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花樣年華)
: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내 첩이 된다면, 되지 않겠느냐."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진정으로 우스워서 나온 웃음이었다. 내가 아무리 기생이라 하여도, 처음 보는 저런 방탕한 선비에게 첩이 되라는 소리까지 들을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눈 앞에 보랏빛 도포가 일렁였고, 그 위로 김지원의 얼굴이 날렵했다. 김지원은 나를 바라보며 기울어진 갓을 고쳐쓰고 있었다. 창 틈으로 들어온 햇살이 검은 갓에 닿아 부서졌다.
"소녀, 처음 본 사내에게 첩이나 되라는 말을 들을 몸은 아닌 듯 합니다."
순간 김지원의 눈동자가 커졌다 다시 제 모습을 찾았다. 김지원은 긴 웃음소리를 빼어냈다. 나는 몸을 꼿꼿이 세웠다. 긴 웃음소리가 나를 휘감을 것만 같았다. 제법이구나. 김지원의 입술선이 날카로운 곡선을 그려냈다.
"그럼, 본처는 어떻겠느냐? 기방에서 나와 신분이 천하다 한들, 공명첩 하나면 해결될 터. 어때, 혹하지 않느냐?"
내 속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 김지원은 신분을 입에 올렸다. 순간 머릿속에 동혁 오라버니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기방에서 나가면 동혁 오라버니를 상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망설여졌다. 머릿속은 기방에서 나가라고, 당장 저 선비의 손을 잡으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마음 속 깊은 구렁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듯 느껴졌다. 김지원은 품 속에서 부채를 꺼내들고 네가 기생으로 남아있는다면, 사내들 앞에서 이렇게 춤을 추겠지, 하며 휘저었다. 부채에는 보라색 제비꽃이 그려져 있었다. 동혁 오라버니의 얼굴이 더욱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런 김지원을 바라보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한 일각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 내게 닥쳐오니 어떻게 해야할까, 머릿속에서 회오리 바람이 요동쳤다. 마음 속에서 갈대 한 그루가 깊은 뿌리를 내렸다.
"조금만, 조금만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때에 답을 드리겠습니다."
김지원은 다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객실을 나가면서 그는 제비꽃 향이 좋구나, 중얼거렸다. 스쳐 지나가는 그에게서도, 제비꽃 향이 났다.
바깥의 햇살은 따스했지만, 두 뺨에 닿아오는 바람은 매서웠다.
*
구준회는 오늘도 연화방을 찾았다. 객실에 들어앉아 나를 기다리던 구준회는 내가 들어서자 웃어보이며 나를 맞이했다. 청색 도포와 어우러지는 그 웃음이 담백했다. 그 웃음을 보고 있으니 무언가 마음 속 깊은 응어리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 했다. 그 평온함은 꽁꽁 묶여있던 나를 풀어냈고, 숨이 탁 트인 듯 내게 닿는 모든 것이 맑았다.
"나리는 도포의 색이 매일 바뀌십니다. 여인인 소녀보다 옷이 더 많은것 같아요."
내 말에 구준회는 고개를 낮추고 작게 웃었다. 기분 좋은 그 웃음에 나도 화답하는 웃음을 지어냈다. 제 앞에 놓인 술을 들이킨 구준회가 나와 눈을 마주했다.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머물러있었다. 다 네게 잘 보이려고 입는 것이다. 그 말에 뺨이 화끈거렸다. 손을 들어 화끈거리는 뺨을 감쌌다.
"그나저나, 이제는 네가 먼저 말도 건네는구나. 좋다."
내게 조금 가까이 다가온 구준회는 내 손을 쥐었다. 손이 차갑구나, 하며 구준회는 내 손을 더 세게 쥐었다. 느껴지는 체온이 따뜻했다. 이 따스함이 나의 응어리를 녹인걸까. 별안간 낮에 나를 찾아온 김지원이 떠올랐다. 또 머리가 복잡해졌다. 녹아내렸던 것이 다시 굳어서 벽을 쌓아오고 있었다. 구준회에게 말하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질까. 나를 바라보는 구준회의 시선이 부드러웠다. 작은 망설임에 잠시 눈을 감고 있으니 머리 위로 손길이 느껴졌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호롱불에 비친 구준회의 얼굴에 두 뺨이 더욱 달아올랐다. 구준회의 뺨에 닿으려는 두 손을 가까스로 제지했다.
"왜 그러느냐."
