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 연애중 15 내가 생각해도 난 참 나쁜 사람이었다. 같은 날에 받은 두개의 선물을 모두 하고 다닐수 없었던 나는 그 중에 하나만을 선택해야했다. 그리고 내 선택을 받은 것은 민윤기에게 받은 목걸이였다. 역시나 익숙하지 않은 탓에 목걸이가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꿋꿋했다. 선택하지 않은 김태형의 선물은 그대로 두었다. 누군가 나쁜 년이라고 나를 욕해도 나에게는 핑계거리가 있었다. 나는 내게 반지를 주던 김태형과 같은 마음이 아니었기에 김태형의 그 반지를 낄 수 없다. 그것이 나 자신을 방어하고 합리화하는 핑계였다. 민윤기가 준 반지는 참 예뻤다. 별 모양에 작게 큐빅이 박혀 있는 반지를 섣불리 손에 끼지 못한다는게 아쉬웠지만 목걸이로 하고 다니며 위안을 삼았다. 친구들과 간만에 약속이 있었기에 나름 신경을 써 반짝반짝하게 꾸미고 나갔고, 친구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단연 내 목에 걸린 반지였다. " 야, 이거 반지야? 예쁜데? 어디서 샀어? " " 이거? 아 선물 받았어. " " 헐 누구? 누가 너한테 이렇게 예쁜 걸 줬대? 주인이랑 안 어울리게. " " 뭔 헛소리야. 나랑 완전 잘 어울리거든? " " 네네. 근데 왜 반지인데 목걸이로 줬대? 누가 준거야? " " 어휴- 둔팅아. 뭘 묻냐. 얘 요즘에 썸남있잖아. 그 사람이 줬겠지. " " 에? 썸남? " " 맨날 같이 다니는데 몰랐어? 이름이 뭐였지, 김...태형! 맞아, 김태형. 우리 학교던데? " " 와, 너 썸타? 이것 봐라- 민윤기는 어쩌고. " 왜 그 이름이 안 나오나 했다. 20대 여자들이 만나서 하는 대화 주제는 뻔했다. 연애, 그 중에서도 오래동안 지겹도록 이어진 민윤기와 나의 연애는 늘 우리의 핫한 대화거리였고 헤어진 후에도 딱히 달라진건 없었다. " 아, 뭐라는거야. 썸은 무슨. 그냥 친구야. " " 엥? 아니라고? 너네 과 애들은 다 알던데. " " 미치겠다. 소문이 그렇게 났어? 아, 진짜. " " 뭐 어때서- 솔직히 그 사람 너 좋아하는거 맞지? 다 티나던데. " " 그 사람 잘생겼냐? 민윤기보다? " " 어, 앵간. 키도 크고 옷도 잘 입던데? 웃는거 완전 귀여워. 훈남스타일. 민윤기랑은 이미지 완전 다르고. " " 대박. 왠일이야. 계탔네. " " 너 스타일이면 잘해보던지. " " 와, 너 진짜 관심 없나보다. 하긴, 넌 지금까지 일편단심 민들레, 아니 민윤기였지. " 뭘 또 일편단심까지야... 반지를 만지작 거리며 중얼대었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정말 일편단심이었다. 민윤기의 여자친구였던 수많은 해를 나는 지조있게 지켜왔다. 미팅도 한번 하지않고 군대도 기다리면서. 하지만 그 결말은 슬프게도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연애나 많이 해볼걸. 그 긴 시간을 그냥 보낸게 아깝다며 툴툴대기도 했지만 내 본심은 절대 난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았다. 나에게 민윤기와 함께 했던 9년은 소중했다. 혼자 걱정하고 상처받다가 끝에는 도망쳐버린 나지만 난 그 시간이 그리웠고 후회했다. 한 순간에 그렇게 끝내버릴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럴 수 없었지만 나는 그걸 몰랐고 그것이 내가 후회하고 있는 이유였다. 친구들과 카페에서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나는 술을 들이켰다. 술에 약해서 금방 취하는 타입이었지만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술이 땡기는 날이 있었다. 오늘이 그 날이었고 그냥 술이 땡겼으며 오늘따라 쭉쭉 넘어가는 술에 어느새 나도 내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나는 평소보다 금방 취해버렸다. 밀려오는 어지러움에 정신이 없었고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상태가 멀쩡한 친구가 나를 챙겨 데려다 주려고 가게를 나섰지만 본인도 어지러운 마당에 힘 없이 축 늘어진 나를 챙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근처 벤치에 나를 앉혔다. " 야야. 정신 좀 차려봐. " " 으... " " 아오, 얘를 어떡하지. " " ... " " 아, 나 너 핸드폰 좀 줘봐. " " ...폰? " 희미한 정신으로 밍기적거리며 가방을 뒤적여 핸드폰을 찾았다. 