 어색하게 틀어졌던 마음이 다시 더 돈독하게 붙은것 같았다.
그렇게 몇번의 술잔과 웃음이 더 오고가고 나서야 겨우 술자리가 마무리 되었다.
둘째날의 아침이 밝아오고, 야유회에 포함된 보수교육을 낮동안 진행했다. 그동안 긴 수사로 인해 제대로 잠을 자지못했던 강력1팀은 연신 헤드뱅잉을 해댔고 덕분에 유명강사님이 와서 해주신 교육은 머리에 하나도 남는게 없었다.
낮동안 지겹게 진행된 교육이 끝나고, 저녁 후에는 당연하듯 레크레이션 시간이 준비되어 있었다.
당연하게 팀별로 진행되었는데 강력계에는 워낙 여자가 귀하다보니 1,2,3팀을 다 합쳐도 여자는 나를 포함해 두명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3팀에 있는 여자 1명은 아직 배치를 받지않고 한달마다 부서를 돌아가며 경험을 쌓는 애기(강력반에서는 이렇게 부른다)였다.
그래서 여자를 대상으로 한 게임에도 남자가 참여해야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더 웃긴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먼저 맛보기 게임 형식으로 팀에서 한명씩 나가 대결을 하는 게임이 있었는데 팀에서 가장 눈큰 사람으로 뽑힌 윤형사님, 가장 춤을 잘추는 성우, 가장 노래를 잘 부르는 하형사님이 모두 나가서 경쟁해 1등을 따오셨고 압도적인 점수로 우리 강력1팀이 1등을 차지하고 있었다.
"자, 이번에는 우리 눈호강좀 해볼까요? 팀에서 가장 애교를 잘부리는 사람이 나와주시길 바랍니다!"
"오오-!"
아까 말했듯 이렇게 여자를 대상으로 노리는 게임도 있었다. 한번 나간 사람은 참여할 수 없기에 당연히 내가 나가야겠지 하는 생각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주위에서 형사님들이 하나 둘씩 등 떠밀기를 시작했다.
"야, 김여주. 무조건 이겨야 된다?"
"저 진짜 애교없는데..."
"내가 나갈게."
그 누구도 말릴 틈 하나 없이 긴다리로 휘적 휘적 빠르게 단상위로 올라가는 황형사님이셨다.
"?"
"??"
"???"
여자가 없는 2팀은 억울하다고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른 남자를 내보냈고 3팀은 당연하게 여자를 내보냈지만 이상하게도 우리팀은 나를 두고 황형사님이 저 단상위에 올라가있었다.
"아, 1팀 여자분이 있는데도 남자분이 올라왔어요! 이유가 뭘까요?"
"다른 분들이 저 친구 애교를 보게 할 수 는 없어서요.
......아, 물론 여러분들의 안정을 위해서 입니다. "
센스넘치는 황형사님의 대답에 강당안은 금세 웃음바다가 되었다. 곤란해할 나를 위해서 나가신건지, 다른 분들이 내 애교를 보게하기 싫어서 인건지 도통 황형사님의 마음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이런거 저런거 다 제쳐두고 저 위에서 황형사님이 할 애교가 너무 궁금했다.
"자, 1팀 애교 먼저 보여주세요!"
"..........
이런거 시키면 뚁땽해!"
평소 강력반에서도 '황민현은 일 밖에 모른다.' 라는 말을 들을정도로 부드러우면서도 남자다운 황형사님이었는데, 처음 보는 그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물론 잘생겼으니 좋은쪽으로.
그리고 탄성과 함께 한번 벌어진 내 입은 황형사님이 무대위에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는 와중에도 다물어질줄을 몰랐다. 자꾸만 눈앞에서 손을 볼에 가져다대고 애교를 부리는 황형사님의 모습이 맴돌았다. 또 다시 심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여자가 올라온 만큼 당연하게 1등은 3팀이 가져간다고 생각했으나 사회자가 이번에는 참가자들을 무대 밑으로 그리 쉽게 내려보낼 생각이 없는것 같았다.
갑자기 이번에는 춤을 보자며 3팀부터 먼저 시작한다는 멘트를 외치셨고 당황하는 여자의 모습에 조금 짓궂게 섹시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오오-!"
무대위에서 내내 어쩔 줄 모르던 모습을 보이던 여자는 섹시한 노래가 나오자 당황하다 이내 많이 춰보기라도 한듯 자연스럽게 춤을 췄다. 그 작은 동작 하나 하나에도 많은 형사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를 뱉었다.
그 여자는 팔을 위로 들고 웨이브를 하다 점점 자리를 옮겨 다른 참가자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남자가 황형사님 이라는거였다.
바로 옆에 2팀의 형사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굳이 그 분을 건너 뛰어서 황형사님이랑 춤을 추는 의미가 뭔데?
모두가 일어나 환호를 보내는 의미와는 다르게 나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여자, 보통 마음에 안드는게 아니다.
