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남들이 보기엔 우스울지 몰라도 우리는 진심을 다해 사랑했다. 그래서 행복했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언제나 나를 괴롭게 했다.
행복했지만 매일같이 나를 괴롭히는 너는 악몽과 같았다.
"백현아."
「백현아.」
"…보고싶었어."
「보고싶다.」
18살의 기억과 겹쳐오는 너의 목소리에 나는 눈물이 차오르는 두 눈을 꼭 감고 기억속에 빠진다.
*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자라온 환경 탓인지, 나는 어렸을 적부터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아버지는 국회의원 이셨고, 어머니는 의상 디자이너 였다. 권위적인 아버지와 자기 주장이 뚜렷하고 성격이 강한 어머니는 매일같이 싸우고 다투었다. 성격차이를 견디지 못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국 따로 떨어져 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 때에도 아버지는 이혼이 정치적인 이미지에 타격이 갈까 두려워 이혼은 하지 않으셨다. 부모님의 결정에 따라 나는 아버지와 살게 되었고, 풍족하고 모자랄 것 없는 생활을 했지만 나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지독한 외로움을 느껴야만 했다. 어릴적 부터 아버지는 나에게 돈을 쥐어주셨다. 나쁜 의도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점점 외로워지는 내가 가끔씩 연락을 했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관심이 필요했던 건데, 나는 두 손에 돈이 아닌 사랑을 쥐고 싶었던 것인데.
하지만 그 때부터 간절히 원했던 나의 바람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아침마다 스스로 일어나 혼자서 준비하고, 예전부터 아무도 차려주지 않는 아침밥은 기대도 하지 않은 채 혼자서 집을 나왔다. 그리고 좀 거리감이 있는 학교까지 또 혼자서 걸어갔다. 매일 일찍 학교에 오는 나는 많아봤자 3, 4명 있는 교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뒤로부터는 내가 수업을 들었는지, 혹은 잤는지, 무엇을 했는지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학교에서도 철저히 혼자였다. 그렇게 무의미한 하루를 보내고 친한 친구들 끼리 집에 같이 가는 뒷모습을 보며 혼자 집을 가던 어느 날 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아무런 표정 없이 신호등의 색이 바뀌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서 아이의 우는소리가 들렸다. 무의식적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울음소리가 나는 쪽을 보았다. 아이가 자그마한 손으로 끝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내며 울고있었다. 마치 어린시절의 나를 보는듯 했다.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 두려움에 떨고있는 모습이 나와 닮았다고 생각해 천천히 아이에게 다가갈 때, 주저하며 느릿하게 다가가는 나와는 달리 뛰어오듯 걸어온 사람이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아가, 엄마 잃어버렸어?"
"엄마, 엄마아아……."
"뚝! 형이 엄마 꼭 찾아줄게. 울지마. 뚝 그치면 형이 맛있는 거 사줄게."
순식간에 다가온 사람이 익숙하게 아이를 달래며 들어올리자, 아이가 서서히 울음을 그치기 시작했다. 의지할 곳을 찾아 안심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울고 싶어졌다. 왜 나에게는 저런 사람이 없었을까.
지금이라도 나는 저 아이처럼 구원받을 수 있을까.
나는 아이와 끊임없이 말하는 사람을 멀찌감치 떨어져 계속 쫓아갔다. 아이는 이제 예쁘게 웃기도 했고, 형아 라고 부르며 그의 목을 껴안기도 했다. 이곳 저곳을 다니던 남자와 아이는 한참 뒤에야 아이의 집을 찾아냈고, 아이를 찾아 집 주변을 돌아다니던 엄마와 만나 안고있던 아이를 넘겨주자 아이의 엄마가 고맙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남자는 맑게 웃으며 아니에요, 하고 말하고 몇번 더 인사하는가 싶더니 발걸음을 돌려 멀찍이 쫓아오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와 나에게 물었다. 나는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고 나서야 우리학교 교복을 입고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까 횡단보도에 서있던 애 맞지?"
"……."
"걱정되서 쫓아왔나보네."
"……."
"나 너 알아, 변백현."
"……."
"난 박찬열이야. 너랑 친해지고 싶었어."
"……"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예상했던 것과 같이, 역시 너는 나의 구원이였다.
