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의 중요성 짜증이 났다. 그 상황이 짜증 났고 김태형의 말이 짜증 났고 그 옆에 있는 여자가 내가 아니라서 짜증이 났다. 저 옆자리가 내 자리일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괴로웠다. 사실 그 짜증은 멍청했던 나에게 향해야하는 짜증이었다. 미련한 나에게로 향하지 못한 내 짜증은 내게 불쾌하고 기분 나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김태형의 옆에서 나를 보며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 여자 아이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고 곧바로 교실로 들어와 내 자리에 철푸덕 엎드렸다. 김태형은 나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한 친구라고 소개했을 것이며 그 아이는 그저 그냥 남자친구의 친구라는 나에게 상냥하게 인사하려던 것 뿐일 것이다. 하지만 김태형을 좋아하는 내 마음을 깨달은 나에게 김태형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 상황이 달가울리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고백하려고 했을 때 그가 나에게 여자친구를 소개시켜주었고 그 여자는 내게 환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정말 이 무슨 드라마틱한 상황인지. 나는 거지같은 타이밍으로도 부족했는지 참으로 거지같은 상황까지 겪고 있었다. 그 이후 매 쉬는 시간마다, 그리고 지금 점심시간까지도 난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같은 반 아이가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였지만 괜찮다며 거절했다. 좋아하는 메뉴도 없었고 밥맛도 없었다. 날씨도 하늘이 우중충한 것이 별로였다. 모든 게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랬기에 난 끝없이 우울해지며 아래로 추락하는 내 기분을 멈춰 세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울해하고 있는 내 앞에 김태형이 앞 책상의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ㅇㅇㅇ, 어디 아파?" "...." "어디 아프냐고." 대답 없이 한쪽 뺨을 대고 엎드린 내 이마를 김태형의 큰 손이 덮었다. 김태형의 손은 내 이마를 덮고도 한참이나 남았다. 우습게도 그 손길 한번에 힘들게 찾은 고요함과 잠잠함에 덮혀있던 내 심장이 뛰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었을 행동이지만 지금은 달랐다. 김태형의 손의 온기가 내 이마로 고스란히 전해져 두 볼이 달아올랐다. "열은 없는데." "안 아파." 이대로 더 있다가는 정말 머리에서 열이라도 날 것 같아 내 머리 위의 김태형의 손을 밀어내고 고개를 김태형의 반대쪽으로 돌렸다. 그럼에도 내 머리 위로 닿은 김태형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모른척 시선을 주지 않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하더니 왜 이래." "...." "쉬는 시간에도 계속 엎드려 있고." "...." "밥도 안 먹을거야?" 묵묵부답으로 응하던 나는 마지막 질문에 두어번 고개를 끄덕거렸다. 끄덕거림을 끝으로 요지부동,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내 행동에 김태형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듯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나는 어느새 조용해진 주위에 고개를 살짝 들어 확인해보니 김태형은 이미 교실을 나간지 오래였다. 여자친구랑 밥이라도 먹으러 가나보지. 몇 마디 건네더니 금새 사라져버린 김태형이 야속해 괜시리 입을 내밀고 삐죽거렸다. 다들 점심을 먹으러 가고 김태형도 나가 아무도 없는 조용한 교실이었다. 쉬는시간에도 시끌벅쩍하던 교실이 모처럼 조용했다. 그 조용함 속에서 봄의 따스함과 나른함을 느끼며 잠이라도 청해볼까 슬며시 눈을 감는데 누군가 걸어와 내 책상 앞에 섰다. "일어나봐."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김태형의 목소리었다. 모를 수가 없었기에 나는 더 슬퍼졌다. 미국에서 한없이 듣고 싶어했었고 나를 간지럽게 만드는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가 지금은 마냥 반갑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는지 알기는 아니. 