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공지가 닫혀있습니다 l 열기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몬스타엑스 이준혁 강동원 김남길 성찬 엑소
Valenti Rose 전체글ll조회 1617l 1
등장인물 이름 변경 적용

SHOW ME YOUR LOVE (바래다 줄게 그 이후) 


W. VALENTI ROSE

제가 썼던, 바래다 줄게의 이후 이야기입니다. 앞 이야기를 읽으셔야 이해가 되실거에요. 혹시 안보셨다면 읽어주세요!





-



“야, 제노야. 이거 봤냐?”

중간고사가 막 끝날 무렵이였다. 몇박 며칠을 새고 시험을 치고, 강의실을 나서며 집에 가서 자야지 라는 생각만 가득차있던 제노의 눈앞으로 동기의 스마트폰이 내밀어졌다. 밤샘의 후유증으로 눈 앞이 가물가물하던 제노의 시야를 번쩍 뜨이게 한 페이지는,



[오늘 인문대 앞에서 청자켓에 꽃무늬 원피스 입으신 여자분 울면서 가시던데… 우셔서 말은 못걸었는데 너무 제스타일이셔서요 ㅜㅜ 찾고싶습니다!]



“오늘 윤 누나 청자켓에 원피스입고 왔다, 남자친구 오랜만에 만난다고.”

“…근데?”

“누나 남자친구 인문대잖아, 뭔일 있는거 백퍼임.”

“아닐수도 있잖아.”

“맞을수도 있잖아.”

“…확신해?”



그 말에 잠깐 고민하던 동기가 몇번 타자를 치더니, 이내 온 답장에 다시 제노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재현이 형 오늘 과방?]

[응. 왜?]

[윤 누나 거기있어요?]

[아니. 오늘 안 올걸. 왜?]

[아니 별건 아니구요. 왜 안와요? 오늘 무슨 일 있대요?]

[잘 모르겠는데, 인문대 앞에서 마주쳤는데 잔뜩 운 얼굴이더라고. 무슨 일 있나봐.]

[윤 누나 오늘 뭐 입고 있었어요 형? 혹시나 해서요.]

[오늘? 청자켓에 파란색 꽃무늬 원피스 였던 것 같은데.]

[넹 고마워요 형.]



“여기있네, 확신.”

마지막 문장까지 읽은 제노가 아무 말 없이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쯧, 윤 누나밖에 모르는 놈. 혼잣말을 한 동기, 동혁이 혀를 차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



‘…여보세요?’


“어, 응, 제노야.”


‘누나 어디에요?’


“나 집. 오늘 시험 잘 쳤어?”


‘왜 울었어요?’


울음기를 머금고 있지만 잘 듣지 않으면 모를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헤어졌어, 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 부러 밝은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었는데, 말문이 턱 막혔다. 뭐라고 둘러대야할지 잠시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휴대폰에서 목소리가 건너온다.



‘운 거 알고 전화한거에요. 그 놈이 또 울렸어요?’

“어, 어…”



평소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잘 들어보니 꽤 화난 목소리다. ‘놈’이라고 지칭하는 그 목소리, 어투가 제노의 감정을 말해주는 것 같아 자연스레 입이 다물어졌다. 뭐지, 왜 화를 내지.



‘누나. 나 애태우지말고 말 해줘요. 또 그 놈이 울렸어요?’



“…어, 아니. 울린건 맞는데…”



‘왜요, 이번엔 또 왜요. 친구들이랑 여행간대요? 여자선배랑 술마신대요? 울릴게 뭐 있다고.’



차분하게, 오히려 느리지 않나 싶은 말투로 조곤 조곤 말하던 제노인데. 다다다 쏟아내는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씩씩대는 제노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아 웃음이 났다. 웃는 소리가 휴대폰을 타고 넘어갔는지 쏟아내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왜 웃어요 누나.’


“아니, 별거 아니고…”


‘그 놈 연락 왔어요? 미안하대요?’


“나 헤어졌어, 제노야.”


