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사는 도부자
06
심상치 않은 프로 밀당남 도경수 씨
종강이다.
그리고 난 알바
하하, 내가 만약 1학년 아니 2학년이었어도 정말 미친 듯이 놀았을 테지만 더 이상은 Naver... 이미 카페의 노예가 된 나는 벗어날 수가 없다.
주말 점심부터 싸다구를 때리는 바람을 뚫고 강남까지 노역을 하러 갔지만 이상하게 카페문은 내 온몸을 부딪혀도 열리지 않았다.
칫, 결계인가.
핸드폰으로 시계를 봐도 지금쯤이면 이모가 카페 문을 열고 빨리 청소하라고 시켰을 시간인데, 이상하게 내 몸통 박치기에도 카페 문은 꿈쩍도 안 한다.
혹시 이모가 늦잠을 자는 걸까?, 시간에 관해서는 칼같이 지키는 이모가?
대박사건, 빨리 이모를 놀리기 위해 시린 손을 꾹 참고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연결음 끝에 예상 밖으로 깔끔한 이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
"이모! 왜 카페 안 와요! "
「 ..아~ 」
아? 일어났는데 카페에 오는 걸 깜빡하셨나, 이모 설마 치매?
「오늘 전시회 있어서 카페 쉬려고 했는데, 웬일이니, 내가 연락을 안했구나, ○○가 너 카페야? 」
... 처음 이모가 카페를 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공식적인 작품 활동은 쉬고 카페를 하겠다고 하는 건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작품 활동도 하고 카페로도 돈 벌겠다는 뜻이었구먼, 못돼 처먹었어...
" 아 진짜 그런 건 좀 빨리빨리 알려주셔야죠. 카페 앞인데, 교통비는 또 어떡해요!! "
「 미안 미안, 오늘은 그냥 집에 들어가고 내일 보자, 내일 일찍 집에 보내줄게, 응? 」
솔깃
" 무슨.. 이모... "
「 ○○야, 이모 조금 바쁘네? 내일 보자~ 」
그리고 뚝- 끊겨버린 전화, 추운데 카페까지 왔구만, 내일 저녁 먹기 전에 보내달라고 할 거야!!!!!!!!!!!
다시 이 통바람을 뚫고 지하철역까지 걸어갈 자신이 없다... ★
모자로 머리를 둥둥 싸매고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재빨리 가려 오른쪽 발을 내딛는데 저 반대편 주차장 쪽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 ○○씨! "
도경수 씨다.
" 어, 도경수 씨, 웬일이세요 "
" ... "
뭘 그렇게 생각하시나, 보나 마나 카페에 왔겠지 오늘 카페 안 여는ㄷ
" ...우연히 지나가다가 "
구라치시네! 그렇게 나 좋다고 해놓고 우연히 지나간다는 게 주차장에서 뻔히 자기 차 옆에서 나와? 그것도 차가 그냥 길거리에 종종 보이는 국내 브랜드 차면 몰라, 삐까뻔쩍한 벤츠 몰고 다니면서,
" 네, 그러세요 "
" 네! 그런데 ○○씨는 왜 카페 안 들어가고 있어요? "
" 오늘 카페 안 연다네요. 저도 이제 막 알았어요. "
그렇게 얼마 안 되는 대화를 하며 거리 한중간에 서있는데 추워디질 것 같다. 빨리 집에 가야지
저는 20000 가보겠습니다 하고 지하철역으로 가려는 내 팔을 붙잡는 도경수 씨
" 그래서 어디 가게요? "
" 집이요 "
왜 물어보지, 설마 데려다 주려고..!!?
나는 오늘도 푸드 파이터처럼 김칫국을 마셨다. 근데 솔직히 내가 김칫국 마시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맨날 데려다 주겠다고 한 게 누군데..
대놓고 기대하는 눈빛으로 도경수 씨를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그는 음, 하고 한참을 생각하는가 하더니 고개를 끄덕거리곤 내 팔을 놓아주었다.
" 그래요 그럼, "
?
끝?
" 아, 저 도경수 씨! "
당황스러운 나머지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려는 생각도 못한 채 차로 돌아가려는 도경수 씨를 불러 세웠다.
그는 동그란 눈으로 내 대답을 기다렸다.
"... 그.... 음... "
나 년..!! 불렀으면 빨리 생각해내라!!! 생각하라고!!!!
" ㅈ.. 점심인데 점심은 드셨어요? "
그리고 뜻밖의 점심 신청,
" 아뇨, 아직 안 먹었어요 "
그렇구나... 아직 안 드셨구나.. 그래.. 아직 점심을 안 드셨네..
" 그럼 ○○씨는 점심 먹었어요? "
" 아뇨, 저도 아직이에요 "
도경수 씨는 돌아섰던 몸을 다시 돌려 성큼 한 발짝 다가와서는 말했다.
" 그럼 우리 점심 먹으러 갈래요? "
?
" 도경수 씨 돈 많아요? "
도경수 씨에게 전적으로 메뉴 선정을 맡기고 도착한 이곳
" 없지는 않죠 "
아니 그게 아니라 이 사람아,
웨이터를 안내에 따라 들어가는 그를 어쩔 수 없이 졸졸 뒤쫓아갔다.