그리고 팔을 뻗어 친구에게 건네니 기다렸다는 듯이 폰을 잽싸게 가져간다. " 나 민윤기한테 전화한다? " " ...어? " " 민윤기한테 전화해서 너 데리고 가라고 한다? 그래도 되지? " 안되는데... 이렇게 추하게 늘어진 꼴 보이기 싫은데... 술에 잔뜩 취한 모습을 한두번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왠지 더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과 다르게 내 입은 꿈쩍하지 않았고 나오지 않는 내 침묵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인 친구는 핸드폰을 눌러 민윤기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수신음 끝에 이어진 목소리에 반가워하며 상황을 설명을 하는 친구의 모습을 끝으로 나는 정신을 놓았다. " 일어나봐 좀. " " 으... " " 술을 얼마나 마신거야 진짜. 잘 마시지도 못 하면서. " " ...어? 윤기, 윤기다! " 내 앞에 민윤기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자마자 날 일으켜 세우는 민윤기의 손을 떨쳐내고 두 손을 민윤기의 뺨에 가져다대었다. 손에 힘을 주고 뺨을 누르니 눈이 동그래져서는 나를 쳐다본다. 그 모습이 웃겨 크게 웃으니 불만 가득한 눈빛을 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 야. 뭐가 그렇게 웃겨. " " 대박이야. " " 그만 웃어라. " " 민윤기 진- 짜 못생겼다! 입술 막 쭉 이렇게 하니까. " " 이게 진짜. " 결국 민윤기는 내게 꿀밤을 선물했다. 평소에는 그저 간지럽게 여겨졌을 이마에 콩하고 쥐어박은 꿀밤이 술에 취해서인지 몇 배는 아프게 느껴졌다. 머리를 감싸쥐고 문지르며 뒷걸음질 치던 나는 그만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다행히도 그런 나를 민윤기가 잽싸게 잡아 다시 벤치에 앉혔기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 정신 좀 차려봐. 집에 가야지. " " 안 갈래. 못 가. 어지러워- " 집에 가지 않겠다는 격렬한 저항의지로 고개를 푹 숙이자 민윤기는 작은 한숨를 내뱉으며 털썩 내 옆 벤치에 앉았다. 고개를 슬쩍 돌려 민윤기를 바라보니 민윤기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채로 있었다. " 그러면 조금만 쉬다가자. 너 술 좀 깰 때까지. " " ... " " 나 눈만 감고 있을 테니까 술 좀 깬 거 같으면 말해. 그 때 데려다줄게. " 민윤기가 눈을 감고 있다는 걸 잊었는지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숙였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면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기에 나는 불편하지만 짧은 잠을 청했다. 조금씩 서서히 느껴지는 한기에 두 팔을 비비며 눈을 떳을 때, 사방은 쥐죽은 듯이 조용하고 컴컴했다. 어두운 것을 싫어하지만 그래도 무섭지 않았던 이유는 내 옆에 아직까지 그대로 있던 민윤기 때문이었다.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아까 그 자세 그대로 있는 것이 참 신기했다. 민윤기에게 이제 술 좀 깻으니 그만 집에 가자고 말을 걸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은 눈만 감고 있겠다고 선언하던 민윤기는 어느새 나보다 더 깊이 잠들어있었다. 너나 나나 길에서 뭐하는거니. 벤치에 앉아 꾸벅꾸벅 자고 있었을 우리의 모습이 머리속에 그려졌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와 소리내어 웃으려다가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내 웃음소리에 곤히 자는 민윤기가 깨버리면 어쩌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조심히 민윤기를 확인했고 다행히도 민윤기는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어두운 거리 속 벤치 옆 유일한 가로등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은 민윤기의 위로 아름답게 쏟아졌다. 그랬기에 나는 그냥 넋을 놓고 민윤기를 바라보았다. 내가 부러워죽겠다고 했던 감긴 눈 위를 덮은 속눈썹과 매끄럽게 떨어지는 콧대, 오밀조밀한 입술까지. 