내 반응을 기다리는 듯 더는 들려오지 않는 목소리와 느껴지지 않는 움직임에 결국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내가 몸을 일으켜 자리가 생긴 책상 위에 김태형은 검은 비닐봉지에서 무언가를 꺼내 책상 위에 두었다. "니가 좋아하던 빵이랑 초코우유." "...." "아직 있더라." "...." "내가 말했잖아. 이 빵 더럽게 맛없다고." "...." "아무도 안 먹어. 너 말고는." "...." "그래서 작년에 너 가고 이거 빵 안 팔려서 아줌마가 뺄까말까 고민하셨거든." "...." "근데 내가 안된다고 친구 오면 줘야한다고 막 졸랐거든? 그랬더니 그냥 두셨나봐." "...." "나 완전 멋있지." 멋있다. 누군지 참 더럽게 멋있다. 하마터면 입 밖으로 튀어나올뻔한 그 말을 삼키고 빵에 한번, 그리고 김태형에게 한번 시선을 두었다. 오늘따라 더 잘생겼네. 김태형이 나한테 잘해주는게 이렇게 서러운거였다니, 지금까지 미쳐 몰랐었다. 예전에도 있었던 김태형의 다정함이지만 설렘의 정도는 곱절이 되었다. 내 심장은 방금 계주를 한 아이의 심장처럼 뛰고 뛰고 또 뛰었다. 촌스러욷 표현이지만 달리 표현할바가 없었다. 심장이 터질것만 같았다. 예전에 매점에서 내가 좋아하던 빵은 다른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지 않았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맛없는 메뉴의 대표였다. 오직 나만 늘 하루에 하나씩 그 빵을 꼭 사먹는 단골손님이었다. 급식이 맛이 없는 날에는 몇 개를 더 사서 밥 대용으로 먹기도 했다. 내 권유로 빵을 먹어본 김태형은 줄기차게 그 빵을 먹는 내 입맛을 이해할수 없다며 늘 혀를 찼다. "밥 생각 없으면 이거라도 먹어." "...." "사람이 밥을 먹고 살아야지, 왜 안 먹고 그래." "...." "걱정되게." 김태형의 진심이 담긴 걱정 어린 말투에 결국 내가 졌다. 그렇게 걱정이 담긴 눈으로 쳐다보는데 내가 뭘 어떡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빵을 뜯어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옆에 놓인 우유를 열어 함께 마셨다. 내가 입을 엶과 동시에 조금씩 펴지던 김태형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만연했다. 눈이 휘어지도록 맑게 웃으며 김태형은 말했다. "봐. 잘 먹으니까 얼마나 예뻐." "...." "아이- 예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미친새끼, 정신 나간 놈이라며 고개를 저을 수 없었다. 김태형이 나를 어린아이를 다루듯이 대하는 것은 결코 한두번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한심한 시선은 덤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욕으로 보답하던 나였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랐다. 그저 시선을 아래로 박은채 이미 입 안에 한 가득 차 있는 빵을 한번 더 베어물 수 밖에 없었다. 아이 예쁘다. 그 한마디를 듣자마자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 이런걸 심쿵이라고 하는구나. 정상 수치를 넘어도 한참 넘어 빠르게 뛰는 내 심장소리가 김태형에게도 들릴까봐 긴장되어 시선을 피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김태형에 대한 마음을 깨닫고 돌아와 김태형을 다시 만난 그 순간부터 난 내 의지대로 조절되지 않는 것이 많아졌다. 김태형을 볼 때마다 빠르게 뛰는 심장, 제 맘대로 열이 올라 빨개지는 두 볼, 그리고 긴장한 말투까지. 모든게 부자연스러웠다. 그런 부자연스러움 속에서 나는 알아냈다. 어느새 김태형의 작은 표정 하나, 몸짓 하나, 그리고 말 한마디에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나는 김태형을 열렬히 짝사랑하고 있었다. "여자친구랑 가라니까?" 집에 혼자 가기에 결코 늦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태형은 한사코 나와 같이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같이 있으면 자꾸만 빨리 뛰는 심장과 빨개지려는 볼에 불편해 여자친구랑 데이트나 하라며 마음에 없는 말로 밀어냈지만 김태형은 꿋꿋했다. "간만에 친구랑 같이 집 가겠다는데 왜." "...." "싫어?" 싫을리가 있을까. 내가 니가 싫을수가 있을까. "어. 너 옆에서 쫑알쫑알 너무 시끄러워." "활발한거지." "누가 그러디?" "엄마." "이모도 참." 어릴때부터 붙어있던 나와 김태형때문에 서로의 집끼리도 친했다. 한 쪽 집에 사정이 생기면 서로 도와주었다. 내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기에 혼자 밥을 먹어야했던 나는 김태형네 집에서 자주 밥을 먹었다. 