" 저도 돈은 없지는 않거든요. 근데 이런 곳에서 점심을 먹을 역량이 되는 사람이냐구요. "
무슨 점심을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서... 미친 나는 그냥 왕돈까스 먹는 줄 알았네,
벤츠 타고 돈까스 먹으러 가는 것도 웃기긴 한데 이런 후줄근한 패딩 입고 전기세 아끼려는 건지 촛불 켜놓고 와인 쫄쫄 따라먹는 레스토랑에 온 게 더 웃기지 않나,
하지만 생각과 몸은 다르다. 어느새 나는 웨이터가 빼준 의자에 앉아 도경수 씨를 마주 보고 있었다.
" ○○씨는 여기 싫어요? 그럼 다른 데 갈까요? "
...앉긴 앉았는데, 내가 돈 없다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려니 괜히 창피하다. 학생이라 돈 없는 건 당연한 건데도 말이다.
"일단 메뉴 좀 보구요 "
내 앞에 놓인 가죽으로 만들어져 존내 비쌈을 말하고 있는 메뉴판을 들었다.
이런 레스토랑이 예상외로 가격이 더 저렴할 수가 있어, 그럼 나는 그중에서 최고로 저렴한 걸 먹어야지, 제일 저렴한 게 뭐가 있을ㄲ
이 레스토랑은 예상을 빗겨가지 않았다.
파스타가 3만 원에, 스테이크는 한우라 치고 10만 원 가까이, 장난? 이 돈으로 옷을 사 입지..
웨이터만 옆에 없었어도 돈 없다고 나가자고 했을 텐데.. 현기증...
알바라도 적게 돈을 벌기 시작해 한 푼 두 푼의 중요성을 안 나머지 피 같은 돈이 한순간에 지방덩어리가 된다는 사실이 참 별루다...☆★
" 여기는 단품보다 코스가 괜찮아요. 코스 B로 할게요 "
그 말을 듣고 재빠르게 코스 B 가격을 훑어보았다.
히익,미친
그래도 도경수 씨는 고급스럽게 코스를 먹는데 나만 찌질이처럼 파스타만 호로록 거리기도 뭐 하니 그냥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로써 내 통장은 털릴 것이고 내 위는 예상치 못한 호화를 누리게 되었다. 하하 참 좋네요.
이곳은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물을 워터라고 부르며 와인잔에 따라주는 곳이었다. 워터를 홀짝이며 말없이 첫 번째 코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도경수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 여기가 마음에 안들어요? "
" 아뇨... 그건 아닌데...
내가 표정을 너무 못 숨겼나 보다. 하긴 내 통장이 털릴 생각만 하면 속에서 열불이 터지니까, 알바 열심히 해야지
" 아닌데? "
" 솔직히 지금 옆에 웨이터 없으니까 말할게요. 여기 너무 비싸요 "
도경수 씨는 내 말에 그냥 " 그런가요 " 하고 워터를 마셨다. 뭐가 그런 가요에요 그런 가요가!!!!!!!!! 자기는 돈 많다고! 그래요 좋은 직장 다녀서 좋겠수다!
타오르는 속을 식히기 위해 워터를 목구멍이 들이부었다. 하지만 들이부을수록 고파지는 배에 점점 예민해지려고 하는 순간 웨이터가 식전 빵을 가지고 등장했다.
구세주여..!!
고급 레스토랑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미친 듯이 빵을 입속으로 욱여넣기 시작했다.
고급 레스토랑이라 그런지 각 테이블마다 멀리 떨어져 있고 사람도 얼마 없는 게 좋기도 하다.
곧이어 나오는 에피타이저를 반기며 또 입안으로 무작정 밀어 넣으며 미각의 호화를 누리고 있는데 얼굴이 따끔따끔 거린다.
" 입맛에는 맞아요? "
원인은 콩알만한 에피타이저에 손도 안댄 도경수 씨의 시선이었다.
" 비싸서 그런가 맛은 있네요 "
입안 가득 차있던 음식을 꿀꺽 삼키고 멋쩍게 말하니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안비싸요. 많이 드세요 "
뭐라는거야 이 사람이, 나 놀리는건가
곁눈질로 그를 흘겨보다가 끊기지 않고 나오는 코스를 다시 맞이했다.
모든 고급 레스토랑이 이 모양인건지 나오는 요리는 죄다 접시의 1/4도 채우지 못 했다. 짜증
연어로 만든 어쩌고저쩌고, 웨이터가 뭐라고 말해주기는 했는데 정확히 뭐라고 해주는 건지는 못들었다, 그냥 연어, 그래 그냥 연어 요리를 먹고 다음 코스, 드디어 고기를 기다리는데 너무 대화가 없는 것 같아 기껏 맛있는 데라고 데려와 준 도경수씨에게 미안해졌다.
