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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루민] 아우스 이야기 01 | 인스티즈







슴은 또한, 새벽이라 불렸다. 사슴이 왜 새벽인지 역시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필자는 사슴이 새벽으로 불린 이유가 아마 드문드문 나타나던 그 시간에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사슴은 꼭 새벽이어야만 했다. 누구도 이유를 물을 수 없었으니 사람들은 사슴이 왜 새벽이었는지 감히 상상조차 하길 꺼려했다.

새벽 사슴.

여기서 가장 기본적이고 간단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필자는 세계의 순환을 잠시 이 이야기에 끼워 넣으려고 한다.



세계는 순환한다. 제국에서 땅을 거쳐 대륙까지, 안 거치는 곳이 없이 모든 곳을 흘러간다.

그 속도는 때때로 영원과 비교될 만큼 느리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미처 느끼기도 전에 쏜살같이 지나가버리곤 한다.

이 흐름에도 역시 사슴이 있다.

근거는 없다.

우리는 '그' 가 분명 세계를 여행할 때 모든게 흘러간다고 믿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극소수의 주장이므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참고하길 바란다.



솔직하게 말해, 지금까지 표면상으로 드러난 것만을 고려해 감히 용의 역할을 묻는다면 나는 "없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그' 를 신봉하고 아낌없이 사랑하지만 그가 내게 해준 것을 돌아본다면 그건 헛짓이었다.

내가 스스로를 특별하다 여겨서 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모두가 그렇다.

용은 그 무엇도 베푼 것이 없으며 창조하지도 않았다. '그' 의 일부가 번영을 만들어냈지만 그건 단연코 '그' 의 의지가 아니었으리라.

어쩌면 사슴은 오롯이 전설의 존재일지도.

신의 땅에서 일어나는 온갖 숨 넘어가는 일들을 정당화 시키기 위한 어떤 사람들의 계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설은 믿기에 실제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나 역시 가감없이 사슴의 존재를 믿는다.




-사슴의 기원, 오리엔트력 1014년, 작가 미상.






***






   북쪽 항구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갖고 있던 전재산을 털어 겨우 섬을 벗어나 제국으로 가는 편도행 배를 한 척 탈 수 있었다. 투스는 내가 떠나는 날 새벽까지 나를 끊임없이 설득하고 말렸지만, 나는 결국 그의 애원을 거절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멍청했다. 쓰레기더미에서 주운 헤진 책 한 권을 보고 있는지 없는지 갈피조차 잡지 못하는 이야기에 푹 빠져 겨우 자리를 잡은 보금자리를 떠났다. 삼일동안 짐을 싸고 돈을 긁어모아 내가 준비한 거라곤 제대로 된 몫을 하지 못하는 일주일치의 식량과 칸을 넘어갈 때 덮어 쓸 싸구려 가죽 로브, 그리고 무겁고 융통성 없이 두꺼운 신발 두 켤레 뿐이었다.


   오년만에 밟은 오리엔트는 변한 것 하나 없었다. 남쪽 항구는 섬으로 가는 배만이 들렸기 때문에 특별히 섬과 다른 점이랄 것도 없었다. 그러나 몰래 끼어탄 허름한 마차에 몸을 싣고 거진 열시간을 달려 제국의 중심부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나는 문득 추억에 젖었다.


   내가 어떻게 생활하고, 무엇을 배우고 먹고 입는지에 대해서 정말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았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내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것은 어쩌면 행운이기도 했다. 덕분에 자주 변장을 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이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느끼곤 했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웠었다. 축제가 벌어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황궁을 뛰쳐나와 함께 발을 맞춰가며 춤과 노래를 즐겼었다.


   내가 밟고 행복해했던 거리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참 묘한 기분. 여전히 빛나고 생기 넘치는 이 곳은 역시나 그렇게 떠나버리긴 아까운 곳이었다.


   그리고, 이젠 나를 전부 잊었을 황궁을 생각했다. 아버지는 나를 기억하고 계실까? 멍청하게 싸우기만 하던 형제들은 아직도 여전할까. 그 바보같았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니 피식거리며 웃음이 나왔다. 참 무모하고 충동적인 성격임이 분명하다, 나는. 지금 내가 가려고 하는 길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마 내 삶이 끝날 때 까지 이처럼 무모한 도전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 무모함으로 생각보다 일찍 숨이 끊어질지도 모를 판이다만 어쩌겠어. 나는 이미 시작했다.