찬열이는 말없고 조용한 나와는 달리 활발하고 착해 친구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만난 날 이후, 찬열이는 매일같이 우리반에 놀러와 나를 챙겨주고, 나와 함께 있어주었다. 처음부터 나에게 희망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던 탓인지 나 또한 빠르게 마음을 열고, 지난 날의 내 상처를 달래주는 듯한 찬열이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등교길에도, 하교길에도 나를 만나러 오는 찬열이 덕에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가던 때, 나는 내 마음이 그저 소중한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몇일간 찬열이를 피해도 보고, 쌀쌀맞게 굴기도 했지만 한결같은 찬열이에 그냥 내 마음을 털어놓아야겠다 고 생각했다.
"찬열아."
"응?"
"나 너 좋아하는 것 같아."
"나도 너 좋아해."
"…그런 거 말고."
"그런 거 말고 뭐?"
나란히 하교하던 길에 내가 걸음을 멈춰서며 말하자 약간 앞서있던 찬열이 뒤돌아보며 응? 하고 재차 물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바닥을 보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 하는 것 같아."
몇날 몇일을 고민하고 말하는 것이었지만 내 말이 끝나고 아무런 반응이 없는 찬열이에 나는 곧 주워담을 수 없는 말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지금의 사이라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니까, 그게 말이야……."
"내가 먼저 말할게."
"……."
"나도 너 좋아했어, 예전부터."
"……."
"내가 너 안다고 했었던 것도, 그 것 때문이야. 나는 니가 아는 것 보다 훨씬 전에 너를 봤고, 너를 좋아해왔어."
"…찬열아,"
"이렇게 친구 된 걸로 만족하려고 했는데."
"……."
"좋아해줘서 고마워."
나에게 다가와 따뜻하게 나를 감싸 안아주는 손길에 나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었다.
여태 받지 못했던 사랑, 텅 비어있던 내 손에
니가 주는 사랑 하나로 내 두 손을 가득 채울 수 있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 나는 전보다 더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그 행복은 별로 오래가지 못했다.
나에게 관심이 없는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가 요즘들어 집에 늦게 귀가하는 나를 조사했던 것이다. 그리고 어렵지않게 찬열이와 나의 사이를 눈치챈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집에 들어온 나에게 다짜고짜 뺨을 때리셨다. 너무 놀라 돌아간 얼굴 그대로 있던 나에게 아버지가 소리치기 시작했다.
"미친거야?! 어디 만날 게 없어서 그런 놈을 만나?"
"……."
"남자를 만나는 것도 모자라, 그런 놈을 만나?!"
"……."
"어디서 그런 모자란 놈이랑……."
"…아버지,"
"집안 망신시킬 일 있어? 그런 거지같은 거,"
"그런거 아니에요."
한번도 해본적 없는 말대답을 했다. 그리고 한번도 끊어본 적 없던 아버지의 말을 끊고 말했다. 아주 어렸을 적, 아무것도 모르던 때 이후로 처음으로 똑바로 보는 아버지의 눈이었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찬열이는 아무도 나에게 주지 않았던 따뜻함을 준 아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내 입은 열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를 지나쳐 방으로 올라가는 나의 뒷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표 끊어놨다."
"……."
"멀리 가서 다시 정신차릴 때 까지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 말거라."
"아버지, 저 안가요. 절대 못가요!"
"안가면 내가 그 새끼한테 무슨짓을 할지 몰라."
"아버지!"
"잘 생각해. 내일 아침 11시 표야."
그 때 나는 끝까지 한국에 남아 찬열이와 함께 있어야 했다.
아버지가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찬열이의 옆에서 찬열이를 지켜야만 했다.
찬열아,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철없던 18살의 나를 용서해 줘.
여러분 저 와써요!
자주 못올거같ㅇ다구 오늘 새벽에 올렷는데 그새 왓네여..ㅎ
제목에 쓰인 agita (아기타) 는 '가슴앓이' 라는 뜻이에요!
사실 정확한 사전적 의미는 소화불량에서 나오는 가슴앓이 같은 거지만
그래두..핳핳핳 하하ㅏㅎ핳핳 절대 체해서 가슴아픈 글 아니에욬ㅋㅋㅋㅋ..
이러캐 쓰려던게 아닌대.. 뭔가 되게 뻔하디 뻔하고 흔하디 흔한 초딩때 보던 인소같네여..^^;
늘 말하지만 댓글 사랑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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