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일주일이 흘러가고 징어는 방학식을 하게 돼. 어차피 방학식 해봤자 주말 쉬고 곧바로 또 보충을 하러 나와야 하기 때문에 징어와 친구들은 별 감흥이 없지. 징어는 이제 세훈이를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해. 처음부터 징어한테는 너무 과분한 사람이였고 또 이번일은 백프로 징어에게 잘못이 있으니까…. 이제 세훈이도 징어한테 정도 떨어진 것 같고 징어도 미안해서 세훈이 못 쳐다보고 그러다 보니까 일주일동안 알게 모르게 서먹서먹해져있어. 징어도 많은 생각을 해봤는데 만약에 징어가 세훈이의 입장이었더라면 다음날이라도 당장 세훈이한테 따졌을 것 같았어. 그 정도로 많이 화났을 거라는 거지…. 그래서 방학식 하는 내내 결국 징어는 뒤 한 번 못 돌아보고 그렇게 흘려보내.
놀자는 친구들의 말도 거절하고 징어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집까지 도착해서 교복도 안 벗고 선풍기 아래에 누워서 곰곰이 계속 생각에만 잠겨있어. 이렇게 세훈이랑은 어떻게 되는걸까. 이렇게 갑자기 아무 연락도 없는게 세훈이의 이별통보 방식인가? 그래도 내가 연락을 해봐야 하는걸까? 이런 저런 생각에 핸드폰을 잡았다가도 세훈이가 달라졌을까봐 반응이 무서워서 다시 내려놓고를 반복해. 그렇게 불편하게 누워있다가 결국 징어는 더위에 지친 몸 때문에 까무룩 잠에 들어 버리지.
그렇게 얼마를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는데, 누군가가 징어를 발로 툭툭 깨워. 일어나보니까 일찌감치 방학을 한 대학생 언니가 징어를 한심하단 눈으로 쳐다보고 있어.
"너 꼴이 그게 뭐냐?"
언니의 업신여김의 표정은 일상이라 신경도 쓰지 않는 징어가 밖을 내다보니까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하고 있어. 여름이라서 꽤 해가 길어졌는데도 벌써 해가 넘어가려고 온 세상이 붉은 걸 보니까 갑자기 징어는 코가 시큰해져. 세훈이랑 처음 말했을 때도 딱 이 시간대였는데…. 솔직히 징어가 좋아한다는 감정표현을 잘 하지 못해서 그렇지 세훈이를 많이 좋아하고 있었거든. 징어가 훌쩍대는 걸 지켜보던 징어네 언니가 혀를 끌끌 차고는 한 마디를 툭 내던지고 언니 방으로 들어가.
"어차피 헤어질꺼면 보고싶다고 말이라도 하고 차이던가. 아주 애닳아서 못 보겠다 내가 맨날"
징어가 그래도 가족들한테는 비밀로 하지 않아서 가족들은 모두가 징어가 남친을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어. 그 중에서도 언니가 좀 더 세밀하게 알고 있어서 요즘 징어와 세훈이의 연애사에도 눈과 귀가 발달해 있었지.
그리고 징어는 언니 말을 듣고 결심해. 그래,어차피 헤어질꺼면 지금까지 표현 못 했던 내 감정이라도 다 털어내고 헤어지자. 깔끔하게 그냥 차이자!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조금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아서 징어는 핸드폰을 집어서 세훈이에게로 전화를 걸어. 평소같으면 지금 운동할 시간이지만, 오늘은 태권도부도 다 집에 가서 주말까지 쉬고 온다는 소리를 들었거든. 전화 신호음이 3~4초만에 끊기고 세훈이가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
"어?여보세요?"
"…어,저기…난데"
징어는 막상 전화해서 할 말이 정리가 안되서 눈알을 요리조리 굴리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세훈이가 웃는 소리가 들려. 징어는 아니라고 마음을 눌러보지만, 세훈이가 웃는 희미한 소리에도 자꾸 희망을 갖게 되서 마음이 물렁물렁해지려고 해. 자꾸 코 끝도 시린 것 같고…
"징어야"
"…응."
"나올래?"
"뭐?"