그래서 김태형의 어머니를 이모라고 불렀고 자식이라고는 김태형이라는 외동아들뿐인 이모도 나를 딸처럼 예뻐해주셨다. "또 있다." "...." "여자친구." 발걸음이 멈췄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기에 나조차도 놀랐다. 내가 멈추자마자 옆에서 걷던 김태형의 발걸음도 멈추었다. 순간 멈추었던 사고가 돌아가자마자 왜 그러냐고 물어올까봐 서둘러 손을 들어 김태형의 등에 스매싱을 날렸다. "아!" "좋냐? 여친이 활발하다고 해주니까 아주 좋아?" "누가 언제 좋대! 왜 때리는데!" "외로워서 그런다. 커플이 솔로 건드리면 죽음뿐인거, 몰라?" 질투나서 그래. 부러워서 그래. 힘겹게 맞은 등을 손으로 비비는 김태형에게 목에 손으로 직선을 그으며 경고했다. 솔로 앞에서 그러지 말라고. 사실 다른 커플들이 내 앞에서 뭘 하던지 아무 상관 없었다. 김태형, 단지 김태형만 아니었으면 했다. 김태형만 아니라면 남들이 뭘 하던 그들의 연애에 관심같은건 없었다. "근데 내 여자친구 예쁘지?" "...." "눈도 완전 크고 피부도 완전 하얘." 하지만 내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태형이 지금 내 옆에서 여친 자랑을 늘어놓고 있는 걸 보니 말이다. 큰거 바란것도 아니고 그냥 간단한건데 그것도 안 이뤄지냐.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간신히 억누르고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응. 예뻐." "그게 다야. 뭐 궁금한 거 없어?" "뭐." "이름이라던지 나이나 나랑 언제 만나서 언제부터 사겼는지 뭐 그런거." "...내가 왜?" "...." "니 여자친구에 대해서? 그리고 아까 만나서 통성명 다 했거든? 이름알고 나이 동갑이겠지. 다 아는데?" "아?" "너랑 언제부터 사겼는지 그런거는 알 필요 없잖아?" 알 필요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없을 때 시작되어버린 김태형의 첫번째 연애가, 그리고 그들의 연애사가 얼마나 달달하고 즐거웠는지 듣고 싶지 않았다. 그걸 듣고 있는 그저 내 처지만 비참해지고 의미없는 질투심만 커질게 분명했다. "그게 하이라이트인데 무슨 소리야." "뭐래." 시큰둥한 내 반응에도 김태형은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너 유학가고 얼마 후에 새로 전학생이 왔거든?" "...." "근데 완전 나랑 성격이 잘 맞는거야. 착하고, 성실하고 재밌고, 센스도 있고 누구처럼 밥도 잘 먹고, 예쁘게." 내가 뭐 먹을 때는 맛있냐 우리 돼지, 이러면서 놀려대기만 했으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나한테 활발하다고 해줬어. 다른 애들은 다 나보고 정신없다고 했는데." "...." "그 말에 꽂혔지, 뭐. 걔가 넌 다른 애들보다 활발한거라고 그래서 난 그런 니가 좋다고 해줬을 때부터 뭐에 홀린듯이 걔를 좋아했어." "...." "내가 먼저 졸래졸래 따라다녔는데 고백은 걔가 먼저 했어." "...." "난 용기가 없었거든." 그건 나랑 같네. 용기가 없었다고 김태형은 씁쓸한 듯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니가 좋아하던 애가 먼저 고백해서 지금 알콩다롱 사귀고 있으면서 뭐가 그렇게 씁쓸해. 정작 씁쓸해야 할건 난데. 생각해보니 집에 가는 길에 길거리에서 좋아하는 남자애의 연애사를 듣고 있는 내 처지가 불쌍했다. "남자가 되가지고 여자가 먼저 고백하게 하고." "...." "나쁜놈이네 이거." "니가 생각해도 그렇지." "응. 여자친구한테 잘해줘. 너한테 고마운 분이시잖아." "네네." "야, 나 이제 간다." "에? 너희집 그쪽 아니잖아." "그냥... 어디 좀 들릴데가 있어. 먼저가!" 집으로 가려면 김태형이 가리키고 있는 쪽으로 가야했다. 게다가 김태형과 방향이 같아 같이 걸어가야했는데 사실 마음이 복잡했기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딜가냐며 같이 가자는 김태형에게 여차저차 핑계를 대어 김태형을 보내고 나 혼자서 발걸음을 옮긴 곳은 동네 놀이터였다. 중학생때 김태형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던 그 놀이터였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처음으로 찾아온 놀이터는 아무도 없어 썰렁했다. 그네에 앉아 바람이라도 쐬려고 왔는데 어느새 낡아버린 그네는 더이상 내 몸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보였다. 흐른 시간만큼 늘어난 내 몸무게를 원망하며 결국 미끄럼틀에 걸쳐 앉았다. 나는 사실 어릴때부터 그네보다는 미끄럼틀 위에 앉아있는 것을 좋아했다. 