" 여기 맛있네요. 제값 하는 것 같아요 "
" 그렇죠? "
그는 내 말 한마디에 금새 화색이 돌았다. 진작 말 걸어 줄 걸
" 여기 음.... 와보고 싶었어요 "
여기 음 와보고 싶었어요? 아까는 코스 B가 맛있다 뭐다 하더니 와보고 싶었다니
" 네? "
" 아니, 뭐, 같이 오니까 좋네요 "
도경수 씨는 항상 저런식이다. 가끔 가다가는 할 말 다 하는 것 같으면서도 또 가다보면 숨기는, 참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안 부를 것만 같던 배가 슬슬 불러오는 것 같다. 그래도 고기는 먹는다! 그게 바로 고기에 대한 의리!
내 손가락 두 개를 겹쳐놓은 두께지만 내 손바닥 크기도 안되는 고기를 썰기 시작했다.
아껴먹어야지...
그렇게 손톱만큼 잘라놓은 고기를 찍자 내 자리에서 멀지않은 곳에 지금 막 도착한 커플 한 쌍이 앉았다.
저 여자 존나 꾸미고왔네... 나는 패딩 입고 왔는데...괜히 의식이 돼 본래 주변은 잘 신경 안썼는데 고급진 레스토랑 분위기 때문에 자꾸 신경쓰인다.
" 요기 분위기 조은거 가타용~ "
" 특별히 리주씨 만난다고 골라놓은 곳이에요 하하하 "
그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레스토랑 분위기답게 역시나 커플들이 많이 찾는 곳인가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도경수 씨를 힐끔 보니 웬지 기분이 묘해진다.
낮인데도 불구하고 어두운 레스토랑 안, 촛불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마주한 남녀 한 쌍, 그게 바로 우리였다.
" 어디 불편한거 있어요? "
도경수 씨는 포크로 고기를 찍고 가만히 있는 내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 없어요, 그냥, 음... "
"좋아서요 "
미쳤다 ○○○, 분위기에 이끌려서 하루 뒤 이불을 뻥뻥 걷어찰 발언을 해버렸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내가 내뱉고도 당황해 시선을 고기로 돌렸다.
진심 미쳤어!!!!!! 으아아아아아아ㅏㅏㅏㅏㅏㄱ!!!!!!!!!!!!!!!
작게 썰어 놓은 고기를 서둘러 먹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지는 않았지만 눈 앞에 보이는 도경수 씨의 손은 움직이지 않는다.
죽었나? 설마하고 티나지않게 고개를 드니 얼굴이 보이지않는 그가 헛기침을 하며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 저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요 "
전화로 막 내 이야기하는거 아니야? 나 완전 쉬운여자라고!!!!!!! 흑역사 생성 완료....
흑 시볼, 빨리 고기나 쳐먹어야지
메인 코스까지 먹으니 나머지는 금방금방 돌아갔다. 내가 먹으면서 생각한건데, 도경수 씨는 비싼 돈을 주고 대체 뭘 먹은걸까 싶을정도로 음식에 손을 대지않았다.
많이 먹은건 지금 마시는 커피정도?
" ○○씨가 만들어준 커피보다 맛없는 것 같아요 "
헛소리 ㄴㄴ, 우리 카페 원두보다 더 맛있는 것 같은데, 근데도 저런 빈말에 광대가 올라가는 건 왜일까
" 어이구, 도경수씨 제 커피 말고는 다 맛없어서 어떡해요. "
아까의 흑역사는 잠시 잊고 그에게 작게 농담을 칠 수 있을 만큼 어느새 친밀감은 높아져있었다.
" 평생 커피 만들어주면 되죠 "
" 너무하네, 평생 커피나 만들고 살라구요? 그건 못해 "
처음 만나고 얼마 안될 때는 마주보고 대화하는 것도 어색해가지고 쩔쩔맸는데 지금은 대화하는 건 물론이고 낄낄 웃을 수도 있다.
슬슬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커피가 바닥을 드러내게 되었을 때 다시금 코스 가격이 떠올랐다.
아 시밤.
" 여기 따로따로 카드 되죠? "
여기는 고급 레스토랑이니 될 것이다. 되야만 해,
내 질문에 도경수 씨는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네?하고 되물었다.
" 계산해야죠 "
" 왜요? "
왜냐니... 요즘 친한 친구 사이도 기브 앤 테이크인데, 멋대로 얻어먹었다가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로 ☆★ 고급 레스토랑 코스 염치없이 얻어먹은 여자 ☆★로 핫이슈 될까 무서우니까... 도경수 씨가 그런다는 건 아니고...
" 점심 먹자고 한건 저인데 왜 ○○씨가 계산을 해요, "
으아닛, 엄청난 갑부..!! 솔직히 평범한 학생이 이 비싼 코스요리를 먹는다는게 보통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는데 사준다니 거부는 하지않겠지만...
아까 코스 시작할 때 안비싸다고 많이 먹으라고 한게 이 뜻이었나보다.
그는 어리둥절한 내 반응을 보고 쿡쿡 웃었다.
" 다 먹었으면 이만 갈까요 "
정작 본인의 커피 잔을 보니 아직 반도 안마셨다. 자기가 맛있다고 데려온거면서 자기는 안먹고, 배는 채웠으려나
뒷목을 긁적거리다가 외투를 챙겨입는 도경수 씨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도경수씨는 좀 젠틀했다.
