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인생에서 늘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자신을 비롯한 주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번의 잘못된 선택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한다. 그래서 그 사소한 선택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좋은 선택과 이어지는 행복한 결말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타이밍이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듯 우리는 살면서 항상 타이밍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간발의 차이로 놓친 버스 한 대가 지각으로 이어질 때, 어느 줄이 더 빠를지 고민하다가 앞 사람이 나보다 먼저 줄을 서버릴 때, 세차를 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릴 때 같은 사소한 것부터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엇갈린 오해를 하거나, 적당한 나이에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과 건강한 나이에 2세를 낳는 그런 중요한 일까지 우리에겐 타이밍이 중요하다. 나는 불행히도 타이밍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눈 앞에서 버스를 놓치기는 기본이었고, 내가 급식실에 갈 때면 늘 많은 수의 무리가 달려와 나보다 앞에 줄을 섰으며 한참을 기다려서 받은 급식이 맛 없는 날, 매점에 가려고 하면 가방에는 늘 지갑이 없었다. 친구들은 날 불운의 아이콘이라고 칭했으며 나 역시 그 타이틀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나 모든 면에서 타이밍이 별로인 내가 사랑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정말 어리석게도 난 늘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리곤 후회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내 학창 시절의 연애는, 정말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타이밍의 중요성 중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정말 영화같게도 한순간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리 잘생긴 편도 아니었고 그저 복도를 걸어가다가 스쳐 지나갔는데도 단숨에 시선을 뺏겼고 재빨리 그 뒤를 따라갔다. 먼발치에서 바라본 남자아이는 더 멋있었고, 그 날 이후로 난 매일같이 그 남자아이를 훔쳐보았다. 그렇게 훔쳐보던 내 시선을 느낀건 다행히도 그 남자아이가 아닌 그 옆에 있는 친구였다. 여느날과 다를 바 없이 남자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내 어깨를 두어번 두드리는 손길에 뒤를 돌아봤을 땐 난 소스라치게 놀랐다. 늘 그 남자아이와 함께있는 아이였기에 그 얼굴을 기억하는건 어렵지 않았다. 그 남자아이를 바라보는 내 시선에는 들켰다, 라는 창피한 생각과 이 아이가 말해서 그 남자아이가 내 행동을 알았을 때 날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공존했다. "안녕." "...." "너 요새 맨날 나 쳐다봤지?" 자신감이 넘치는 그 말투에 잠시 멍했다가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니 내 앞의 남자아이는 두 눈이 동그래지며 언성을 높여 내게 물었다. "설마 내가 아니면, 저 자식이야?" "...." "내가 아니고 저 자식? 저기 쟤?" 정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어오는 그 질문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남자아이를 향해 이동하였다. 혹시 들은 건 아닐까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다행히도 그건 아닌듯 했다. 다시 내 앞의 남자아이에게 시선을 돌리니 혼자 믿을수 없다는 둥, 내가 뭐가 모자라냐는 둥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자기 자신에 대해 꽤나 큰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심각해보이는 왕자병 증세에 혀를 쯧쯔-차며 뒤돌아서는 나를 그 남자아이는 붙잡았다. "그냥 가게?" "어?" "너 쟤 좋아하지?" "...." "니가 원한다면 해줄게." "뭘..?" "음, 사랑의 오작교? 연결고리?" "...." "내가 너 도와줄게." 우습게도 그 말에 한순간에 혹했다. 내 능력으로 남자아이에게 다가갈수 있을리 만무했다. 머뭇거리며 그 눈치를 보다가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김태형이야." 그 아이는 말했다. 김태형은 내게 그 남자아이의 취미, 습관, 좋아하는 음식, 심지어 즐겨하는 게임까지 알려줬지만 내겐 쓸모가 없었다. 난 1년이 다 되가도록 그 남자아이에게 말 한번 건네보지 못했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용기가 전혀 나지를 않았다. 아마도 처음 느껴보는 설레인다는 이 감정에 나조차도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김태형은 답답해 속이 터져 죽겠다고 했다. 뭐 인사라도 해야 친구를 하던 연애를 하던 할 거 아니냐며 늘 나를 타박하기 일수였다. 