   실없이 픽픽거리며 웃으니 어느새 그것은 긴 한숨이 되었다. 뭐에 홀려 이 여정을 떠나는 건지 나도 내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다. 떠나버린 길인데 이렇게 어리석을 줄이야. 투스가 지금 내 모습을 본다면 그럴줄 알았다며 타박을 할 것이 분명했다.


   해가 채 뜨지 않은 이른 아침, 제국의 수도는 너무나 춥기만 해서 옷을 더 꼼꼼히 여미며 몸을 움츠렸다. 덜컹거리는 마차는 숨이 막힐만큼 지루했다. 또 주변을 돌아보느라 미처 잘 생각은 들지 않아서, 그냥 품 속에 넣어놨던 책을 꺼내 읽기로 결심했다.




「나 역시 사슴을 찾기 위해 많은 세월을 대륙에서 보냈다. 이십여년이 다 되어 가도록 아우스를 떠돌았지만 결국 사슴을 찾진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비로소 '그' 는 찾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체념했을 때 나는 대륙을 떠나기로 결심했었고, 대륙을 떠나오는 길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모든 열정을 바쳐 대륙을 뒤졌건만 '그' 를 보지 못했다.

분명 아쉬웠지만 그 길었던 시간을 결단코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시간이었다.



내가 사슴을 찾으려 했던 이유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나는 인생의 진리를 얻으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절대적인 힘이나 영원한 삶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냥 사슴, 그 자체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책을 읽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책을 쓴 작자는 하는 모양새가 꼭 나와 같았다. 순식간에 흘러가는 시간이, 그렇게 빨리 사라지는지도 모르고 그냥 놓치기만 하다가 나도 어느새 이런 책을 쓰고 있게 될 거 같아 갑자기 소름이 돋는듯 했다. 바라던 사슴은 찾지도 못하고 말이야.




「사슴을 설명하는 말들은 아주 다양하지만, 간단한 공통점을 몇개 추려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사슴의 눈은 푸른색이다.

1-1. 이것에 대하여 또 의견이 분분한데, 대양을 닮은 푸른색이라는 말과 빛 바랜 하늘빛이라는 말로 크게 나뉜다.


2. 사슴의 머리칼은 흰색이다.


3. 사슴은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3-1. 사슴의 성별을 알 수 없으나 목격된 것은 전부 남자의 모습이었다.

3-2. 사슴의 외관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듯 하다. 사슴을 본 이들은 모두 사슴과 사랑에 빠지길 꺼리지 않았다.」




   희미한 빛으로 덜컹거리는 곳 위에 앉아 책을 읽자니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아 그것을 끝으로 책을 덮었다. 책을 다시 품 안에 우겨 넣고는 옷을 더 단단하게 여몄다. 제국의 계절은 한겨울을 향해 가고 있었다. 황궁에 있을 시절 눈이 내리던 날이면 늘 눈을 굴려 놀곤 했었지.


   무릎을 가득 끌어 앉아 얼굴을 파묻었다. 마차가 한번 덜컹일 때 마다 턱이 흔들리고 옆에 놓아둔 초라한 가방이 들썩였다. 인중이 얼어 차가워진 느낌이, 내가 지금 콧물을 흘리는건지 아니면 그냥 살이 굳어버린건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은 끝이 빨갛게 터 손가락은 굽혀지지 않았고, 달아났던 잠 생각은 어느새 찾아와 내 눈꺼풀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걸친 옷이 조금만 더 두꺼웠으면 어땠을까, 같은 실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감겨오는 눈을 특별히 막지 않은채 그대로 두었다.






***






“야.”

“……….”

“야, 너.”


“이봐. 일어나.”

“…으,”

“정신차려 멍청아.”

“…투스‥?”

“무슨 소리야. 잠이 덜 깼어?”




