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쿠야] 방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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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일인지 오늘따라 좀 더 순종적인 것만 같다.
사실 좀 더 늦게 일어나서 해도 되는 일이였는데, 괜한 심술에 아침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며 곧장 전화를 걸어 빨리 옷 챙겨입고 나오라며 신경질을 부렸다. 그러자 잔뜩 피곤한
목소리로 예, 예 하는 가 싶더니 계속 붙들고 있던 휴대전화에서 곧 다 갈아입었으니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묻기에 나도 모르게 놀라 우리 집, 이라고 내뱉고 말았다. 평소같았음 될 수
있는 한 최대로 늦장을 부리다 내가 화가 머리끝까지 날 때 쯤에야 미안하다며 실실 웃을 녀석인데,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그 때부터였다. 야. 내 옆에서 조용히 토스트에 잼을 바
르던 녀석의 눈이 내 부름에 느리게 감겼다, 다시 뜨여진다. 왜.
"너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
대답이 없다. 그저 꾸덕하게 가득 발려진 식빵 한 조각을 반으로 접어 자신의 입 안으로 넣을 뿐. 그러고보니 오늘따라 종알종알, 말도 많이 걸지 않았다. 내 집에 온지 3시간이 넘
었지만 질문은 커녕 눈조차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는 녀석의 모습이 영 낯설기만 해서 어디 아픈 건지 덜컥 걱정이 되었다.
"오늘 좀 이상해, 너. 어제까지만 해도 뭐 그리 하고싶은 말이 많은지 내 옆에서 자꾸 종알종알 시끄럽기만 했으면서"
"……타쿠야,"
툭. 둔탁한 소리와 함께 준재가 잼을 바르던 티스푼을 내려놓으며 잔뜩 잠긴 목소리로 내 말을 자신의 말로 가로막았다.
"진짜, 기억, 아무것도 안나?"
쳐다본다. 한 참을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다 지독히도 나를 쫒는 준재의 시선에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러자 준재 역시 덩달아 한 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가 기억
이 안난다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영문을 모르겠다. 이내 다시 고개를 드니 준재는 이미 집 안에서 나가버리고 없었다.
무슨 말이야, 그게. 준재.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고요한 적막 속에 준재가 먹다 남긴 토스트 부스러기들만 계속 내 눈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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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잖아. 준재야. 내가. 옛날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데.
준재야.
준재야.
내 말 들려?
급하게 차 시동을 켠 후 핸들을 꾹 부여잡았다. 굳이 보지 않아도 내가 간 자리에서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잠자코 서 있기만 하다 하루종일을 내가 한 말만 생각하며 보낼 것을
알기에 내 선택이 조금은, 경솔했다는 것도 느껴졌다. 곧 그의 아파트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만큼 차는 속도를 내고, 나는 아무것도 오지 않는 휴대폰을 자꾸만 켰다 껐다 하며 그를
생각했다. 오전 8시 35분.
나, 사실 좀 많이 힘들었거든. 한국 와서.
근데그런 내가. 왜 이런 힘든 일까지 굳이 찾아 와서 하는지 알아? 준재. 넌 모를걸, 영원히 모를거야. 아마도.
신호를 기다리며 또 1분이 흘렀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그가 떠올랐다.
그건.
내가 널, 처음 본 순간부터,
신호가 바뀌고 주위의 모든 차들이 경적소리를 내었다. 이상하게 터질 것같은 가슴은 호흡까지 가팔라지게 하는 것 같다. 이제, 그만 해도 될 것 같은데.
타쿠야 생각말이다. 아까 그의 집 안에서 잼을 발라 빵을 먹을때에도, 그의 전화를 받을 때에도, 심지어는 그에게 그 말을 하곤 혼자 후회할때에도. 끊임없이 했으니까.
그 생각을.
나 너한테 지금 …
전화벨이 울린다. 발신인은 역시나 타쿠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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