하지만 난 미련하게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런 김태형은 늘 내 옆에 있었다. 2학년이 되었을 때, 난 그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다. 역시 같은 반이 된 김태형은 옳다구나하고 나를 그 아이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같은 반 친구라는 이름 아래에서 나는 조금은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내 인사를 받는 그 아이의 미소에 나도 모르게 긴장하여 숨 막힐듯 어색하던 공기속에서 그제서야 비로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정말 드라마틱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그 남자아이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웃음이 나고 티격태격해도 그것이 싫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요즘에 흔히 말하던 썸이었다. 믿을수 없게도 난 그 아이와 썸을 타고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사심가득했던 내 행동에서부터 시작된 일이겠지만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전혀 개의치 않았다. "ㅇㅇ아, 나랑 사귈래?" 급작스럽게 들은 말이었다. 급식실에서 같이 밥을 먹던 중 기습적으로 내 귀에 닿은 그 말에 손에서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미안, 많이 놀랐어? 다정하게 물으며 바닥에 떨어진 숟가락을 주으며 남자아이는 물었다. 아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토록 듣고 싶은 말이었고 기다리던 말이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게 느껴지는 감정은 당황스럽고 놀란 그 감정 하나였다. 절대 싫은 것이 아니었다. 터질듯이 뛰는 심장이 그걸 증명했다. 낯선 경험이 주는 당혹감은 그 순간의 날 도망치게 만들었다. "미안!"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나오며 내가 남긴 말은 그저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싫어서 그런것이 아니었으며 거절의 의미는 더더욱 아니었다. 단지 막연하게 꿈꿔만 오던 그 상황에 놀랐고 그에 대한 내 대처는 미숙했다. 미숙했던 내 대처와는 다르게 그 당시의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할만큼 성숙했다. 그 아이가 좋았지만 나는 많은 것을 따졌다. 나는 그 아이를 오랜 시간 지켜보고 좋아했지만 그에 비해 그 아이는 나에게 관심을 가진지 얼마되지 않았다. 시간에 따른 마음의 크기를 비교하던 나는 무려 일주일이나 망설였다. 일주일동안 나는 그 때의 그 말을 못 들은것처럼 행동했고 오히려 그 아이를 피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내게 말을 하려고 시도하던 아이도 시간이 지나자 그만두었다. 미련하게도 오랜 시간을 머뭇거리던 나의 마음은 여전히 그냥 그 아이가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난 비록 오랜 시간이 걸였지만 그냥 그 나이의 아이가 되기로 결정했다. 길고 짧은 걸 따지지 않고 그냥 마음가는대로 행동하는 것이 맞았다. 그렇게 결심하고 열심히 연습했던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을때 나는 무척이나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등교했다. 등교시간이 설레고 들뜨는 것은 참 오랜만이었다. 용기내서 내 마음를 고백하고 오랫동안 꿈 꿔왔던 일을 맞이하고 싶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타이밍이라는 건 맞지 않았다. 빈 아이의 자리에 의아함을 느끼며 아침 조회를 시작했을 때 담임 선생님 제일 먼저 전한 소식은 그 아이가 전학갔다는 소식이었다.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눈물이 날것 같아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에게로 김태형의 걱정 어린 시선이 닿았고 그 시선을 애써 모르는척하며 힘겹게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조회가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터질것만 같아 멀리 달려야했다. 한참을 뛰어 도착한 학교 구석 작은 벤치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자리에 쓰러지듯이 주저앉았다. 배신감, 야속함 같은 처음 경험보는 생소한 느낌에 화가 난다기보다는 한없이 슬퍼졌다. 그리고 가볍게 지나간 그런 감정들보다 무엇보다 크게 다가왔던 건 미련했던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었다. 나와 사귀게 되었다고 해서 안 갈 전학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 차마 내 마음 한번 전하지 못했다. 누구보다 오랫동안 소중하게 지키고 가꿔온 내 마음을 한순간에 그렇게 묻어야한다는게 서러웠다. "...괜찮아?" 꼭꼭 숨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날 찾은 것인지 김태형은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이가 김태형과 친했던만큼 미리 알고 있었을텐데 왜 알려주지 않았냐고 따지려다가 그만두었다. 