조금만 움직이면 아래로 미끄러지지만 누군가 나를 건들지만 않는다면 편안한 그 상태를 유지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나를 건들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혼자서 생각에 잠기기에는 미끄럼틀이 딱이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실은 아직도 복잡하게 꼬여있음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싶었다. 내 머리속이 꼬일 이유는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정해져 있었다. 김태형이 고백했을 때 내가 먼저 타이밍을 놓쳤고 그래서 단지 좋은 친구로 남기로 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 관계를 깰수는 없었다. 그건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그랬기에 난 김태형을 포기해야하는 것이 맞았다. "여기서 뭐해?" "어?" "갈 데 있다더니, 여기야?" 어느샌가 나타난 김태형이 미끄럼틀 아래에서 싱긋 웃으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쩜 저렇게 예쁘게 웃을까. 웃는 모습을 보니 불과 몇분전 마음먹었던 내 다짐이 한순간에 흔들렸다. "어떻게 알고 왔어?" "어... 그게..." "따라왔지." "...응." 난감해하는 김태형에게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자 김태형은 그새 풀이 죽어 내게 연신 미안하다고 하였다. 니가 그러면 내가 뭘 어쩌겠어. 그래, 어차피 내가 피하려고 해도 만날 우연이었나보지. 나는 이제 더이상 김태형을 이길수 없었기에 나 자신을 합리화했다. 내가 알겠다고 용서해주겠다고 하자 김태형은 그새 웃는 얼굴로 다시 나를 올려다보았다. "여기 완전 오랜만이지." "응. 그러게." "나 맨날 여기서 너한테 고민 말했었는데." "그랬지." 지금도 여기서 내 고민 말하면 니가 들어줄래? 뱉지못한 마지막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예전처럼 터놓고 말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현재 모습에 갑자기 과거의 우리가 그리워져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결국 끝까지 말하지 못하고 삼킨 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차오른 눈물을 달래려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요즘은, 고민 없냐?" "어?" "나한테 할 말, 그니까 하고 싶은데 못 했던 말 같은거 없어?"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그러자 오로지 나를 바라보고 있던 김태형과 눈이 마주쳤다. 말할까? 말하지말까? 두가지 선택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김태형을 바라보고 있으니 말 하고 싶어졌다가도 혹시라도 잘못되었을 때 뒷일이 걱정되어 그런 마음이 쑥 사라지고는 했다. "...없어, 그런거." 난 용기가 없었다. 두려웠기에 걱정되었기에 나는 내 마음을 보여줄 수가 없었다. 입을 꾹 다물고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던 김태형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따라 김태형를 보며 아래로 향해있던 내 고개도 같이 올려졌다. "진짜 없어?" "...응." "진짜지? 너 후회 안 하지." 후회? 후회라는 단어를 듣고 나서는 자신있게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후회하지 않을 리 없었다. 김태형이 돌아서 멀어져가는 그 순간부터 나는 후회할 것이 뻔했으므로 나는 그저 입을 꾹 다문채로 김태형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나 간다." "...어." "조심히 가고 내일 학교에서 봐." 나를 보고 있다가 돌아선 김태형은 내게서 멀어져갔다. 정말 나는 나를 잘 알았다. 바로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나는 김태형이 뒷모습을 보이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그렇다고 또 그를 부를 용기는 나지 않았기에 대신에 나는 속으로 간절히 바랬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나에게도 타이밍이 맞기를 바랬다. 김태형이 멈춰 다시 나를 돌아본다면 그땐 고백하겠노라고 그저 마른 침을 삼키며 기다렸다. 떠나간 사람이 돌아오기를 무턱대고 기다리는 바보같은 짓이었지만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야!" 그리고 신기하게도 처음으로 타이밍이 맞았다. 멀어져가던 김태형은 멈춰서 뒤돌아보았고 내게 소리쳤다. 간절히 기다리던 순간이었지만 사실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기에 놀란 나는 당황하여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ㅇㅇㅇ!" "...." "진짜 할 말 없어?"