새삼 조명을 받으며 그 얼굴을 살펴보고 있자니 괜시리 묘하고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큼큼- 두번 헛기침을 한 후 애써 민윤기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떨어진 시선으로 허공을 보고 있기를 얼마 후, 민윤기를 깨워야하나 더 자도록 그냥 둬야하나 하는 내적갈등에 빠졌다. 곤히 자는 민윤기를 깨우자니 그렇고, 그렇다고 여기서 이러고 있기는 또 뭐했다. 난감한 상황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내게 한차례의 졸음이 밀려왔다. 아직까지 남아있던 취기와 더해져 그 위력이 대단해진 졸음은 날 다시 눈을 감게 만들었다. 하지만 난 아까처럼 고개를 숙인채 눈을 감지 않았다. 그 대신에 몸을 조금 움직여 민윤기에게로 갔다. 멀지 않았던 우리 사이지만 그 사이가 빈틈 없이 메워졌다. 그리고 나는 민윤기의 눈치를 보며 민윤기의 어깨에 살며시 기대었다. 그러자 민윤기의 고개가 내 쪽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누가봐도 연인의 모습일 우리의 모습에 입가에 작게 웃음이 번지었다. 민윤기 몰래 이러는게 신경쓰여 슬쩍 민윤기의 눈치를 한번더 봤다. 마지막으로 민윤기의 눈치를 살핀후 정말로 민윤기에게 기대었다. 만약 민윤기가 뭐라고 한다면 그저 이렇게 말하면 되었다. 어제는 그냥, 술김이었다고. 민윤기에게 기대어 잠든 기억을 마지막으로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보았던 것은 너무나도 익숙한 우리집 풍경이었다. 혹시 어제가 꿈이었던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뒤의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민윤기가 일어나서 데려다줬겠지. 단지 아쉬운 것은 민윤기가 언제 일어났을까였다. 빨리 깨버렸다면 내가 민윤기에게 기대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을텐데... 하는 마음에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동안 필사적으로 김태형을 피해 다녔다. 연락이 와도 받지 않았으며 학교에서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비겁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내가 지금 김태형을 마주하는건 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 줘야할 상처를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조금씩이나마 거리를 두어야했다. 김태형과 같은 강의를 듣는 날이었다. 혹시나 강의실에서 김태형을 마주치게 될까봐 일부러 제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였다. 역시 앞자리는 가득 차 있었고 나는 강의만 듣고 나가기 위해 계획대로 맨 뒷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쭉 내밀고 앞자리의 사람들을 둘러 보았지만 김태형의 뒷통수를 찾을수 없었다. 늦잠을 잔건가. 이렇게 아무 말 없이 빠지고 그런 아는 아닌데. 무슨 사정이 있나. 아니, 혹시 어디가 아픈건 아닐지 하는 마음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놓쳤을수도 있다고 생각해 고개를 더 내밀고 앞자리를 둘러보았다. " 뭐해? " " 엄마야! " 앞자리를 둘러보느라 정신이 팔려있던 내게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옆을 바라보니 김태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방에서 책을 꺼내고 있었다. " 어? 그냥... " " 나 찾았지? " 어쩜 그렇게 정곡을 찌르는지.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난감했다. 김태형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준비했던 내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갑자기 나타난 옆사람 때문에 놀랐는데 그 사람이 피하려고 했던 김태형이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너무나도 태연하게 내 옆에서 짐을 풀고 있는 김태형 때문에 당황스러움은 배가 되었다. " 나 무사히 왔으니까 걱정 마시고 이제 수업에 집중 하세요. " 김태형은 턱을 괸 채로 나를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토록 찾으려고 했던 김태형의 뒷통수를 바라보았다. 