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DDY BEAR
Episode 02
"백현아."
"손 놔."
"변백현."
"하지마."
오늘 왜 이러지, 진짜. 둘이 싸운 게 확실해. 지금 경수의 눈 앞에는 사람으로 변한 찬열과 여전히 곰인형인 백현이 살벌한 목소리로 싸우고 있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평소에도 저 둘이 자주 투닥거리긴 했지만 벌써 나흘 째 이렇게 냉전이니 걱정이 안들 수가 없다. 소파에 얌전히 앉아 둘의 눈치를 보던 경수가 불안한 마음에 제 무릎에 앉은 종인의 몸을 자꾸 만지작거리자 간지럽다며 종인이 순식간에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종인의 목소리에 찬열이 잠시 고개를 틀어 경수 쪽을 바라보곤 이내 다시 백현을 쳐다봤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
"내 방, 멍청아."
"걸어가면 되잖아."
"남이사, 내가 걸어가든 기어가든 무슨 상관이야."
그새 또 저와 떨어지려 엉금엉금 기어가는 모습에 찬열이 팔을 뻗어 백현의 다리를 잡고 그대로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백현이 아무리 힘을 줘서 바닥에 붙어본들, 곰인형 특유의 보들보들한 천 덕에 별 다른 마찰없이 매우 부드럽게, 혹은 허무하게 끌려왔다. 백현이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말라니까! 곰인형인 몸으로 움직이면 사람일 때보다 더 많이 움직여야해서 안그래도 더 힘들고 지치는 게 사실이다. 그걸 자신도 뻔히 알면서 자꾸만 제가 움직이면 움직일 수록 끈질기게 자신을 원위치로 돌려놓는 찬열이 마냥 짜증날 뿐이다.
"왜, 뭐. 나 방에 갈거라니까?"
"내 말 아직 다 안끝났어, 변백현."
"빨리 말해. 나 피곤해."
백현이 터덜터덜 일어나 찬열의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양반다리까지 한 채로 저를 올려다보는 모습이 퍽이나 귀여웠지만 웃어주기엔 찬열의 기분이 영 별로였다. 곰인형과 이야기 하는 사람-물론 찬열 또한 곰인형이지만-, 언제 봐도 귀엽고 신기한 장면이지만 제가 낄 상황이 안되는 걸 잘 아는 경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노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노력은 했다. 또 다른 곰인형 하나가 사람으로 변해 저를 꽉 안고서는 도무지 자리를 뜰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인이 넌 눈치가 있는거야, 없는거야."
"재미있잖아."
우린 저렇게 싸우지 말자, 알았지? 속이 까맣게 타 들어가는 자신의 맘은 아는지 모르는지, 능글맞게 웃는 종인에 경수는 여러가지 의미로 열이 났다.
*
D.O.DDY BEAR
백현은 요즘 사람으로 좀처럼 변하질 않는다. 식사시간이면 제일 먼저 사람으로 변해 식탁에 앉던 백현은 어디 갔는지, 한 자리가 늘 비었다. 매일 식사를 준비하는 경수 또한 어쩌다 한 번, 빈 주방에서 혼자 간단히 간식거리를 먹는 백현의 뒷모습만 겨우 볼 정도였다. 대체 이유가 뭘까. 찬열은 답답했고 경수는 걱정했으며 종인은 궁금해했다.
오늘도 백현이가 아침식사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벌써 4일 째. 걱정스런 마음에 같은 방을 쓰는 찬열이에게 백현이에 대해 물었더니 자신도 모른다며, 굶든말든 내버려두라는 짜증 섞인 말 밖에 돌아오지 않았다. 백현이가 사람으로 변하지 않은 날부터 둘은 따로 자기 시작했다. 백현은 서재, 거실 소파 등 찬열이 없는 곳에서라면 가리지 않고 잠을 청했다. 딱 봐도 의도적으로 찬열을 피하는 모습에 의아할 뿐이었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가장 궁금해하는 건 역시 찬열일 것임을 알기에 경수는 오늘도 별 말 없이 백현의 밥그릇을 치웠다.
"줘."
"어?"