그 말 한마디에 정적이 흘렀다. 건너편에 있는 제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짐작도 안갔지만 그냥 그 말을 한 것에 대해서 속이 시원했다. 시험이 끝났고, 끝나는 날 보자는 카톡에 밤샘에 찌든 얼굴에 화장과 안 입던 원피스까지 입고 나갔다. 오랜만에 데이트에 30분정도 일찍 나와버려서, 보기로 한 인문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제 앞에 나타난 것은 츄리닝에 슬리퍼,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약속시간에서 30분이나 늦게 나오는 사람이였다. 저 멀리서 오는 그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는데, 눈까지 마주쳐놓고도 아무 반응 없는 그에 현타가 왔다. 내가 아무리 이 관계를 위해 공을 들인다고 해도, 저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겠구나. 차림새만 봐도 알수 있지 않은가. 무심한 사람이라 그런가 보다, 그래도 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나를 사랑하긴 하나보다. 스스로 위로하며 이끌어온 관계였다. 그리고 직감했다. 여기가, 우리의 끝인가보다. 주는 사랑의 고마움을 알지 못하고 사랑을 확인받으려고 애써야하는 관계가 전혀 건강하지 않았으니까. 서서히 자신의 마음을 좀먹어 나락으로 떨어트릴 인연은 어서 빨리 끊어내는게 좋았다. 그래서 제 앞에서 어디갈까? 하는 그의 얼굴에 스스로 낼 수 있는 가장 당당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헤어지자. 여기까지가 끝이네, 우리.”


벙찐 그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찰나의 억울함까지도.


“왜그래, 윤아.”


“왜그래? 그게 할 말이니. 잘 생각해보고, 잘 살아. 다시는 보지 말자.”



뒤돌아서서 걸어가는데 눈물이 나왔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대낮에 한 이별에. 슬퍼서 나는 눈물이라기 보다는 기뻐서 나는 눈물이였다. 최악을 경험했으니 이제 어떻게 되든 전보단 나을 것 같다는 확신과, 내가 이 선택을 후회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지금은 잘 했다는 뿌듯함. 그리고 사랑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쏟아부은 제 사랑에 대한 억울함이 겹쳐서 나오는 눈물이였다. 공들여 한 화장 위로 쏟아지는 눈물에 화장이 다 지워졌지만 상관없었다. 이 화장이 지워져도 날 사랑해주는 사람들은 날 사랑해주겠지. 그런 사람에게 제 마음 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는길에 재현선배도 만났지만, 선배는 내 얼굴을 보더니 아무말 없이 눈 인사만하고 지나가줬다. 집에 도착해 씻고 침대에 눕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게 마음을 잘 달래고 있는데 온 전화가 제노였다. 아까까지 일을 회상하고 있다, 긴 정적 끝에 들려오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누나, 저 지금 집앞으로 가도 괜찮아요?’


“… 얼마나 걸려?”


‘15분 정도요, 10분 있다가 나와요.’


갑자기 무슨 말인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전화를 끊고 겉옷을 챙겨 입었다.



-


“제노야!”


“10분 있다가 나오라고 했잖아요, 왜 일찍 나왔어요. 밤엔 추운데.”


“온다고 했으니까, 기다리려고. 왜 왔어? 누나 달래주려고?”


“어… 그런것도 있는데. 저녁은 먹었어요?”


“아니, 나 울었더니 배고파. 맛있는거 먹으러갈까? 내가 살게.”


“헤어진 사람한테 밥 얻어먹는 취미 없어요, 가요. 뭐 먹고 싶어요?”


갑자기 만나게 되서 어색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제노는 침착했다. 뭐지? 하는 의문도 잠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에 이끌려 근처 초밥집으로 향했다. 평소에 자신이 좋아하는 곳이였다. 제노한테 초밥 좋아한다는 말을 했었나, 그래도 여기 좋아한다는 말은 안했던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모둠초밥과 연어초밥을 시키고 간장을 부어주는 행동에 정신을 차리고 고마워, 인사를 건넸다.


“아니에요, 누나 뭐 생각하는 것 같아서.”


“어, 내가 너한테 초밥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나? 싶어서. 여기 내가 엄청 좋아하는 곳이거든.”


“말한적은 없는데, 재현선배 인스타에서 봤어요. 누나가 찡찡대서 여기 왔다는 게시글 봤거든요.”


“오, 누나한테 관심이 많나봐, 우리 제노~?”


“네, 저 누나 좋아해요.”


장난끼 가득 섞어서 가볍게, 농담으로 던진 말인데 들려오는 답은 너무 묵직해서 한대 얻어맞은듯 조용해졌다. 쟤가 지금 농담을 하나. 그럴 애는 아는데. 뭐지. 왜지. 왜 저런 말을 하지? 시시각각 변하는 윤이의 얼굴을 바라보던 제노가 묵묵히 말을 이었다.


