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아우, 좀..사람들 많이 왔어?" "응, 자기 남자 동창 되게 많다?" 밖에서 손님 받다가도 틈만 나면 신부대기실로 들어오는 백현이 때문에 헛웃음이 흘러나왔어. 아주 제꺼라고 도장 쾅쾅 찍는 결혼식에서 조차 남자동창들 질투나 하고 앉아있다니, 변백현은 정말 한결같았지. "어, 세훈아!" "오오, 예쁘네." "혼자 왔어? 혼자 오면 안되지 오세훈~" 나랑 같은 대학 출신에 우리병원 내과병동에 있던 세훈이가 쭈뼛쭈뼛 대기실로 들어왔어. 변백현은 맘에 안든단 표정으로 날 흘겼고 나는 애써 모른척을 했어. "김종대는? 오늘 축가부른다면서." "아까 오고 있다던데, 어. 왔다." 말끔하게 옷을 차려입은 종대가 대기실로 들어서자마자 오세훈이 김종대 헤드락을 걸고 퍽퍽 때리는 시늉을 했어. 졸업하고 어쩜 한번을 안보냐며.. "너 이 새끼, 졸업하고 돈만 벌고 살았냐?" "야 무슨- 너야말로 연락 한 번을 안하고 살아!" 결론은 둘 다 서로한테 연락을 안했으면서, 투닥투닥거리는 모습에 혼자 피식 웃었어. 한참을 반가움에 몸싸움을 하다가 김종대가 날 쳐다보고 말을 걸어. "이야아-김간 화장 좀 진하게 하셨네요?" "축가 연습은 했어?" "야..내가 너 오늘 축가불러준다고 어제까지 나이트 네개 뛰고 온 건 알아?" 어쩐지 얼굴빛이 어둡다 했더니 요 며칠 동안 빡쎄게 일을 좀 했었나봐. 김종대랑 오세훈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둘씩 들어왔어. 정말 심심할 틈도 없이 들이닥치는 사람들에 얼굴에 웃음이 가시질 않았지. "어, 교수님!" "그래, 결혼 축하한다. 종대학생도 있었나?" "네-교수니임! 잘 지내셨죠?" 김종대와 교수님의 만남은 저엉말 오랜만이었지. 나야 같은 병원이라 오며가며 몇번 뵈었지만 김종대는 병원이 달랐으니까. 그래도 김종대는 과 수석도 간간히 찍던 엘리트학생이었던 지라 교수님이 기억하고 계셨어. "강의시간에 도망가다 걸리던게 엊그제같은데, 결혼을 한다고 연락을 하네 그래." "아이, 교수님. 언젯적 이야기를.." 내가 민망한 웃음을 흘리며 얼굴을 붉혔더니 교수님이 기분 좋게 웃으셨어. 사실 내가 김종대랑 손붙들고 도망간게 한두번이 아니라 뭐라 변명할 것도 없었지. 교수님도 이따 식장에서 보자고 나가시고 고등학교 때 친구들, 대학 동기들이 우르르 정신없이 몰려들어왔다 나갔어. 결혼식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괜히 긴장이 되어서 두근거리는 가슴 잠재우고 있는데 백현이가 빼꼼 문을 열고 들어와. "떨려?" "조금, 종인이가 못 와서 아쉽네." "어쩔 수 없지. 한창 바쁠 땐데." 종인이도 그렇고 내 후배도 그렇고, 둘 다 병원때문에 못왔거든. 괜히 아쉬운 마음에 백현이한테 조금 투정을 부렸어. 내가 큰 일을 앞두고 있으면 항상 긴장한다는 걸 알고 있는 백현이는 익숙하게 토닥여주러 들어온거야. "엄마가 너 예뻐죽으려고 하더라, 나 섭섭하게." 괜히 입 삐죽이는 백현이를 보고 한번 팡하고 웃음이 터졌어. "우리 아빠도 매일 너 얘기 밖에 안해요." 우리 아빠는 매일을 입이 닳도록 백현이 칭찬을 했어. 아빠 레지던트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서 백현이같은 애를 본 적이 없다며, 싸이코가 난무하는 써전 사이에서 백현이는 정말 바르게 자라난 아이라며. 정작 딸바보였던 우리 아빠가 백현이한테로 떠나려나,하고 생각했지만 예쁨받는 백현이가 뿌듯했던 건 사실이었지. "10분 전이에요, 신랑분 대기하실게요-." 대기실 문을 살짝 연 직원이 백현이를 불렀고 직원이 문을 닫자마자 다급하게 입술도장찍듯 쪽쪽하고 입을 맞춘 백현이가 내 손을 꼭 붙들었어. "야, 화장 지워지게.." "이따 봐요, 울지 말구." 아까부터 엄마 얼굴 볼 때마다 몰래 눈물 찍어냈던 건 또 어떻게 알고 툭하니 걱정을 던지고 나가는데 정말 행복한 웃음이 얼굴에 번졌어. 마지막으로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나서 직원 안내에 따라 대기실을 빠져 나갔어.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는 아빠 손을 잡고 백현이 뒷모습을 바라봤지. 씩씩하게 입장하는 뒷모습이 누구 남편 될 사람인지, 기가 막히는 거야. 신부 입장, 이라는 소리와 함께 아빠랑 조심조심 식장을 가로질러 걸어들어가는데 이게 생각보다 굉장히 떨리더라구. 다리도 후들거리는 것 같고, 이미 내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진지 오래였어. "감사합니다." 아빠한테 내 손을 넘겨받으면서 작게 감사합니다, 하는 백현이었어. 그 감사하다는 말이 왜그리도 눈물이 나던지 정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흐르는거야. "어, " 잠시 당황한 듯한 백현이얼굴이 보이고, 백현이 너머로는 나를 따라서 눈물을 훔치는 엄마가 보였어. 