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수(18)
황국(黃國)대부호(大富戶) 황국의 큰 손 도형원의 장남
"제 정인 한명 정도는, 지킬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민석 (18)
황국(黃國) 태위(太尉) 김민준의 막내아들
황국(黃國)의 승상(丞相) 김준후의 여식의 죽마고우(竹馬古友)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EXO/민석준면찬열경수세훈] 인연(因緣) 17
[명사] 1.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2. 어떤 사물과 관계되는 연줄
-이어지는 글입니다. 1편부터 보고 와주세요 제! 발
"흐음-"
"도련님?"
"어찌 부르느냐,"
"기분이 좋아보이십니다."
제 옆에서 말을 걸어오는 하인의 목소리에 싱긋이 미소를 머금고 있던 찬열의 입술이 뻣뻣하게 경직되었다 다시 호선을 그리며 올라간다.
기분이 좋아보인다라, 혹여 제가 어릴 때 부터 제 옆에서 제 곁을 지었던 자의 눈이 멀어버린 것은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기분이, 좋아보여, 좋아보인단 말이지.
"그리 보이느냐?"
"예,"
"그럼 내가 기분이 좋은가 보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찬열이 미소지었다. 제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지 못하게 된 것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래 뭐, 저를 모시는 자가 그리 말할 정도라면 현재 제 기분은 좋은 것이겠지.
그리 생각을 마친 찬열은 가지런히 접힌 부채의 대나무 살 부분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문질러댔다.
부드럽게 다듬어져 미끈한 감촉을 선사하는 손잡이 부분은 꽤나 저를 기분좋게 하는듯 싶었다.
"엇-"
"앗, 죄송합니다."
"괜찮.."
제 어깨를 치고 빠르게 달려나가는 사내가 아니라면 그 좋던 기분이 조금은 더 오래갈 수 있었을텐데, 속으로 생각하며 혀를 츳츳 찬다.
잠시 마주친 얼굴이지만 꽤나 미남형의 얼굴이다, 입고 있는 옷도 꽤나 값이 나가 보이는 것들이었다.
양반가의 자제라도 되는 것인가 잠시 고민했지만 그래, 그 고상하게 얌전을 떠는 양반님들이 거리를 저리 뛰어다닐리가 없으니 양반일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이 있다면,
"현아."
"예?"
"저 방향으로 가면, 승상댁 외에 나올만한 건물이 있느냐,"
"도련님도 참, 그새 길을 헷갈리시는 겁니까?
승상(丞相) 댁을 지나면 막다른 골목입니다, 아무런 건물도 없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방금 저와 부딪힌 사내는 필히 김승상(丞相)의 집으로 향하는 것이렸다. 생각을 마침과 동시에 찬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손에 꾹 쥐고 달리던 물빛의 무언가는, 언뜻 보기에도 비녀의 형상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승상(丞相)댁에 저런 장신구를 사용할 만한 사람은, 정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제 정혼자 외에는 없었다.
"도련님?"
"정말이지,"
"예?"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불만이 가득담긴 제 말 한마디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고개를 아래로 돌려 저를 올려다보며 제 낯빛을 살피는 백현의 바쁜 몸짓에 찬열이 버석한 웃음을 터트렸다.
붉게 물든 입술이 그 끝을 비틀며 호선을 그렸다.
아무것도 아니다, 짧게 문장을 내뱉은 찬열에 백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찬열을 기다렸다.
순종적인 빛을 가득 담은 강아지를 닮은 순한 얼굴이 물끄러미 저를 올려다보는 시선에 찬열은 다시 입술을 벌려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고는 백현의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도련님-"
"빨리 따라오너라, 날이 어둑어둑해 지고 있질 않느냐."
"천천히 가십쇼!"
이내 긴 다리를 휘적이며 저 멀리 걸어가는 찬열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백현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듯 작은 머리통을 붕붕 흔든다.
그러고는 제 작은 주먹으로 머리통을 통통 때리고 목소리를 크게 내어 도련님을 부른다.
뒤로 돌아보며 씨익 웃어보이는 제 도련님의 얼굴이 참으로 잘났다 싶어 괜히 입술을 비죽이며 짧은 다리로 바쁘게 뛰어간다.
백현을 배려하는 마음에서인지 슬쩍 다리의 보폭을 줄인 찬열이 제 옆에 다가와 서서는 헥헥대는 발갛게 물든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 뛰어오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으니 염려 말거라."
"도련님께서 기분이 안좋아 보이시니 혼자 가시게 둘 수는 없습니다."