   잠을 깨우는 소리가 꼭 투스와 같아 아닌걸 알면서도 어렴풋 이름을 불렀더니 역시나 돌아오는건 낯선 반응이었다. 추운 날씨 덕에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비벼가며 뜨니 갈색 머리의 남자가 입김을 내뿜으며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선명한 초록색 눈이 투스를 떠올리게 해, 나는 잠깐 정말 그가 아닌가 하고 착각을 했다.




“너, 마차에 몰래 탔지?”

“…뭐라구요?”

“돈 내지 않고 몰래 탔잖아.”




   쏟아지던 잠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마차의 주인인가 싶어 몸을 뒤로 물리니 갈색 머리, 초록 눈의 남자는 내 모양새가 웃기다는듯 얼굴을 구기며 나를 쪼았다. 신경질을 내는 모양새가 정말 투스와 똑같아 그만 웃음이 나와버렸다.




“뭐야, 웃음이 나와? 미친거야?”

“제국 사람이에요?”

“그럼 어디 사람이겠어 멍청아. 칸에서 왔겠니 대륙에서 왔겠니.”

“섬 출신?”

“어딘가 모자라다 했더니 섬 출신이었냐?”




   뭐가 모자란가 싶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니 남자의 표정이 더 괴상하게 구겨졌다.




“너야말로 내가 제국 사람이냐 물어야겠네. 제국 사람들은 아무도 섬과 오리엔트를 동일하게 보지 않아. 멍청한 새끼.”

“음… 몰랐네.”

“섬에만 처박혀 있었으니 몰랐겠지.”

“그래서 뭐… 이 마차 주인이에요? 돈 받으러 온 건가.”

“그렇다면?”




   아, 그렇다면 정말 낭팬데. 침이 꼴깍 넘어간다. 일단 서둘러 짐가방을 집어 들었다. 마차는 아주 느린 속도지만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고, 여기서 잡힌다면 배도 타보지 못하고 잡혀 꼼짝없이 감옥에 들어갈지도 모를 판이었다.


   나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세상인데 이렇게 보니 나는 꼭 우리 안에 갖힌 앵무새 같다. 저가 제일 잘난줄 알며 가르쳐준 말밖에 나불대지 못하는 그런 앵무새 말이다. 웃기기도 하지. 이제와 생각해보면 전부 다 실소가 나오는 일들 뿐이다. 배운게 얼마고, 아는게 얼마라고 그리 잘난척을 하며 황궁을 떠나겠다고 큰소리를 쳐댔으며 또 사슴을 찾아나선답시고 길을 떠난건 어떠한지.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떠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맞게된 위기는 식은땀이 절로 나오게 했다. 침이 넘어가고, 어떤 기회를 봐 이 자리를 박차고 도망가야하는지 머릿 속이 바쁘게 돌아갔다. 나름대로의 긍지를 가지며 살아왔던 삶인데 이리도 허무하게 그 자존심이 무너질 줄이야.




“어어, 도망갈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을걸.”

“뭐라구요‥?”

“도망갈 생각 하지 말라고. 귀까지 먹었냐.”

“똑바로 말해요. 마차 주인이에요?”




   남자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나는 눈을 피하진 않았지만 쉴새 없이 뛰는 가슴은 금방이라도 터질듯 했고, 내겐 저 남자가 칼이라도 꺼내들어 내게 난도질을 하면 어쩌나, 하는 겁먹음에서 오는 두려움뿐이었다. 황궁에서 지내던 시절 간단한 검술을 배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아무짝에도 쓸모 없었다. 아니, 없을 것이다. 제국은 빛나는 곳이었지만 이곳은 결국 굶주린 이들이 생계를 위해 살아가는 곳 한복판이었으니.


   눈빛은, 의외로, 남자의 것이 먼저 거두어졌다. 그 틈을 노려 마차를 뛰어 내리려 했으나 남자의 억센 손에 붙잡히고 말았다.




“어딜 가.”

“아‥!”

“멍청아. 안 죽여. 앉아.”

“망할! 마차 주인이라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죽이지 않으면? 감찰관들 앞에 나를 던져놓을 셈이야?”

“시끄러워. 너 때문에 들키게 생겼네. 야. 흥분 좀 가라앉혀.”

“놓으라고!”

“…젠장! 그래! 나 마차 주인 아니야! 망할 마차 주인 아니라고!”




