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쓰다
세훈x준면
w.BM
시험기간이 다가오고 있던 때의 점심시간이었다. 유난히 입이 짧은 준면은 평소에도 잘 먹는 편이 아니었는데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그것이 더욱 심해져서는, 나중에는 그게 탈이 나기도 해서 금방 체하기도 했었다. 그럴 때면 항상 세훈이 소화약을 준면에게 건네주곤 했었다.
오늘도 준면은 소화가 잘 안 되어 더부룩한 속으로 인해 얼굴이 창백해져서는 자리로 돌아왔다. 반으로 오면서 은경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건네준 소화약을 손에 들고 있던 준면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익숙한 약 봉투와 생수 한 병을 보고서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은경이 준 약 병과 책상 위에 있는 약 봉투를 번갈아 보던 준면은 곧장 약 봉투와 생수를 챙겨 들었다. 반에는 오직 자신 밖에 없었으니 세훈이 있을 곳은 뻔했다.
세훈은 구 건물에 있는 먼지 쌓인 낡은 음악실을 좋아했다. 준면 역시 세훈과 같이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 적이 많았었다. 세훈은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뛰놀거나 그곳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 운동장에 없는 세훈이 낡은 음악실에 있는 것은 당연했다. 준면은 조금 굳은 표정으로 음악실 문 앞에 섰다. 음악실 근처에서부터 조율도 제대로 안 된 낡은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세훈이 유일하게 연주할 줄 아는, 준면이 제일 좋아하는 피아노곡이었다.
끼익. 낡은 음악실 문이 께름칙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이 열리자 피아노 연주도 같이 멈췄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던 세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문간에 서있는 준면을 보았다. 왔어? 미소를 지은 채 말을 거는 목소리가,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준면은 표정을 잔뜩 굳힌 채로 세훈의 앞에 약 봉투와 생수병을 내밀었다. 세훈은 제게 내밀어지는 약 봉투와 생수병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이거 네가 놔두고 간 거지.”
“너 항상 이때쯤이면 탈나고 그러잖아.”
“누가 이런 거 챙겨 달랬어?”
“준면아.”
“평소대로 할 거라면서, 말도 안 걸고, 등교도 따로 하고……”
“준면아. 난 너한테 기회를 주고 있는 거야. 나랑 친구하고 싶다며, 그럼… 더 이상 내가 가진 이 마음이 커지면 안 되지 않겠어?”
“그럼, 그럼… 이건 왜 주는 건데!”
준면이 신경질을 부리며 약 봉투를 세훈에게로 던졌다. 준면의 손을 벗어난 약 봉투는 세훈의 가슴팍에 부딪히고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세훈은 담담히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약 봉투를 주워 들고는 다시 준면의 손에 꼭 쥐어 주었다.
“나한테도 기회를 줘야지, 네가 한 번 쯤이라도 내 마음을 생각해 볼 수 있게.”
“우리… 우리 친구잖아 세훈아…….”
“몇 번을 말 해, 준면아. 난 너랑 친구 할 수 없어.”
“그런 게 어디 있어! 으으, 우린, 우린 처음부터 친구였는데!”
준면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세훈은 조금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 나는 아니었어.”
“…….”
“나는 처음부터 너랑 친구 아니었어, 그래서 너랑 친구 못 해.”
“아, 으으…….”
세훈의 말에 준면은 무너지고 말았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눈물을 보이더니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세훈은 서럽게도 우는 준면을 착잡한 표정으로 볼 뿐이었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 어느 누구의 앞에서 이렇게 크게 운 적이 없었다. 준면은 창피한 줄도 모르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처음부터 친구가 아니었다는 세훈의 말이, 어쩐지 한 번에 이해가 되어버려 서러웠다. 자신만 모르게 세훈이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도 힘들었다.
점점 더 서럽게만 우는 준면을 보는 세훈의 마음 역시 괴롭긴 매 한가지였다. 처음 준면에게 제 마음을 말할 때부터 한 번에 바로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 없었지만, 생각보다 준면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너무도 큰 고통이었다. 조금만 더 참아볼 걸, 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세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러운 손길로 준면이 얼굴을 묻고 있는 양 손을 내리고는, 조금은 투박한 손길로 준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준면아, 울지 마 제발…….”
“…….”
“네가 울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미칠 것 같아.”
나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미칠 것 같아, 세훈아.
다음 날, 준면은 은경에게 이별을 고했다. 한적한 도서관에서 처음 고백을 받았을 때와 같은 자리에서 두 사람은 헤어졌다. 은경은 처음에는 놀란 기색이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것 마냥 고개를 끄덕이며 꽤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였다. 은경은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준면을 보다가 먼저 가보겠다며 뒤를 돌아섰다. 문 앞까지 갔던 은경은 다시 뒤를 돌아 준면의 앞에 섰다.