김태형을 걱정한게 맞았다. 김태형이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걱정이 되었다. 시선이 닿는 곳에 늘 있던 사람이 없을 때의 허전함은 컸다. 그것은 김태형도 민윤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강의가 끝나기 조금 전부터 꼬물거리며 가방을 싸 놨기 때문에 강의가 끝나자마자 가방을 들어 강의실을 나가려고 했다. 그렇게 살금살금 나가려고 했다. " 야. " " ...어? " " 어딜 몰래 도망가. "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한번에 멈춰 세운 김태형은 성큼성큼 내 쪽으로 걸어왔다. 너무나도 빨리 다가온 김태형 때문에 당황스러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김태형은 그런 내 손목을 잡고 나를 잡아 끌어 강의실을 나왔다. " 할 말 있어. 나가서 얘기하자. " 김태형은 학교의 작은 쉼터 같은 곳에 날 데려갔다. 그리고는 나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어디론가 걸어갔다. 우리 학교에 이런 곳이 있었나. 새삼 놀랐다. 수년간 학교를 다니면서도 몰랐던 곳이었다. 주위에는 초록빛의 풀과 나무들 사이에 예쁜 색의 다양한 꽃들이 피어있었고, 사방에서 꽃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햇빛도 딱 좋을 만큼 적당히 비추었다. 진짜 예쁘다. 민윤기도 되게 답지 않게 꽃 좋아하는데, 나중에 데리고 오면 좋아... 생각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 어딜 가나 민윤기 생각이구나. 심지어 김태형이 데리고 온 곳인데도 불구하고 민윤기와 함께 오고 싶어했다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에서 죄책감이 피어올랐다. 나도 감당할 수 없는 마음에 속상해 한숨을 내쉬며 두 손에 얼굴을 묻어 마른세수를 하였다. " 너 무슨 일 있어? "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김태형이 내 앞에서 서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두 손에는 음료수 한 캔씩을 들고 나를 잔뜩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김태형에게 고개를 저었다. " 아니, 아니야. 아무것도. " " ...진짜? " " 응. 별거 아니야. " " 알겠어. 어떤거 마실래? " 두 손을 함께 내미는 김태형에게 손가락으로 오른손을 가리켰다. 그러자 김태형은 내게 오른쪽 음료수를 건네고 자기는 왼쪽 음료수를 따서 마셨다. 나도 김태형을 따라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시원한 음료수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면서 몸 안 가득 시원한 느낌이 가득 퍼졌다. " 너, " " 어? " " 왜 요즘 나 피해? " 김태형은 또 한번 정곡을 쿡 찔렀다. 너무나도 훅 들어온 직접적인 물음에 느낀 당황스러움이 얼굴 가득 퍼졌을 것이 뻔했다. 놀란 내가 아무말도 하지 않자 김태형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 너... 내가 반지 줘서 부담스러워서 그래? " " ... " " 응? 그런거지? " 아무런 대답도 건넬 수 없었다. 내 어떤 대답도 김태형에게 상처가 될 것이 뻔했다. 누군가 자기 마음을 부담스럽게 여겼을 때, 그 속상함이 어떨지 나는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큰 상처로 다가올 것이라는건 알았다. 그래서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한채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 ...맞네. " " ... " " 너 이럴까봐 진짜 안 주려고 했는데. " " ... " " 내가 미안해. 네가 이렇게 부담스러워할 줄은 몰랐어. " 김태형, 진짜 널 어쩌면 좋으니. 도대체 너가 뭐가 미안해... " 미안해. 응? 그니까 나 좀 봐봐. " 자기 좀 보라며 애원하는 김태형에 결국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김태형을 바라보았다. 