사회를 본다고 마이크를 잡은 준면이오빠의 작은 웃음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렀고 순식간에 결혼식장이 웃음바다가 되었지. "신부가 울보인 건, 여러분들도 다 아시죠?" 능청스러운 오빠의 목소리가 울려퍼졌지만 백현이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 손가락으로 내 눈가를 스윽 매만졌어. "이럴 줄 알았지, 뚝." 내가 울음을 터트릴 때 마다 그만 울라는 듯이 손가락으로 눈가를 톡톡 쳐주곤 했는데 이번에도 다름없이 눈가를 톡톡 두드리는 백현이었어. 백현이를 따라서 숨을 몇 번 고르고 눈물이 멈추자 민망한 웃음이 삐져나왔어. 내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얼굴을 붉혔더니 그제야 백현이가 손을 고쳐잡고 내 발걸음에 발을 맞춰서 단상 앞까지 올라갔어. 주례사를 어떻게 들었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지나가고, 김종대의 축가도 끝이 났어. 정말 노래하나는 끝장나게 잘한다고 백현이랑 몇마디 나누다 보니 준면이오빠가 다시 마이크를 쥐고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여. "자아..결혼식에서 빠질 수 없죠, 신랑이 오늘 밤 힘을 쓸 수 있을지! 저는 상당히 걱정이 되는데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선배님." "으음, 엊그제까지 응급 뛰고 온 레지던트는 조금 의심스러운데요." "그 정도야, 끄떡없죠." 나만 얼굴이 붉어지고 변백현은 아주 능글능글 웃으며 준면오빠의 말을 죄다 받아쳤어. 하객들도 와르르 웃고 결국 변백현은 나를 들고 몇번 들었나 놨다 해야했어. 안그래도 요즘 일 좀 쉬었다고 살 붙었는데..그 와중에도 변백현은 내 면사포를 끌어다 훤히 드러난 어깨를 가리기 바빴고 나는 여전한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지. 식이 모두 끝나고 사진까지 찰칵찰칵 찍고 간단한 미니드레스로 갈아입은 뒤 웨딩카로 이동했어. 부모님들이랑 작별인사도 하고 차에 딱 올랐는데, 주차장으로 익숙한 두명이 막 뛰어내려와. "선배님! 선배애님..!!!!" "어, 김종인이랑 네 후배 아니야?" 진짜, 백현이가 쳐다본 곤에는 내 후배와 종인이가 뛰어오고 있었고, 근데..너네 둘 손은 왜 잡고 있는건데. "어떻게 왔어? 일은?" "중간에 나왔어요, 대신 내일 나이트.." "뭐하러 그랬어, 피곤하게." "쌤 이제 일주일동안 못 보잖아요. 결혼 선물도 못 드렸구.." 그러면서 자기 손에 들린 쇼핑백을 내미는데 그제야 김종인이랑 붙든 손을 자각했는지 화들짝 놀라며 손을 확 빼는거야. 변백현은 옆에서 큼큼,하며 웃음을 참기 바빴고 나는 쇼핑백을 받아들었어. "..선배님." 김종인이 조용히 변백현을 부르더니, "화이팅이요." 하고 슬쩍 웃어. 변백현은 그제야 참던 웃음을 와하하하고 웃더니 김종인을 못말리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봐. 내 귀염둥이 후배는 김종인 정강이를 퍽 차면서, 못하는 말이 없어요? 하고 핀잔을 주고. 결국 우리 이쁜 후배랑도 빠빠이하고 꽃장식과 풍선장식이 요란히 달린 웨딩카에 탔어. 운전은 김종대가. 김종대 고생 많이하네. "김종대, 웨딩카 니가 꾸몄어?" "어. 왜?" "하도 요란해서." "변백현이 시킨거야. 지 결혼하는 거 동네방네 자랑할거래." 그 말에 변백현은 또 고개를 숙이고 수줍은 새색시마냥 슬쩍 웃고있어. 누가 신랑이고 누가 신부야.. 공항까지 데려다 준 김종대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변백현이랑 공항에 앉아서 한시간 남짓 남은 비행기시간을 기다렸어. 변백현은 아까부터 좋다고 계속 웃고있었고 나도 그 모습에 기분이 좋아 웃음이 떠나지 않았지. 의자에 앉아서 손을 붙들고 있던 변백현은 조신하게 모은 내 무릎을 한번 쳐다보더니 자기 자켓을 벗어서 내 다리 위로 폭 덮어내렸어. "치마 짧은 거 봐." "치마는 짧은 맛에 입지." "누구 보여주려고?" "변백현..?" "나는 뭐, 이제 됐으니까 그만 입어." "이제 다 잡아놓은 물고기라고?" "조금 있으면 다 볼텐데, 뭘." "이 미친.." 경악하는 내 말에 변백현은 능구렁이처럼 웃으며 자기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냐며, 얼굴 붉어지는 말만 던져댔어.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뭐. 뭐가!" "솔직히 내 나이에, 너 나이에, 나는 자취하고, 너는 뻑하면 우리 집에서 자고, 잘 때마다 사람 끌어안고, 또.." "아, 알았어. 그래. 거기까지 해." "그래. 나머지는 이따 해." "허.." "오늘은 절대 못 넘어가지." 무슨..신혼여행을 위해 일생을 사신 분 마냥.. ㅡ 왜 결혼하는 편이 44편이냐며...ㅎ..... 방가워요 독자님들..♥3♥ 이제 애낳고 길러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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