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모어찬스 - 널 생각해
9년째 연애중 17 길거리에 앉아 한바탕 펑펑 울고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여전히 훌쩍이느라 나는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축축하게 젖은 베게와 이불이 그것을 증명했다.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새벽이 되어 날이 서서히 밝아올 무렵에야 나는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어제 저녁부터 굶어 배가 고팠지만 울다가 지칠대로 지쳤기에 나는 기절한 사람처럼 몇 시간을 잠들었다. 그렇게 쓰러지듯 잠이 든 내가 살며시 눈을 떠서 일어났을 때에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답답한 기분이 들어 환기 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다가 집을 나서는 민윤기의 뒷모습을 보았다. 난 울다가 지쳐서 잠들었는데 넌 멀쩡하냐. 학교에 가는 것인지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민윤기의 뒷모습이 그렇게 얄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어쩜 어제 하루동안 내게 행복과 즐거움을 동시에 마지막에는 좌절까지 선물 할 수가 있는지. 새삼그럽게 민윤기가 참 신기했다. 그리고 내가 잘 알면서도 그런 민윤기에게 어쩔 수 없이 반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윤기에게 들었던 친구라는 단어는 내 생각보다 나를 많이 아프게했다. 나를 향한 차가운 독설도 아니었고 나를 원망하는 말도 아니었지만 나는 단지 그 단어 앞에서 초라해졌다. 민윤기에게 듣는 말로 인한 상처와 동시에 또 한가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나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마음 한 구석이 큰 돌이 가라앉은 것처럼 무거웠다. 죄책감, 나를 괴롭히던 내 마음의 무게는 죄책감이었다. 김태형에게 이러면 안된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머뭇거리고 지금까지 끝내지 못한것, 그것이 내 죄책감의 원인이었다. 비겁하지만 내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서, 나는 김태형에게 잔인한 말을 건네야만 했다. 밤을 꼴딱 세운 다음날 나는 김태형에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 " 나야. 일어났어? " [ 시간이 몇신데 당연하지. 그런데 무슨 일 있어? 너가 먼저 전화를 다하고. ] " 오늘 바빠? " [ 아니. 별 일 없어. 왜? ] " 그러면 나랑 밥 먹어줘. " [ 밥? ] " 응. 내가 밥 사줄게. " [ 진짜? 진짜지? ]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들뜬 목소리에 마음이 한없이 더 무거워졌다. 전화가 끊기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순수하게 기뻐하고 좋아하는 그 마음에 나는 상처를 내야했다. 미안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오늘 난 그런 내가 정말 지독하게도 싫었다. 여전히 집 앞으로 오겠다는 김태형을 말릴 수가 없었으므로 나는 집 앞에서 만난 김태형과 함께 걸음을 옮겨야 했다. 어느때와 다름없이 입가에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날 반기는 김태형을 보자 마음이 무거웠지만 울상 가득한 얼굴을 보여줄수 없었기에 나도 애써 얼굴 가득 미소를 담았다. " 내가 닭갈비 집 봐둔데 있어. 학교 앞에 새로 생겼더라? " " 그래? 언제 생겼지? " " 얼마 안 된거 같아. 궁금해서 가보고 싶었는데 너랑 가려고 참고 있었거든. " " ... " " 근데 네가 먼저 가자고 할 줄이야. " 아이처럼 좋아하는 그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밀려오는 죄책감에 얼굴이 구겨지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밥은 니가 사니까 다 먹고 나서 커피는 내가 쏠게. 돌아간 고개 옆에서 들려오는 신이 난 목소리에 나는 씁쓸한 표정을 감추고 다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야했다. " 여기 식당 되게 아기자기한거 같아. " " 그러게. 인테리어가 예쁘다. " " 나도 인테리어 한번 배워볼까. 우리 집도 꾸미고 니 집도 꾸며주고! " " ... " " 좋은데? 