지금 하는 내 모든 행동은 나에 대한 화풀이에 지나지 않았다. "짜증나." "...." "나쁜 새끼, 그 때 미리 말해줄 수 있었잖아. 그럼 더 빨리 용기내는건데." "...." "좋아했어. 진짜 좋아했는데, 걔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좋아했는데..." "...." "이번에는 용기내서 말하려고 했는데... 좋아한다고 하려했는데..." "...." "타이밍 한번 거지같다." 그리고는 참아왔던 눈물을 펑펑 쏟았다. 서럽게 우는 내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김태형은 조심스럽게 내 어깨를 토닥거렸다. 가장 어색하고 어설펐던 그 손길에 나는 위로받았다. 전혀 가벼운 감정은 아니었지만 다른 이에게라도 털어놓고 난 후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고 서서히 마음을 정리할수 있었다. 그리고 그 쓰디쓴 눈물을 맛본 후에야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그 날 이후로 그 말은 내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문장이 되었다. 그 아이가 사라지고 나서 어색해 질 거라고 생각했던 나와 김태형의 사이는 의외로 그 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3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김태형과 또 같은 반이 되었고 김태형은 전보다 내게 더 편한 친구가 되었다. 김태형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다른 아이들보다 김태형이 편했다. "나 김태형 좋아해." 같은 반, 혹은 다른 반 여자아이들에게 김태형은 꽤나 인기가 많았다. 솔직히 김태형은 잘생겼다.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졌고 키도 제법 큰 것이 남자다웠다. 그리고 공부도, 운동도 잘했고 별나긴 했지만 성격도 좋았다. 그러니 주위 여자아이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냉정한 놈." "어?" "지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그렇게 단칼에 거절해?" 하지만 김태형을 마음에 들어하던 여자아이들의 태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뀌었다. 내가 아는 김태형과는 다른 수식어가 김태형에게 붙었다. 냉정한 놈, 차도남, 싸가지 등등. 김태형에게 고백했다가 한순간에 차인 여자아이들이 김태형을 부르는 말이었다. 김태형은 인기가 많았지만 그에 비해 주위에는 이성친구가 없었다. 동성친구들은 많았지만 주위에 여자인 이성친구를 뽑아보자면 고작 나 하나뿐이었다. 여자아이들이 친해져보려고 다가오면 김태형은 스스로 차갑게 철벽을 쳤다. 그런 다가옴을 외면하는 김태형의 차가운 모습은 날 대할때의 김태형의 태도와는 달랐다. 김태형은 다른애들과는 다르게 내게 상냥했다. 굳이 말하자면 다정했다고 해야하나. 흔히들 츤데레라고 하는 안해주는척하면서도 결국엔 다 해주는 그런 사람이었고 사소한 것들마저도 챙겨주었다. 물론 그런 김태형에게 호감을 느껴본적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가끔은 그런 김태형에게 감동받았고, 설렘을 느낀적도 있었다. 김태형은 참 좋은 남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내가 김태형을 좋아한다고 생각해본적은 없었다. 그저 편한 친구라는 이름으로 나 혼자서 김태형을 정의했다. 여고에 가라는 부모님에 권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녀공학에 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 이유에 김태형도 포함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참 대단하고 신기하게도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 한 김태형은 또다시 같은 반이 되었다. "완전 운명." "뭐래." "맞잖아. 야 우리 소울메이트 아니야?" "꺼져, 제발." 그 날부터 김태형은 내게 주구장창 운명 타령을 했다. 시덥잖은 소리 그만하라며 짜증을 내는 내게 끈질지게 달라붙던 김태형은 결국 지쳐서 마지못해 체념하듯이 하는 내 끄덕거림을 얻어냈다. 김태형은 앞으로도 등하교 친구는 문제없다며 기뻐했다. 나는 거기다대고 누가 너랑 등하교해준다고 했냐고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사실은 나도 좋았다. 김태형과 앞으로도 같이 지낼수 있다는 것이 나도 참 좋았다. 시간이 지나 꽃이 피는 봄이 왔다. 올해는 꼭 가고싶었던 벚꽃 축제와 꽃 박람회에 가지 못한 나는 그 시기에 무척이나 시무룩해있었다. 식욕도 의욕도 없어 무기력하게 한가한 점심시간에 밖을 내다보고 있던 중, 김태형은 나를 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야! 어디 가는데." "조용히 하고 좀 따라와봐." 막무가내로 나를 이끌던 김태형이 도착한 곳은 학교 근처 작은 언덕옆이었다. 작은 언덕이었지만 그 주위에는 갖가지 꽃들이 아름다운 색을 뽐내며 피어있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김태형이 나를 위로하기 위해 한 일임을 알아챘다. 고마운 마음에 김태형을 보고 한번 웃은 나는 쭈그리고 앉아 꽃을 구경했다. 꽃 박람회의 꽃보다는 훨씬 작고 소박했지만 꽃들은 그 자체로 아기자기하고 향긋했다. "야." 김태형은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있던 나를 불렀다. 