*
경수 시점으로 들어가기 앞서, 수요일, 카페에서 전봇대 브라더스를 데리고 사라진 피리 부는 사나이, 종인의 이야기가 있다.
질투에 눈이 멀어 입도 못 열고 찌질이처럼 있던 경수를 구해주기 위해 자신의 지갑을 희생하면서까지 전봇대 브라더스에게 밥을 사주기로 했지만 사실 내뱉기만 했지 막상 나오니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한 종인이다.
찬바람에 몸을 맡기고 정처 없이 걸어가는데 뒤에서 종인을 졸졸 따라가던 전봇대들 중 세훈이 히히 웃으며 종인의 코트 소맷자락을 잡아당겼다.
" 형, 형은 이름이 뭐예요? "
자기가 물어보고 기지배마냥 부끄러워하는 세훈
아차, 그러고 보니 친한 척은 했지만 서로 통성명은 안 했지, 종인은 검지 손가락으로 턱을 긁적이고는 손을 내밀었다.
" 김종인, 계속 형이라고 불러도 돼 "
세훈은 종인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활짝 웃으며 종인이 내미는 손을 덥썩 잡고는 놓아주질 않았다.
" 우와, 형도 리터소프트 다녀요? "
" 도경수 씨랑 동기야 "
" 대박, 쩐다. 친하게 지내요 "
종인은 길을 가다 가만히 서서 상가 불빛에 전봇대 브라더스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금새 아~ 하고는 찬열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 너가... 눈이 동그라니까 박찬열 "
찬열을 가리키던 손가락을 세훈으로 옮겨가더니
" 너는 날렵하게 생겼으니까 오세훈, 맞지? "
저번에 경수의 연애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을 때 경수가 말해줬던 걸 종인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전봇대 브라더스는 감격한 듯 손으로 입을 막으며 우와우와 거렸다.
" 대애애애박, 형 우리 이름 어떻게 알았어요? "
" 도경수 씨한테 들었어 "
" 와,역시 끼리끼리 논다더니, 강남 남자들끼리 친한가 봐요."
그건 그렇고 경수형이 우리 이야기를 했대! 경수형이 우리 이름도 알아!! 라며 설레발치는 전봇대들의 말은 종인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런 녀석들이 귀여웠을 뿐
새끼들, 사람 비행기 좀 태우네, 좋아, 어차피 나중에 도경수 씨한테 다 받아낼 거니까 고기로 간다!
종인은 아까까지만 해도 떠들썩해서 귀찮았던 전봇대 브라더스가 오래전부터 알아왔던 남동생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치이익- 맛있는 소리를 내며 고기가 불판 위에 올라가자 초딩같은 전봇대들이 우와아 하며 탄성을 외쳤다.
" 오늘 처음 봤는데 밥도 사주시고, 종인이 형은 착한 사람 같아요 "
밥 한 번 사준다고 착한 사람이라니, 군대도 갔다 왔을 정도면 나이도 좀 들었겠다. 그런데 왜 저렇게 애 같은 지
그래도 종인은 고기로 착한 사람이 되었다는 게 마냥 싫진 않았다.
" 내가 나올 때 할 말이 있다고 했었지 "
"네 "
전봇대 브라더스는 고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말은 제대로 듣고 있는 거야 마는 거야
지금 서둘러 이야기해봤자 얘네들 머릿속에는 이미 고기만이 가득 차 있을 테니 천천히 고기 먹이면서 말하는 편이 더 말이 잘 통할 듯했다.
" 고기 다 익었네, 먹어 "
종인은 능숙한 손길로 고기를 잘라 전봇대 브라더스 앞으로 슥슥 밀었다. 전봇대들은 정말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고기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 자, 그럼 다시 말하기 전에, 마시고 들어가자 "
" ㅇ.. 예? "
마시고 들어간다니? 입 안 가득 쌈을 넣는 전봇대 브라더스들은 유난히 술에 약해 엠티나 친구들끼리 마시면 먼저 취해버리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내빼자니 뭔가 그렇고...
더군다나 종인은 피하기 없기~ 라는 미소를 짓고 있으니,
" 이모 여기 후레쉬 두 병이요 "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쫄쫄쫄, 작은 잔에 흐르는 저 투명한 알코올, 금방이라도 취해버릴 듯한 화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종인은 방긋방긋 웃으며 잔을 박찬열부터 차례차례 건네고 마지막으로 자기도 잔을 쥐고는 원샷! 을 외쳤다.
술을 마시면 기억을 잃는 세훈으로서는 종인이 눈을 질끈 감고 잔에 입을 가져다 댈 때 몰래 버릴까 했지만 종인은 절대 눈을 감지 않았다.
졸라 치밀해, 저 형... 세훈은 궁시렁거리며 찬열이 원샷을 하는 것까지 지켜보고 나서야 머뭇거리며 잔에 있는 쓰디 쓴 화학물질을 들이켰다.