"꽤나 단호한 말투구나."
"기분은, 괜찮으신겁니까?"
"현아,"
"예?"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
찬열의 말에 놀라 양 팔을 푸드득 거리며 부산을 떨던 백현이 단정하게 길게 땋아내린 제 머리칼의 끝을 붙잡고 킁킁-소리를 내며 냄새를 맡는다.
평소와 다름없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단순한 머리카락에 안심하며 붙잡은 머리를 내려놓더니
전날밤 깔끔하게 빨아입은 옷에다가 고개를 처박고 다시 킁킁-소리를 내며 냄새를 맡기 위해 작은 몸을 버둥거린다.
"그런 뜻이 아니니 염려 말거라."
"에?"
"그리 온 몸의 냄새를 맡으려 들지 않아도 된단 말이다."
다시금 슬쩍 웃어보이며 제 머리통을 통통-가볍게 내려치는 손길에 백현은 얌전히 입술을 꼭 다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새 또 다리를 휘적거리며 제게서 멀어지는 제 도련님의 뒤를 쫓기 위해 백현의 다리가 바쁘게 움직였다.
박찬열 (20)
황국 어사대부(御史大夫) 박근우의 장남
황국(黃國)의 승상(丞相) 김준후의 여식의 정혼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
좋지 않은 낌새가 느껴진다.
좋지않은, 마음이 생긴다"
"무슨 일이십니까."
"승상(丞相)댁의 여식을 뵙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제 앞에 서있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세훈의 미간이 잠시 좁혀졌다.
이 사내가 저희 아가씨를 만날 이유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던가에 대해 잠시 고민하던 세훈이 두어번 입술을 달싹였다.
저잣거리에 소문이 자자하던 자가 아닌가. 정확히 그 자제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도형원이라는 그 대상인(大商人)의 아들임이 틀림없었다.
"저희 아가씨를 아십니까."
"조금 전 길거리에서 마주쳤던 자라 말씀드리면 아실것입니다."
단정한 눈동자가 또렷하게 빛나며 저를 바라본다. 왠지 모르게 마주한 사람을 움츠러 들게 한다.
자신의 신분이 천한 상인의 아들이라는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한마디 한마디를 뱉어내는 모양새가 같은 사내가 보기에 참으로 부러울 정도로 당당해 보였다.
정작 양반가의 자제인 저는 이다지도 움츠러 들어 땅굴을 파고 있는데 이자는 뭐가 이리도 당당하단 말인가.
"전하실 물건이 있으시면 저에게 전하십시오."
"이 댁 여식의, 호위무사 되시는 분이십니까."
"그렇,"
"세훈아!"
대답을 끝마치려던 세훈은 제 뒤에서 들려오는 제 아씨의 목소리에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시간을 오래 끄는 것이 아닌데, 멍청한 짓을 한 제 자신이 한심해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몸을 뒤로 돌려 저에게로 달려오는 아씨의 모습에 시선을 둔다.
어디서 난건지 붉은 빛의 신을 신고 폴짝폴짝 뛰어오는 모양새가, 참, 곱기도 하구나.
"부르셨습니까?"
"응? 어찌 말투가 그리해, 누가 온것이냐?"
"아씨를 만나뵙고자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제 귀를 파고드는 낯익은 목소리에 경수의 입가에 환히 미소가 걸렸다. 필히 오늘 처음 들은 목소리지만 방금의 그 목소리는 분명 연(緣)의 목소리임에 틀림이 없었다.
제 앞에서 그새 표정이 밝아지는 미남자의 얼굴에 세훈이 다시금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경수를 가리고 비켜선 몸을 옆으로 슬쩍 움직인 세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선 제 아씨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
"연아-"
부드럽게 익숙한 이름을 불러오는 목소리에 놀라 눈이 자연스럽게 휘둥그레해졌다.
불과 몇분 전에 새로이 얻은 내 이름이 아닌가. 저 이름으로 나를 부를 사람은 경수밖에 없다는 그 확고한 사실에 얼굴에 웃음이 가득 들어찼다.
그리 오래 기다리고 고대해왔던 것에 비해 재회의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쉬워하던 내 마음을 누군가 알고 선물이라도 내려준 것인지,
내 시야에 들어찬 얼굴은 틀림없는 경수의 것이었다.
"무슨, 일로.."
"전해주지 못한 말이 있어 발걸음 하게 되었습니다."
