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무슨 말이니...!" "민대감댁과의 혼사를 늦췄으면 좋겠습니다. 전하께서 청으로 사절단 파견을 가라 명하셨습니다." "아니된다고 하거라. 이게 어떻게 얻어낸 혼사인데... 절대 물릴 수 없다." "전하의 명이십니다. 제가 거역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찬열은 충분히 거절해도 되는 사절단 파견을 자신이 먼저 나서서 가고자 했다. 백현이 친정으로 향한 후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으나 항상 옆에 있는 듯했다. 밤마다 향하는 기생집은 애초부터 흥미가 없었다. 그저 마음을 정리하고자 향했으나 기생들과 비교되는 백현의 모습이 떠올라 오히려 복잡해질 뿐이었다. 그렇게 백현은 찬열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찬열은 복잡한 마음에 스스로 사절단으로 갈 것을 선택했다. "민대감께서 민소저와 혼사를 치른 후 함께 떠나는건 어떠시냐 물으신다." "......" "이미 넌 혼사를 한 번 치룬 몸이야! 너 같은 것을 어느 집안 여식이 반겨줄 것 같으냐. 그나마 민대감께서 대감과 연이 있으셨기 때문에 이 혼사도 진행이 되는 것이다. 그만 고집 부리고 어미의 뜻을 따르거라." "어머니... 놀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의 명을 받잡아 가는 것인데 민소저와 함께라면 방해만 될뿐입니다." "그러면 어쩌자는 말이더냐... 그... 아이가 회임을 못하는 석녀였기에 대를 이을 아이도 없다. 이 시기에 너에겐 제대로 된 혼처도 들어오지 않고 있구나. 이러다간 박씨 집안의 대가 끊길 수도 있는데 네가 그러고도...!" "어머니..." 찬열의 어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들어오는 혼처라곤 몰락한 집안의 과년한 여식들 뿐이었다. 박씨 집안의 자존심으론 결코 승락할 수 없었다. 그러나 찬열은 더 이상 혼인이라는 것을 치루어 마음이 더욱 복잡해 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결국 민대감댁은 혼사를 물렸고 찬열의 부모는 크게 노하였다.그러나 찬열은 일주일 뒤 아버지와 어머니께 인사를 한 후 청으로 떠나버렸다. 마지막으로 보고픈 이가 있었지만 찬열은 자신의 마음을 모른 척했다. 7개월 동안 완전히 정리하고 오자는 다짐으로 찬열은 발걸음을 떼었다. 어멈과 백현은 일주일 정도는 암자에 머물렀다. 그 자들이 산에서 빠져나갈 때까지 몸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긴장감과 배고픔에 허덕였던 백현은 피골이 상접하고 작은 몸이 더 말라서 볼품이 없었다. 그들이 모두 나갔다고 생각이 되어졌을 때 백현과 어멈은 산을 내려와 마을에 있는 빈집을 얻어서 생활을 시작했다. "어휴... 작은마님! 그만 두시라니까요!" "집에 가만히 있으면 제가 불편해서 그래요..." 어멈은 마을의 농사일을 도우며 삯을 받았다. 하루종일 일 해도 하루에 한끼정도만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어멈의 노고를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백현은 마을 장터의 원단상점에서 바느질거리를 받아와서 조금이나마 보태고 있었다. "오늘도 속이 안좋으세요?" "네... 이번주 내내 그래요. 뭘 먹을라 치면 구역질이 나와서..." 산에서 내려온 후로 백현은 점점 더 말라갔다. 제대로 먹지 못한 탓도 있지만 뭔가 꺼름칙한 느낌에 어멈은 내일 의원에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멈도 얼른 쉬어요. 저는 이것만 마무리하고 잘게요." "마님이 하는 것보단 제가 하는게 빨라요. 이리 주세요." 어멈은 자신이 다섯 개를 할 속도로 하나를 겨우 완성시키고 있는 백현에게서 바늘을 뺏었다. 왠지 민망해진 백현은 뒷간에 다녀오겠다며 방을 나섰다. 백현의 걸음걸이를 보면 한 발을 절고 있었다. 산에서 구를 때 발목을 다쳤는데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멈은 나가는 뒷 모습을 보며 평생 다리를 절으며 살아가야 할 백현이 걱정이 되었다. "계속 몸이 안좋으시다면서요. 의원에게 가 봐요." "싫어요... 그럴 돈이 어디있어요..." "마님께 쓸 돈은 많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백현은 의원에게 가 보자는 어멈의 말에 완강하게 거부의 의사를 보였다. 왠지 나쁜 소식을 들을 것 같았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아서 가기가 싫었다. 그러나 어멈의 고집을 꺽지 못하고 백현은 끌려 가듯이 의원집으로 향했다. "요즘들어 통 음식을 삼키지도 못하시고... 계속 살이 빠지시니까. 무슨 병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백현은 진맥을 짚는 의원의 얼굴을 불안한 듯이 쳐다보았다. "음... 태기가 있어 그런 것이요. 아기가 들었으니 입덧을 한것이고.." 어멈과 백현은 벙찐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빌고 빌때는 안 생기던 아이가 이럴때 생기다니... 걱정이 앞섰다. "아기가 많이 불안하오. 모체가 아직 미령하여 아기집이 완성되지 않았는데 아이가 들어서 버리니 제대로 클 수나 있을 지 모르겠네만... 어미의 기력이 쇠하니 태중 아기까지 맥박이 약하오. 건강하게 낳고 싶다면 몸조심 해야할 것이오." 어멈과 백현은 의원이 주는 탕약을 살 수가 없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멈은 백현의 표정을 내내 살피고 있었다. 아이때문에 상처받고 그 아이의 아비때문에 마음에 병을 얻은 이다. 과연 회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지 가늠할 수 없었다. 백현의 눈치를 보는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있을 때 백현은 먼저 입을 뗐다. "어멈... 내가 아이를 잘 낳을 수 있을까요...?" "...예?" "그렇게 원하던 아이인데... 기쁘지가 않아요. 이 아이가 건강하게 세상에 나오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요. 부족한 어미를 만나서 고생을 할 우리 아이가 불행할 것 같아서 기쁘지가 않아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기씨는 마님같은 좋은 어미를 가지게 되어서 기뻐하실거에요." "서...서방님의 아이에요... 서방님의 아이..." 백현은 조심히 아직 홀쭉한 배를 쓰다듬었다. 자신에게 온 이 작은 생명을 낳고 싶었다. 너무나도... 많은 분량ㅇㄴ 아니지만 또 와써요!!!! 이제 찬열이의 비중은 음슬예정. 우리 백현이의 찌통만 남았네요ㅎㅎ
이런 글은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