"흐흐흥, 열이 취해쏘 "
" 후니도~흐흥 "
종인도 그렇게 술에 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얘네들이 이렇게까지 술에 약할 줄은 몰랐다. 몇 잔에 정신줄을 놔버리다니...
알딸딸하게 올라오는 술기운을 꾹꾹 누르고 슬슬 이야기를 하려 했다.
뭐 부터 말할까, 도경수 씨하고 ○○씨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게 아니면
" 너네들, 도경수가 좋아, 고기 사주는 내가 좋아!"
분명 멀쩡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종인의 입은 병신 같은 질문을 내뱉었다. 계속 이게 아닌 데라고 생각했지만 입은 조물주가 따로 생명을 불어넣었나 제멋대로 움직였다.
" 후니는~ 조닌이횽이 조치~ 거기다가 고기 사주는 조닌이횽이면 더 조치~ "
그 와중에 세훈은 차마 눈을 다 뜨지 못하고 감은 채로 헤헤 웃으며 종알거렸다.
" 컄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그렇지? 도경수는 나한테 안돼 "
" 마죠, 오눌 굥수횽 무소워소 실엇소, 조닌이횽이 더조와~ "
종인이 본래 하려던 질문은 우주 저편으로 날려보내고 술잔을 들고 쨘쨘쨘을 외치면 전봇대 브라더스가 이어서 짠!하고 잔을 부딪히는 등
셋이 앉은 테이블은 작은 이야기에도 꺄르르,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배꼽이 굴러가듯이 웃는다는 여고생들에 빙의해 화기애애한 술자리를 보냈다.
" 아 숙취 쩔어 "
전봇대 브라더스와 불타는 밤을 보낸 종인은 경수보다 늦게 사원증을 찍었다.
잔뜩 볼만한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에는 다행히 경수밖에 그 얼굴을 본 사람이 없었다.
" 뭡니까, 이게 "
경수는 종인의 얼굴을 보고 이것이라고 칭했다.
" 얼굴보고 뭐냐고 하는거 아니야,요. 도경수씨 "
종인은 커다란 핸드폰으로 자기 얼굴을 보다가 붓기의 심각성을 깨닫고 손으로 볼을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 이게 다 도경수씨 때문인거 알아,요? "
" 제가 뭘요 "
종인은 눈을 쭉 째고 옆자리에 앉은 경수를 흘겼다.
" 어제 찬열이하고 세훈이 많이 거슬려하는 것 같아서 기껏 걔네들 데리고 나가줬더니 "
찬열이하고 세훈이? 전봇대 브라더스가 언제 김종인씨하고 그런 사이가 됐지, 경수는 궁금했다.
" 걔네 너무 미워하지마 도경수씨, 알고보면 진짜 착한 애들이더라고 그래서 밤새 달렸지 "
아, 그래서 얼굴이, 지금 전봇대 브라더스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다만 싫을 뿐
경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종인은 끈질기게 말을 걸었다,
" 그래서 지금 이 모양이라고, 도경수 씨한테 보상받을거야 "
" 얼마요 "
" 재수없게, 필요없고 앞으로는 점심도 같이 먹기 "
국내 최대 소프트웨어 회사 리터 소프트답게 회사 안에는 구내식당이 있기때문에 혼자 먹어도 딱히 눈치보지않던 경수에겐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근데 또 사람이 자기때문에 이 모양이 됐다고하니 거절도 못하겠고, 아무 말 없이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 대박이네, 어떻게 우리 이모님들은 내가 숙취에 쩔어있는 걸 알고 국을 콩나물 국으로 해주셨대 "
식당에서 밥을 받으면서까지 종알종알종알,
앉아서도 종알종알
" 그래서 어제 우리 가고나서 ○○씨랑은 이야기 해봤어? "
경수는 원래 밥먹으면서 따로 말을 잘 하지는 않는 편인데 어제 일을 곱씹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 ○○씨가, 찬열군이랑 사귀는 거라면 지구가 멸망 할 거라고 그러더라구요. 진짜 귀엽게 "
숟가락을 쥔 종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오글오글
" 그래, 잘됐네, 그래서 안사귀는 거면 이제 어떻게 하려고 도경수씨 "
" 그러게 말입니ㄷ "
" 어머~ 종인씨, 도경수씨랑 같이 먹는거야? 맛있게 먹어~ "
평소 구내식당에서 경수랑 마주쳐도 인사도 않던 같은 팀 민대리와 김대리가 종인을 보자마자 아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 네, 민대리님하고 김대리님도 점심 맛있게 드세요! "
싹싹하게 일어나 두 대리에게 인사하는 종인과 달리 경수는 가만히 앉아 묵묵히 밥을 먹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회장의 아들, 빽으로 들어온 사원,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은 다른 사원들에게 경멸의 눈초리를 받기 딱 좋았으니까
두 여자대리가 지나가자 종인은 소리내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떴다.
" 민대리님은 마케팅부 김준면대리님이랑 연애한다며, 소문 쫙났는데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도 되나, 아 어디까지 말했지 도경수씨 "
한참 멍때리던 경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였다.