“오래좋아했어요. 군대 가기 전에는 고백하면 민폐인것 같아서 최대한 미루려고 했던 군대도 빨리 다녀왔고, 다녀오니까 누나 옆에 다른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기다렸어요. 그 시간 내내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해요. 그래서 저는 누나 헤어진거 들어서, 솔직히 기분 좋아요. 나한테도 기회가 온 것 같아서. 나 이런 말 하면 너무 나빠요?”


처음엔 담담하던 목소리가 중간을 넘어 후반으로 갈수록 떨렸다. 무슨 일인가, 하고 제노의 표정을 봤는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어, 어. 저거 떨어지는거…



“제노야, 너 울어?”


“…큼, 아니요. 안우는데요. 말했잖아요, 기쁘다고.”


“근데 너…”


울잖아. 펑펑 우는 건 아니지만 눈물이 글썽글썽, 톡톡 떨어지고 이미 눈가는 새빨갛다. 검은 머리가 단정히 덮힌 귀도. 그리고 그 모습은.


“귀엽잖아…”


귀엽다 뿐만 아니라 사랑스러워서 견디지 못할 정도인데? 이정도면? 그 사이에 테이블 위로 모둠 초밥과 연어초밥이 올라왔다. 자신과 눈도 못마주치면서 자연스럽게 연어초밥 위에 올라간 생 양파를 덜어내는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제노야, 나 정말 좋아하나보다, 너.”


“…말했잖아요, 뭐로 들은거야.”


“아니, 이 타이밍에 이런 이야기해서 미안한데. 전 남자친구랑 헤어진 이유중 하나가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는데 행동으로는 전혀 그게 느껴지지 않았거든. 그런데 되게, 넌, 날 좋아하는게 느껴져서. 그래서 그랬어. 응? 그러니까 우리제노, 뚝, 뚝하자.”


아이를 어르는듯한 목소리를 내자 그제야 웃으며 제 눈가를 닦는 제노다. 우리 제노 누가 울렸어. 슬퍼서 운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파서, 앞에 있는 휴지를 들어다 제노 손에 쥐어주려고 하는데.


“……너 뭐해?”


“닦아주세요. 나 손 없어.”


한손엔 젓가락을, 한손에는 숟가락을 쥐고 얼굴을 쭉 내민다. 그 모습을 보니 웃음이 터져나왔다. 담백하고 되려 심심해서 종종 노잼 소리를 듣던 이제노 맞나. 이 정도 끼부리는 모습은 또 처음인데. 웃으며 톡톡, 휴지로 눈가를 두드리니 눈을 사르륵 감는데, 정말 내가 남자여도 반할 미모다. 거의 다 닦은 것 같아서 손을 떼자 다시 사르륵 눈을 떠 눈웃음을 짓는데 정말…


“잘생겼네…”


“그럼요, 저 잘생긴거 학교에 소문 다 났는데 누나만 몰랐나봐.”


“아니, 되게, 새삼스러워서. 먹자, 나 배고파.”


얼른 젓가락으로 연어초밥을 집어들어 입에 넣었다. 짧은 하루동안 많은 일이 있어서 뭐라도 속에 넣어야 진정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던 제노도 웃으며 초밥을 먹기 시작했다. 방금 전 내뱉은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


“아, 잘 먹었습니다-.”


기어이 제노가 계산했다. 일부러 일찍 일어나서 계산하려고 계산대로 먼저 갔는데, 뒤에서 성큼 성큼 다가온 제노가 내 지갑을 가져가고 제 카드를 내밀었다. 별수 있나, 계산 하는걸 눈앞에서 보고 괜히 미안해져서 한마디 했는데, 제노의 목소리가 따라붙는다.


“나중에 저 밥사주세요, 이건 제가 샀으니까.”


“뭐야, 내가 사려고 했는데 너가 산거잖아-.”


“제가 이거 사면, 다음에 밥 사달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건데.”


그리고 씩, 웃으면 진짜. 반칙이다. 흥, 알았어-. 하고 걸음을 옮기려는데 손에 따뜻한 무언가가 잡혔다.


“같이 가요.”