   몸부림을 치다 남자의 소리침에 움직임을 멈췄다. 잠깐 새에 어찌나 몸을 흔들었는지 숨이 차올라 헉헉거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나도 몰래 탄 거야, 이 병신아. 말을 끝까지 들으라고!”

“…하.”




   그 말에 긴장이 풀려 그만 마차 바닥에 주저 앉았다. 원망스런 눈빛으로 남자를 쳐다보니 낄낄거리며 나를 비웃는다. 주먹이 나가려는걸 겨우 참아내자 남자가 나를 일으켜 앉혔다. 째려보는 눈빛을 지우지 않고 계속해서 무언의 항의를 하자 남자는 가방 안에서 치즈와 빵을 꺼내 내게 건낸다.




“먹어.”

“됐어요.”

“배고플텐데.”

“꺼져.”

“참나.”




   남자는 예상보다 쉽게 사과의 말을 건내왔다. 십분 뒤면 항구에 도착하니 하도 퍼질러 자는 걸 재밌게 깨워보고 싶다는게 변명이었다. 거기에 또 기가차 헛웃음을 뱉으니 남자는 빵을 한 덩어리 더 뜯어 내게 내밀었다. 배가 고픈건 사실이었기 때문에 별 말 없이 그것들을 받아내니 남자는 다시 낄낄거리며 웃어왔다. 짜증나는 새끼. 입으로 퍽퍽한 치즈와 빵을 굴리며 그렇게 중얼대니 남자는 너도, 라고 내 말을 받아쳤다. 재수없는 새끼. 너도.


   재수없는 새끼는 자신의 이름을 케오구스토라고 소개했다.




“케오. 구스토. 구스. 케오구스토. 아무렇게나 불러도 좋아.”

“……….”

“나는 케오를 가장 선호하니 참고해.”

“그걸 나한테 왜 알려주는데요?”

“너 항구로 가는거 아니야? 배 탈 거 잖아.”

“……….”

“칸에 가는 거지?”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케오는 나를 아래 위로 흘끔 훑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꼴을 보아하니 제국의 차를 탈 거 같진 않고... 걸어서 가겠네?”

“……….”

“나도야. 나도 돈없고 가족없고 집도 없어.”

“지금 그걸 자랑이라고 하는 말이에요?”

“아니 뭐... 긴 여행이 될 텐데 같이나 가자고.”

“……….”

“사막에서 말라 죽어도 혼자 죽는 것보단 둘이 같이 죽는게 더 낫지 않겠어?”




   정말 짜증나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드는데도, 왜인지 거절의 말이 입 밖으로 나가질 않았다. 사막에서 말라 죽어도 혼자 죽는 것보단 둘이 같이 죽는게 더 낫지 않겠어? 그 말이 순식간에 턱, 숨이 막히게 했다. 뭐라 반박을 마구 하고 싶은데 어떤 말로 해야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고, 마냥 능글대는 저 표정에 제대로된 대답도 하지 못한채 그럼 같이 가는거야! 라고 어느새 확정 되어 버려 나는 계속해서 헛웃음만 뱉을 수 밖에 없었다.




“근데 넌 이름이 뭐야?”

“멍청한 새끼 이름은 알아서 뭐하시게.”

“삐졌냐? 속좁은 놈.”



그래 그래, 마음대로 생각해라.



“야. 이름이 뭐냐고.”

“……….”

“아 좀 말해줘. 진짜 이러기냐?”

“…시우민.”




   민석은 말할 수 없었다. 이런 이름은 황궁에서나 쓰는 이름이었으니까. 투스야 섬에서만 나고 자랐으니 그런 걸 알았을리 없었기에 본명을 알려주었지만 제국에서 살아온 케오는 달랐다. 민석이라고 말하는 순간 케오는 그 초록색 눈을 부릅뜨고 뭐? 라고 나를 추궁할게 뻔했다.




“너 어디 귀족집 자식이었냐?”

“무슨 말이야.”

“이름이.”

“그럴 리가. 네가 말한대로 내 꼴을 봐라. 어디 귀족집 자식이었담 이러고 있지 않겠지.”




   케오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곤 내 머리를 한대 쥐어 박았다. 분노에 찬 비명이 터져나왔다.




“갑자기 무슨 반말이야.”

