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DDY BEAR
Episode 01
"…종인아, 손 안치울래?"
"응, 안치울래."
"백현아-"
"알았어, 치사하게 꼭 이럴 때만 형 부르더라."
잔뜩 입을 비죽이며 종인이 경수의 목을 만지작 거리던 손을 치우고 식탁에 앉았다. 굳이 뒤돌아서 확인하지 않아도 뚱한 표정을 짓고 저를 뚫어져라 쳐다볼 종인을 더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러면 분명 삐져서 말도 안할 게 뻔했다. 사람으로 변하면 저보다 키도 크고 남자답게 잘생겼으며 심지어 목소리까지 매력적이건만, 하는 짓은 곰돌이일 때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아 후라이팬을 쥔 손에 힘을 더욱 주는 경수였다.
"헐, 스파게티!"
"거의 다 됐어, 조금만 기다려."
"너 또 왕창 먹다가 살 찐다."
"쪄도 내가 쪄. 그리고 넌 앞으로 밥상 앞에서 입도 뻥끗 하지마."
찬열의 말에 백현이 앙칼지게 눈을 부릅 뜨며 대답했다. 언제 사람으로 변한 건지, 백현이 쏜살같이 달려와 식탁에 앉았고 찬열 또한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와 백현 옆에 앉았다. 다 만들어진 스파게티를 먹기 좋게 그릇에 담으며 식탁으로 시선을 돌린 경수가 보기에도, 요 근래 백현의 볼살이 좀 올라온 것 같긴 하다. 그래도 백현이 정도면 평균이야, 경수가 자리에 앉고 찬열의 무릎을 툭툭 차며 말했다.
"거봐, 나 정도면 날씬하다잖아."
"알았으니까 다 먹고 말해."
"응…."
입 안 가득 스파게티를 꾸역꾸역 밀어넣은 채로 힘겹게 말하는 백현의 볼을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찬열이 말하자 백현이 민망함에 군말없이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그러고보니 경수는 제 옆이 유달리 조용하다는 걸 느꼈다. …설마. 설마가 맞았다.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종인은 여전히 온 몸으로 '나 삐짐'을 표현하고 있었다. 얘가 오늘 왜 이래, 스파게티를 오물거리며 경수가 팔꿈치로 종인의 옆구리를 툭 쳤다.
"안먹어?"
"먹어."
"안먹잖아."
"먹는다니까."
"맘대로 해."
서로 아웅다웅할 땐 언제고 말도 없이 스파게티를 먹는 앞에 두 사람처럼 경수도 꽤나 배가 고팠기에 별 미련없이 종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스파게티를 입에 넣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포크를 든 경수의 손을 잡아 챈 종인이 그대로 스파게티를 제 입에 가져갔다.
"야, 너 뭐해! 니 꺼 먹어, 니 꺼."
"내 꺼 먹고 있어."
"내가 먹던 게 왜 니 꺼야."
"뭐가. 아깐 맘대로 하라며. 그러니까 먹여줘."
제 그릇을 경수 쪽으로 밀고 아-하고 입을 벌리는 종인에 경수가 기가 찬 듯 웃었다. 팔짱까지 낀 모습이 '내 손으로 절대 안먹을거야'하고 말하는 것만 같다. 종인은 평소처럼 삐진 척,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경수가 다가와 귀엽게 웃으며 장난이라고 말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경수가 자신을 달래주기는 커녕, 신경도 안쓰고 스파게티를 먹는 모습이 마냥 얄미웠다. 아니, 제 눈치를 보며 미안한 듯 씨익 웃는 귀여운 경수를 보지 못봤다는 게 억울했다.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경수표 스파게티까지 안먹고 시위하고 있는데 정작 경수는 고개도 안들고 맛있게 스파게티를 먹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우린 다 먹었으니까 눈치 보지말고 해."
"뭘 눈치를 봐!"
"그치, 백현아? 우리 얼른 방에 들어가자."
"뭐? 나 더 먹을건데. 스파게티 맛있단 말이야. 더 먹을거야."
백현이는 경수 스파게티말고 오빠 사랑 더 먹자, 알겠지? 빈 그릇에 다시금 스파게티를 담으려는 백현의 손을 저지하고 찬열이 나즈막하게 속삭였다. 그런 찬열을 밉지 않게 째려 본 백현이 이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 이따 또 먹을래. 아쉬운 듯 스파게티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백현을 데리고 찬열이 순식간에 방으로 사라졌다.
"이제 눈치 보지말고 먹여줘."
"눈치같은 거 안봤거든?"
"아-, 빨리. 경수야. 나 배고파."
그러게 진작에 좀 먹지, 왜 버티고 있어? 뭐라고 나무라던 상관 없다는 듯 경수가 주는 대로 잘 받아먹는다. 갑자기 대뜸 스파게티 면 한 가닥을 입술 끝에 물고 티비에서 이런 거 하던데, 우리도 하자, 라며 제게 얼굴을 들이미는 종인에 경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포크를 종인의 손에 쥐어주었다.
"장난 아닌데."
"나도 장난 아니야. 그릇 치우기 전에 빨리 그냥 먹어."
쪼잔하기는…, 작게 웅얼거리는 종인의 목소리에 웃음을 꾹 참는 경수였다.
*
D.O.DDY BEAR
"어디 가?"
"마트 좀 다녀올게."
"같이 가."
