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잉
[후문에 있을께.]
왔다.씨익 미소를 지으며 책상에 있던 책들을 가방에 넣어 챙겼다. 중간고사가 2주뒤로 다가 온 이 상황에서
우현이를 만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지만 아까 낮에 전화를 걸어 조금 애교 떨었던 효과가 있었나 보다.
그럼 잠깐만이다-. 짐짓 엄한 척 하는 우현이의 목소리가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자기도 보고 싶었으면서 지는 척하기는.
「어디야?」
"지금 인문관에서 나오고 있어."
「얼른 와.」
"지금 뛰어가고 있어. 나 숨차는 거 안 들려?"
휴대폰을 귀에 댄채 난 후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후문 근처에 다다르자 길 건너편에 서있는 차 한대가 보인다.
아끼고 아껴서 모은 돈으로 산 우현이의 중고차는 뚜벅이 커플이었던 우리에게 좋은 운송수단이자 데이트 장소가 되었다.
나는 아담해서 좋았는데 우현이는 돈 모아서 꼭 더 큰 차를 사고 만다며 조금은 뾰루퉁한 목소리를 냈었다.
"오셨습니까아."
차에 타자 우현이는 능글거리는 목소리를 낸다.
"시험기간이라도 너무 신경 안 쓰는 거 아니야?"
아니나 다를까 우현이는 남색 트레닝복바지에 흰티하나만 입고 있었다.
우현이의 시험기간 전용 유니폼이다.
"원래 빛나는 사람은 뭘 입어도 빛나는 법이야.왜 이러셔."
틀린말은 아니어서 그러네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공부 얼마나 했어?"
"교양은 오늘까지 수업나간 건 다 끝냈고 전공도 반 정도는 나갔어."
"우와.많이도 했네.머리에 열났겠다,우리 성규"
우현이가 몸을 틀어 내 머리를 양 손으로 잡아온다.그리고는 엄지 손가락으로 머리르 꾹꾹 누르기 시작한다.
아까까지 있었던 미세한 두통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스르륵 눈을 감았다.
"...아...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마사지가 시원하긴 했지만 은근슬쩍 또 말을 까는 우현이 때문에 볼멘소리가 나간다.
"이름 불러주는 거 더 좋아하는 거 아는데 뭐."
넉살 좋게 웃어오는 우현이 때문에 나는 또 그렇긴 해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업었다.
"밥은 먹었어?"
"아까 컵라면 먹었어."
"그거가지고 밥이 돼? 밥을 잘 챙겨먹어야지 머리가 돌아가는 거야."
"그럼 너는? 잘 챙겨먹었어?"
"나는 형이랑 먹으려고 안 먹고 있었지"
"그냥 먹지."
"전화걸어서 그렇게 애교를 피워대는데 나 혼자 어떻게 밥을 먹어?"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길 기다리며 우현이는 오른 손으로 나의 볼을 살짝 잡아당긴다.
조금은 부끄러워져서 살짝 고개를 숙인다.
"형.뭐 좋아하지? 아, 형 좋아하는 부대찌개 먹으러 갈까?"
".........."
"아니다.부대찌개보다는 고기를 먹자.단백질을 좀 섭취해야지."
"........."
"내가 준 비타민은 잘 챙겨먹고 있는거야? 그거 피로회복에 되게 좋데. 꼭 챙겨서 먹어.
특히 시험기간처럼 머리 많이 쓸 때에는."
순간 뭔지 모를 기분에 휩싸여서 운전하며 쉴새없이 말하는 우현이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너는 왜 그렇게 다정할까. 너의 다정함의 끝을 모르겠다.
"그리고 과일 같은 것도 잘 챙겨먹구. 형은 밥은 잘 먹는데 과일을 잘 안먹어서 걱정이다."
"..........."
"내 말 듣고 있는거야?"
앞만 바라보고 운전하던 우현이가 대답 없는 내가 이상한지 잠시 힐끗 나를 쳐다본다.
"..........응. 알았어."
"딴 생각했어?"
"아니.그냥.목소리가 좋아서 듣고 있었어"
내 대답에 차 안에 기분 좋은 웃음이 퍼진다.
"아이고.내가 이러니깐 이 밤에 형 고기 먹이러 차까지 끌고 오지."
우현이는 웃으며 오른손으로 내 왼손에 깎지를 껴온다.
우현이의 손등에 살짝 입맞춤을 하고 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연애하기 좋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