“대신 준면아, 우리 친구라도 할까?”
“어?”
“사실 나도 너랑 사귀면서 느낀 건데, 그냥 친구인 게 더 좋은 것 같아서.”
“음…….”
“이대로 남으로 지내기엔 아까운 것 같아서, 우리 통하는 거 되게 많잖아. 응? 혹시 나한테 미안해서 그러는 거라면, 난 괜찮아. 진짜야.”
“그, 그래… 그러자.”
조금은 망설이면서도 동의를 하는 준면의 대답에, 은경은 활짝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준면이 제게 내밀어진 손을 멀뚱히 보고만 있자, 은경이 웃으면서 내민 손을 뻗어 준면의 손을 잡았다. 악수하자고, 친구 된 기념으로. 은경의 말에 그제야 준면 역시 웃으며 은경의 손을 마주잡아 위 아래로 흔들었다.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마치 세훈이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준면이 은경과 사귀기 시작했다는 말이 하루 새, 순식간에 퍼져나갔던 것처럼 말이다.
은경과 이별을 함과 동시에 친구하기로 하고서 반으로 들어오는 준면을 보며 반의 분위기는 아주 잠깐 정적이었으나, 곧 다시 이전의 소란함으로 돌아갔다. 준면은 그 정적을 느끼지도 못한 채 자리에 앉아 다음 수업을 준비했다. 준면이 수업을 준비할 때, 종현과 민석이 준면의 자리로 왔다. 종현과 민석이 무엇 때문에 왔는지 알아차린 준면이 두 사람이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말을 막았다.
“헤어진 이유나, 뭐 그런 거 물어보러 왔으면 조용히 꺼져.”
“……아, 자식이 까칠하게 굴긴.”
“평소에는 눈치 없는 녀석이, 이럴 때면 눈치도 더럽게 빨라요.”
“시끄러워.”
단칼에 말허리를 자르는 준면으로 인해 종현과 민석은 입맛만 다시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다른 학생들 틈에서 이야기를 하던 세훈은, 아주 잠깐 동안 고개를 돌려 준면을 바라보았다. 창가에 시선을 둔 준면의 표정이 생각보다 멀쩡해보였다. 세훈은 한동안 준면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세훈의 앞에서 이야기를 하던 학생이 세훈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준면을 보느라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했던 세훈이 다시 되물으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세훈이 고개를 돌리자, 그제야 줄곧 창밖을 보고 있던 준면이 고개를 돌려 세훈을 보았다.
나는 처음부터 너랑 친구 아니었어.
그냥 친구인 게 더 좋은 것 같아서.
준면의 귓가에 세훈과 은경의 말이 동시에 교차되어 들렸다. 몇 십 년 동안 친구였던 사람은 처음부터 친구가 아니었다는데, 반면에 한 달 여 가량 사귀었다가 헤어진 사람은 친구가 더 좋은 것 같다고 한다. 본인이 생각해놓고도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뜨린 준면은, 곧 서글퍼져서 표정이 굳어졌다. 준면은 세훈을 보다가 한숨을 내뱉고서 다시 고개를 돌려 책상 위에 팔을 베고 엎드렸다. 자리가 창가에 위치해서 그런지 오후의 부드러운 햇살이 창을 타고 넘어왔다. 교실의 소란스러움이 아득해지고 눈을 깜빡이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세훈아. 준면은 잠결에 저도 모르게 세훈의 이름을 불렀다.
모르겠다, 나는. 그저 너랑 평범하게 평생 함께하고 싶을 뿐인데.
그리고 교실의 앞에서 세훈은 준면이 서서히 잠드는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세훈에게 있어 준면과 은경이 헤어졌다는 이야기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이야깃거리였다.
BGM. 델리스파이스 -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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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까먹었다고 하지마요 정말 빼버릴거야 ..! 나중에 암호닉 분들 한정 선착순 리퀘 받는 다고 할 때도 선착순 안에 들어왔어도 안 써줄 거예요..! 흥흥. 자꾸 까먹으면 저 삐져요. 속 좁은 사람입니다. 쳇쳇, 그렇다고 에이형은 아녜요.
음... 저번편이 매우 짧은 것 같아 오늘 빨리 들고 왔는데 이번 편도 짧다는 것이 함ㅈ..ㅓㅇ.... 노래 감상 하,하세요..ㅎ..제가 좋아하는 노래에요...
아 그런데 저 큰일 났어요. 다음편 까지 밖에 안 써놨는데 어떡하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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