진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어. " 김태형은 어느새 집게를 들고 맛있게 익은 닭갈비를 접시에 담아 내게 건네주었다. 내 앞에 놓인 고기만 가득 담긴 접시를 물끄러미 쳐댜보았다. 젓가락을 들지 않고 여전히 접시만 바라보고 있자 집게를 내려놓은 김태형이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왜 안 먹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김태형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 고마워. " " 어? 뭐가? " " 그냥, 다 고마워. " " 싱겁긴. " " 닭갈비도 고맙고, 오늘 나랑 밥 먹어준 것도 고맙고, 먼저 나랑 친구하자고 해줘서 고맙고, 늘 웃으면서 기분 좋게 해줘서 고마워. " " ... " " 그리고 이런 나인데도, " " ... " " 좋아해줘서 고마워. " 그대로 정지해버린 김태형과 시선을 마주하고 입꼬리를 당겨 환한 웃음을 지었다. 고마움과 미안함. 내가 김태형에게 늘 느끼는 감정은 그것이었다. 아직은 차마 미안한 내 마음을 고백할 수 없었기에 나는 김태형에게 몇번이고 고마운 내 마음을 표현해야했다. " 이제 먹자. 맛있겠다! " " ... " 내가 김태형이 한가득 덜어준 닭갈비를 먹기 시작한 후에도 김태형은 한참이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을 마주하면 무너질 것만 같아 나는 김태형이 내게서 시선을 옮길 때까지 애써 외면한채 밥을 먹어야했다. 밥을 다 먹은 김태형은 정말 괜찮다는 나를 끌고 카페에 갔다. 그리고는 자신과 내가 늘 먹던 메뉴를 시키고 내게 브이자를 그리며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계산대에서 조금 떨어져있던 나는 그 누구보다도 뿌듯해하는 웃음을 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 아- 시원하다. " " 그치? 안 먹는다고 그렇게 고집부리더니 벌써 다 먹은거봐. " 정곡을 찌른 김태형때문에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카페에서 나와 아직 시원하지는 않은 길을 걸으며 마셨던 탓에 어느새 커피는 자취를 감춘지 오래였다. 그렇게 걷다보니 학교 앞을 지나 근처 버스정류장까지 도착했다. " 이거 너무 낭만적인것 같아. " " 뭐가? " " 너랑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걷는거. " " 뭐야. 갑자기 왜? " " 생각해봐. 되게 쉬운일인데 되게 어려운 일이다? " " ..." " 좋아하는 사람이 같이 밥도 먹어줘, 커피도 같이 마셔줘, 게다가 나랑 같이 걸어주고. " " ... " " 쉽지가 않아요 이게. " 저절로 발걸음이 멈추었다. 김태형의 말을 듣다가 문득 내가 왜 오늘 김태형에게 만나자고 했는지 떠올랐다. 더는 망설여서는 안되었다. 언제까지나 내 마음을 모르겠다는 핑계 속에 숨을 순 없었다. 많이 늦었지만 그래서 더 큰 상처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난 김태형에게 이제는 말해야했다. " 김태형. " " 응? " " 김태형, 있잖아 " " ...어? " 진지하게 이름을 부른 내 목소리에 웃음으로 가득 차있던 김태형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몸을 돌려 김태형과 마주 섰다. 경직된 얼굴의 김태형 뒤로 버스가 한 대 지나갔다. 김태형과 내가 집에 갈 때 항상 같이 타던 버스였다. 이제 그것도 못하겠지... 그 생각이 드니 울고 싶었다. 정말 왈칵하고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꾹 참고 한번 마른 침을 삼킨 후 입을 떼었다. " 미안해. " " ...어? " " 그만해, 태형아... " " ...뭘? " " 알잖아. 나 좋아하는거, 그만했으면 좋겠어. " " ... " " 나 정말 아무것도 못 해줘.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너한테 이러는거 정말 못 할 짓이야. " " 괜찮다고 했잖아. 나 정말 아무것도 안 바래 너한테. " " 아니. " " ... " " 내가 싫어. " 단호하게 전해진 내 말에 마주하고 있던 김태형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렸다. 나를 보며 당황스러움으로 가득 물들어버린 그 얼굴을 마주하고 있기가 힘들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한 척하며 애써 잔인한 말을 이어갔다. 언제까지 자신이 괜찮다며 속마음을 감추는 김태형에게 모르는척 눈 감아줄 수가 없었다. " 너가 나한테 마음 숨기려고 애쓰는거 보는 것도 힘들고 그렇다고 네가 마음을 보여주면 난 나도 모르게 불편해져. " " ... " " 너한테 정말 상처주기 싫은데 자꾸만 상처 주게 되는 내가 싫어. 