그후로도 여자는 꾸준하게 내 신경을 건들였다. 레크레이션이 끝나고는 따로 찾아와서 황형사님께 실례가 많았다며 인사를 건네고 갔다. 물론 다른 형사님들은 예의까지 바르다며 칭찬을 하기 시작했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레크레이션 다음에는 무작위로 정한 두 팀끼리 물감총알이 든 총으로 서바이벌 게임을 하면 각 팀의 여자인 여왕을 지키는 게임이 예정되어 있었다.
보금품으로 배급된 선글라스와 방탄조끼를 몸에 걸치고 총을 만지고있는 황형사님의 모습을 보며 공주를 지키는 왕자의 모습이 저런모습일까? 라는 황홀한 생각에 빠져있으면, 이 무슨 신의 장난인건지 황형사님은 보란듯이 그 여자와 한팀이 되어버렸다.
"민현이가 다른 여자랑 짝되니까 신경쓰이니~?"
"네."
"뭐?"
완전, 대박, 리얼, 헐 신경쓰인다구요. 다른 것도 생각할 겨를 없이 윤형사님의 말에 빠르게 수긍하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그 둘을 째려보고 있으면, 이제 알겠다는듯 음흉한 미소를 짓는 윤형사님이었다.
이제 무작위로 선정 된 각자의 두 팀이 모이면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1팀은 전부 우리팀에 속해 있었고 그 이외에는 조금 어색한 얼굴들 몇명이 우리팀에 속해있었다.
"민현이 사격 잘하잖아. 우리 여왕님은 민현이 옆에만 붙어 있어."
이 순간만큼은 다른 팀에서도 알아주는 황형사님의 사격실력이 원망스러웠다. 근데, 무슨 작전회의를 그렇게 다들리게 하냐구요.
"황형사님, 저 진짜 사격못하는데 어떡하죠?"
"아, 괜찮아요."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요, 내가 안괜찮은데. 뒷통수가 뚫릴듯한 나의 시선을 황형사님도 느꼇을까. 총쏘는 법을 가르쳐달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자로부터 나의 눈치를 보며 애써 멀어지는 황형사님이셨다. 하지만 아무리 황형사님이 저렇게 피한다고 해도 게임이 시작되면 둘이 붙어있을 수 밖에 없다는걸 알아서 짜증이 머리 끝까지 솟구쳤다.
아직 우리 사이가 뭐라고 정의 할 수 없는 사이이고, 그래서 혼자 이렇게 화를 낼 자격이 없다는걸 알면서도 표정관리가 제대로 되질 않았다.
"왜. 나도 저렇게 해줄까?"
"네?"
"우리 여주, 오빠가 지켜줄게! 오빠만 믿어!"
"아, 뭐에요!!"
보란듯이 큰소리를 내며 내 어깨를 토닥이다 이내 끌어안는 윤형사님이었고, 그런 행동에 누구보다 기겁하며 총의 손잡이 부분으로 명치를 치고 빠르게 품안에서 빠져나오는 나였다.
우리팀 여왕이 여기서 제일 세다며 우릴 보며 웃는 사람들과, 그 소란에 황형사님도 우릴 쳐다봤다. 그래봤자 그 상대는 윤형사님인걸. 질투가 날리가 없었다.
짜증나는 마음을 뒤로 하고 산을 조금 올라 본부안에 몸을 숨기면, 시작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제한시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우리팀의 작전은 내 몸은 스스로 지키자.
나를 제외한 팀원들이 수비팀, 공격팀으로 나뉘어 조금씩 활동반경을 넓혀가고 그렇게 상대팀을 압박하자는 단순한 작전이었다. 덕분에 나는 가만히 앉아 본부석안에서 만원경으로 주위를 살피는것 말고는 할일이 없었다.
"레드팀 1명 아웃, 레드팀 1명 아웃."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벌써 부터 아웃소식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상대팀의 본부가 내 만원경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블루팀 2명 아웃, 블루팀 2명 아웃."
자신의 팀이 아웃되었다는 소식에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속상해 하던 여자는 반대로 우리팀의 두명이 아웃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눈이 휘어져라 환하게 웃으며 황형사님께 하이파이브를 쳤다.
이 총이 스나이퍼 총이라면 당장이라도 저 여자를 조준했을텐데. 애써 여자를 밀어내는 황형사님을 보며 진정하려해도, 밀어내는 만큼 다가가는 여자의 행동에 쉽사리 진정이 되질 않았다.
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발로 쾅쾅 땅을 내려쳐보아도 달라지는건 없었다. 이기든 지든 상관없으니 빨리 다 죽고 끝나버려라.
황형사님과 저 여자를 같은 팀으로 묶어버리는 나쁜 신은 이런 쓸데없는 나의 바램이라도 들은걸까, 빠르게 진행된 경기는 어느새 각 팀에 두명밖에 남아나질 않았다.
당연히 본부안에 있던 저 둘은 살아남아 있었고 나도 그랬다. 우리팀에 남은 한명은 누구이며, 뭘하고 있을까 궁금해져 이리저리 만원경으로 주변을 살피면 어느새 상대팀 본부의 문 밖에 기대어서 숨을 고르고 있는 하형사님이셨다.
그 이상한 기운을 황형사님도 느낀건지 이내 그 여자를 뒤에 숨겨두고 언제 열릴지 모를 문을 바라보며 총을 겨누고 대기하고 있는 황형사님 이었다.