"지금 너희 집 앞이야. 나와"
징어는 화들짝 놀라. 그리고 빠르게 여러가지를 생각하지. 지금 징어의 몰골이라던지, 아직도 갈아입지 않은 교복이라던지, 왜 세훈이가 이 시간에 여기에 있는건지. 왜 불러내는건지. 징어가 생각이 많은 걸 알았는지 세훈이는 기다린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먼저 끊어. 그래도 더위가 매일매일 정점을 찌르고 있는 계절에 오랜 시간 밖에 놔두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징어가 대충 세수만 하고 티와 반바지로 갈아입고 후다닥 달려나가. 몇 번 안했지만 세훈이와 학교 밖에서 만나는, 그러니까 데이트를 한 후에 세훈이가 징어를 집에 바래다 주기 전에 항상 앉아서 얘기를 나누었던 곳. 징어네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이야. 징어가 다닌 학교이기도 하고….
징어가 헐레벌떡 나가보니 항상 징어와 세훈이가 같이 앉아있던 벤치에 세훈이가 혼자 앉아서 발장난을 치고 있어. 얼마만에 보는건지. 사실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도 징어는 세훈이가 너무 반가워. 물론, 세훈이가 무슨 말을 할지는 모르니까 맘 속으로 꽁꽁 숨겨둔 채 세훈이에게로 다가가.
자신의 앞에 지는 그림자에 세훈이가 징어가 왔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들어서 '왔어?앉아' 하고 자신의 옆자리에 흙먼지를 좀 쓸어줘. 징어가 도착하기 전까지도 흙먼지를 털어놨었는지 다른 자리에 비해서 유독 징어가 앉을 자리만 깨끗해보여. 그런 세훈이의 세심한 배려에 징어는 또 너무 미안하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징어는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니고, 특히나 남들 앞에서 우는 걸 너무 부끄러워해서 당장이라도 어디에 숨어서 조금이라도 울고싶지만, 눈 앞에 세훈이를 두고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잠자코 세훈이 옆에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세훈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징어가 옆에 앉아있는데도 한참이고 말을 안하고 뜸을 들이고 있어. 징어는 고개를 푹 숙여버려서 세훈이가 발장난을 치고 있는지 아니면 징어를 내려다보고 있는지 아무것도 보이지가 앉아. 징어가 불안한 마음을 졸이며 눈물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그제서야 세훈이의 약간은 잠긴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
"큼…무슨 말부터 해야할까. 일단,내가 지금부터 말하는 거 끊지않고 끝까지 다 듣겠다고 약속해"
숙인 징어에게도 보이게끔 '약속'하는 손가락을 만들어 세훈이가 징어 앞에 내밀길래 징어는 말없이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했어.
"일단,김지아일은 미안해…. 근데 걔랑은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리고 그렇게 니가 들어가버린 후에 많은 생각을 했어.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나는데, 너에 관련된 일은 항상 너무 어려워. 내가 멍청한건지 모르겠는데…. 결론은 내가 미안하다는거야. 니가 그렇게 불안해할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 내 감정만 생각하고, 니가 너무 좋아서 니가 어떤 일에 힘들어하고 얼마나 상처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생각도 못 했어. 말이 좀 웃기다 그치? 그리고…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너한테 너무 믿음을 못 준 것같아서 미안하다는거야. 음…원래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말랬는데, 내가 나쁜건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래도 아직 니가 좋…징어야. 너 울어?"
세훈이가 떨리는 음성으로 깔끔하지 못하지만 차분하게 말해나가는데 징어는 결국 못 참고 눈물이 나. 세훈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너무 진심이 들어있어서…그래서 세훈이한테 더 미안한거야. 왜 그 일에 대해서 세훈이가 사과하는건지도 모르겠고 징어 탓 하나 못하는 세훈이한테 너무 미안하고 또 고마운거야. 나를 이 정도로 좋아해줘서…. 세훈이의 진심 가득한 순수한 말들에 징어들은 너무나 감격스러워. 이만큼씩이나, 이렇게 큰 감정을, 이렇게 큰 진심을 징어들이 받아도 되는걸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행복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여서 징어는 그냥 허엉-하고 소리를 내서 울어버려.
"ㅇ…왜 울어 응? 왜 뭐 때문에 그래"
"세훈아 내가 미안해 내가 다 미안해"
진지하게 진심을 말하던 세훈이는 어디가고 징어들이 어린애처럼 엉엉 소리내면서 우니까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세훈이만 남아. 그런 세훈이에 징어는 진심으로 사과를 해. 울어서 발음도 다 뭉개지고 코도 막혀서 코맹맹이 소리가 나지만, 그래도 징어는 진심을 전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하지. 징어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당황당황하던 세훈이는 징어의 말을 듣고 기분좋게 웃어. 그리고는 징어 머리를 헝크러뜨리고 팔을 양쪽으로 쫙 벌리지.