너한테 이런 말 하는 내가 싫어서 너무 힘들어. " " ... " " 나도 너 좋아해. 넌 정말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야. " " ... " " 근데 태형아. 내가 널 좋아하는건 네가 내 친구이기 때문이야. "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아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선을 그어버린 내가 김태형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을지 알고 있었다. 어젯밤 내가 민윤기에게 그런 말을 듣고 길거리에 주저 앉아 펑펑 울었던 만큼, 김태형도 지금 그럴 것이다. 남자가 아닌 친구라서 좋아한다는 내 말이 얼마나 큰 화살이 되었을지 상상이 되어 난 너무나도 끔찍했다. 한순간에 공허하게 비어버린 김태형의 표정이 나를 미친듯이 힘들게 만들었다. 가방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아침에 챙겨나온 김태형이 선물한 반지였다. 멍하게 있는 김태형의 손을 잡아 손바닥 위에 상자를 올려놓았다. 큰 김태형의 손바닥위에 반지상자가 오늘따라 더욱 작아보였다. 김태형은 물끄러미 손바닥 위의 상자를 쳐다보았다. " 미안해, 태형아. " " ... " " 나 끝까지 네 마음.. 받아주지 못할것 같아. " " ... " " 정말 미안해. " 그 말을 끝으로 김태형에게서 뒤돌아섰다. 그동안 숱하게 보여줬던 웃는 모습이 아닌 멍하게 반지상자를 쳐다보던 김태형의 모습이 마지막이라는 것이 나를 더 아프게했다. 입술을 꽉 깨물고 김태형을 뒤로한채 한참을 걸어갔다. 몇분이나 걸었을까. 더는 버스정류장의 흔적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걸었고 그제야 근처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젠 김태형과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김태형이 처음 내게 자신을 알리고, 정말 일방적인 막무가내라고 생각했던 김태형과 처음으로 친구가 되었던 그 버스정류장에서 나는 김태형에게 잔인한 말을 건넸다. 앞으로 예전과 같기를 기대한다면 그건 정말 내 이기심일 것이다. 김태형과의 처음도 그 곳이었고 마지막도 그 곳이었다. 마지막까지, 어쩌면 아직까지도 멍하니 버스정류장에 서 있을 김태형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져 결국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지금 내가 울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그 버스정류장을 지날 때 참지 못하고 눈물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그 후 김태형은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강의실에서도 학교 식당에서도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상처를 준 장본인이었지만 그랬기에 그 누구보다 걱정 되는 마음이 앞선 나는 가기를 망설였던 버스정류장까지 가보았지만 거기서도 역시 김태형을 만날 수 없었다. 수업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을 학교에서 서성거렸던 날이 있었다. 혹시나 김태형이 나타나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김태형을 찾아보았지만 그 날 역시 허탕을 칠 뿐이었다. 그렇게 김태형을 찾고 또 찾아다녔지만 나는 김태형에게 연락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루 종일을 돌아다니는 수고 대신 핸드폰 화면을 몇 번 누르기만 하면 되는데도 나는 그럴 엄두가 나질 않았다. 설령 연락이 된다해도 내가 김태형에게 어떤 말을 할 수가 있을까. ' 괜찮아? ' 괜찮을리가 없을텐데. ' 미안해? ' 그런 말이 위로가 될리 없었다. 그렇다고 없던 일로 하자는 둥 아니라는 변명 또한 할 수 없었기에 김태형의 그림자를 찾아 서성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김태형을 찾아다니는 일에 조금씩 무뎌지고 있었다.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김태형에 지쳐갔다. 나는 우습게도 보이지 않는 김태형을 원망했다. 물론 그 원망은 걱정되는 마음 반, 미안한 마음 반에서 시작되긴 했다. 김태형의 과실을 찾아가 그의 서랍에 작은 메모지에 빼곡히 쓴 쪽지를 넣었다. 그리고 그 옆에 김태형이 그렇게 좋아한다던 초코바를 함께 넣어놨다. 