그런 상황을 모르는 하형사님은 자세를 가다듬고 빠르게 문을 열었지만 대기하고 있던 황형사님의 총알에 그대로 당해버렸다.
"블루팀 아웃, 블루팀 아웃."
***
문을 열자마자 나의 총알에 맞아 아웃된 하형사님은 심장을 부여잡으며 "나의 죽음을 여왕에게 알리지 마라..."라는 명대사 까지 남기고는 털썩하고 쓰러지셨다.
그러다가 다시 자리에 앉아 "아씨, 내 총이 이상한가?" 하고 총을 살피는 하형사님을 뒤로 하고 아직 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를 데리고 본부 밖으로 나왔다.
여주와 같은 팀이 되지 못한것도 마음에 안드는데, 혼자 긴장하며 있을 여주를 위해서라도 누가 이기든 빨리 게임을 끝내고 싶었다.
"마지막이니까 여왕끼리 싸워요."
나도 모르게 단호하게 내뱉은 나의 말에 여자는 울상을 지으며 자신은 사격을 못한다고 말해왔다. 그게 어디 자랑인가.
전부터 자꾸만 좋지않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여주의 표정이 너무 신경쓰여 나도 모르게 자꾸 예민한 반응이 나왔다. 그렇게 주변의 경계도 하지 않고 터덜터덜 걸어 블루팀의 본부앞에 도착했다.
상대팀의 본부가 가까워질수록 어디선가 여주가 우리를 보고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더욱 여자와 거기를 두려하는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만 붙어오는 여자였다.
이 여자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그래도 떨린다며 팔을 잡아오는 우리팀의 여왕을 밀쳐낼수도 없었다.
"문 열게요."
벽에 붙어 숨어있는 여자를 뒤로 하고 닫혀 있던 문을 빠르게 열었다. 내가 아는 여주는 가만히 앉아서 당할 여자가 아니기에 없을거라고 충분히 예상해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역시, 잘한다니까. 자기의 몸 반만한 커다란 총을 들고 낑낑 거리며 어디로 갔을까, 자꾸만 상상되는 여주의 모습에 스멀 스멀 미소가 피어올랐다.
"엣취-"
잠시 또 여주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으면 본부 밖 저 멀리에서 귀여운 재채기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밖으로 나가면 당황해서 여기저기 총알을 쏘아대는 여자와 그 총알을 피하며 급하게 나무 뒤로 몸을 숨기는 여주였다.
"황형사님, 어떡해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 눈앞에 있는 여주를 제대로 쏘지도 못해 그 여자의 물감은 바닥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었다.
물론 나는 애초에 여주를 쏠 생각이 없긴했다. 내가 그 애를 어떻게 쏴. 단순한 게임인걸 알면서도 내 손으로는 여주를 쏠 수 없었다.
숨어버린 여주의 모습에 당황한 여자가 마구잡이로 쏘아대던 총알을 멈추었다. 그러자 나무뒤에 몸을 숨기던 여주가 빠르게 총을 들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당황하는 그 여자의 몸을 한방에 파란 물감으로 물들였다.
싱거운듯 싱겁지않게 게임이 끝이 났음을 알리는 사이렌이 들려왔다.
게임이 끝나자마자 총을 내려놓고 선글라스를 벗으며 여주에게 달려갔다.
혼자 낑낑대며 방탄복을 벗고 있는 여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거기서 재채기를 하면 어떡해."
늘 혼자서 척척 잘해내는 녀석이지만 가끔 이렇게 2% 부족한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그 중요한 순간에 하필 재채기를 할건 뭐람, 당황스러웠을 상황에도 빠르게 몸을 피하고 정확하게 여자를 아웃시키는 여주가 대견해 올라가는 입꼬리를 결국 숨기지 못하고 환하게 웃으며 여주에게 말을 걸었다.
"네. 죄송합니다."
하지만 돌아오는건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총을 주워들고 홀로 산 밑으로 내려가는 여주의 모습이이었다. 탓을 하려고 한 말이 아닌데 차갑게 죄송하다는 말만 내뱉은 여주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거 아무래도,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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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쨔님들, 쮸블링입니다 ㅎㅎ
이제 큰 사건이 지나고 조금 쉬어가는 타임으로 많은 분들이 바라셨을 본격 꽁냥꽁냥 타임인데! 저는 아무래도 이런 달달한 글에는 어울리지않나봐요 ㅠㅠ
이제 긴장감 보다는 편안하게 흘러갈 내용들이 많이 나올텐데 그래서 독쨔님들이 시시하게 생각하시거나, 흥미를 잃으시진 않을까 걱정이네요 ㅠㅠ
오늘 내용에서는 그동안 여주와의 애매했던 감정을 조금 풀어냈는데요! 그래도 여주가 밀항시간을 어떻게 알았는지, 둘의 사이 등등 아직 해결해야 할게 많죠! 저와 함께 천천히 풀어갑시다 ㅎㅎ
많이 부족하더라도 편하게 읽어주세요..❤️
우리 독쨔님들 오늘도 사랑합니다?
❤️소중한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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