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을 맴도는 달큰한 카라멜향. 그게 그러니까, 아마 이 향은 제 옆의 남자. 이재환에게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본디 달달한 맛이나 향을 그 다른 어떤 것보다도 선호했기에, 학연은 별 군소리없이 ‘향 좋네.’ 하며 콧잔등을 실룩일 뿐이었다. 정식 근무 시간 10분이나 남았는데, 그동안 모닝커피 한 잔 하면서 회사 구경이나 시켜주시죠, 라며 능청스레 말을 걸어오는 제 윗 분께 차마 욕을 날리지 못하고서 아주 태평스럽게 바로 아랫 층 카페테리아로 향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그날 밤에 잘 생긴 티 풀풀 나던 남자가 이재환이라는 사람이었고, 그 사람이 지금 내 옆에 있고, 게다가 우리 부서 팀장…….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아, 뭐….” “참, 내가 아까 그랬죠. 저번 방문 차원으로 회사에 잠깐 들렀을 때, 학연씨를 본 적이 있다고.” 뭐, 그랬었나…. 근데 뭐 어쩌라고. 불퉁하게 아랫입술을 비죽 내민 채로 제 얼굴을 바라보는 학연에, 재환은 그만 소리내어 웃어버렸다. 이거, 생각보다 너무 귀여운데, 라는 정상적인 범위를 넘어도 한참 넘어간 생각 따위를 해대며. 그러면,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명석한 두뇌를 가졌을 리 없는 학연은 쟤 왜 웃고 난리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고. “그 때, 옆에 있던 사람.” “…옆에 있던 사람?” “얼굴, 새하얗게 질린.” 잠시 뒤로 젖혀놓았던 기억의 틀이, 다시금 서서히 굴러갔다. 회사에서 붙어먹던 사람이, 신입사원 한상혁, 그리고 되뇌이기도 싫은 정택운. 딱히 이 둘 밖에 없는데, 이 중에서 새하얗게 질린 사람이라 함은, 그래. 후자구나. 학연은 한숨을 푸욱 쉬며 힘없이 물었다. 옆 기획개발부서 정택운 팀장님일 겁니다. 아무런 감흥없는 목소리로 쏘아주고서는, 갑자기 홱 뒤돌더니 재환에게 다시금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딱히,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 “잠깐 봤는데도, 두 사람 사이가 너무 좋아보여서 말이에요.” 놀리듯 가벼이 웃고는, 카페테리아 입구로 쌩하니 들어가버린다. 장난스럽게 웃던 낯을 멍하니 바라보던 학연의 시선이 그의 등 뒤를 따라 서서히 움직였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머릿속 어딘가가 고장이라도 나버린 것처럼 징징 울리기도 하고, 화끈거리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계속 귓가를 진득히 맴도는 메아리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다. 이렇게, 귀여운 사람을 누가 차나 몰라. 귀여운 사람. 귀여운, 사람이라니. 그리고 마음속을 순식간에 가득 채워버리는 단 하나의 생각. 등, 넓네. 나 등 넓은 남자 그렇게 좋아하는데. 물론, 실없기 짝이 없었다. - 덜덜덜. 학연의 곱게 모인 다리 두 짝이 속절없이 흔들렸다. 마치 ADHD 증상이 보이는 어린 아이들 마냥 정신없이. 게다가 간간히 앞니로 손톱을 물어뜯기도 한다. 그 정신 사나운 동태에 옆에서 한껏 불만어린 표정으로 학연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상혁 사원이 동료들의 부추김에 힘입어 말을 건넸다. 저기요, 차 대리님. 그러나 대답이 없다. 다시 한 번 용기내어, 차 대리님. 그제서야 학연의 고개가 돌아갔다. 어디 약이라도 하고 오셨나. 깐족거림이 가득 섞인 말투에 학연은 조용히 손날을 들어 꽤나 거세게 상혁의 목덜미를 가격했다. “까불래.” “죄, 죄송합니다.” 하여간 내가 밥이지, 밥! 동정을 바라는 눈빛으로 제 동료들을 스윽 훑어보지만, 제 각기 할 일에 몰두하는 척 한 사원을 외면하기 바쁘다. “그런데 말입니다, 차 대리님.” “왜. 일 없냐? 서류 안건 더 줘?” 그건 겁나게 싫었나보다. 길게 찢어진 눈매가 단숨에 둥그런 원을 그리며 커지는 걸 보면. 그것이 아니지 말입니다. 그리고는, 어디선가 주워듣고 왔을 것이 분명한 어설프기 짝이 없는 군대용 다나까 말투로 대답을 해온다. 모 방송사 리얼사나이를 그렇게 챙겨보더니…. 동정어린 학연의 눈길을 애써 외면하며 재차 물어온다. 차 대리님, 그것이 말입니다. “이번에 새로 오신 팀장님 말입니다.” 저도 모르게 한 번 움찔하는 학연이었다. 근데, 왜 내가 움찔해야 해? “팀장님이, 뭐.” “되게 좋으신 분 같지 말입니다!” 