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 말이야."
"......뜬금없어." "알아.그냥," 니 자제력이 새삼 신기해서.검붉은 액체가 가득 담긴 비닐 팩에 꽃힌 빨대를 야무지게 쪽쪽 빨아대고 있는 김태형을 흘기며 말했다.흐응.김태형이 그런 날 보며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너야말로 아직도 도망 안 간걸 보면 참 신기하단 말이지.무심한 목소리를 내뱉은 김태형이 팩에 담긴 혈액을 토마토 주스 마시듯 쭈욱 들이켰다. "도망?너 웃긴다.여기 우리 집이거든?" "알아." "어쭈." 코웃음을 치며 내뱉은 말에도 표정변화 없이 시크하게 대답하고는 빈 비닐팩을 쓰레기통에 휙 던지곤 자연스럽게 소파로 향하는 얄미운 뒷통수를 힘껏 노려봤다.그런다고 안 뚫린다.김태형이 쩍 하품을 하며 말했다.새빨간 입술 안쪽으로 유난히도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나 보였다.말싸움에서 또 졌다.(사실 뭐 제대로 이겨 본 적이나 있었냐만은.)분한 느낌에 괜시리 바닥만 툭툭 치다 소파로 다가가 부러 털썩 소리가 나도록 주저앉았다.옆으로 누워 리모콘을 들고 채널을 돌리는 데 집중해 있던 두 눈이 잠시 나를 향했다 멀어졌다.
"물리고 싶어?" "..어?" 얌전히 티비를 보던 김태형이 나즈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너무 낮은 목소리라 하마터면 티비소리에 뭍혀 못 듣고 무시할 뻔 했지만,분명히 그 목소리는 나를 향해 있었다.대답을 요구하는.작은 물음. "나한테 물리고싶냐고." 내가 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김태형은 친절하게도 아예 상체를 일으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되물었다.거실에는 잠시동안의 정적이 일었다.왜인지는 나조차 정확히 몰랐다.서서히 붉은 빛을 띄어가는 김태형의 동그란 눈동자를 바로 마주하니,어쩐지 입술이 벌어지질 않았다. 김태형과 나는 말없이 서로를 주시했다.어느새 김태형의 잘난 얼굴은 내 코 앞까지 와 있었다.끝나지 않을것만 같았던 정적을 거두어 간 건,김태형 특유의 그 낮고도 짧은 한숨소리였다.그리고 김태형의 두 눈동자가 완벽하게 붉은 빛으로 물들었을 때 쯤 이었다. "잠ㄲ....!" 갑작스레 내 뒷목을 감싼 김태형이 꽤나 거칠게 입을 맞춰왔다.놀랄 새도 없이 파고드는 말캉한 느낌에,서둘러 김태형의 어깨를 밀어냈다.아니,밀어내려고 했다.낑낑대는 내가 우습지도 않다는 듯 조금의 미동도 없이 작게 코웃음을 친 김태형이 미소를 지은 채 느긋하게 떨어졌다.혀를 내어 제 입술을 쓱 훑으며 입맛을 다신 김태형이 나른하게 웃으며 다시 얼굴을 쑥 들이밀었다.히익.요상한 효과음이 나도모르게 튀어나왔다.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로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는 나를 보며 피식 웃어보인 김태형이 한층 더 잠겨진 낮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먹으려고 온 거였으면 진작에 먹었어,너." "....알았으니까 얼굴좀 치우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온 김태형이 나를 빤히 응시하다 뒤로 스르륵 물러났다.묘해진 분위기에 어색하게 두어 번 헛기침을 하고는,리모콘을 주워들어 티비 볼륨을 괜히 높히기 시작했다.시끄러워.김태형이 중얼거렸다.슬쩍 옆을 흘겼다가 리모콘을 내려놓았다. "난 평생 너 안잡아먹어." "....그것 참 고마운 소리네요." "진짠데." "어련하시겠어." 금방 평소처럼 돌아온 분위기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긴장이 풀어진 나를 눈치챘는지,김태형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난 평생 너 안잡아먹고 이대로 붙어있을꺼야.평생.여어어엉원히.아이처럼 해맑은 웃음기를 잔뜩 머금은 그 말에 다시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아,괜시리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좀 무섭지 않냐?" "진심이라니까." 김태형이 씨익 웃는 얼굴로 슬금슬금 기어와 내 무릎을 베고 누우며 말했다.그래.니 마음대로 하세요.졌다는 어투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하자,입술이 네모낳게 휘어진다.그럼,받아들인걸로 할께.푸스스 웃으며 김태형의 머리를 헝클었다.이게 어딜봐서 뱀파이어야.그냥 개지 개. 탄독방에 올렸던 거지만 내가 모아놓기 편하라고 글잡에도 올립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