더운 날씨에 녹아버리면 어떡하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서랍을 닫으며 생각했다. 초코바가 다 녹아버리기 전에 김태형이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그 날도 어느 날과 다름없이 학교에서 지친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향했다. 아니 사실은 친구랑 맥주 몇 잔 해서 늦은게 맞다.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는 김태형과 내가 은근히 피하고 있는 민윤기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기에 친구를 붙잡고 맥주를 마셨다. 그래도 취할 정도는 아니어서 혼자 멀쩡하게 집까지 도착했다. 막 집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쓰레기를 가득 안은채 걸어오는 민윤기가 보였다. 아, 오늘 재활용 하는 날이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사실에 걸어오는 민윤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그런 나를 본 민윤기가 걸음을 멈추었다. 허공에서 시선이 만나고 잠깐의 정적이 맴돌았다. 먼저 정적을 깬 사람은 민윤기였다. 여전히 쓰레기를 가득 들고 민윤기는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자신을 멍하게 바라보는 내게 말을 걸었다. " 늦었네. " " ...어? " " 시간, 늦었다고. 어디 갔다와? " 내게 더 가까이 걸어오던 민윤기는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그랬기에 나는 하려던 대답을 멈추고 먼저 의아함 가득한 질문을 던졌다. " 왜? " " 술 마셨어? " 귀신이다. 홀딱 취할 정도로 마신 것도 아닌데 어쩜 딱 알고 물어오는지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려고 해도 이미 놀라서 표정에 다 드러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민윤기의 찌푸린 얼굴까지 보니 더더욱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 응... " " 누구랑. " " 어? " " 누구랑 마셨... 아니, 아니다 됐어. " 다그치는 듯이 물어오던 민윤기는 이내 자기 마음대로 말을 뚝 잘라버렸다. 말을 걸었으면 끝을 내던지. 민윤기의 일방적인 끝맺음으로 대화가 잘려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약간의 취기로 인해 민윤기에게 심통이 난 나와 뭐 때문인지 자기대로 심통이 나있는 민윤기 사이에 침묵만이 존재했다. 의미없는 고요함에 지쳐갈 때쯤 민윤기가 나를 불렀다. " 야. " " 어?" " 나 이거 무거운데. " 뜬금없는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윤기를 쳐다보니 민윤기는 두 팔을 흔든다. 그러자 그 손에 들려있던 쓰레기도 같이 흔들린다. 들어달라는 건가. " 그런데? " " 도와줘. " 역시. 간만에 예상한 민윤기의 행동에 괜시리 뿌듯했다. 아이같은 유치한 생각이라는 건 잘 알았다. 이런 유치한 생각을 하는 건 내가 취했기 때문에 그런거야. 술이 문제라고 술이. 애써 나를 합리화하며 딴 생각에 잠겨있자 민윤기는 다시 나를 불렀다. " 응? 도와달라니까? " " 내가 왜. " ""왜? 왜냐고? " " 어. 왜 도와줘 내가." " 야, 내가 지난번에 도와준건 잊었어? 어쩜 그렇게 입을 싹 닦아." 그건 그렇네... 지난번 내가 쓰레기를 들고 가느라 낑낑대고 있을 때 도와준 민윤기가 생각났다. 민윤기가 미웠기에 도와주지 않으려다가 또 내가 받은 게 있기 때문에 마음을 바꿔 도와주려고 했다. "서로 돕고 살아야지. 이웃 좋고 친구 좋다는게 뭐냐." 근데 취소. 마지막 말 듣고 다시 마음을 바꿨다. 다 좋았는데 단어 하나가 참 마음에 안 들었다. 돕고 사는거? 그럼 착한 사람이라면 그래야지. 이웃? 그래 바로 옆에 사니까 당연히 이웃이다. 근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친구, 또 친구란다. 내가 그 말 때문에 얼마나 울었는데 또 그 단어를 꺼내는지. 짜증났고 화가 났다. 술 때문에 조금 달아올라 있던 볼이 화가 남과 동시에 더 달아올랐다. " 싫어. " " 어? " " 싫다고. 누가 도와달래? 지가 마음대로 도와줘 놓고." 누가 들어도 토라진 목소리로 거절의 말을 전하고 민윤기에게서 등을 돌렸다. 어이없다는 듯 들려오는 헛웃음 소리를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꽤나 늦은 시각이였기에 온 몸이 피곤했다. 씻어야한다는 생각도 저멀리 미뤄둔채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밀려오는 술기운과 온 몸을 장악하는 포근함에 눈을 감은채 그저 누워있었다. 