"일로와. 안아보자!"
징어가 운 것도 부끄러운데 안기기는 더 부끄러워서 쭈뼛되니까 세훈이가 징어를 먼저 안아. 그리고 징어 등을 토닥이면서 말하지.
"오늘 우리 100일이야. 거창한 이벤트는 준비 못 했고,그렇다고 다이아몬드 박혀있는 반지도 준비 못 했어. 생각해보니까 내가 니 손 사이즈를 모르잖아. 그래서 이거라도 준비했어."
그렇게 세훈이가 떨어져나가고 징어 목에는 목걸이가 걸려있어.
"그리고 이것도"
그리고나서는 징어 손을 잡고 징어의 손바닥 위에 검정색 반지를 하나 올려놔. 어느새 울음을 그친 징어가 이게 뭐냐는식으로 쳐다보니까 세훈이가 설명을 해줘
"이거 내 행운의 반지야. 내가 시합 나갈 때마다 꼭 가지고 가는….근데 이제 니가 가지고 있어"
"왜?"
"안돼.이유까지 말하면 오그라들어서"
"알려줘!"
"……이제 내 행운은 너니까"
그 말을 뒤로 세훈이가 고개를 푹 숙여버려. 살짝 짧은 검은 머리 사이로 삐져나온 귀가 빨개져 있는 것으로 봐서 많이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걸 아는 징어는 장난을 치지.
"너 이 멘트 준비했지?"
"…응"
진짜 준비했다는 말에 징어가 웃으니까 세훈이가 '너 울다가 웃으면 어디에 뿔난다.'하고 말해. 그렇게 웃다가 문득 징어는 아무것도 준비 못했다는 사실에 미안해져서 세훈이한테 난 아무것도 준비 못했는데…하고 말끝을 흐리니까 세훈이가 웃으면서 징어와 손깍지를 끼고 말하지.
"그럼 뽀뽀라도 주던가"
"ㅁ…뭐?"
사실 징어와 세훈이는 100일이 다 되도록 손잡기,안기밖에 한 게 없어. 유일하게 징어와 세훈이의 연애사를 아는 징어의 단짝친구 2명이 의문스러워 했지만, 징어는 평소에 세훈이가 스킨쉽에 대해서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아서 그냥 신경 안쓰나보다 했는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스킨쉽해달라는 말을 들으니까 너무 당황스러운거야. 징어가 당황스러운게 다 티나도록 어버버하고 있으니까 또 소리내서 웃은 세훈이가 징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이제 들어가보라고 이야기해
"너는?"
"나는 너 여기서 너 가는거 보고 갈게"
"왜?"
"왜라니.이 시대의 진정한 멋쟁이니까 그렇지"
평소처럼 장난스러운 말투로 돌아온 세훈이에 안심한 징어가 때마침 오는 엄마의 호출문자를 받고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뒤돌아서 집방향 쪽으로 걸어가.
"징어야"
아직,한 발자국도 안 뗐는데 징어를 부르는 소리에 징어는 세훈이 쪽을 바라보지. 근데 순간 세훈이가 징어의 손목을 잡은채로 일어나서 징어의 볼에 쪽하고 뽀뽀를 해.
"고마워.선물. 강제선물이니까 볼로 만족할게"
그리고 부리나케 달아나버리지. 징어가 모든 상황 인식이 끝났을 때는 이미 세훈이가 저 앞으로 뛰어가 버린 후였어.
태권도징어의 말 |
너무 늦게와서 죄송합니다. 엉엉 저를 매우 치세여…. 암호닉 정리도 해야하고 답글도 달아드려야 하는데 이래저래 일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일단 여러분들이 제일 원하시는건 완벽한 4편!일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이렇게 올립니다. 사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전편을 3.5라고 했었어야 하는 것 같네요. 이거 올리고 수정하러 가야겠어요! 암호닉은 항상 언제나 얼웨이즈 받고 있구요. 답글은 3일이 걸리든 일주일이 걸리든 쓰고 있습니다. 갑자기 어느 날 뜬금없이 답글 쪽지가 가도 놀라지 마세요! 설레는 브금을 깔고 싶었으나, F.A.I.L 저는 애절한 발라드밖에 모르는 바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