구준회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내가 이 사람에게 기대도 될까. 너무 섣부른 것은 아닐까. 하지만 지금 나는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내 모든 회포를 풀어낼 누군가가 필요했다. 항상 의지했던 오라버니는 지금 여기에 없었다. 나는 제비꽃 향이 피어오르는 향주머니를 세게 쥐었다.
"제 고민을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구준회가 낮은 웃음을 흘렸다. 어려운 일은 나누어야 한다. 나는 조심스레 다물었던 입술을 열었다. 어쩌면 구준회의 그 말에 아주 잠시 홀렸는지도 모른다.
"낮에 한 선비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다짜고짜 제게 기방을 나갈 생각이 있냐 묻더군요. 물론 저는 기방을 나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방도가 없었어요. 그 선비는 제게 혹할 말을 던졌습니다. 기방을 나와 자신의 첩이 되지 않겠냐, 라고요."
"그게 말이 되느냐, 여인이 어찌 처음보는 사내에게 남은 삶을 바친다고!"
구준회의 말과 표정이 모두 격양되어 내 말을 끊었다. 나는 짧은 숨을 몰아쉬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소녀도 처음엔 거절했습니다. 기생이기 전에 저도 여인이라고, 처음 보는 사내의 첩이 되고싶진 않다고. 그러자 그 선비가 그러더군요. 그럼 본처는 어떻겠냐고. 공명첩으로 네 신분을 상승시켜 주겠다고. 지금 망설여집니다.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구준회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말없이 내 손을 잡은 구준회의 그 어떤 감정도 실리지 않은듯한 메마른 눈빛이 차가웠다.
"네가 기녀가 된 연유가, 무엇이냐."
구준회는 내게 기녀가 된 이유를 물어왔다. 내가 기녀가 된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신분. 그 한가지 이유로 나는 기방에 발을 들였다. 물론 어느 양반댁의 노비가 되던, 기방에서 양반들의 술잔에 술을 따르던, 천한 신분인 것은 같았지만 그래도 기생이 되면 노비보다야 나을 것 같아서, 여인으로서의 모습도 지닐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양반과 동침을 하여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매를 맞아 죽었던 어머니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나는 기생이 되었다.
"소녀가 전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사생아라고. 저의 어미는 천민입니다. 제 어미는 양반의 아이를 가졌단 이유만으로 매를 맞아 죽었습니다. 죽은 뒤에도 묏자리에 묻히지 못하고, 멍석에서 썩어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처럼 되고싶지 않았습니다. 그게 제가, 기방에 들어온 연유입니다."
"그게 말이 되느냐! 기생이면 다른 사내들에게 몸도 마음도 다 줘야하는것을, 너는 알고있지 않느냐."
구준회의 말 끝자락이 울음으로 적셔졌다. 발개진 구준회의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 그 눈에, 숨이 멎는듯 한 느낌이었다. 나는 느리게 입술을 벌렸다. 입술 틈에서 나오는 말도, 최대한 느리게, 느리게 내뱉었다.
"제가, 주지 않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마음대로 되는 줄 아느냐, 몇 냥만 건네면 기생과의 하룻밤은 얼마든지 지닐 수 있다는 걸을, 누구보다 잘 알지 않느냐."
"소녀는 지금까지 화려한 기생들 틈에서, 수수하게 차려입으며 최대한 제 몸을 숨겨왔습니다. 지금까지 잘 지켜왔습니다. 그럼 되지 않겠습니까?"
눈가가 뜨거워졌다. 한마디 더 내뱉었다가는 주제하지 못할 정도로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왜 가슴이 먹먹해지는지는 나도 알지 못했다. 구준회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허공에 무언가를 그리는 듯 보이기도 했고, 머릿속의 엉켜버린 실을 풀어내는 듯한 눈빛이었다. 어찌됬던 너는 천민만 면하면 되는것이냐, 구준회가 낮게 중얼거렸다. 너무 작아서 숨죽여 듣지 않으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중얼거림이었다. 나는 그런 구준회를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향주머니를 쥔 주먹이 바들바들 떨렸다.
"알겠다."
구준회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청색 도포가 바다처럼 일렁였고, 구준회는 객실을 나갔다. 나는 향주머니를 쥐고 있었던 손을 풀었고, 손바닥에는 깊은 손톱자국이 남아있었다.
"그 사내에게 가지 않으면 안되겠느냐."
구준회의 마지막 말만이 방 안에 남아 내게 닿았다. 구준회가 앉았던 자리의 온기는 빠르게 식었다.
*
다음날, 김지원은 새벽닭이 울기 바쁘게 나를 찾아왔다. 오늘도 보라색 도포를 입은 김지원은 맑게 웃으며 내게 결정을 내렸냐고 물었다.