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한 당황스러움과 함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그 모습에 피어난 의아함을 얼굴에 가득 띄운채 나를 향해 소리치는 김태형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태형아, 나 말 해도 돼? 니가 부담스러워하면 나 정말 어떡하지. 김태형은 다시 한번 내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소리쳐 나를 불러도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김태형은 결국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가려고 했다. "김태형!" "...." "있어 할 말! 너한테 할 말 있어!" 다급하게 외치는 내 목소리에 김태형은 다시금 나를 향해 돌아섰다. 놓칠 수 없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그 어떤 때보다도 다급할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미친듯이 빠르게 뛰었다. 그런 나 자신을 스스로 달래며 나는 꽤나 먼 거리였기에 목소리를 크게하여 외쳐야했다. "김태형! 나 너 좋아해!" "...." "니가 내 옆에 있을 땐 몰랐어. 늘 내 옆에 있었으니까 니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나봐!" "...." "근데 미국 가서 너 없이 지내는 동안 알게 되었어. 니가 나한테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의미인지. 나 미국에서 아무것도 못했어! 맨날 니 생각만 나서." "...." "니가 고백했을 때 받을걸 하는 후회도 엄청 했어. 왜 몰랐을까 생각도 했고 지금에야 내 마음 알게된 거 미안하기도 하고." "...." "이제서야 알아놓고 이러는거 나쁜년인거 알아. 근데 너도 진짜 나쁜놈 맞아! 나 말고도 여자친구도 그랬으니까 벌써 두번씩이나 여자가 먼저 고백하게 했잖아." "...." "그런데 나, 너한테 뭐 바라고 이러는거 아니야! 넌 여자친구도 있고 난 앞으로도 너랑 좋은 친구할거야! 그냥 난.. 한번쯤은 내 마음 전하고 싶었어!" 처음으로 전한 내 진심이었다. 소리치듯 짜내어 힘겹게 전한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진심을 외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예전처럼 내 진심을 전하지도 못하고 가슴 속에 묻는 것 보단 훨씬 나았다. 김태형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했기에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눈을 감았다. 이제 김태형이 가면 난 내 마음을 정리할 것이다. 나 스스로 할 수 있다고 격려하며 한참을 눈을 감고 마음을 편안히 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우연하게도 눈을 뜬 건 미끄럼틀 아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사이 누가 놀이터에 놀러온건가 싶어 자리를 비켜주기 위해서 눈을 떳을 때 내 시야에 들어온 사람은 김태형이었다. 한참은 멀리 떨어져 있던 그 거리에서 걸어가 사라졌을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김태형은 내 앞에 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등장이 놀라워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아...안 갔어?" "응." "...난 거기서 바로 간 줄 알고." 왜지. 왜 온거지. 도통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기에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이유를 생각했다.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알아내기 위해서 노력했다. "ㅇㅇㅇ." "...어?" "너 진짜 왜 이렇게 둔하냐?" 김태형의 말이 이어지자마자 열심히 머리를 굴리느라 허공을 바라보던 시선을 다시 김태형에게로 고정했다. 눈을 돌리자마자 김태형과 눈이 마주쳤다. 뜬금없이 쏟아져 나온 말에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김태형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내가 할 말 없냐고 너한테 몇 번을 물어봤어. 너 내가 한번더 안 물어봤으면 끝까지 말 안 할 생각이었지?" "어?" "내가 이 말 들으려고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거 참. 