"백현이 형 밥, 내가 먹을게."
"배부르다며. 아까워서 그러는 거면 괜찮아."
"배 안고파. 더 먹을래. 맛있다."
경수의 손에서 백현의 밥그릇을 빠르게 낚아챈 종인은 누구보다 맛있게 아침식사를 마쳤다. 백현을 걱정하는 제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종인은 그렇게 알게 모르게 경수를 배려했고 최선을 다해 경수를 위로했다. 작게 웃은 경수가 이내 결심을 굳혔다. 나도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어, 의욕 넘치게 설거지를 끝마친 경수가 거실을 둘러봤다. 찬열은 식사를 마치기 무섭게 제 방으로 들어가버렸고 종인은 티비에 나오는 축구 경기를 보느라 바빴다. 백현은 보나마나 서재 혹은 경수의 방에 있을 것이다. 작전 구상 끝, 이제 실전이야. 종인이 눈치 채지 못하게 경수가 조용히 거실을 지나쳐 빈 서재를 한 번 보고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배고파. 짜증나. 화나."
왜 남의 방에서 성질이야, 자신의 침대에 누워 이불을 팡팡 치며 버둥거리는 백현을 보고 경수가 혀를 끌끌 찼다. 여전히 곰인형인 모습이다. 귀엽긴 해도 빨리 백현을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게 해야했다. 안그러면 백현에게 스킨십 못해서 안달난 찬열이 정말 노이로제에 걸려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니. 경수는 종인이 귀띔해준 말을 듣고 난 후에야 찬열의 기분을 이해함과 동시에 뭐 눈엔 뭐만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심스레 방문을 닫은 경수가 백현에게 달려들었다.
"백, 현, 아-!"
"어! 아, 아하하하!! 으하, 하, 하지, 하지마, 야!!"
"너 자꾸 이렇게 고집 부리면서 사람 여럿 골치 아프게 할거야? 응?"
"간지러, 간지럽다고! 으하학!!"
펑, 작전 성공. 백현의 모습이 사람으로 변했다.
"나 진짜 천잰가봐."
"으하, 허헉…도경수 너, 진짜…진짜 죽을래?!"
백현에게 제 어깨를 붙잡히고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경수였지만 백현을 사람으로 변하게 했다는 사실이 뿌듯한 지 계속 실실 웃었다. 웃음이 나와? 숨 넘어갈 뻔 했다고! 어쨌든 돌아와서 다행이야, 백현아. 경수가 반가운 맘에 백현의 품에 안겼지만 백현이 거부하는 바람에 그대로 경수의 몸이 뒤로 나뒹굴었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변할 수 있거든? 괜한 걱정 좀 하지마."
"그럼 왜 계속 곰돌이로 있었어?"
"…보면 몰라?"
아, 진짜. 얘넨 맨날 뭐 좀 물어보면…. 백현의 말에 경수가 짜증을 내며 모른다고 대답했다. 내 눈이 슈퍼컴퓨터야? 보면 알게? 툴툴거리는 경수의 말에 백현이 말 없이 제 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뭐하는 거냐고 물으려던 경수가 백현의 얼굴을 보고 살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뾰루지 났네?"
"…어."
"근데 그건 왜?"
"아씨, 넌 왜 봐도 몰라!!"
백현이 발끈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덕에 경수가 잔뜩 움츠러든 채로 백현을 올려다봤다. 씩씩거리는 백현을 한참이나 관찰하던 경수가 무릎을 탁 치며 백현을 따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겨우 그거야?"
"겨우?"
"응, 겨우 뾰루지 그거 하나 났다고…."
나쁜 놈, 못된 놈, 의리 없는 놈…. 빈정 상했다는 듯 순식간에 곰인형으로 변해 제 침대로 달려가 이불에 파묻혀 베개를 팡팡 치는 백현이었다. 바보같이 그걸 그렇게 혼자 끙끙 앓고 있으면 뾰루지가 쏙 하고 들어가디? 백현을 나무라는 말투지만 표정은 복잡미묘했다. 별 일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 그리고 고민하며 나흘동안 혼자 열심히 개고생한 백현이 안쓰럽다는 생각. 바쁘게 서랍을 뒤져 뭔가를 찾아낸 경수가 기분 좋게 웃으며 백현을 불렀다. 백현아.