"하루가 이리 긴 시간인 줄 몰랐다. 그래서, 결정은 내렸느냐?"
김지원은 내게 하루가 이렇게 긴 시간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나는 하루가 이리도 짧은지 처음 알았는데. 김지원은 부채를 꺼내들고 얼굴을 가렸다. 흰 부채의 한 귀퉁이에 보라색 제비꽃과 샛노란 달맞이꽃이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낮에 뜨는 제비꽃과 밤에 뜨는 달맞이꽃,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나는 초승달 모양으로 접힌 김지원의 눈을 바라보고는 입술을 떼었다.
"가지 않겠습니다."
김지원의 눈이 원래 모양으로 돌아왔다. 김지원은 부채를 접고 표정을 굳힌 채 나를 바라봤다.
"왜 가지 않겠다는 것이냐. 네게 해가 될 것은 없는걸로 아는데."
나는 그런 김지원에게 엷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제 선택입니다. 단호하게 끝맺은 내 말에 김지원은 고개를 저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다른 기생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따라가겠다 발목을 잡을텐데."
"그렇다면 그 기생들에게 가시지요."
김지원은 다시금 부채를 꺼내들어 휘저었다. 방 안에 약한 바람이 일었다. 정말 후회하지 않겠느냐, 묻는 김지원에게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김지원은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부채 뒤로 가는 한숨과 웃음이 뒤섞여 새어나왔다.
"슬퍼하겠구나."
김지원은 그 말만을 남기고 방 안을 빠져나갔다.
*
"자란이라 하던가. 네가 사랑하는 그 아이. 기방을 나오지 않겠다 하더구나."
동혁은 고개를 떨구었다. 등이 미약하게 떨렸고, 작은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지원은 그런 동혁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부채를 건넸다. 동혁은 말없이 부채를 펼쳤다. 제비꽃 그림 위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흰 부채가 짙게 번져갔다.
"그 아이는, 달맞이꽃의 의미를 모를거야."
지원은 흐느끼는 동혁의 어깨를 토닥였다. 제 누이의 이름을 부르며 흐느끼는 동혁의 입가가 떨렸다.
"그 여인은 자란이라 하지 않았는가."
지원에게로 고개를 돌린 동혁의 눈가가 붉었다. 지원은 격정적으로 요동치는 동혁의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 눈동자에는 좌절만이 비쳤다. 동혁은 부채를 내던졌다. 땅에 떨어져 흙이 묻은 부채가 외롭게 느껴졌다.
"내가 지어준 이름이야. 다른 이의 입술에서 나오는 그 아이의 이름이 싫어, 내가 지어 준 이름이네."
지원은 발악하는 동혁이 더욱 측은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얻지 못하는 아픔을, 동혁은 뼛속 깊숙히부터 아파오고 있었다.
"자란이라고, 제비꽃에서 따온 이름이야. 제비꽃 하면 그 아이가 알아챌 줄 알았는데..."
동혁은 이내 말꼬리를 흐렸다. 최대한 누이가 자신을 떠올리라고, 그러면 연화방을 나오지 않을까 하며 지원에게 제비꽃 향주머니도 달고, 보라색 도포도 입혔다. 자신의 그리움을 알아주면 하는 마음에, 부채에 노란 달맞이꽃도 그려넣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지원은 아무것도 쥐고있지 않았다.
해가 머리맡에 걸렸다. 해는 짙은 따스함으로 조선 곳곳을 품었지만, 동혁만은 품지 않은 듯 차가웠다. 동혁의 도포 소맷자락이 축축히 젖어들어갔다.
"그 여인이 그리도 소중한가."
동혁은 지원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내 사람이야, 그 어떤 사람과도 바꿀 수 없는. 동혁이 내뱉은 말 밑에는 짙은 슬픔과, 어둠이 깔려있었다.
오늘도 동동이 애잔킹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달맞이 꽃의 꽃말은 그리움이에요!
준회 님, 구닝 님, 엘사 님, 콘초 님, 팬 님, 용군 님, 뿌요를 개로피자 님, 두둠칫 님, 무룩이 님, 주네야 님, 보랏빛 난초 님, 뿌링클 님, 부농부농 님, 거북이 님, 찌푸 님 애정합니다! !0! 이모티콘, 바나나킥 님, 알콩달콩 님, 마그마 님, 알린 님, 지난봄 님 감사해요!! 매화매화 댓글 달아주시는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ㅠㅠㅠ
아 그리고 현석고는...다음편이 없어요..........................ㅁ7ㅁ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