" 이제, ○○씨한테 어떻게 해야할까요, 까지 말했습니다 "
" 맞아, 그럼 이제 밀당을 해보는건 어때, 그거 있잖아, 연애 밀당남 "
밀당남...밀가루당근남인가, 신조어에 약한 경수는 바쁘게 움직이던 젓가락질을 멈추고 종인을 쳐다보았다.
" 도경수씨 지금 당기고만 있잖아, 그러면 여자들이 질려한다고,"
" ... "
" 적당히 놔줄 줄도 알아야해 "
" 적당히 놔줄 줄도 알아야해 "
평일에는 너무 정신이 없던 나머지 밀고당기고든 뭐든 시도해 볼 생각도 없었던 경수에게 주말이 찾아왔다.
오늘은 다행히 멀쩡한 정신으로 일찍 일어나 다 준비하고 거울 앞에 서서 종인이 한 말을 되내었다.
그래 도경수! 밀당남이 되어보자!
카페 오픈시간 훨씬 전에 카페 반대편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창밖을 바라보는 경수는 다급해졌다.
오늘따라 ○○씨가 늦는다, 오다가 사고가 난 건 아닐까, 또 배가 아파서 못오는건 아닐까
하지만 곧 저 멀리서 총총거리며 카페에 오는 그녀를 발견 할 수 있었다.
날씨가 많이 추워서 꽁꽁 싸맨 그녀의 모습은 더 귀여웠다. 딸을 바라보는 아빠의 미소로 헤헤 거리고 있는데 이상하게 그녀가 카페에 안들어가고 앞에서 누군가하고 전화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운 경수는 유리창에 붙어서 그녀를 관찰했다.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시시각각 표정이 다양하게 변하는 그녀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언제쯤 들어가려나 지켜보고있는데 그녀는 방향을 돌려 발을 옮겼다. 카페는?
" ○○씨! "
어디가요!
그녀는 난데없는 나의 등장에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꽁꽁 모자쓰고 있는 것도 귀여워
" 어, 도경수 씨, 웬일이세요 "
○○씨 보러왔는데ㅇ............
" ... "
적당히 놔줄 줄도 알아야해
" ...우연히 지나가다가 "
그래 잘 놔줬어 도경수, 조금씩 밀당남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 네, 그러세요 "
" 네! 그런데 ○○씨는 왜 카페 안 들어가고 있어요? "
" 오늘 카페 안 연다네요. 저도 이제 막 알았어요. "
이럴 수가, 안돼! 그럼 ○○씨를 오래 볼 수가 없잖아...
그런 생각에 상황 판단력을 잃은 경수는 마저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팔목을 황급히 잡아끌었다.
" 그래서 어디 가게요? "
" 집이요 "
경수의 마음 같아서는 안된다며 같이 점심이라도 먹자고 조르고 싶었지만 머릿속에는 밀당남이 되라는 종인의 말이 둥둥 맴돌았다.
잡는다 VS 놓아준다 둘 사이에서 한참 고민하던 경수는 " 도경수씨 지금 당기고만 있잖아, 그러면 여자들이 질려한다고," 라는 종인의 말이 밀고들어와 그녀의 팔을 잡았던 손에 힘을 풀 수 밖에 없었다.
" 그래요 그럼, "
경수는 무기력해졌다. 집으로 돌아가야하나,
그런데 상상치 못했던 일이 생겼다.
" 아, 저 도경수 씨! "
경수의 밀당이 통했던 것일까, 그녀가 먼저 이름을 불러주었던 것이다.
"... 그.... 음... "
" ㅈ.. 점심인데 점심은 드셨어요? "
점심은 먹었냐니, 같이 점심을 먹자는 뜻인가? 어떻게 ○○씨하고 나는 마음도 이렇게 잘 통하지,
경수는 재빠르게 지난 시간 동안 ○○씨와 밥을 먹으러 간다면 어딜 가는게 좋을까, 라고 설레발치며 생각한게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고 생각 해놓은 식당들 중 열심히 한 곳을 골랐다. 좋았어! 거기로 간다!
" 아뇨, 아직 안 먹었어요 "
" 그럼 ○○씨는 점심 먹었어요? "
" 아뇨, 저도 아직이에요 "
그녀는 귀엽게도 같이 점심 먹으러 가자는 소리를 이렇게 귀엽게 한다. ㅎㅎ
도저히 밀고 당기는 것중에 미는 걸 못하게만드는 사람
" 그럼 우리 점심 먹으러 갈래요? "
잔잔히 촛불이 일렁이고 포크와 나이프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밖에 안들리는 이 레스토랑은 그녀와 나만의 식사공간으로 꼭 알맞았다.
전 처럼 그런 거지같은 소개팅에 쓰일 곳이 아니라는거다.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맛있다고 유명한 곳이기도 하니까, 빨리 ○○씨가 오물거리면서 밥 먹는 모습 보고싶다. 귀여울거야. 그런 상상을 하며 웨이터에 안내에 따르는데
" 도경수 씨 돈 많아요? "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 제가 많은건 아니고 아빠가 많은건데...