김태형이 허리를 구부리고 나를 보고 있었기에 금방 눈이 마주쳤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김태형의 걱정이 한 가득 묻어있던 표정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졌다. " 부담스러워 하지마. 나 지금 당장 바라는거 아니야. 너한테 강요하는 것도 아니야. 내가 나쁘게 그냥, 욕심 낸거야. " " 너가 뭐가 나빠... 내가 나쁘지... " " 아니야, 나빠. 네가 아니라 내가 나빴던 거야. " 울컥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순식간에 입술을 짓이기지 않았다면 속절없이 떨어졌을게 분명했다. 김태형의 말에 위로가 되는 듯 했다. 알고 있었다. 정말 나쁜 건 나라는걸 알고 있었지만 그냥 모르는척, 그렇게 위로받고 싶었다. " 미안해. 내가 너 피했어. 안 그런척 하면서 사실... 힘들었나봐. 내가 미안해. " " 아, 진짜 어떡하지... 나 진짜 나빴다. " " 아니야. 절대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지마. 그냥 나 혼자서 걱정하고 멍청했어. 절대 너 때문 아니야. " " ...진짜? " " 응응. 진짜 아니야. " " 그러면... 나랑 다시 친구해주는거지? " " 어? " " 나 예전처럼 다시 너 친구 시켜주는거지? " " 당연하지. 왜 다시야. 우리 계속 친구였잖아. " " 아, 진짜 다행이다! " 김태형은 두 팔을 위로 쭉 뻗으며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얼굴에는 그 특유의 해맑은 웃음을 가득 띄운채 말이다. 선물이라도 받은 양 좋아하는 그 모습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난 나쁘게도 내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냈다. 김태형에게서 위로를 받고 나 혼자를 스스로 애써 포장하였다. 약속이 있다며 아쉬워하는 김태형을 뒤로 하고 혼자 집으로 향했다. 해가 저물어 날이 약간 어둡기는 했지만 여자 혼자 걷기에 큰 무리는 없었다. 오늘따라 기운이 없어 고개를 숙이고 터덜터덜 걸어가다 고개를 들었을 때, 저만치 떨어진 거리에서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는 익숙한 뒷모습을 보았다. 그 뒷모습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민윤기였다. 별로 떨어진 거리는 아니었지만 따라잡기는 살짝 귀찮았던 나는 그 간격을 유지한채로 민윤기의 뒤를 따라걸었다. 민윤기는 아마 내가 뒤에 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뒤 한번 돌아보지 않았으니까. 어느새 우리 집, 그니까 민윤기 집과 내 집 근처에 도착했다. 민윤기가 들어가면 나도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민윤기는 왠일인지 곧바로 들어가지 않고 멈춰섰다. 그것도 본인의 집이 아닌 우리 집 앞에. 고개를 들어 내 집을 올려다보던 민윤기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눌렀다. 민윤기가 핸드폰을 귀에 가져감과 동시에 내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 액정에 가득 뜨는 민윤기의 이름에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를 받았다. " 응. 왜? " [ 너 아직 집에 안 왔어? 어디야? ] " 어? 나 지금 가고 있어. " [ 여자애가 혼자 어딜 그렇게 돌아다녀. 이 시간에 아직도집에 안 오고. ] " 아직 별로 안 늦었는데... 근데 너 우리 집이야? " 모르는 척 해봤다. 민윤기가 우리 집을 쳐다보며 전화를 하고 있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해보고 싶었다. 갑자기 훅하고 들어온 내 질문에 당황한 듯한 민윤기가 핸드폰 너머로, 그리고 내 두 눈으로 여실히 느껴졌다. [ 아...아니! 아까 지나가다가 봐서 그래. ] " 그래? 아니면 말고... 끊는다? " [ 야야, 잠깐만. ] " 응? 왜? " [ 내가... 데리러 갈까? ] " ...어? " [ 아니, 그냥 심심하기도 하고... 운동도 할 겸해서. 너 지금 오고 있다며. ] 민윤기는 우물쭈물 말을 하며 내 쪽으로 몸을 돌리려고 했다. 혹시나 그대로 몸을 돌려 걸어오다가 나를 발견할까 놀라 민윤기에게 서둘러 대답했다. " 아니, 괜찮아! 