뭐가 이렇게 따뜻하나 했더니, 제노 손이네. 놀라서 올려다보니 쑥쓰럽긴 한지, 새빨간 귀를 하고 시선을 피한다. 괜히 놀리고 싶어 이게 뭐야, 누나 손 잡은거야? 하고 놀리니 제대로 된 대답은 안하고 으헹헹, 웃기만 한다. 그렇게 실 없는 소리만 오고 갈때 쯤.


“사실, 오늘 이야기 할 생각은 없었거든요. 누나 좋아한다는거.”


“울 생각도 없었지?”


“아, 진짜. 당연하죠. 그냥 밥 같이 먹고, 계속 쭉 했던 대로 누나 좋아하기만 하려고 했는데. 그냥 그 초밥집에 앉아서 누나 보는데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두번 생각도 안하고 말되는대로 내뱉은거에요. 그러니까,”


잘 가던 걸음을 멈추고 눈을 마주친다. 무슨 말을 하려고, 또. 가만히 느릿한 말을 기다리고 있으니, 의외의 말이 따라붙는다.


“저 기다리는 거 잘해요, 당장 사귀자고 말 안할게요. 그러니까 그냥 후배 말고 날 좋아하는 예쁜 동생, 정도로 봐주시면 안될까요, 누나.”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 오늘 일로 나도 깨달은게 있으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얼굴에 가로등보다 환한 미소가 퍼졌다. 얘 진짜, 나 좋아하나봐.


-


그렇게 2주가 흘렀다. 2주 동안,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그냥… 조금더 끼부리는게 많아진 이제노랑, 그 전과 다르게 뭐지, 이건 뭐지, 하고 색다르게 받아들이는 내가 있을 뿐. 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이런 소리를 하는 횟수가 늘었다.


“오, 윤이랑 제노랑 사귀어? 잘 어울리네~”


“둘이 요즘 같이 다닌다? 썸타?”


그 전에도 우리는 같이 잘 다녔는데 말이다. 아니면 그 전에도 이런 소리를 했는데 내가 못 들었나. 과제를 하러 온 까페에 앉아 제노를 앞에두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 앞을 똑똑, 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 미안. 어디까지 이야기했어?”

“누나 왜 이렇게 정신을 다른곳에 둬요. 날 앞에 다른 생각이 나?”


그렇게 말하곤 꽃받침을 하고 저를 쳐다보는 제노가, 요즘 제일 적응이 안된다. 자기도 민망했는지 푸스스 웃으면서 과제 이야기를 꺼내는데, 이상하게 제 머릿속엔 꽃받침한 제노가 둥둥 떠다닌다. 아, 내일 퀴즈 있어서 이거 끝나면 도서관에 공부하러 가려고 했는데. 망했다. 이런 저를 아는지 모르는지, 제노는 앞에서 착실히 과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이런 방향으로 자료 조사해서 다음주에 모아봐요, 알았죠?”


“어, 어. 알았어. 나는 이부분 맡으면 되는거지?”


“네, 이제 누나 뭐해요?”


“나 내일 퀴즈 있어서 도서관. 공부 조금 하다가 11시쯤 나오려고. 너는?”


“저는 집. 내일 휴강이라서 밤새서 게임할지도 모르겠어요.”


“아, 좋겠다. 내 과제 대신 해줘 제노야…”


“죄송합니다, 선배님.”

그리고 꾸벅, 인사를 하고 푸스스, 웃는데 말도 안되게 귀엽고 재밌었다. 누가 우리 제노 노잼이래, 이렇게 재밌는 애인데. 순하고 귀엽고, 잘생긴것 까지 아주 다한다. 도서관까지 데려다 준 제노에게 고맙다며 보내고, 꽤 자리가 많은 열람실에 앉아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아, 취소. 2주동안 달라진게 별로 없다는 말 취소. 제노 생각이 늘었다. 시도 때도 없이 제노 생각이 난다. 무슨 일이지, 싶을 정도로. 고백하던 날의 발간 눈가의 제노부터,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며 웃는 제노, 끼부리면서 예쁘게 웃는 제노까지. 이정도면 이제노가 내 머릿속에서 산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계속 드는 제노 생각을 외면하며 공부를 하니, 어느새 11시가 다 되었다. 죽어도 잠은 집에서 자야하니까 - 그래서 술에 취하면 집에 가야겠다는 말을 수도 없이 한다 - 대충 퀴즈에 나올 내용은 다 훑고 집에 가려고 짐을 챙겨 열람실을 나오는데, 반짝, 휴대폰이 울린다. 제노. 무슨 일이지.