" 없지는 않죠 "
그녀는 앉으면서도 인상을 쓰고 작게 웅얼거렸다.
" 저도 돈은 없지는 않거든요. 근데 이런 곳에서 점심을 먹을 역량이 되는 사람이냐구요. "
아, ○○씨는 여기가 싫은가 보다. 내 불찰이었다. 아무말도 안하길래 그냥 내가 오고싶은 곳으로 왔는데 ...
맛있게 먹는 모습 보고싶었는데...
" ○○씨는 여기 싫어요? 그럼 다른 데 갈까요? "
"일단 메뉴 좀 보구요 "
싫으면 가도 되는데...
메뉴판으로 시선을 꽂는 그녀의 눈치를 보다가 머리를 긁적거리고는 같이 메뉴판을 열었다.
○○씨한테는 좋은 거, 맛있는 거 먹여야지
" 여기는 단품보다 코스가 괜찮아요. 코스 B로 할게요 "
이 코스는 길어서 오래오래 같이 있을 수도 있어요.
경수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S대 컴퓨터공학과를 나올 정도로 나름 머리가 굴러간다. 대학교 때, 그 수재들이 많다고 유명한 대학교에서 과 수석,차석을 놓고 미친듯이 경쟁 할 정도 였으니까 머리가 얼마나 영특한 지는 따로 더 말을 안해도 될 것이다. 다만 그 사고회로가 그녀와 같이 있게 될 때마다 고장난다는 건 함정
" 여기가 마음에 안들어요? "
그녀는 계속 꽁기꽁기 한 표정으로 물을 마시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음부터는 그냥 가자는 데로 가야지...
" 아뇨... 그건 아닌데..."
" 아닌데? "
" 솔직히 지금 옆에 웨이터 없으니까 말할게요. 여기 너무 비싸요 "
...아...!! 그녀는 너무 배려심이 넘쳤다. 그동안 엄마의 소개로 만난 다른 여자들은 신경은 커녕 내 지갑은 내 지갑, 니 지갑도 내 지갑 이렇게 여겼는데 어떻게 내 지갑 사정까지 걱정 해줄 수 있는 걸까, 너무 매력이 넘친다.
" 그런가요 "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씨한테 사주는 건 하나도 안아까운데
이렇게 먹는 모습보니까 진짜 하나도 안아까운데, 역시나 그녀는 에피타이저 먹는 모습 조차 너무 이쁘고 귀엽고, 말로 표현을 못하겠다.
" 입맛에는 맞아요? "
" 비싸서 그런가 맛은 있네요 "
" 안비싸요. 많이 드세요 "
○○씨가 원한다면 매끼니를 여기서 먹을 수도 있는데
그동안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말의 뜻을 이해 못했는데 이렇게 이해하게 된다. 포크와 나이프는 들었지만 그녀가 먹는 모습을 보느라 손마저 움직이기 싫을 정도
역시 단품보다 코스를 주문하기 잘했다.
" 여기 맛있네요. 제값 하는 것 같아요 "
" 그렇죠? "
한참 음식을 맛있게 먹던 그녀가 그렇게 말을 꺼냈을 때, 비로소 여기 온 목표에 달성할 수 있었다.
" 여기 음.... 와보고 싶었어요 "
여기 좋아하는 사람이랑 와보고 싶었어요.
" 네? "
" 아니, 뭐, 같이 오니까 좋네요 "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오니까 좋네요.
아직까지 김종인씨의 밀당남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않은건지 차마 대놓고 좋아한다는 말은 못하겠다.
나중에는 아낌없이 해줘야지,
그렇게 슬슬 나이프를 움직일까 하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박힌다. 저 앵앵거리는 목소리... 낮이 익은데
흘끔 새로 도착한 연인 한 쌍을 보니 여자 얼굴이 익숙하다.
" 요기 분위기 조은거 가타용~ "
" 특별히 리주씨 만난다고 골라놓은 곳이에요 하하하 "
... 엄마의 소개팅녀였다. 저 여자는 모든 남자들에게 저러는가 보다.
내가 저런 여자랑 같이 밥을 먹었다니, 기분이 나빠져 미간을 좁히고 그녀를 보고 힐링하기 위해 시선을 옮기는데 앞에 놓여진 촛불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이 묘하다.
" 어디 불편한거 있어요? "
" 없어요, 그냥, 음... "
그냥, 음...?
"좋아서요 "
○○씨는 천천히 고개를 올려 내 눈빛에 응수하며 말했다. 곧 다시 고개를 떨구긴 했지만
속에서부터 훅 끼쳐오는 열기가 느껴졌다.
좋아서요.
좋아서요라니...
지금 아마 거울을 보면 귀까지 빨개져있을지도 모른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하고 분명 정상온도에 맞춰졌을 레스토랑 안이 덥다.
그녀와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 처럼 손에서 땀이나고 머리가 핑 돌 것 같다.
잠깐 타임
" 저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요 "
찬바람 좀 쐬고 올게요. 계속 있으면 얼굴이 터져버릴지도 몰라요.
그렇게 잠깐 화장실로 온 경수는 후하- 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수능을 칠 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좋아서요라니...으아아아아!!!!
