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김태형. 너 또 택배 시켰냐?"
"내가 무신 물주가. 므만 오믄 내 탓하노?"
"아아, 아무튼. 이거 니거냐고."
"눈깔이 있음 수취인부터 확인해봐라. 눈 뒀다 뭐하노."
이른시간, 휴일 답지 않게 일찍 일어나 멍하게 있던 백현과 태형은 현관에서 들려오는 노크소리에 서로의 등을 떠밀다 결국은 백현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그런데 이건 뭐? 문을 열자 보이는 건 덩그러니 놓인 김치냉장고 크기만한 상자 뿐. 평소 쇼핑을 즐기는 태형이라 택배가 오는것쯤은 일상다반사였지만 이렇게 큰 물건은 처음이었다. 이제 슬슬 김태형이 살림을 차리기 시작하는구나. 백현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택배상자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 오려 했지만 백현 혼자서 상자를 들기엔 그것의 무게가 어마어마했다.
야, 이것 좀 도와. 싫다, 내가 와. 치사한 새끼. 오냐- 내가 쫌 치사하다, 마. 혼자 들고오기 벅찬건지 백현이 태형에게 부탁했지만 태형은 매정하게 거절하며 한술 더 떠 방 안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이게 먹을거면 나 혼자 다 먹고 말리다. 백현이 속으로 태형의 욕을 곱씹으며 하는 수 없이 상자를 질질 끌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아아- 허리야. 어떻게 거실로 상자를 끌고 온 백현이 쇼파에 풀썩 주저앉으며 허리를 두드렸다. 그나저나 저 안에 든건 뭘까. 백현이 잠시 상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까 상자를 끌고올 때 수취인을 확인하려 했지만 그 어느곳에도 보내는 이 는 물론 받는 이 도 적혀있지 않았다. 잘못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한 백현이 상자를 그대로 방치한 뒤 쇼파에 드러누워 핸드폰을 집어들고 게임을 실행하려 했으나,
덜컹-
갑작스레 요동치는 상자에 놀라 핸드폰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어, 핸드폰 전원. 바닥의 충격에 이기지 못하고 꺼지는 핸드폰을 슬프게 바라보던 백현이 다시 한 번 흔들리는 상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저, 저거 움직인건가? 백현이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건드리려다 이내 손을 거두고 발을 들어 상자를 거칠게 툭툭 건드려 보았다. 그러자 거기에 반응이라도 하는 듯 똑같이 상자를 퍽퍽 두드리는 내용물(?). 뭐야 이거 무서워. 백현이 울상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 사람?"
엄마, 상자에 사람이 있어요. 상자를 열자 보이는것은 동물잠옷을 입은 채 눈을 꼭 감고 죽은 듯 누워있는 사람이었다. 나 시체유기 한거임? 아니, 아까 움직였는데? 백현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무렵 방문을 열고 다시 밖으로 나온 태형이 상자와 벙찐 백현을 번갈아보며 그쪽으로 다가왔다.
"... 니 살인했나?"
"미쳤냐!"
"이건 뭐꼬."
"내가 아냐."
백현이 머리를 감싸쥐고 절망했다. 으아아아... 그 때 태형이 상자 속 사람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편지와 물품들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꺼내들었다. 이건 또 뭐꼬. 태형이 편지를 펼쳐들자 백현도 숙였던 고개를 내밀고 태형과 같이 편지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름 : 도경수
나이 : 대략 열다섯
다람쥐과, 사람을 좋아하며 좋아하는것은 아이스크림
전 주인 사정상 이렇게 갑작스럽게 맡기고 떠납니다]
"... 똥백, 니가 알아서 해결해라."
"야!"
"내는 모르는 일인기라- 불편하믄 내 나가줄께."
"김태형!"
편지를 다 읽자마자 잽싸게 백현에게 편지를 쥐어 준 뒤 방으로 도피하는 태형에게 쌍욕을 날려준 백현이 허탈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니까, 이걸, 내가 키워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