티는 있는대로 다 내면서 말은 진짜 안 해주네." "너 지금 무슨 소리.." "나도 좋아해, 너." 김태형을 바라보았다. 마주한 김태형의 진지한 두 눈에 나도 모르게 숨이 턱 막혔다. 나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쁜 감정보다 먼저 든 것은 의아함, 놀라움이었고 전혀 믿기지 않았다. 여자친구도 있는 애가 지금 나한테 뭐라는 거지. 혹시나 내가 내가 듣고 싶은 희망사항대로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내 두 귀를 의심했다. "개소리같고 어쩌면 화도 나겠지만 끝까지 잘 들어줘." "...." "나 여자친구 없어." "...뭐?" "너 미국가고 나서 다시 돌아왔을 때 니가 불편해할까봐 너 돌아오기 전에 내 마음 다 접으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됐어. 근데 니가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어. 보고싶어 죽을 것 같아서 엄청 좋았는데 또 걱정도 됐지. 니가 혹시나 날 불편하게 느낄까봐." "...." "그래서 거짓말 한거야. 여자친구 있는 척 하면 니가 예전처럼 친구로 편하게 대해줄 것 같아서." "...." "근데 여친 있다니까 질투하고, 실망하고 그렇게 있는대로 티 내고 다니냐. 원래 안 그러던 애가 나랑 눈도 잘 못 마주치고 얼굴도 빨갛고. 너 다 들켰어. 나 눈치 빠른거 알지?" "...." "진짜 계속 설마설마하다가 니가 여기왔을 때, 그 때 딱 알 것 같더라. 행복해서 죽을 것 같았는데 너 놀려주려고 참고 참다가 말하고 싶어서 죽을뻔 했다?" 그니까 지금 이 상황을 정리하자면 김태형이 나한테 자기 여자친구 없다고 한거야? 여친 있다고 했던 거 다 거짓말이라고? 아니 그것보다 김태형이 날 좋아한다고? "너 지금 나 좋아한다고 한거야?" "응." "...헐." 지금 김태형이 나 좋아한다는거지? 우리 서로 좋아하는거 맞지? 나 이번에는 안 늦은거 맞지? 밀려오는 행복함과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며 김태형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에 맞추며 날 올려다보며 슬쩍 웃던 김태형은 이내 약간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근데, 너 내가 준 힌트 못 알아먹었지?" "어? 무슨 힌트.." "내가 여자친구한테 반한 이유. 그거 니 얘기잖아." "에?" "중3때 담임이 나 정신없고 산만하다고 혼냈을 때, 니가 나 위로해줬잖아." "...." "너는 다른 애들보다 더 활발하고 밝은거라고, 난 그래서 니가 좋다고. 이 놀이터에서 저 그네에 앉아서 그랬는데 기억은 해?" 김태형의 말을 듣고도 얼떨떨해 있다가 김태형이 가리킨 손가락을 따라 그네로 시선을 옮기니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내가 그랬다. 김태형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던 내 모습이 이제야 떠올랐다. 그 말을 듣고도 아까 그 그네를 보고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떠오른 기억속에 김태형이 말한 사람은 내가 맞았다. 김태형이 그렇게나 날 오래동안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용기를 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 내지 못했다면 난 아마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난 니가 눈치는 챘을줄 알았는데." "...." "전혀 아니었구나? 기억도 못했지?" "아..아니야!" "됐어. 넌 기억도 못하는데 나 혼자만 아련아련하고 좋아라하지." 김태형은 투덜대며 토라졌다. 그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나올것 같았지만 그래도 달래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남을 달래는데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난감했다. 입에 발린 소리를 하자니 민망했고, 애교 같은건 꿈도 꿀 수 없었다. 당연히 김태형의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어쩌지하며 그저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고개를 돌리고 나를 바라보지 않는 김태형을 불렀다. "김태형!" "...." "태형아. 나 내려간다!" 쩌렁쩌렁하게 외친 후에 두 팔을 밀어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갔다.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당황한 허겁지겁 김태형은 미끄럼틀 앞으로 더 가깝게 다가왔다. 