경수는 죄없는 화장실 벽을 치다가 한참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다가 또 화장실 벽을 치다가, 모르는 사람이 보면 깜짝 놀랄만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분정도 흘렀을까, 겨우 진정이 된 경수는 오른손을 심장 쪽에 얹고 안정을 취했다.
침착하게, 침착하게,
그렇게 침착하라고 말했건만 그게 내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가는 너무 좋아서 손이 벌벌 떨릴 것 같아서 스테이크도 못먹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가만히 앉아서 그녀가 먹는 모습만 지켜보는 것일 뿐
시간이 흘러 코스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조금 진정이 된 듯 싶다.
레스토랑에서는 특별히 영국에서 공수해온 고급 커피 잔이라고 웨이터는 자기가 커피잔인 것 마냥 자신감을 뿜어내고 있지만 고급잔으로 커피마시면 더 맛있나, 아닌 것 같은데
" ○○씨가 만들어준 커피보다 맛없는 것 같아요 "
그녀는 푸핫 웃으며 들었던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 어이구, 도경수씨 제 커피 말고는 다 맛없어서 어떡해요. "
진짠데...그러니까
" 평생 커피 만들어주면 되죠 "
평생 옆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옆에만 있어도 되고
" 너무하네, 평생 커피나 만들고 살라구요? 그건 못해 "
진짜 커피 안만들고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되는데.
입술을 비죽거리고 꺄르르 웃는 그녀를 보자 나도 소리없는 웃음이 터져버렸다. 아, 원래 이렇게 웃음이 많은 사람은 아닌데
○○씨 앞에만 있으면 정신없이 웃음이 나온다.그 웃음이 마법이라도 부린건지 아니면 원래 서로에게 할 말이 많았던 건지, 대화는 술술 이어져갔고 이번년도 힘들었던 것에대한 보상으로 원없이 그녀가 나를 마주보고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여기 따로따로 카드 되죠? "
커피를 마시던 ○○씨 입가에서 이쁘게 지어진 호선이 갑자기 똑 떨어지는가 싶더니 카드라니...?
" 네? "
" 계산해야죠 "
" 왜요? "
우리 둘 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 점심 먹자고 한건 저인데 왜 ○○씨가 계산을 해요, "
내 말에 그녀는 멍하게 내 얼굴을 쳐다보고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경수는 살면서 '여자' 하고는 더치페이를 해본 적이 없었다. 여자를 얼마 안만나기도 했지만 그동안 엄마가 주선해준 여자들이 부잣집 딸래미들로 만날 때 암묵적으로 계산은 남자가,라는 개념이 몸에 베어있었기 때문에 여자와의 더치페이는 상상 해 볼 수도 없던 노릇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더치페이를 접하게 되다니, 진짜 ○○씨는 천사인가...?
멋쩍게 지갑을 만지작 거리는 그녀를 보다가 아까 전부터 건들지 않았던 커피잔을 보니 이미 다 마신 상태다. 나는 커피 별로라서 안마시고 있었는데... 혹시 기다려 준...
경수의 감동은 끝이 없었다.
이내 경수는 동그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그녀를 보고 다시 한 번 쿡쿡 웃고는 외투를 챙겼다.
" 다 먹었으면 이만 갈까요 "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배부르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도대체가 당길 수 밖에 없는 ○○씨
*
ㅈ...전송..!!
저녁 먹기 전 아까 고급진 음식을 먹어서인지 위장이 그 고급기름을 기억했다.
아까 도경수 씨가 데려다 줄 때도 고마웠다고 입에 침이 마르고 닳도록 했지만 오늘 점심 값은 장난이 아니였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 고맙다고해도 모자르다.
항상 그랬듯이 도경수 씨는 칼답장을 했다.
그런데 무슨 톡하면서 마침표는 꼭 붙여, 성격 드러나네
거지라서..
역시 강남 남자 도경수 X 금잔디 돋는 카페 노예
*
그리고 종강이지만 알바를 못구한 열이
*
하이 여러분 리히터예요!
이번 편도...하앜...^ ..노답...
그래도 둘이 같이 점심은 먹었네요, 장족의 발전입니다.( 끄덕끄덕 )
경슈... 겉으로는 젠틀하니 불도저지만 속은 여전히 찌질 도절부절이라는 사실 ^~^
아직까지 썸인듯 썸아닌 썸같은 썸을 타고있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언제 사귈까요 얘네들 ㅎ..
마지막에 나온 찬열이의 톡은 다음편의 예고정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궁예하기 쉽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소설... 쉬운 소설...
무튼 여러분 전편이 똥글임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의 반응은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다시한번 여러분 싸라해요!!!!!!!!!!!!!!!!!!!!!!!
강남 사는 도부자 계속 응원부탁드립니다!!!!!!!!!!!!!!!유후!!!!!!!!!!!!!!!!!!!!
[암호닉]
너구리걸님/면하트님/우비님/망고님/카페알바생님/아메리카노님/정수정수연님/바닐라라떼님/굔듀님/뽑뽀님/됴됴륵님/종순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