바로 옆에 둔 핸드폰에서 울린 진동 덕분에 깜빡 잠이 들려다가 곧바로 일어났다. 반사적으로 받은 전화는 방금 학교에서 만나고 헤어진 친구의 것이었다. " 여보세요. " [ 너 아직도 집에 안 갔어? ] " 아니? 지금 집인데. " [ 근데 왜 문자 안 보내. 까먹었지. ] 친구의 말에 아- 하고 얼빠진 소리를 냈다. 아까 친구가 물어본 연락처를 알려주기로 했었는데 정말 깜빡 잊고 있었다. 친구가 말을 하자 그제야 생각나 침대에서 다급하게 일어나 책상을 뒤졌다. 다이어리에 적어둔 것 같은데... 빠른 손놀림으로 책장을 뒤져서 다이어리를 찾아냈다. 종이를 몇 장 넘겨 찾던 연락처를 발견하여 번호를 친구에게 불러주었다. 고맙다는 친구의 말과 함께 전화가 끊기고 다이어리를 다시 넣으려던 찰나, 찾던 연락처 근처에 적혀진 작은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알파벳과 숫자가 조합된 글씨위에는 큼지막하게 ' 멜론 아이디, 비밀번호 ' 라고 적혀있었다. 잘 잊어버리는 습관 때문에 사용하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하나로 통일해 놓았는데 아무래도 멜론은 민윤기와 함께 쓰다보니 적어놓은 모양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다가 나중에 또 적어놓은 것을 잊어버릴까봐 들고 있던 핸드폰에서 어플을 실행했다. 그리고는 다이어리를 보며 꾹꾹 자판을 누르자 가뿐하게도 로그인에 성공했다. 이제 됐다.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어플을 끄려고 했는데 문뜩 내 시선을 잡아끄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누른 것은 나의 페이지의 재생목록이었다. 오랜만에 본 그 글자가 나를 이끌었다. 민윤기와 내가 아이디를 같이 쓰게된 이유가 있었다. 물론 귀찮아서기도 했지만 우리 두 사람 모두 애교가 많고 넉살 좋은 성격이 못 되었기에 하고 싶은 말도 용기가 없어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둘 다 그렇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서로가 잘 알았기에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아이디를 만들어 하고 싶은 말을 노래로 전달하고는 했다. 사소하게 싸웠을 때 사과의 말부터 크게 싸웠을 때 화가 나 욕설이 섞인 격한 음악까지 그렇게 재생목록에 조금씩 담아나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재생목록에 더는 우리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 그랬이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끊어졌고 설상가상으로 나는 아이디마저 잃어버려 더는 확인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예전 그대로 달라질 것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재생목록을 눌렀다. 잠시후 화면이 바뀌고 핸드폰에 수많은 노래가 나타났다. 화면을 내리며 노래 하나하나를 곱씹으니 무슨 사연의 노래인지 다 생각이 났다. 다시 생각해도 화가 나게 하는 사연의 노래도 있었고 그 때의 일이 생각나 웃음이 나는 노래도 있었다. 화면을 끝까지 다 내렸을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낯선 제목의 노래가 있었다. 그 낯선 제목이 의아했기에 민윤기가 노래를 듣다가 잘못 눌렀나 싶어 지우려다가 우연하게도 노래가 재생되었고 잔잔한 전주가 흘러나왔다. 민윤기가 이런 노래를 좋아했나. 단순히 노래가 좋았기에 듣기 시작했다. 잔잔하고 차분했기에 아까 민윤기 때문에 조금 흥분한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노래가 좋아서 듣던 단순한 감정은 그 노래의 가사를 새겨 들으며 듣는 순간, 결코 단순한 감정으로 남을 수 없었다. Tonight 널 바래다 주는 길 내내 내가 변했다고 말하지 널 생각하지 않는다고 너는 투덜대지 언제나 넌 사랑이 설레임이니 내겐 사랑은 익숙함야 너를 떠올리는 그 시간을 따로 두진 않아 늘 널 생각해 그래 널 생각해 바쁜 하루의 순간 순간 그 순간도 니가 보여 모두 보여줄 순 없지만 조금은 너도 느끼잖아 늘 널 생각해 매일 널 생각해 잠이 들어 꿈꾸는 순간도 내 앞에 웃는 그런 너를 생각해 기억나 내가 처음 고백했던 그 날 멋진 이벤트도 없었지만 나 받아준 널 내 가슴에 늘 지금처럼 망치로 머리라도 맞은 듯이 머리가 멍했다. 가사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더욱더 마음이 아려왔다. 