미끄럼틀 위와 아래, 멀어져있었던 우리의 간격이 그렇게 한순간에 좁혀졌다. 미끄럼틀 아래에 앉아있는 나와 김태형은 그런 내 앞에 서 있었다. "재밌다. 오랜만에 타니까 재밌네?" "뭐해, 진짜." "태형아. 우리 지금 완전 가까이 있어." "어?" "멀리 있는게 아니야.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어. 이렇게 니 옆에서 너를 올려다 보니까 나 이제 니가 옆에 있는게 실감이 나." "...." "그래서 난 너무 좋아. 지금 우리가 같이 있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 설레고 행복해서 죽을 것만 같아." "...." "그니까 그런 생각 하지마. 너 혼자서만 기다렸고 너만 나 좋아하는거 아니야. 절대 아닌데, 니가 그렇게 생각하면 나 슬퍼." "...." "좋아해. 나도 너 정말 좋아해." 아까 큰 목소리로 외치던 말과는 사뭇 다르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를 좋아하는 내 마음이 꼭 전해져 더 이상은 김태형이 오해하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미끄럼틀에 쭈끄리고 앉아 말하는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김태형은 얼굴에 한가득 미소를 띄우고 두 손을 허리에 짚으며 말했다. "ㅇㅇㅇ, 대박 감동 받게 하네." "...." "이런 이쁜 짓은 또 어디서 배웠어." "뭐래. 오글거려. 하지마." "이뻐 죽겠다. 나 너한테 한 번 더 반한 것 같아." "...." "그니까 니가 나 책임져. 응?" 김태형은 앉아 있는 내게 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내가 김태형을 올려다보자 잡으라고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김태형의 손을 처음 잡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마음을 고백한 후에 처음으로 잡는 거라 많이 떨렸다. 새삼스럽게 크게 느껴지는 그 손에 조심스럽게 그와 대조되는 내 작은 손을 올려두었다. 내 손이 닿자마자 김태형은 손을 꽉 잡아 나를 일으켜세웠다. 그걸로 끝이 아니라 손을 당겨 나를 제 품에 와락 안았다. 갑작스럽게 이어진 행동에 나는 그저 당황스러워 두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어리둥절한 내게 김태형은 나를 더 꽉 안으며 말했다. "ㅇㅇㅇ, 좋아해." "...." "니가 날 좋아하는 것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좋아해." "...." "많이 기다렸고 오래 걸렸던만큼 내가 더 잘할게." "...." "우리 사귀자." 이어진 대답은 없었다. 단지 나도 내 손을 뻗어 김태형을 꽉 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것으로도 내 대답을 대신하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연하게 마주쳤고 서로 다른 마음으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진 인연이었지만, 타이밍을 놓쳐 늦어버려 돌고 돌아서 이제야 만난 인연이었지만 어쨋든 서로를 확인하고 다시 만나게 된 우리는 인연은 인연이었다. 엇갈렸다가도 다시 만난 우리는 어쩌면 김태형이 말한것처럼 운명일지도 모른다. 아니,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내가, 내가 그렇게 믿으면 그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건 하나의 커다란 기적이니 말이다. 타이밍의 중요성 完 안녕하세요 태꿍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타이밍이에요!!!!!!! 믿고 살아온 제 신념 하나로 시작했던 짧은 글을 이렇게 마무리 짓습니다! 많은 관심을 주셔서 이렇게 짧게 끝내는게 죄송할 뿐이에요ㅠㅠㅠ 지금은 딱히 생각한 번외는 없지만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수줍게 들고 오겠습니다!!(김칫국) 늘 사랑해주셔서 감사해요! 댓글 하나에 큰 힘이 납니다~ 그럼 저는 예쁜 우리 방탄이들 보러갈게요(총총) 사랑해요!♡ 알라뷰!♡ 아이시떼루!♡ [암호닉] 슈웁 / 석진센빠이 / 샘봄 / 루리 / 수대 / 윤기부인 / 부릉부릉 / MSG / BBVI / 전정ㄱ국 / 전정국부인 / 충전기 / 밤열한시 / 슙 / 달달 / 초딩입맛 / 설날 / 꾸탱 / 슙슙 / 넠넠 / 반딥 / 두둥 /슈나무 / 윤여 / 깜냥 / 단미 / 남준시 / 콩 / 자몽 / 계피 / 딸기 / 워킹 / 하이쭈 / 메로나 / 소녀 / 짝꿍 / 청춘 / 후니 / 강강수월래 / 나도 / 예지앞사헕 / 은하수 / 융기융기 암호닉은 이번화까지만 받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