"뭐, 이 나쁜 놈아. 웃음이 나오냐?"
"좋은 거 줄게, 이리 와봐!"
어느 새 사람으로 변한 백현의 얼굴에 경수가 꼼꼼히 뾰루지 패치를 붙여주고 있다.
*
D.O.DDY BEAR
"찬열아."
"…."
"찬열아, 나 안볼거야?"
거실엔 찬열 혼자 뿐이다. 안들어간다고 고집 부리던 종인에게 '경수가 너랑 단 둘이 있고 싶다던데….'하고 말하자 미련 없이 종인이 리모콘까지 백현의 손에 쥐어주고 떠났다. 경수야, 힘쇼. 살풋 웃은 백현이 다시금 찬열에게 시선을 돌렸다. 소파에 앉은 백현은 제게 등을 보인 채 꿈쩍도 안하고 티비에 열중하는 찬열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몇 번이나 이름을 불렀지만 끝까지 미동도 없는 찬열의 등으로 폴짝 뛴 백현이 그대로 찬열의 목을 끌어안고 대롱대롱 매달렸다.
"아직도 삐졌어?"
"아니, 화났어."
"화 풀어, 찬열아-."
내가 왜. 넌 어떻게 고작 뾰루지 하나 났다고…. 찬열이 말을 아끼며 제 목을 끌어안은 백현을 떼어내 무릎에 앉혀 마주 보게 했다. 하얀 곰인형이 제 눈치를 보며 움찔거린다. 이렇게 눈치 볼거면서 왜 그렇게 까칠하게 굴어? 단호한 말투지만 어느 새 백현을 내려다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는 찬열이었다.
"니가, 난 피부 깨끗해서 좋다고 그랬잖아."
"그게 왜."
"왜라니-난 니가…."
"내가 언제 너 보고 뾰루지 나면 싫어할거라고 그랬어?"
미안해, 찬열아. 백현이 드디어 찬열의 앞에서 변했다. 눈 앞에 있는 백현은, 오랜만에 봐서 더 예쁘기도 했지만 제대로 먹질 않아 볼살이 빠진 모습에 속이 상했다. 한숨을 쉬며 제 볼을 손으로 살살 쓰다듬는 찬열에 백현이 살짝 눈을 감았다. 또 이래 봐, 정말로 화낼거야. 코를 맞대고 피식 웃는 찬열을 보고 백현이 찬열의 품에 파고 들었다.
"바보야."
"나 바보 아니야, 이 바보야."
"백현이 너니까 좋은거야. 난 단지 너라서 좋은거지 다른 조건 없어."
나한텐 얼굴 한 번 안보여주더니, 기껏 한다는 게 경수한테 가서 이런 반창고나 붙이고 오고…잘하는 짓이다. 입술을 비죽이는 찬열을 보자 백현이 급하게 볼이며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며 미안하다고 웃었다. 난 니가 이제 나 싫어하는 줄 알았어. 자꾸 피해서. 찬열의 진지한 음성에 백현이 손만 꼼지락 거렸다. 갑자기 변한 자신의 행동 때문에 마음 고생했을 찬열을 보니 미안한 마음에 할 말이 없어졌다. 그런 백현을 훤히 꿰뚫어보고 있는 찬열이 백현의 머리를 헝클이며 짧게 입 맞췄다.
"이제 알겠지, 백현아."
"응?"
"난 변백현 너 그 자체를 좋아하는 거야."
찬백행쇼!!! 뾰루지는 정말 들키고 싶지 않아요.. 작가는 백현이 마음에 백번 천번 공감합니다 몰랐는데 초록글에 올라가있더라구요 ...여러분 정말 하트. 사랑해요 독자님들 댓글 하나하나 다 읽어봐요 하루에도 몇 번씩 계속 읽어요..ㅋㅋㅋ 감동 그 자체 언제나 힘이 됩니다 암호닉 받아요 다음편도 속히 가져오겠습니다!오늘은 찬백
암호닉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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