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이디야
휴대폰이 울린다. 일부러 전화 올까봐 침대 저 밑에 나뒀는. 안받으면 안오겠지. 라고 생각하며 안받고 있는데 끊길 생각을 안한다.
안봐도 뻔하다. 구준회겠지. 전화가 두 번정도 끊기고 잠시 쉬다 다시 울린다. 이쯤까지 안받으면 의심할거다.
구준회는 휴대폰을 끼고 사는 날 잘 아니까.
-어. 왜
-어. 왜? 장난해?
-왜 그러는데.
-전화 일부러 다 팅군거 모를줄알아?
-알았어?
-장난해? 당연히 알지.
-미안해 바빴어.
-왜 피하는데.
-어?
-왜 피하냐고. 티 나. 너도 알지?
-피하긴 무슨, 아니야.
전화기 넘어로 구준회의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애가 타긴 할거다. 신호음 울리기도 전에 전화 받고 연락하던 나였는데.
-내일 뭐하는데.
-놀거야.
-누구랑
-누구긴 남자친구랑
-뭐 그 김한빈? 그새끼랑 아직도 사귀냐?
-어. 한빈이랑 아직 사겨. 그러니까 끊어.
-야. 재희야, 이재ㅎ..
내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구준회의 낮은 목소리를 두고 전화를 끊었다. 왜 그렇게 날 찾아. 착각할 것 같잖아.
&
띵동-
누구지, 아직 남소영 올려면 멀었는데.
생각하는 동안 초인종이 한 번 더 울렸다. 성격 급한 걸 보니 남소영인가 보다. 아직 화장도 덜 했는데.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아직 화장 덜-
"그러게. 일찍 왔버렸네, 이재희?"
"..구준회. 왠일이야."
"남자친구랑 공원이라더니 여기가 공원?"
오늘도 전화 와서 어디서 노냐고 묻길래 대강 얼버무렸는데 찾아올줄이야. 역시 구준회다. 예상을 뛰어넘어.
"그 꼬라지로 어디가냐?"
"클럽"
"뭐? 미친"
"왜, 가면 어때서. 우리 아직도 고딩인 줄 알아? 22이야."
또 한숨을 내뱉는다. 나만 보면 한숨질이다. 우린 이제 같이 수업 듣고 고등학교 어디 갈지 고민하던 중딩도 아니고, 더욱이 입시에 시
달리며 서로 의지하고 앞길을 찾아가던 고딩도 아니다. 사실 오래 된것도 아닌데 엄청 오래 된 듯이 느껴진다. 거리감이 생겼다.
복도 저 멀리서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들린다. 남소영일거다. 발걸음 하나 당차네.
"야!!!!!!!!! 이재희!!!!!!! 언니 왔-
어이고.. 준회도 있었네..? 안녕..하하"
"어 안녕."
남소영이 나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낸다. 입도 안 뗐는데 다 들리는 거 같다.
구준회는 왜 있냐? 또 클럽 고나리해? 우리 또 못가? 뭔데? 나 오늘 화장도 잘 먹었는데! 라고 속으로 울부짖고 있네.
기다려봐. 오늘 갈꺼야. 라고 눈으로 신호를 줬다.
"야, 안가?"
"어딜."
"어디긴, 니 집이지."
"안가"
"그럼 여기있던가. 난 간다."
"야! 이재희!!"
안 그래도 매서운 눈매로 왜 그렇게 날 쳐다보는지. 사실 좀 무섭긴하다. 구준회는 멀쩡하게 생겨선 아니, 좀 잘생겨선 무섭게 잘 생겼다.
옆에서 우리 사이에 껴서 이도 저도 못하는 남소영이 보인다.
뭐해. 가자.
구준회를 지나쳐 가는데 멀리서 야! 라고 다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왜 그러는데, 니가 화내도 갈거라니까? 구준회는 내 말을 듣더니 멀리서 소리쳤다.
"그래 알겠으니까 다 놀고 전화해. 데리러 갈게."
젠장.
진짜 구준회는 짜증난다. 사사건건 시비걸고, 남자 친구가 있다고 거짓말을 쳐도 귀신 같이 아닌거 알아 채는 놈이다. 그리고 지금 들리는 저 목소리처럼
'그 구두 신으면 너 넘어지잖아. 조심해. 이재희.' 이렇듯 날 너무 잘 알고, 싸가지 없는 듯 잘 챙겨주고, 항상 그 듣기 좋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준다.
가장 화나는 건 나는 그런 구준회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