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DDY BEAR
Episode 06
"너 진짜, 나 오늘 동아리 회식도 있단말이야."
"미안해…."
경수가 착잡한 얼굴로 가방 안을 들여다보다 이내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었다. 백현이 학교에 따라 왔다. 그것도 곰인형인 채로, 제 가방 안에 숨어서. 강의가 시작하기 5분 전, 전공 책을 꺼내려 가방을 열었던 경수는 고개만 내밀고 저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백현을 보고 정말로 심장이 멈춰버리는 줄 알았다.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경수가 맨 뒷자리 구석으로 자리를 옮기고 백현을 타박하려하자 더 이상 꾸짖을 수도 없을 만큼 자신을 자책하는 백현의 모습에 그저 머리만 쓰다듬어 줄 수밖에 없었다.
가방에 숨어 들어 온 이유를 묻자 한참을 망설이며 대답을 않던 백현이었다. 화내지 않겠다고 경수가 몇 번이나 약속하며 백현을 설득하자 돌아오는 대답은 가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오늘 아침에 경수는 늦잠을 잤다. 곤히 자는 경수를 깨우기 미안했는지 찬열과 백현, 종인은 그들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며 경수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곰인형으로 변했을 때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40cm 남짓한 키를 이용해 집안 모든 곳을 유원지 아닌 유원지처럼 누빌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오늘은 숨바꼭질을 하고 놀았단다.
술래인 종인을 피해 숨을 곳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경수의 가방이었고 늦잠 잔 경수가 정신없이 샤워를 하고 나오기 무섭게 가방을 들쳐 메고 집을 나선 결과, 가방 속에서 이도 저도 하지 못한 백현이 그대로 학교까지 함께 와버린 것이었다. 급하게 신발을 구겨 신고 현관문을 열 때 뒤에서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찬열과 종인의 목소리를 무시해버린 자신을 수백 번도 더 탓하며 경수가 백현을 조용히 가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일단, 수업 들어야 되니까 들어 가 있어. 갑갑하진 않지?"
나 자도 되지? 수업 열심히 들어! 익숙하게 가방 안에 자리 잡는 백현의 머리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경수가 속도 좋다며 백현을 나무라다 손가락을 튕겨 백현의 머리에 딱밤을 먹였다. 아파! 씩씩대는 백현의 목소리에 말 없이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댄 경수가 약 올리듯 미소 지었다. 전문가 마냥 노련한 백현의 모습에 대충 감이 왔다. 자신 몰래 종종 가방에 숨어들어온다는 사실을. 가끔 이유도 모르게 구겨져 있는 프린트물을 보며 들었던 의문이 한 방에 해결됐다.
*
D.O.DDY BEAR
"백현이 보면,"
"응."
"경수가 화내려나?"
"글쎄, 그것보다 지각은 안했으려나?"
"지각이 뭐가 중요해! 백현이한테 화내면 어떡하지?"
"백현이 형이 뭐가 중요해, 경수 수업 늦었으면 형이 책임 질거야?"
내가 그걸 왜 책임져? 내가 교수도 아니고. 거실에 마주 앉은 찬열과 종인이 살벌한 눈빛으로 서로를 견제한다. 그래봤자 곰인형인 두 사람의 모습은 서로에게 전혀, 일말의 긴장감도 제공하지 못하지만. 종인이 찬열을 째려보다 등을 돌리자 찬열이 놀란 듯 멍한 표정을 짓곤 이내 자신도 종인에게서 등을 돌려 앉았다. 사실 별로 화난 것은 없었지만 경수와 백현의 이름이 나오자 괜시리 욱해서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려는 모습이 결국 둘 다 똑같았다. 등을 돌린 채 어색하게 흐르는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종인이었다.
"백현이형한테 화 같은 거 안낼 거야, 경수는."
뒤에서 들리는 종인의 말에 찬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착하잖아. 찬열의 대답이 맘에 드는지 종인이 씩 웃었다. 또 다시 침묵이 흐르려는 찰나에 눈만 꿈뻑이던 찬열이 말했다. 경수도 지각 안했을 거야, 은근 달리기 빠르잖아. 등 돌리고 앉은 지 얼마나 됐다고 서로 경수와 백현에 대해 구구절절 자랑을 늘어놓는다. 머릿 속으로 각자의 연인을 그리던 찬열과 종인이 거의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보고 싶어 졌어.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몰라, 일단 경수 학교 근처."
*
D.O.DDY BEAR
"경수야, 오늘 회식 올거지?"
