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머리에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수업이 견디기 힘들만큼 따분했다. 반 이상이 책상에 얼굴을 쳐박고 잠을 자는데도, 선생님은 쉴 새 없이 칠판 빼곡히 수학 공식을 적어 내려갔다. 칠판과 대조되게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제 공책을 한심스럽게 바라보던 수정의 시선이 창 밖을 향했다. 눈부신 햇살에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시선을 조금 내리니 운동장 가장자리에 벤치가 보였다. 거기에소희가 앉아있었다. 수업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벤치에 앉아 다리를 덜렁거리고 있는 교복차림의 소희를 바라보며 수정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희는 조금 특이한 친구였다. 친구라고 칭할 만큼 친한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그랬다. 눈이 옆으로 길게 찢어져서 가뜩이나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인데 말을 잘 하지 않아 주위에 친구들이 별로 없었다. 그냥 늘, 소희는 혼자였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소희에게는 나쁜 소문들이 곧잘 따라다녔다. 원조 교제를 한다던가, 엄마가 술집 여자라던가 하는. 그러나 소희는 단 한번도 자신에 대한 소문에 대해 변명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고 느낄 만한 사건은 한 번 있었다. 날카로운 인상이라고는 했지만 꽤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에다 몸매도 좋은 편이라, 좀 논다 하는 남자애들이 소희에게 짓궂은 장난을 쳤던 적이 있었다. 하교하던 소희를 남학생 여럿이서 붙잡아 인적 드문 골목으로끌고가다가 지나가던 경찰에게 잡힌 것이었다.실제로 어떻게 해보려던 거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본인들 입으로는 겁만 주려고 했던거라고 바락바락 우겨대서 한시간 만에 풀려났다고 했다. 그런데 진짜 사건은 다음날 터졌다.
김상원, 이승태, 이영수, 변재덕. 전 날 사건에 가담했던 네 명이 전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버린 것이었다. 아니, 전학이라기 보다는거의 도망수준이었다. 세 명은 이름도 생소한 작은 시골 마을로 갔고, 한 명은 아예 해외로 나가버렸다. 그 후로 아이들은 괜히 소희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그러면서 소문은 점점 더 불어났다.소희가 꽤 큰 조직의 수장의 애첩이라는 소문은 거의 기정사실화 되어가고 있었다.
“선생님, 저 몸이 안좋아서 그러는데 보건실에 가 있어도 돼요?”
“다녀와서 확인증 제출해라.”
네에. 저를 못미더운 듯 바라보는 선생님께 꾸벅 인사를 하고 나온 수정이 보건실 반대쪽으로 몸을 틀었다.
수정은 애초부터 소희에 대한 소문을 믿지 않았다. 수정에게 소희는 그저 불쌍하고 안타까운 친구일 뿐이었다.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더러운 소문들이 따라다니는 데도 변명 조차 하지 못하는, 그래서 피해자 임에도 아이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하는 소희가 늘안쓰러웠다.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수정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소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내려가는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건물을 나와 거의 뛰다시피 운동장을 가로지른 수정이 소희가 앉아있는 벤치의 앞에 멈춰서서 헉헉 숨을 몰아쉬었다. 소희의 놀란 눈이 수정을 향했다. 숨을 고르던 수정이 소희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아이고. 오랜만에 뛰었더니 죽겠다.”
“……”
“너 수업 안들어가고 여기서 뭐해?”
둘이말을 섞어본 것은 지난 체육 시간에 피구를 하다가 실수로 소희의 머리를 맞춘 수정이 미안하다고 사과 했던 것이 전부였던 터라, 소희의 반응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잠시 대답을 기다리며 콧잔등에 맺힌 땀을 닦아낸 수정이 어색한 표정을 하고있는 소희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뭘 그렇게 봐. 너 나 몰라? 나 정수정인데.”
“…알아.”
“어, 정말 알아? 대박.”
“너 수업은…”
“너무 지루해서 보건실 간다 하고 나왔어. 수학시간 이었거든. 산책이나 좀 할까하고 나오는데 네가 보이길래.”
실제로는 처음부터 소희를 보고 교실을 나온 거였지만 수정은 대충 그렇게 둘러댔다. 처음부터 너무 들이대면 소희가 불편해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너가까이서 보니까 되게 귀엽게 생겼다.”
한참 소희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수정이 손을 들어 소희의 볼을 가볍게 눌렀다. 그러자 소희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소스라치게 놀라며 얼굴을 뒤로 뺐다. 허공에 남은 수정의 손이 움츠러들었다.
“미, 미안. 그게…….”
“누가 만지는 거 싫어하는구나.”
소희가 대답 없이 고개만 주억거렸다. 수정이 무안한 듯 뒷목을 매만졌다.좀 전보다 더 어색해진 분위기에 결국 수정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난 확인증 받으러 보건실에 들러야겠다.”
“……”
“음. 너도 다음 시간은 수업 들어가. 이러고 있는거 들키면 선생님께 혼나.”
“…응.”
“또 보자.”
흙먼지를 일으키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수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희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본격 정수정x안소희 영업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케미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