“응, 제노야. 왜?”


‘누나, 이제 도서관 나와서 집가요?’


“응, 나 이제 나가ㄹ…어, 이제노?”


“공부하느라 수고했어요. 가요.”


왜 내 앞에 이제노가 있지. 도서관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길쭉한 인영에 놀라 말하니, 전화를 끊고 내 손을 잡아 이끈다. 한손에는 후드집업을 들고, 트레이닝 바지에 후드를 걸치고. 멍하니 얼굴만 보고 있자 손에 들린 후드집업을 입혀주는 손길에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너 왜 여기있어? 피시방 간다며?”


“오늘 이동혁이 여자친구 만나러 간다고 해서 10시 반쯤 나왔는데 너무 추운거에요. 누나 오늘 얇게 입고 나왔잖아요. 그래서 집에 들러서 집업 챙겨서 데리러 왔죠.”


담담하게 지퍼까지 쭉 채우곤 내 가방을 제 어깨에 매고 한손을 꼭 잡고 이끄는 제노가 낯설다. 항상 말끔하게 입고 다니는 편이라 맨정신으로 이렇게 헐렁한 차림을 본것도 거의 처음이고, 무심하게 데리러 왔다고 표현하는 제노도 낯설고, 그냥 다 낯설다. 조금은 멍한 상태로 집을 향해 걷고 있는데, 무슨 말을 이어가던 제노가 말을 끊고 제 얼굴을 마주봤다.


“누나. 요즘 무슨 일 있어요? 왜 자꾸 정신을 놓고 다니지.”


“어… 아니, 아니. 요즘 신경쓰이는 일이 있어서.”


무신경하게 툭, 대답을 내놓자 제노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신경이요?


“혹시 전남친이 연락이 온다거나…”


“아니야, 그런건.”


“그럼 뭐에요? 나한테 말해주면 안돼요?”


찌푸렸던 미간이 펴지고 순식간에 순한 강아지 눈을 한다. 하얀 후드에 그런 눈을 하니, 이길 수 없다. 이기고 질 생각도 없었고.


“그냥, 네 생각. 오늘 카페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사실 네가 나 좋아한다고 했던 그날부터 그래.”


그 말을 들은 제노의 눈썹이 꿈틀한다. 그것도 신경 못쓰고, 말을 이어갔다.


“나, 너 좋아하나봐. 왜 이러지? 진짜, 오늘도 퀴즈가 당장 내일인데 너가 동동 떠다녀서 집중이 안되는거야. 그래서… 어, 응, 제노야? 응?”


조곤조곤, 말을 이어가는데 제노가 나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순식간에 안겨버린 나는 그대로 정지 모드였다. 폭 안겨서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등을 쓰담아주고 있는데, 내 어깨에 고개를 묻은 제노가 웅얼 거리듯이 말했다.


“누나, 그런 말 이런 때 하는게 어디있어요. 반칙이에요.”


“왜, 제노야. 누나가 이런 말 하는거 싫어?”


“싫겠어요? 너무 좋아서 이러지. 제가 누나 엄청, 많이 좋아하는거 알고 이러는거죠. 나 놀려요?”


“설마. 진짠데? 나 요즘 네 생각에 잠도 못자고, 하는 일도 집중이 안돼. 어떻게 해?”


“어떻게 하긴요. 제가 책임질게요. 나랑 사귀어요, 누나.”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한번 보더니, 다시 얼굴을 묻는다. 그 모습이 꼭 대형견 같아서 머리를 쓰담아줬다.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과 마음이 만난 날이다.


-


똥차 가면 벤츠온다더니, 제노가 내 벤츠인가 보다. 연애를 하기 시작한 그 날부터, 우리의 연애는 순항중이다. 나는 내가 이렇게 사랑받는 사람인 줄 몰랐는데, 제노를 보면 내가 사랑받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사랑해요, 좋아해요 하는 고백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서. 퀴즈를 보러가는 날, 한시간 정도 일찍 나가려고 일찍 일어나서 ‘ 나 일어났어’ 하고 카톡을 보내놓으니, 학교 가는 길에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일어날 애가 아닌데, 하고 전화를 받으니 잠에서 막 깨서 잠기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왜 이렇게 일찍 학교 가요.’


“나 오늘 퀴즈 있잖아. 일찍 가서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수업 끝나고는 뭐해요?’