"네? 아, 네! 그럼요, 가야죠…."
저를 붙잡고 재차 확인하는 려욱을 보자 경수가 가방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려욱은 동아리 내에서 유독 경수를 아끼는 선배였다. 사람도 좋고 붙임성도 좋은 그를 경수 또한 잘 따랐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되도록 아는 이들과의 접촉은 피하고 싶은 경수에게 갑작스런 려욱의 등장은 곤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선배, 저 근데 오늘 집에 좀 들렀다가…."
"어, 알았어. 금방 갈게! 경수야, 우리 동아리 첫 회식한 식당 알지? 거기로 와."
저 멀리서 선배를 찾는 목소리는 성민 선배일 듯싶다. 급한 부름에 내가 뭐라 말을 더 붙일 새도 없이 선배가 눈앞에서 멀어져 갔다. 품에 안은 가방이 꿈틀거렸다. 어쩌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힘겹게 떼어 정신을 차리니 회식장소 앞이었다. 이미 회식시간보다는 15분 정도 늦은 상태다. 여러가지 생각에 빠져 걷다보니 자연히 걸음이 느려지게 되었다. 들어가자니 가방 안의 백현이 걱정되고 안 들어가자니 선배들 등쌀이 두렵고, 극심한 내적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경수가 벽에 머리를 쿵쿵 박았다.
"뭐해? 안들어오고. 경수 너 이마로 벽 치는 거 좋아했어?"
"아, 아니에요. 들어갈게요."
화장실에서 나오던 려욱이 경수를 발견하곤 웃으며 식당 안으로 그를 이끌었다. 환하게 웃고 있지만 속으론 울음을 삼키며 경수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제 나름의 SOS 신호인 듯 다급하게 가방을 손으로 치자 백현이 가방 안에서 퉁, 하고 반응해왔다. 백현아,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절대 움직이면 안돼. 알았지? 백현이 알았다며 다시 가방을 두어 번 두드렸지만 여전히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언제든지 기회를 보고 나갈 심산으로 경수가 요령 좋게 가장 바깥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행여 누가 만지기라도 할까 가방을 끌어안은 모습이 가여울 지경이다.
*
D.O.DDY BEAR
"도경수, 뭔 가방을 그렇게 꽁꽁 싸매고 있냐?"
"네, 네? 아하하, 아무 것도 아니에요! 평범한 가방이잖아요, 딱 봐도…."
회식이 절반 즈음 진행됐을 무렵, 조용히 식사만 하던 경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온 것은 별로 친하지 않은 한 여선배였다. 밥만 먹고 가려고 했는데, 아 진짜…. 짜증보다는 억울함이 덮쳐오는 기분에 경수가 심호흡을 했다. 평범한 가방이라는 것을 재차, 거듭해서 반복하는 경수의 말은 '내 가방에서 신경 꺼, 제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뭔데 이렇게 귀하게 모셔?"
"아무 것도 아닌…."
결국 제 가방에 손까지 대는 여 선배에 경수는 울고 싶어졌다. 겨우 입가에만 미소를 걸친 채로 제 가방을 잡아오는 손을 최대한 공손하게 거부하고 있다. 정말 별 거 없어요, 선배. 뚝뚝 끊어지는 말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에 화가 나려던 찰나, 그제서야 느껴지는 알싸한 술 냄새에 한숨을 쉬었다. 그래, 원래 이런 성격의 선배가 아닌데…. 술이 늘 말썽이라는 생각과 함께 순간적으로 손에 힘이 풀린 경수의 품에서 가방을 빼낸 여 선배가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이게 뭐야, 진짜 별 거 없네."
"이, 이러시면 안돼요!!"
가방을 뺏겼을 때 한 번, 그리고 여 선배가 재미없다는 듯 백현을 손가락으로 콕콕 건드리는 모습에 한 번. 순간 머리가 백짓장이 되버린 경수가 그대로 가방을 낚아 채 품에 안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전광석화 같은 경수의 모습은 마치 정의로운 의적 같았다. 다행히 선배의 반응이 무덤덤해서 망정이지, 행여 백현을 보고 호들갑 떨며 소란을 피웠다면 어땠을 지 상상하자 눈 앞이 아찔해졌다. 가장 걱정했던 백현의 반응은 그저 '아까 그 여자 술냄새 장난 아니야.'정도 뿐이었다.