“이게 무슨‥! 당신은! 처음 말 건 순간부터 당신은 반말이었잖아!”

“몇 살이야.”

“유치한 걸로 말끊지 마!”

“예민하긴. 진짜 궁금한 건데 왜 이래?”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눈 앞에 있는 이 놈이 얄미워 죽을 것 같았다. 호랑이를 이겨보려 바등대는 괭이새끼가 된 듯한 기분이다. 저 얄팍한 머리 안에 들어있는게 뭔지 진심으로 뜯어보고 싶어졌다. 네 놈이랑 같이 가느니 차라리 사막에서 혼자 말라죽겠다는 말이 입 안을 맴돌았지만 또 어째서인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방금 목구멍 뒤로 넘어간 빵과 치즈가 역겨워졌다.


   화풀이를 할 것이 없어 입고 있던 옷을 꾹, 힘을 주며 쥐었다. 살면서 한번 다른 이와 싸움이 붙은 적이 없었고, 누군가에게 밉다는 감정을 가진 적도 없었다. 케오는 능글거리며 웃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약이 올라 가슴이 답답해졌다.




“야. 솔직히 말해 봐. 너 평민은 아니잖아, 그렇지?”

“……….”

“안에서 오냐오냐 소리만 들으며 자랐으니 남들이랑 갈등을 겪어봤을리가 있나.”

“닥쳐.”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바들바들 떠는게 웃기네.”




   머리를 한 대 치려는걸 놈은 계속 웃으며 진정하라고 했다.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 멈추지 않고 덤벼들려 하자 내 팔을 잡고는 다시 나를 앉혔다. 악력만 드럽게 억세서는, 힘으로 못당해내는 내 자신이 한심해졌다.




“진정 좀 해. 배는 타야지. 이제 항구야.”






***






   짐짓 진중한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속삭이는 것이 소름끼쳐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뺐다. 놈은 그것마저도 재밌다는듯이 낄낄 거린다. 저 얄미운 얼굴을 더 봤다간 배를 타기도 전에 홧병으로 쓰러질 것 같아 그냥 주변을 둘러보았다.


   느끼지 못했던 바다내음이 코를 거세게 찔러왔다. 이른 아침의 항구는 안개가 채 걷히지 않아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무리지은 사람들이 서둘러 이곳 저곳을 왔다 갔다 거리고, 어딘가에선 흥정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북쪽 항구는 황궁이 아닌 개인이 관리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시설이 열악했다. 있는 배라곤 칸으로 가는 것 하나와 제국의 중앙 항구로 가는 배 뿐이었다. 마차는 얼마 더 움직이더니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고 케오는 내 뒷덜미를 잡아 나를 먼저 내려보냈다.


   저 놈과 같이 갈 생각을 하니 차라리 중앙 항구로 가는 배를 타 황궁으로 돌아가는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신분이고 권리고 모든걸 버리고 나온 나에게 사실 그런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어쩌겠어. 사람이 되다만 것 같은 저 놈과 같은 배를 타는 수 밖에. 첫 발 부터 꼬여버린 여행은 고달파 보였다.




“빨리 와.”

“어딜 가는 겁니까.”

“야 그새 안 들었다고 말 높이는게 이렇게 소름이 끼치냐.”

“묻는 말에나 대답해.”

“까칠하긴.”




   내 팔을 잡고 어딘가로 향하는 모양새에 신경질적으로 손을 내치니 답답하단 표정으로 내게 따진다.




“멍청아, 배 안 탈 거야? 지금 안 가면 놓친다고!”

“표 안 삽니까?”

“뭐야. 밀항이지 당연히. 돈도 없는데 무슨.”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는지. 이젠 더 나올 헛웃음도 없었다.




“저는 표 사서 탈 겁니다. 그쪽이 밀항을 하든 말든 제 알 바는 아니니까 그냥 이 쯤에서 헤어지죠.”

“고지식한 새끼네. 나 같으면 표 살 돈으로 칸에서 차를 탄다.”

“차를 탈 돈이랑 여기서 배를 탈 돈이 똑같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지금?”

“방법은 다 있다.”

“비켜요.”