꽤나 친숙하게 듣도 보도 못한 괴상한 이름을 불러대더니 이제는 또 단정하게 말 끝을 높이는 경수의 이상한 대화법에 세훈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제 아씨가 이런 사내와 알고 지낼 이유가 없었다 그리 생각했건만, 눈엣가시같은 그 민석이라는 자와 저잣거리에 나섰을 때 만난 것이구나
그리 스스로 판단을 내린 세훈이 입술 속으로 이를 앙다물었다.
매번 죽마고우(竹馬古友)라는 이름으로 제 아씨의 곁을 맴도는 것 만으로도 마음에 들지 않았건만 이제는 저같은 놈을 하나 더 아씨 곁에 붙여주다니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게다가 제가 알기로는 아씨를 향한 민석의 마음은 저의 것과도 비슷한 성질의 그것일텐데 어째서 저런 사내를,
생각을 이어가던 세훈은 제 몸을 콕콕 찌르는 제 아씨의 손길에 퍼뜩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훈아,"
"예, 예?"
"바람이 차다, 그만 문을 닫고 들어오너라."
이미 경수를 집 안으로 들여 제 옆에 세워놓은 미워할 수 없는 제 아씨의 미운 행동에 세훈은 그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열려있던 문의 손잡이에 손을 걸어 문을 당겼다.
끼익-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무겁게 닫힌 문을 바라보던 세훈이 다시 한번 훈아-하고 저를 불러오는 목소리에 시선을 움직였다.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저를 바라보는 갈빛의 동그란 눈동자 속에 제 모습이 양껏 담겨 있었다. 괜히, 속이 쓰렸다. 입맛이 텁텁했다.
"어디다 그렇게 혼을 팔고 있는것이야, 머리가 아프기라도 한것이냐?"
"아무것도 아니니 심려치 마십시오."
"피곤해 보이니 너는 이만 쉬는 것이 좋겠구나,
경수는 잠시 후에 내가 알아서 돌려보내겠으니 그만 들어가 보거라."
"나중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제기랄, 쓸데없이 다정한 제 아씨의 넘치는 배려심에 속으로 이런저런 욕을 내뱉은 세훈이 이를 으득-갈았다.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끔벅이자 말간 미소를 짓고 있는 하얀 얼굴이 눈 앞에 가득 들어찬다.
꺄르르-하는 소리를 낼 것만 같은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경수라는 이름으로 불린 사내의 팔을 잡아끄는 제 아씨의 들뜬 몸짓을 멍하니 바라본다.
덜컹거리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제 아씨의 방문이 닫힌다.
또 한번 저를 다른 공간으로 내모는 고작 종이와 나무로 이루어진 그 얇다란 창호지문 하나가 그렇게도 굳건해 보일 수가 없다.
속이 쓰리고 입맛이 텁텁했던 것은 이것을 예견했기 때문일까. 이제는 가슴까지 괜히 시려오는 기분에 세훈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빨갛게 언 손을 녹였다.
닫힌 방문을 한참을 바라보던 세훈이 눈을 끔벅였다.
느리게 감긴 눈이 다소 긴 시간 동안 제 자리를 지킨다. 길게 내려앉은 속눈썹 위로 눈물 방울이 일그러진 모양새를 하고는 매달린다.
생경한 감촉에 놀란 세훈이 화들짝 눈을 뜨면 위태롭게 매달려있던 눈물방울이 제 형체를 완전히 무너뜨리며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아-"
멍하니 바람빠지는 목소리를 내며 손을 들어올린 세훈이 더듬더듬 제 얼굴을 매만졌다.
축축히 젖어들어가는 얼굴을 만지는 큰 손에 눈물이 얼룩진다. 아까까지만 해도 차갑게 얼었던 손이 뜨듯미지근해진다.
빠르게 손을 움직여 얼굴을 엉망으로 하던 눈물줄기를 모조리 닦아낸 세훈이 다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닫힌 방문 앞에서 등을 돌렸다.
제 선택의 결과는 이런 것이었다.
과거의 제 자신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황국(黃國) 도독주군사(都督州軍事) 오진원의 외동아들
오세훈(17)
"모든 것은 나의 작은 주인이 원하시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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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오랜만이예요!ㅜㅜㅜㅜㅜㅜㅜㅜ
금요일에 돌아오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늦어져서 나름대로 끄적끄적 많이 쓰긴 했는데 사진들이 많아서 분량이 되게 없어 보이네요..(눙물)..
등장인물이 많아서 멍청한 작가는 머리가 혼란스럽습니다..ㅎ..ㅎ...ㅠㅠㅠㅠ
무튼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