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오세훈 오세훈 오세훈. 거 참 시끄럽네. 사실 오세훈이 나쁜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눈엔 영... 뭐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도 다 나쁘다고 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내 기준에 조금 안 맞는다 이거지. 아, 내 이름이 뭐냐고? 음... 그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누비는 나그네라고 해두자. 사실 내가 며칠 전에 우리 종인이를 만나고 왔거든. 애가 이제야 기운 좀 차렸는지 이젠 웃음도 내보이더라고. 뭐, 오세훈이 없으니깐 허전하겠지만... 사실은 나도 조금 뭔가 허전해.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있던 애가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않게 사라졌다고 생각해봐. 헛웃음만 나오지 않나? 아니라고? 알겠어, 그냥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니까.
오세훈이랑 종인이는 뭐 동성끼리 사귀는거 치고 예쁘게 사겼어. 내 눈엔 무척 아니꼬왔지만. 종인이는 내건데 어느 날 오세훈이 나타나서 딱! 가로채갔지 뭐야. 그래. 사실 이것도 내 착각이야. 내 앞에서 솔로 염장지르는거 말고는 정말 예쁘게 오래갔는데, 가끔씩 둘이 나 좀 놀려보겠다고 내앞에서 서로한테 애정표현을 하면 진짜 한대 세게 때려주고 싶었어. 근데 오세훈이 힘이 보통 센게 아니라서 말이지. 금방 포기했어.
아무튼 오래오래 잘 사겼었는데, 뭐... 한 3-4년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빼빼로데이나 발렌타인데이나 등등 데이란 데이는 다 챙기더라. 눈꼴사나워서 못 볼 꼴이야 그건. 틈만나면 둘은 서로 여행을 갔는데 여행을 가면 사진을 찍을 거 아니야? 그럼 그 사진을 카메라로 찍고 핸드폰으로 한번 더 찍어서 나한테 전송해서 내 반응을 꼭 확인하고 지들끼리 재밌다고 웃어. 그거에 일일이 반응해주는 나도 웃기긴 하지만 사람의 심리라는게 문자가 왔어. 그럼 그걸 안보고 그냥 놔둘거야? 무슨 내용인지 한번도 안보고 삭제할 수는 없잖아. 그런거지 뭐.
하루는 종인이가 그러더라. 세훈이가 사라지면 어떨 것 같냐고. 아마 종인이는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렇게 무덤덤했겠지. 겉으로는. 어쨌든 나는 둘이 못붙어있으면 죽는 애들이 왜 그러나 싶어서 물어봤는데 묻지말고 빨리 대답하래. 괜히 짜증나서 좋을 것 같다고 그랬는데 종인이 표정이 막, 뭐라고 해야되지? 그.. 진짜, 아 말로 표현을 못하겠는데 진짜 기분 나쁜 표정을 짓는거야. 그래서 당황해가지곤 아니라고 장난이라고 했는데도 종인이는 혼자 눈 빨개져선 아무리 세훈이가 싫어도 그러는 건 아니라나 뭐라나. 왜 장난을 장난으로 못 받아들이는 건지 조금 이해가 안됐었는데.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깐 종인이 마음이 이해될 것 같기도 하고... 그러네.
그렇게 물어보고 나서도 한동안은 잘 지냈지. 바뀐 거 하나 없이 내 앞에선 여전히 사랑을 나누더라고. 나 진짜 서러웠다 그때. 오죽하면 내가 자리를 박차고 나왔겠냐고. 근데 또 그러니까 그러지 말래. 종인이가 슈렉의 고양이같은 눈을 하고서 나한테 부탁하는데 들어줘야지. 난 종인이의 농노야. 어쩔 수 없어. 근데 그걸 본 오세훈은 또 죽어라 나만 노려보다가 얄밉게 웃고선 내앞에서 갑자기 키스를 하대? 하, 진짜 내가 어이가 없어서. 나도 여친을 만들어야지 살 수 있지. 키스에 집중하지 않기 위해서 꾸역꾸역 접시만 쳐다보면서 밥을 퍼넣는데 소리때문에 참을 수가 없어서 딱 고개를 들었는데! 와, 오세훈이 실실 웃으면서, 아. 그 웃음이 너네들이 알고 있는 그런 웃음이 아니야. 보기만 해도 기분 나빠지는 웃음 있어. 왜 날 깔보는 듯한 그런 웃음. 그렇게 웃으면서 날 쳐다보는데 너무 얄미워서 진짜 접시를 오세훈 머리에 엎어버릴까 그런 생각도 했어. 그래도 내가 착하니까 이해해주기로 했지. 절대 내가 오세훈을 못이겨서 그런게 아니야. 내가 봐준거야.
여러분들 그거 알아? 내가 나그네라고 해서 백수라고 생각하지는 마. 나 이래봬도 돈 많이 버는 사람이야. 바쁘다고. 난 평소와 같이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 종인이한테 온 문자더라. 장례식에좀 와달라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서 불러준 주소로 달려갔지. 봤어? 나 이렇게 의리있는 남자야. 어쨌든 도착을 했는데 낯익은 이름이 적혀있잖아. 그냥 동명이인이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종인이가 벌써 왔냐면서 날 데리고 가는데 설마 설마 아니겠지, 했는데 맞더라. 빼도박도 못하게 오세훈 얼굴이 영정사진으로 있는데 이해를 못해서 종인이를 쳐다봤더니 시선만 피하는거야. 몰래카메라인가 싶기도 했는데 장례식장에서 장소를 빌려줄리가 없잖아.
물어봤지. 무슨 일이냐고. 죽었대. 암으로. 별로 실감나지 않는거야.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나 싶을 정도로 너무 담담해서 믿겨지지도 않고. 한참이 지나서야 현실을 받아들였는데 그때서야 종인이가 슬퍼하는 게 보이는데, 그래도 실감나진 않았어. 곰곰히 생각해보니까 그동안 종인이가 나한테 물어봤던거나 유난히 애정표현이 많아진 이유도 알 것 같기도 하고, 음. 그랬어.
생각보다 되게 초라했어. 그냥 종인이랑 아는 지인 몇, 부모님. 그리고 나까지 합해서 총 10명도 안되는 사람이 보는 앞에서 세훈이 뼈는 강에 뿌리고 나니깐 어느새 끝나있네. 사실 아직까지도 종인이가 왜 세훈이 뼈를 강에 뿌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나도 요즘에는 가끔씩이지만 습관적으로 오세훈 번호로 전화하는데 전화를 안 받으니깐 그제서야 아, 얘 여기 없지. 이런 생각도 들고. 음. 그렇더라. 사람이 참... 모르겠어. 세훈이 죽고 나서 한 1년 동안은 감정이 없는 애 같았는데 그래도 요즘엔 웃기라도 해서 다행이야. 그 정도면 엄청난 발전이지.
이건 비밀인데 나 아직도 오세훈 번호로 전화해서 나혼자 얘기하다가 끊어. 웃기지? 근데 종인이는 더해. 진짜, 안쓰러워서 못봐줄 정도로. 그래도 어쩌겠어. 점점 나아지겠지? 아, 나 일이 밀렸네. 가봐야겠다. 갈게. 한가지 더 말하자면 종인이 자기 전에 세훈이 이름만 부르면서 울다 잠이 들어. 불쌍해 진짜. 나 진짜 갈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