   케오를 밀치고 표를 끊는 곳으로 걸음을 돌렸다. 뒤에서 멍청한 짓 그만하고 그냥 같이 타자는 케오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능력이 되는 것을 부러 숨기고 얻어 탈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정도 자존심은 아직 남아있었다.


   가장 가까운 시간의 표를 끊고 나니 예상대로 돈을 전부 탕진했다. 출발 시간은 이십분 후, 배를 타는 줄 근처에 앉아 다시 품 안의 책을 꺼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읽었던 장을 펼쳐 마저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슴의 기원이라 이름 붙혀진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록 사슴에 관한 이야기는 없고 이 책을 쓴 자의 혼잣말이나 줄줄 쓰여있을 뿐이었다.





「…뭐가 됐든 간에 다시 주제로 돌아가자면. 아니, 그 전에 개인적인 얘기를 좀 쓰자면, 사실 나도 이걸 노리고 사슴을 찾으려 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말이다. 혹시나 이 책을 보며 나를 비웃어도 상관없다. 진심이니까.

매일 밤 사슴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면 적어도 인생의 목적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었으니.

그러다 어쩌면 '그' 가 한번 뒤돌아 봐 줄지도 모를 일이지 않는가.」



웃기는 사람이네.



「아무튼. 이제 정말 본론으로 돌아가자.

내가 또 말하고 싶은건 사슴은 과연 얼마나 오랜 시간을 살아왔냐는 것이다. 글쎄 나도 지금 이걸 쓰면서 어디부터 시작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사슴이 가장 먼저 글로 남은 것은 오리엔트력으로 868년 째이다. 아무리 적어도 사슴은 두 세기를 살아온 생명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훨씬 전부터 용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 시작이 언제부터였는진 정확한 시기를 짚을 수 없으나,」




   순간이었다. 배의 경적을 울리는 소리가 항구를 가득 채웠다. 고막이 터질 것 같아 서둘러 귀를 막았고, 경적 소리는 두어번을 더 매섭게 울리더니 멎었다.




“…칸‥! 배…!”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를 짚으니 내가 탈 배가 출발을 앞두고 있었다. 다시 품에 책을 넣고 짐가방을 들어 사람들이 줄을 선 쪽으로 갔다. 바다내음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바람을 타고 옷 속을 파고 들고, 피부를 축축하게 물들이는듯 했다. 탑승이 시작 되고 꽤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앞 사람들을 보며 문득 케오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미친거지. 그딴 새끼가 궁금해지다니. 말도 안 돼.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표를 꺼내 들자,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쳤다.




“…무슨,”

“야. 나도 표 샀다. 욕하지 마. 우리 같이 가는 건데 그렇게 헤어지면 섭섭하지.”


이 새끼 미친 거 아니야?




   어디서 뛰었는지, 어떻게 표를 구한건지. 빨간 코와 뺨을 한채로 눈 앞에 표를 들이밀며 웃는 케오의 모습에 넋이 나갔다.




말도 안 돼.










   -


  민석이가 탄 마차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많이 타는 소 달구지 같은 거에요 ㅎㅎㅎㅎㅎㅎㅎ 민석이 고생길 시작ㅋㅋㅋㅋㅋㅋㅋㅋ


  +) 아 맞다 아우스 이야기가 초록글에 올랐었어요! 정말 감사해요 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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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작가님 기다렸어요ㅜㅠㅠㅜㅠㅠㅠㅠㅠ 케오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네요 좋은 사람일지 아니면 나중에 민석이 뒤통수를 후려치고 도망갈지... 다음편 기다릴게요!
9년 전
독자2
앗 첫번째 댓글이네용!
9년 전
...! 와 이렇게 댓글이 빨리 달릴 줄은 정말 몰랐어요! 감사드려요 ㅠㅠㅠ!
9년 전
삭제한 댓글
(본인이 직접 삭제한 댓글입니다)
9년 전
감사해요! 얼른 써올게요 :) !!!
9년 전
독자4
이런 성실하신분 같으닛 ㅠㅜㅠㅠ 빨리올려주셨다 ㅎㅎ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u////u
9년 전
감사합니다 :D !!!!!!!!!!!!!
9년 전
비회원50.16
으아..다음편 꼭 써주세요,기다릴게요ㅜㅜㅜ
9년 전
감사합니다 :) !!
9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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