“어… 아직 정해진건 없는데, 친구만나서 밥 먹지 않을까?”


‘그럼 나 만나요.’


“너 못일어날 것 같은데요, 오늘 휴강이면 공강이잖아. 그냥 더 자고 오후에 보자.”


‘싫어요, 누나 볼래요. 아, 근데 피곤하긴 한데-.’


“저는 우리 제노가 잠 푹 잤으면 좋겠는데요, 제노씨.”


‘반칙이에요. 우리제노라고 하는거.’


“반칙 많이 하면 나 아웃이야?”


‘네, 저희집으로 아웃이요. 저 누나 얼굴 보면 잠 깰것 같은데, 영상통화로 걸어도 되요?’


그 말에 답하지 않고 바로 영상통화로 돌리자, 영상통화로 돌리려고 했던 건지 화면 가득 퉁퉁 부은 제노 얼굴이 보였다. 내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이불로 가리는데, 그거 아니 제노야.


“제노 너무 귀엽네… 우리 제노…”


‘아 뭐에요, 자꾸 반칙 쓰면 진짜 우리집으로 아웃시킬거에요. 나만 보려고 했는데.’


“그건 내가 싫은데. 어때, 내 얼굴 보니까 잠 좀 깨?”


‘네, 그리고 누나 더 보고싶어졌어요. 수업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데리러 갈게요. 우리 만나요.’


“…응, 나 다 도착했어. 더 자고 수업 끝나면 봐요.”


‘부끄러운가 보다, 우리 누나. 퀴즈 잘 보고, 조금 있다 만나요.’


끊어진 전화를 한참이고 보고 있었다. 다정한 말투에 사르르 웃는 얼굴이 눈앞에 둥둥 떠다녔다. 어떻게 해, 진짜 보고 싶다. 부끄러우면서도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강의실로 들어섰다. 수업이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수업이 끝나고 우루루 나가는 무리에 끼여 강의실 밖으로 나가니, 언제 온건지 제노가 벽에 기대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놀래켜주려고 다가가는데, 어떤 여자애가 제노 앞에 딱 선다. 뭐지. 일단 서서 그 둘을 관찰했다.


“저기요,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번호 주실 수 있으세요?”


“누…아, 제가 여자친구가 있어서요.”


“그냥 친구라도 괜찮은데. 번호 주시면 안돼요?”


여자친구 있다잖아요. 얼른 제노에게 다가가 팔짱을 끼자, 인상 가득 쓰고 있던 얼굴이 사르르 펴진다. 내가 대신 제가 여자친구인데요, 라고 하자, 여자분은 얼굴이 빨개진채로 사라졌다. 뭐야, 이상한 사람이야. 사라진 뒷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제노가 팔짱을 빼고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고개를 들어 제노를 보니 활짝 웃는 얼굴이다.


“재밌어?”


“아니요, 누나가 귀여워서요.”


“이상한 사람이야, 여자친구가 있다는데 친구하자니.”


“그러게요, 그냥 결혼했다고 하고 다닐까요?”


“… 너 그러다가 영영 연애 못하는 수가 있다? 여자친구랑 아내는 달라.”


“그러니까 누나가 저랑 연애 계속 해줘요. 결혼했다고 하고 다닐께.”


“…… 몰라. 나 배고파.”


“또 부끄러운거죠? 뭐 먹고 싶어요?”


알면서도 모른척, 지나가주는 제노가 너무 고맙기도 하고, 그 말에 덜컥 미래를 상상해버려서 설레기도 했다. 제노랑 연애하면 심장이 안 남아날 것 같다. 좋은 의미로.


-


오늘의 제목, SHOW ME YOUR LOVE은 엔시티가 커버... 라고 해야할까요, 그 노래에서 따 왔습니다. '너의 전화 속에 수많은 사람, 그 속에 아무인 나는 싫어요' 와 '그대의 모습 그대로 사랑해줘요' 가 이 글의 주인공들을 잘 표현하는 가사라고 생각했어요. 아무인 자기가 싫어서 고백한 제노와, 그 모습 그 대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여주를 보고 싶었어요. 저번 글에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셔서 바쁜 일정 속에서도 꼭, 연애하는 후편을 써야지 다짐했고 그게 오늘이 되었네요. 분량이 많아서 읽으시는데 불편할지 모르겠어요. 이후에도 종종, 조용히 연애하는 모습을 보고싶으면 쓰지 않을까요. 전 연애하는 모습이 많은게 너무 좋더라고요.