그 부름에 꽃을 바라보고 있던 고개를 돌리고 김태형을 쳐다보았다. 김태형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신발코로 애꿎은 땅만 팠다. "왜?" "...할말 있어. 쪽팔리니까 앞에 좀 봐봐." "뭔데?" "앞에 좀 보라니까." 자기가 불러놓고 이제는 또 앞을 보란다. 퉁명스럽게 돌아오는 그 말에 괜시리 툴툴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자! 됐지?" "...." "뭔데, 할말." 생각보다 다음 말이 돌아오기까지의 텀이 길었다. 기껏 원하는대로 해줬더니 또 한참을 머뭇거리던 김태형에 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기다리다 못해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김태형의 말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굳었다. "나," "...." "너 좋아하는 것 같아." "...." "아니, 좋아해." "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꽤 오랫동안 그랬어." "...." "...너는 어때?"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말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할때쯤 훅 들어온 질문에 당황스러움은 두 배가 되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쭈그려 앉은 그대로 어버버거렸다. 그런 나에도 김태형은 날 독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미안." 이번에도 내 대답은 같았다. 순간 2년전 그 급식실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대답은 의미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예전의 난 처음 겪는 당황스러웠던 상황을 피하고자 했던 대답이었지만 김태형에게 전한 내 대답에는 내 뜻이 담겨있었다. 김태형은 좋은 아이였고 내게는 좋은 친구였다. "...그래." 뒤에서 들려온 대답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왠지 모를 복잡한 감정에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김태형이 이제 나랑 친구 안하겠다고 하면 어쩌지, 나한테 김태형은 그냥 친구 맞겠지 등등. 머릿속을 가득 채워오는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 잔뜩 웅크리고 있던 나를 김태형은 일으켜 잡아끌었다. "가자." "...." "늦었어. 진짜 점심 안 먹을거야?" 그 날 이후 김태형은 변했다. 아니 달라졌다고 해야하나. 날 대하는 태도는 그대로였다. 날 놀리던 것도 그대로였고 날 챙겨주는 것도 그대로였다. 김태형이 달라진 부분은 세상에 여자는 엄마와 나밖에 없던 것처럼 여자아이들에게 철벽을 치던 김태형의 철벽이 스스로 허물어졌다는 것이다. 김태형은 언제 그랬냐는듯 스스럼없이 여자아이들을 대했고 심지어 몇몇 아이들에게는 먼저 다가갔다. 내게 그런 김태형의 모습이 낯설지 않을리가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듯 낯설어하는 나와 다르게도 김태형은 예전 자신의 모습은 잊어버린듯 너무나 능숙하게 새로운 모습에 적응했다. 그런 김태형의 모습을 보면 난 기분이 이상했다. 전에는 김태형이 누구랑 놀고 있던 신경 쓰지 않았다. 김태형의 첫번째는 늘 나였고 마지막도 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김태형의 처음과 마지막이 내가 아니란 것이 느껴졌다. 그걸 인식한 그 순간부터 나는 김태형이 신경쓰였다. 나를 찾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괜시리 옆에 있었고 자꾸만 김태형에게 시선이 갔다. 그 증상은 김태형이 여자아이들과 있을 때 더욱 또렷했다. 인정할 수 없었고, 인정하기 싫었지만 어느 순간 난 느끼지 않았었던 질투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여름방학이 되고 며칠 후, 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사실은 유학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일이긴 했다. 단지 미국에 사는 고모네 집에 반년정도 머무는 것 뿐이었다. 예전부터 미국에 가보고 싶다고 조르던 나였기에 고모가 어학연수 오는 셈으로 여기라며 허락해주셨고 자연스럽게 내 유학이 결정되었다. 내 유학이 결정 되었을 때 난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원하고 원했던 일이었지만 그 일이 실제가 되었을 때 난 무언가가 마음 속에 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왠지 모를 찝찝한 느낌. 하지만 그 당시를 내 인생의 중요한 타이밍이라고 여겼다.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갈 수 없을것 같았다. 그래서 난 친한 친구들에게 그저 다녀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물론 김태형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내 유학은 대실패였다. 야심차게 공부하겠다고 생각했던 마음과는 달리 미국에서의 어학연수는 실패했다. 공부가 되질 않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향수병도 아니고 적응을 못해서도 아니었던 그 이유는 태형이, 김태형이었다. 미국에서 난 늘 김태형 생각을 했다. 