나 진짜 거의 다왔어. " [ ...그래? ] " 응. 나 혼자 갈 수 있어. " [ 뭐... 그러면은 됐고. ] " 다음에... 다음에 데려다줘. " [ 그건 생각 좀 해보고. ] " 아, 왜! " [ 알았어. 그럼 끊을게. ] ' 응. ' 내 마지막 대답과 함께 전화는 끊겼다. 민윤기가 데려다 준다고 한 것은 참으로 놀라고 또 기대되는 일이었지만 오늘은 여러가지 타이밍 상 맞지 않았다. 차라리, 다음을 기대하는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끊은 민윤기는 그 후에도 그 자리에 한참 머물러 있었다. 그랬기에 나도 먼발치서 움직이지 못하고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가만히 서있던 민윤기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나도 민윤기를 따라서 걸음을 옮기었다. 우리 집을 지나친 민윤기가 자기 집으로 들어갔을 때, 나도 우리 집을 지나쳐 민윤기네 집 앞에 섰다. 곧 집에 불이 켜지고 민윤기의 실루엣이 한번 보였다가 사라졌다. 그나저나 민윤기가 왜 그랬지. 고딩 때 야자 끝나고 같이 가던거 말고는 생전 연애할 때 먼저 데려다 주던 일이 없던 사람인데. 참 낯설었다. 그 이상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몸을 돌리려다가 다시 제자리에 멈추었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민윤기의 집을 쳐다보았다. 지금까지도 정말 바보같았지만 나는 민윤기에 관해서는 늘 바보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수없이 혼자 기대하고 상처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에도 또 기대하게 되었다. 혹시나하는 마음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그치만 이번에는 민윤기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이렇게 날 오해하고 설레게 만들면 어쩌자는 거야.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 민윤기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었다. 민윤기에게 창문이라도 열라고 해서 크게 외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민윤기, 너 아직 나 좋아해?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그리워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제자리에 멈춰 우리집을 바라보는 민윤기를 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참 오래 걸렸지만 나는 이제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내가 알지 못한 것이 있었다. 민윤기의 마음이 어떠한지, 혹시 나와 같은것은 아닌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확신이 없어 겁이 난 나는, 우리가 다시 멀어지게 될까 불안했던 나는 턱 끝까지 차오른 말을 꾹 삼킨채 그렇게 뒤돌아서야만 했다. 태꿍입니다! 아직까지도 빠른 전개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 같아 제 속이 다 탑니다ㅠㅠㅠㅠ 사이다가 먹고 싶어지는 밤이네요. 요즘 쪽지가 올때마다 두근두근해요 재밌다는 댓글에 광대 승천도^~^하고요! 부족한 글인데도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참 많이 사랑해요!!!! 모두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암호닉] 슈웁 / 석진센빠이 / 샘봄 / 루리 / 수대 / 윤기부인 / 부릉부릉 / MSG / BBVI / 전정ㄱ국 / 전정국부인 / 충전기 / 밤열한시 / 슙 / 달달 / 초딩입맛 / 설날 / 꾸탱 / 슙슙 / 넠넠 / 반딥 / 두둥 /슈나무 / 윤여 / 깜냥 / 단미 / 남준시 / 콩 / 자몽 / 계피 / 딸기 / 워킹 / 하이쭈 / 메로나 / 소녀 / 짝꿍 / 청춘 / 후니 / 강강수월래 / 나도 / 예지앞사헕 / 은하수 / 융기융기 / 아카시아 / 슙쓰 / 화양연화 / 아가야 / 태태 / 깇 / 0530 *신청은 받지 않아요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