아마, 이 노래가 민윤기가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나에게 전하고 싶었던 진심이 아니었을까. 마음을 적시는 나를 꾸중하는 듯한 가사에, 들려오는 것 같은 민윤기의 진심에 울컥했다. 민윤기가 이 노래를 재생목록에 담은 날짜는 우리의 9번째 기념일, 그러니까 내가 민윤기에게 힘들다며 끝을 말했던 그 날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비밀번호를 물어봤으니 당황한 민윤기가 내게 끝내 알려주지 않던 이유가 이 노래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하려던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비밀번호까지 잊어버려 확인할 수도 내가 미웠겠지. 내가 너무나도 야속했을 것이다. 다시 친구가 되자는 말을 들었을 때 착잡하고 아팠을 민윤기의 마음이 그 무게만큼 내게 느껴졌다. 가사를 몇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 그 한 노래를 가지고 몇 시간을 끙끙댔는지 모를 만큼, 그 가사를 전부 외워버릴 만큼 나는 가사에, 민윤기의 마음에 집중했다. 반신반의하며 나 혼자서만 끙끙대던 순간들이 노래를 듣고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미련이 확신이 바뀌었던 그 순간, 난 또 한번 깨달았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민윤기가 아니었다. 그건 바로 나였다. 눈을 감고 귀를 막은채 아프다고 투정부리던 나 자신이었다. 비겁하게 도망친 사람도, 숨은 사람도 나였다. 더는 망설일 수가 없었다. 아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용기를 내는 이유는 민윤기의 마음을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 내 마음을 온전히 보여주기 위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예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예전처럼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다. 숨기는 것은 내게 아무런 일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민윤기에게 나는 아직도 너를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하기 위해서 용기를 내야만했다. 이제는 정말 내가 오래전에 만들어버린 그 선을 넘고, 내가 만든 벽을 무너뜨릴 차례였다. 태꿍입니다! 네... 아직도냐구요... 유감스럽게도.... 하지만!!! 이제 정말 머지 않았어요!!! 믿어주세요!!!!! 오늘 브금에 대해 조금 말하자면 제가 이 글을 시작하게 된 계기인 노래입니다! 노래를 듣다가 가사가 너무 좋아서ㅠㅠㅠ 이런 글을 써보면 어떨까하는 마음에 큰 욕심을 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아무도 안 궁금하신 이야기ㅎ 느릿느릿하게 오는데도 늘 기다려주시고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이 저의 엔돌핀~(찡긋) 항상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세상에 나 바보.... 필명도 안 씀... 죄송합니다ㅜ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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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ight 널 바래다 주는 길 내내 내가 변했다고 말하지 널 생각하지 않는다고 너는 투덜대지 언제나 넌 사랑이 설레임이니 내겐 사랑은 익숙함이야 너를 떠올리는 그 시간을 따로 두진 않아 늘 널 생각해 그래 널 생각해 바쁜 하루의 순간 순간 그 순간도 니가 보여 모두 보여줄 순 없지만 조금은 너도 느끼잖아 늘 널 생각해 매일 널 생각해 잠이 들어 꿈꾸는 순간도 내 앞에 웃는 그런 너를 생각해 기억나 내가 처음 고백했던 그 날 멋진 이벤트도 없었지만 나 받아준 널 내 가슴에 늘 지금처럼 늘 널 생각해 그래 널 생각해 바쁜 하루의 순간 순간 그 순간도 니가 보여 모두 보여줄 순 없지만 조금은 너도 느끼잖아 늘 널 생각해 매일 널 생각해 잠이 들어 꿈꾸는 순간도 내 앞에 웃는 그런 너를 생각해 늘 널 생각해 그래 널 생각해 우리 함께 한 순간 순간 그 순간이 소중해서 말로 다 할 수는 없지만 조금씩 네게 보여줄게 늘 난 생각해 매일 난 생각해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너를 내 앞에 웃는 그런 널 보며 I Love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