수업시간에도 김태형이 생각났고 미국인데도 길을 걷다가 김태형 닮은 사람을 보았다고 착각하고는 했다. 떨쳐보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나도 내 자신이 이상했기에 수도 없이 노력했고 또 애썼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증세가 심해졌다면 모를까. 김태형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지만 연락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용기내지 못한 내 미련함은 내 마음을 한껏 부풀게 만들었다. 그렇게 괴로워하면서 내린 결론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난 김태형이 그리웠고 보고싶었다. 한참이나 늦어버린 타이밍에서 그제서야 난 김태형을 좋아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반년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김태형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예전의 고등학교로 돌아온 나는 2학년이 되어서 같은 반에서 김태형을 다시 만났다. 반년만에 만난 김태형은 더 잘생겨졌고 멋있었다. 연락도 없이 돌아온 내가 놀라울만도 했다. 그랬기에 김태형은 나를 만났을 때 매우 놀랐다. 당황해 잔뜩 커진 눈으로 내게 인사를 건네는 김태형을 보았을 때, 내가 김태형을 보면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대상은 바뀌었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날 또 다시 설레게 만들었다. 지난번의 뼈 아픈 시간을 경험 삼아 이번에는 더 빠르게 용기를 냈다. 며칠동안의 고민 끝에 난 김태형에게 내 마음을 전할 다짐을 했다. 조금 더 내 마음을 일찍 알지 못해 미안하다고 나도 너와 같다고 그 때 하지 못했던 대답을 전하고 싶었다. "어? ㅇㅇㅇ!" 생각을 정리하고 교실로 돌아오던 중 뒤에서 내 이름이 들렸다. 그 목소리가 김태형의 것이라는 걸 알게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익숙한 그 목소리에 뒤를 돌았을 때 내 앞에 있었던 건 역시나 김태형이었다. 근데, 하지만 지금 김태형의 옆에 여자아이는 내 예상에 없었다. 긴 웨이브머리에 큰 눈을 가진 여자아이는 김태형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처음보는 낯선 얼굴에 나도 모르게 여자아이를 경계를 하며 김태형을 쳐다보았다. "ㅇㅇㅇ, 인사해." "어?" "얘 한지윤이야. 여기는 ㅇㅇㅇ." "안녕! 너가 ㅇㅇㅇ이구나. 태형이한테 말 많이 들었어." 내 얘기를 많이 들었다는건 거짓말같았다. 그냥 상황을 보자니 김태형의 친구인 것 같은 내게 건네는 인삿말이었다. 내게 연락 한번 하지 않았던 김태형이 모르는 아이에게 내 얘기를 줄줄 했을리 없다. "응. 안녕." 내 인사를 끝으로 끊겨버린 대화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인사를 마친 후에도 가지 않고 멀뚱히 서서 나를 바라보는 지윤이라는 아이의 시선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근데... 너도 친구야?" "응?" "김태형 친구?" "아." "...." "내가 말을 안했구나."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말하며 김태형이 여자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스킨쉽이었다. 그 모습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내 여자친구야." 뿅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머리가 띵했다. 머릿속이 한순간에 멍해져 사고가 정지되었으며 긴장하고 있던 몸이 풀렸다. 김태형에게 전하려고 열심히 준비했던 내 진심을 담은 말들은 단번에 소용없어졌다. 용기내어 준비한 내 진심은 차마 전하지도 못한채 여기저기로 흩어져 어느새 너무나도 빠르게 사라졌다. 죽일 놈의 타이밍, 서둘렀다고 생각했는데 난 또 늦어버렸다. 안녕하세요! 누구보다 빠르게 돌아온 태꿍입니다! 그런데 기다리셨던 글이 아니라구요?! 이제 궁색한 변명을 시작해보자면... 빨리 글을 가져오고 싶었지만 9년째 연애중의 완결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완결까지의 스토리를 우선 더 다듬고 다듬어서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바로 가져오지 못했어요ㅠㅠㅠ 글이 다 완성 될 때까지는 이 글로 찾아뵐거 같아요~ 그렇지만 이 글이 장편은 아니기 때문에! 아직 다 쓰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2~3편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아 그래서 일주일 후에는 다시 9년째 연애중을 들고 찾아올수 있을거 같아요!! 이상 태꿍의 궁색한 변명이였구요ㅎㅎ 부족하지만 이 글도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은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늘 감사합니다♡ [암호닉] 슈웁 / 석진센빠이 / 샘봄 / 루리 / 수대 / 윤기부인 / 부릉부릉 / MSG / BBVI / 전정ㄱ국 / 전정국부인 / 충전기 / 밤열한시 / 슙 / 달달 / 초딩입맛 / 설날 / 꾸탱 / 슙슙 / 넠넠 / 반딥 / 두둥 /슈나무 / 윤여 / 깜냥 / 단미 / 남준시 / 콩 / 자몽 / 계피 / 딸기 / 워킹 (이번편에는 암호닉 신청 받습니다~^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