나 혼자 가도 괜찮…은데. 경수가 대답하기도 전에 같이 가자는 말과 함께 종인이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앉아서 양말을 신던 경수가 종인의 말에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거실에 혼자 뿐이었다. 기왕 장 보러 가는 김에 간식이나 사다줄까, 하는 마음에 경수가 소리내어 찬열과 백현을 불렀다.
"나 마트 갈건데-뭐 사다줄까?"
금방 나가, 같이 가자니까! 제게 한 말도 아닌데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종인에 경수가 소파에 쓰러지며 웃었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종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찌나 옷을 급하게 입었으면 머리칼은 헝클어져 있고 양말도 제대로 못 신고 허겁지겁 뛰쳐나온 모습에 경수가 천천히 입으라며 살풋 미소 지었다.
"찬열아, 백현아. 먹고 싶은 거 없어? 지금 마트 갈거니까 말해."
여전히 찬열과 백현의 방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뭐야, 자나? 찬열과 백현의 방으로 향하려던 경수의 손목을 종인이 붙잡음과 동시에 끼익, 하고 방문이 열렸다.
"아이스크림…."
"으응,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와."
얼굴만 빼꼼 밖으로 내민 백현의 말에 경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금 조용히 방문을 닫고 들어가버리는 백현이었다. 왠지 모르게 백현의 입술이 유난히 붉어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고개를 갸웃하는 경수를 귀엽다는 듯 바라본 종인이 얼른 가자며 경수를 재촉했다. 형들 즐거운 시간 보내, 종인이 경수 몰래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었다.
*
D.O.DDY BEAR
"야! 너 이럴거면 다시는 따라 오지마!"
"내가 뭐!"
경수는 지금 화가 났다. 그건 종인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가자길래 기껏 데리고 나왔더니, 사람을 이렇게 엿 먹여도 되는 건가? 분명 처음엔, 마트에 막 도착했을 때까지는 좋았다. 다정하게 카트를 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건을 사는데, 이따금씩 매우 당혹스러울 만큼 예민하고 까칠하고 화난 듯 행동하는 종인의 행동에 경수가 참다참다 폭발한 것이다. 종인 또한 지금 여전히 화가 나 있는 상태라는 건 두 말 하면 입 아플 정도.
"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인데?"
"너한테 불만 있는 거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내가 라면 안사줬다고 지금 이러는 거지?"
"그깟 라면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거든."
답답함에 발만 동동 구르던 경수가 따라 오라며 종인을 벤치로 이끌었다. 경수 자신에게 불만이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군말 없이 카트까지 자신이 척척 끌고 따라오는 걸 보면.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남자가 침묵으로 일관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경수가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종인에게 물었다.
"너 왜 그래 대체."
"그걸 몰라서 물어?"
"당연히 모르니까 물어보지. 아는데 왜 굳이 또 물어봐."
"다시는 이 마트 오지마."
"그건 또 무슨 억지야…."
"억지 아니야."
꽤나 단호한 종인의 표정에 경수가 포기한 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진지한 얼굴은 자주 보는 게 아니라 그런지 적응이 안됐다. 평소와 별 다를 게 없는 말도 안되는 부탁, 유치하기 그지 없는 투정인데도 아무래도 사람의 모습인 종인에겐 약한 경수였다.
"종인아, 근데 이 근처에 큰 마트는 여기 하나 뿐이란 말이야."
"나도 알아."
"그럼 앞으로 너 맛있는 거 해주려면 저기 옆동네까지 가야되는거야?"
"…아씨. 너 여기 마트 오면, 저 쪽으론 가지마. 위험해."
위험하다고? 저 쪽이 어딘데?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듯 되물어 오는 경수에 종인이 상당히 언짢은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뒤 쪽을 가리켰다. 저 멀리 마트 끝까지 보기 위해-정확히 말하자면 종인이 말한 위험한 곳을 찾기 위해-경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눈에 힘을 줬다. 저 끝에 말고, 저기. 경수의 이마를 손으로 꾹 꾹 눌러주며 펴주던 종인이 경수의 손을 잡아 어느 한 쪽을 가리켰다.
"뭐, 인형 코너?"
"어."
"…너 지금 나랑 장난해?"
"장난 아니야."
예, 그러세요? 마트 구경하다가 저기서 시한폭탄이라도 발견하셨나봐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경수가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경수의 태도가 뭇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종인이 또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지금은 딱 봐도 제게 불만이 있는 표정인데도 카트는 자기가 꿋꿋하게 밀고 있는 모습에 괜시리 미소가 지어진다. 제 귓가에 속삭이는 종인의 말에 결국 웃음까지 터져버렸지만.
"진짜야. 저기 지나가는데 별 거지같은 놈들이 계속 너 뚫어져라 쳐다보잖아. 죽을라고, 확 그냥…."
알았어. 그러니까 제발 그렇게 곰인형인 티 팍팍 내지마, 종인아.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끝내 하지 못한 경수였다.
빨리 오려고 했는데 늦었네요... 생생정보통 보고...저녁 먹고...간식 먹느라... 미안해요 독자님들.. 다이어트 할게요ㅠ_ㅠ 암호닉 받아요 답글은 자주 못 달아드리겠지만 댓글 하나하나 감사히 읽어보고 있습니다! 독자님들 정말 감동이에요 사랑해요ㅠㅠㅠ
암호닉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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