*
D.O.DDY BEAR
다시 식당에 들어가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경수는 미련 없이 백현과 시내나 둘러보다 집에 들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당장 집에 가서 쉬고 싶었지만 곰인형의 모습을 한 백현이 그렇게 애원하는데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아까와 같이 가방에 백현을 앉히고 품에 안은 경수가 부지런히 시내를 거닐고 있다. 살짝 열어둔 가방 지퍼 사이로 살짝 보이는 길거리에 백현이 싱글벙글 웃다가 일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경수야, 멈춰봐.
"왜? 어디 들어가고 싶어?"
"저기. 길 건너편에."
길 건너편? 어디? 백현의 말에 경수가 바쁘게 고개를 돌리며 백현이 가리키는 것을 찾느라 애썼다. 아무 것도 안보이…어!? 경수는 제 두 눈을 의심했다. 길 건너편에 찬열과 종인이 서있다.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뭔가 기분이 나빴다. 미간을 찌푸리며 자세히 쳐다보자 종인의 등너머로 작은 바비인형이 보였다. 꼴에 너도 남자라 이거지? 경수가 입을 앙 다물고 성큼성큼 둘에게로 가까이 걸어갔다.
"야!!"
"둘이 뭐해?"
백현, 경수의 앙칼진 음성에 순간 소름이 돋은 찬열과 종인이 그대로 굳었다. …어쩌지. 차갑고 매서운 시선에 힘겹게 뒤돌아 서자 눈이 마주쳤다. 말 없이 가만히 바라만 보는 둘의 모습에 식은 땀까지 날 지경이다.
"야, 지금 장난해 박찬열? 너 내 말 똑똑히 들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백현이 소리쳤다. 찬열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제 뒤에서 들리는 제 3자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을 땐 이미 너무 늦었다.
"나 왜…"
"왜? 왜라고? 몰라서 물어?! 니가 아무리 비싸고 예쁜 바비인형이라고 해도 임자 있는 남자 꼬시면 안되는 거야!!"
"안꼬셨…"
"꼬리 치지말란말이야!! 거기에 넘어가서 실실 쪼개는 박찬열 너도 마찬가지야!"
바비인형, 두 커플 간의 트러블의 중심이지만 가장 큰 피해자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던 찬열과 종인에게 잠시 대시를 걸어본 건 사실이지만, 갑작스레 역으로 자신들의 애인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웃을 때 귀엽다느니, 입술이 섹시하다느니, 콧망울이 사랑스럽다느니…점점 자신의 존재는 잊혀져가고 제 앞에서 좋다고 입이 귀에 걸릴 듯 웃으며 떠들던 두 남자가 한 순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는 갑자기 기 센 곰인형과 그 인형을 안아 든 한 남자가 저를 무섭게 째려보았고, 그 기 센 곰인형이 제게 매섭게 따지며 쏘아붙였다. 그녀는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주어졌는지, 그저 울고 싶을 뿐이었다.
"경수야, 내 말 좀 들어봐."
"들을 거 없어, 먼저 갈게."
"백현인 나한테 줘, 내가 데리고 갈…"
"꺼져, 나대지말고."
종인의 손을 쳐내고 백현의 말에 찬열을 피해서 제 갈 길을 걸어가는 경수였다. 날이 선 백현과 경수의 말투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꿀 먹은 벙어리 마냥 경수의 뒷모습을 하염 없이 바라보다가 서로를 째려보며 서로에게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머리를 맞대고 둘의 화를 풀어주고 오해도 풀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니가 밤에 얼마나 섹시한 지 자랑했다고 말하면, 그걸로 더 화내지 않을까?"
"아씨, 이걸 어떻게 말해!! 해명하다가 오해만 받을 게 뻔한데!"
머리를 쥐어뜯으며 발만 동동 구르던 두 사람이 다급하게 경수의 뒤를 쫓았다. 그 날 밤늦게까지 경수와 백현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머리를 조아렸다는 건 부정하고 싶은 찬열과 종인만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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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매우 치세요....죄인은 말이 없다지만 변명하자면 설 연휴동안 너무 바빴어요...
간간히 휴대폰으로 댓글 확인하고 컴퓨터엔 앉지도 못했네요ㅠㅅㅠ죄송합니다
그리고 5편 댓글이 무려 100개의 육박하는 수치를 기록하다니....
ㅠㅠㅠㅠㅠㅠㅠㅠ독자님들 한 분 한 분 모두 정말 감사드립니다
별 거 아닌 글인데 항상 좋게 봐주시고 좋은 말씀 남겨주고 가주시고..
저 울어요 정말ㅠㅠㅠㅠㅠ사랑해요 암호닉 신청 받아요!!!!암호닉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