강아지 마냥 해맑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면상을 이대로 가격해버리고 싶은 마음을 눌러참은 학연이 애써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대답했다. 그래, 그렇구나.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 새로 온 팀장인 이재환에 대한 호평을 일사불란하게 늘어놓는다. 팀장직에 있는 사람은 부서실 안에 있는 또다른 사무실을 홀로 썼다. 그럼에 깐족거리는 새내기 사원들의 입술이 쉬이 닫힐 리 없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야기들은 다양했다. 여사원들은 팀장님이 잘 생기신 것 같다느니, 매너가 좋은 것 같다느니. 남사원들은, 이 팀장님께서 부서실에 발을 디디자 마자 ‘오늘은 회식. 내가 쏴요.’ 라는 대단하고도 엄청난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이미 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을 탄탄히 쌓은 중이었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앉아있던 학연의 숙여진 고개가 회식 이야기와 동시에 번쩍 들렸다. 뭐어, 회식? “못 들으셨습니까? 아까 차 대리님이랑 같이 들어오실 때 말 하셨는데.” “오, 오늘?” “예.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죽는답니다.” 뭔가 어색하고, 뭔가 창피한 이 상황에서 회식? 게다가 팀장 뒷바라지 일꾼 노릇 다 해야하는 대리 직에 제가 머물고 있는 지금? 회식 갔다가 마주 보면서 실쭉 웃고, 술도 같이 기울이고? 학연은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신이 술김에 정택운 이야기를 하지 않으리란 법도 없는데. 그렇다고 술을 못 먹는다고 하기에는, 이 부서 내에 말술 차학연 대리라는 별명이 너무도 뼛속 깊이 파고들어 있는지라 그런 개구라를 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결론은, 그저 얌전히 회식에 따라가서, 즐기는 척 하면 되는거다. 아니면 몸이 좋지 않다고 한다던가. 완전 또라이가 아닌 이상 아픈 사람에게 무리하게 시키겠어, 암. 금세 폭풍 웃음으로 번진 학연의 뱁새같은 얼굴이 화사하게 피어 있다. 시간이라는 건, 아마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굴러가는 쳇바퀴와 같을 것이다. 끝없이 반복해서 흘러가는 쳇바퀴. 그를 입증하기라도 하는 듯, 시곗바늘은 벌써 정오 열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피로함을 억누르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업무 플러스 잔무에 몰두하고 있던 사원들은 등 뒤에서 커다랗게 울리는 소음 덕에 잠들기 일보직전의 정신머리를 다시금 상쾌하게 물들일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온 이재환 팀장이더란다. “점심, 드시러 안 갑니까?” 옆에서 한 사원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저런 팀장, 처음보지 말입니다. “차 대리님은 잠깐 저 좀 보죠.” 입을 떠억 벌리는 학연을 향해 어깨를 한 번 으쓱해보인 재환이 다시 사무실 안으로 기어들어감과 동시에 모두들 발에 모터라도 단 듯이 일사불란하고 정갈한 걸음걸이로 문을 나선다. 애절한 눈빛으로 한상혁을 향해 구원을 요청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저같은 일개 사원에게 무슨 힘이 있겠지 말입니다.’ 양껏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코를 한 번 슥 훔치고는 사원들이 당차게 열고 나간 사무실 문을 닫기 위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내렸던 시선을 올리고, 차가운 문고리에 손을 올리는 순간, 빌어먹게도 넓디 넓은 시야에 아주 익숙한 형태의 다리가 보였다. 살짝 오다리처럼 휘어 있는 그것이 너무도 익숙한 습관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학연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온전히 얼굴을 바라보았다. “…….” “…….”
역시나 그 다리모양 만큼 익숙하기 짝이 없는 얼굴. 그러니까, 아주 타이밍 기가 막히게 제 앞을 지나치려던 사람은, 결국 틀림없는 정택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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