본격적으로 후기를 말하자면, 백현님의 '바래다 줄게'를 듣는데 자기를 봐주지 않는 상대를 사랑하는 제노가 보고싶어졌어요. 그래서 쓰기 시작했고, 짠내나는 제노가 나왔더라고요. 짠내는 날대로 났으니, 이제는 다정한 제노를 보고 싶어서 열심히 써봤습니다. 제 생각속의 제노는 충실히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라서 그 부분을 많이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렇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못 이겨서 고백하면서도 눈물 흘리고, 고백을 들으면서 자기보다 작은 사람에게 안기는, 아주 귀여운 부분도 있는 사람이에요. '연하지만 연하같고 또 연하같지 않은'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느껴지셨으면 좋겠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좋아해주셔서 더 감사해요.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습니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1
ㅠㅠㅠㅠ 미쳤다 ㅠㅠㅠㅠ 감사해요 ㅠㅠㅠㅠㅠ 저 이거 꼭 보고싶었거든요 ㅠㅠㅠㅠ 앞 내용은 슬프게 아무 일도 없이 끝나버려가지고 뒷부분 정말 기다리고 있었는데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
4년 전
비회원227.171
선생님 진짜ㅜㅜㅜㅜㅜㅜ다정함으로 죽을거 같아요 제 잇몸 지금 거의 사하라사막급 왜?선생님의 천재적 글을 봐서ㅜㅜㅜㅜ하....
4년 전
독자2
ㅠㅠㅠㅜㅠㅠ아진짜 제노 뭐야........ 왜 대학에 제노 없어.....? 진짜 이번편 엄청 기다리고있었는데 빨리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ㅠㅠ 다정한 이제노 사랑해💚💚💚💚
4년 전
비회원106.76
ㅠㅠㅠㅠㅠ글 너무 좋아요ㅠㅠㅠㅠ작가님 제노 글 많이많이 써주세요ㅠㅠㅠ💚💚💚💚
4년 전
독자3
와 대박대박 사귄다!!!! 감사합니다 제노랑 사귀다니.. 행복한 일만 남았네요 다행이다 그 똥차 지나가는 곳마다 재수없어라... 뭐 덕분에 제노랑 행쇼 했지만 그건 좀 고맙네... 제노랑 오래오래 예쁜 사랑 하세요 ㅠㅠㅠㅠㅠㅠ 아 기분 좋다 ㅠㅠㅠㅠ
4년 전
독자4
지렸다 넘 설레,,,,,,밴츠하면 역시 울 제노💚💚💚
3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분류
  1 / 3   키보드
필명날짜
      
      
      
      
      
강동원 보보경심 려 02 1 02.27 01:26
강동원 보보경심 려 01 1 02.24 00:43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634 1억 02.12 03:01
[이진욱] 호랑이 부장남은 나의 타격_0917 1억 02.08 23:19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817 1억 01.28 23:06
[배우/이진욱] 연애 바이블 [02 예고]8 워커홀릭 01.23 23:54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713 1억 01.23 00:43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615 1억 01.20 23:23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513 1억 01.19 23:26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517 1억 01.14 23:37
이재욱 [이재욱] 1년 전 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_0010 1억 01.14 02:52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415 1억 01.12 02:00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420 1억 01.10 22:24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314 1억 01.07 23:00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218 1억 01.04 01:01
윤도운 [데이식스/윤도운] Happy New Year3 01.01 23:59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120 1억 01.01 22:17
준혁 씨 번외 있자나31 1억 12.31 22:07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나의 타격_0319 1억 12.29 23:13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213 1억 12.27 22:46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118 1억 12.27 00:53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_end22 1억 12.25 01:21
이진욱 마지막 투표쓰11 1억 12.24 23:02
[배우/이진욱] 연애 바이블 [01]11 워커홀릭 12.24 01:07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_1617 1억 12.23 02:39
이준혁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1 1억 12.20 02:18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_1427 1억 12.19 01:40
전체 인기글 l 안내
4/30 11:44 ~ 4/30 11:46 기준
1 ~ 10위
11 ~ 20위
1 ~ 10위
11 ~ 20위
단편/조각 인기글 l 안내
1/1 8:58 ~ 1/1 9:00 기준
1 ~ 1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