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부드럽게 움직이며 회사의 지하 주차장을 벗어났다. 차 안에는 운전석에 앉아 차를 몰고 있는 김태형, 그리고 조수석에 앉은 나. 둘 밖에 없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할 지 몰라서 눈만 도르르 굴리는 나와는 다르게 김태형은 느긋했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은 김태형이 다른 한 손으로 제 목의 넥타이를 당겨 느슨하게 만들었다.
"누나."
"…어, 어?"
"뭘 그렇게 놀라요."
갑작스레 나를 부른 김태형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답하자 김태형이 날 힐끔, 바라보곤 피식 웃어왔다. 뭐야. 창피하게…. 도대체 왜 이렇게 불편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김태형의 차를 얻어탄 경험이 몇 번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불편하게 느껴진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냥 뭐, 하며 웅얼거리는 내게 김태형이 웃으며 물었다.
"노래 들을래요?"
김태형의 물음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김태형이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버튼들 중 하나를 눌렀다. 귀에서 쿵쿵거리는, 그런 음악을 좋아할 줄로만 알았는데 흘러 나온 노래는 내 예상과 달랐다. 부드러운 팝송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까닥였다. 김태형은 그런 날 힐끔 바라보더니 피식 웃으며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뭐 먹으러 갈까요?"
태형이의 물음에 글쎄, 하고 짧게 답을 하는 그 때, 신호에 걸린 건지 차가 부드럽게 멈춰 섰다. 한 손만 가볍게 핸들 위로 올린 김태형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말이 없어요. 평소랑 다르게."
"…어?"
"제가 본부장으로 온 게 그렇게 충격적이에요?"
웃으며 내게 묻는 태형이의 목소리에 힐끔, 김태형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한숨을 푹 내쉬며 답했다.
"그래.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충격적이야."
"그래요?"
"충격적일 수 밖에 없잖아. 이럴 거 였으면 미리 말이라도 해줬어야지, 이 병아리야."
삐죽이며 나온 내 말에 김태형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
"누나가 오라고 했었잖아요."
"난 신입 사원으로 오라고 한 거지, 본부장으로 오라곤 안 했어."
내 말에 김태형이 바람 빠진 웃음을 지었다. 신호가 바뀌고 내게서 고개를 돌린 김태형이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흘러나오는 노래에 고개를 까딱이던 나는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으로 흘러나온 노래에 나도 모르게 어, 하는 소리를 뱉었다. 이 노래 내가 좋아하는 곡인데.
"어, 이 노래."
"……."
"누나가 좋아하는 노래다."
당연하다는 듯 말해오는 김태형의 목소리에 내 고개가 김태형을 향해 돌아갔다. 물끄러미 저를 바라보는 내 시선에 김태형이 잠깐 나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앞을 보며 물었다.
"왜 그렇게 봐요?"
"…아냐."
가끔 이렇게 김태형은 알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꿰고 있을 정도로 김태형은 내게 관심이 참 많았다. 당연히 알고 있는 정보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저 말은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오늘따라 왠지 내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굳이 말하자면 신경이 쓰였다. 새삼스럽게.
왠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도리도리 젓곤, 김태형이 입고 있는 짙은 회색 정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태형이가 정장을 입은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꾸러기같은 모습만 보다가 이렇게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이것도 나름대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덩달아 간지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
잠깐, 간지러운 기분?
나도 모르게 흠칫한 나는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간지러운 기분 같은 건 느낀 적이 없다, 라고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젓고 다시 태형이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과 같은 간지러운 기분이 다시 나를 덮쳐왔다. 얼른 태형이에게서 시선을 뗀 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뭐야…. 나 정장 입은 사람을 좋아하나…?
Oh my boss 2
부제 : 자고 갈까?
본부장님이란 생각을 지우고 병아리 김태형이라 생각하니 조금씩 불편하던 게 사라지고 있었다. 뭘 먹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우리는 결국 늘 가던 집 앞의 삼겹살 집으로 왔다. 배가 고픈 느낌에 고기가 익는 것만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갑작스레 김태형이 제가 입고 있던 정장의 재킷을 벗었다. 그리곤 내게 재킷을 내밀었다.
"…에? 이건 왜?"
내 물음에 태형이가 내 다리 쪽을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다리 위에 덮어요. 치마, 짧잖아요."
김태형의 말에 아, 하고 바보 같은 소리를 뱉은 나는 태형이가 내민 재킷을 받았다. 조심스레 무릎 위로 올리자 재킷에서는 태형이에게서 늘 풍기던 향기가 올라왔다.
"이런 매너들에 여자들이 꼴깍 넘어가는 거구나?"
"이런 매너 아니더라도 반할 포인트가 차고 넘치는 걸요."
농담으로 던진 내 말에 웃으며 답한 태형이가 가위를 집었다. 익은 고기를 잘게 자른 김태형은 내 그릇 위로 고기를 먼저 올려주었다. "먹어요."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고기를 입 안으로 넣자 배싯 배싯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 진짜 배고팠는데.
고기를 넣고 우물우물. 김치도 입 안으로 꾹꾹 밀어 넣고 우물우물. 볼이 터질 것처럼 입 안에 음식을 가득 넣고 우물거리는데, 갑작스레 내게 닿은 시선이 느껴졌다. 한참 먹다 말고 고개를 들자 김태형이 집게를 잡은 손으로 제 턱을 가볍게 괸 상태로 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본부장실에서 본 것처럼. 아무래도 김태형은 턱을 괴는 것이 습관인 것 같았다. 몇 년을 알고 지냈지만 처음으로 알게 된 김태형의 버릇이었다.
"…왜 그렇게 봐?"
입 안 가득한 고기를 겨우 꿀꺽, 삼키곤 김태형을 향해 묻자 김태형이 흥미 가득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누나."
"어?"
"햄스터 닮았어요. 볼 완전 빵빵한 게."
"햄스터만큼 귀엽단 소리야?"
상추 위에 고기를 한 점 올리며 장난스레 한 내 말에 태형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여워요. 엄청."
당연히 한 소리 하며 받아칠 줄 알았는데, 생각치도 못 한 김태형의 대답에 나는 순간 손을 움직이던 걸 멈췄다. 잠깐 멈칫한 나는 김태형을 힐끔, 바라보았다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움직였다. 그리곤 고기를 싼 상추를 그대로 입 안으로 밀어넣었다.
귀엽다는 말에 순간 심장이 쿵.
아, 뭐야… 대체.
…정장 재킷은 안 입고있는데. 셔츠 입은 사람에게 심장이 떨리기라도 하는 거야, 뭐야.
애꿎은 고기만 우물거리던 내 시선이 김태형의 하얀 셔츠로 닿았다. 약간 느슨하게 맨 넥타이 뒤로 셔츠 목부분의 단추가 없는 것을 발견한 내가 어, 하고 말하자 김태형이 "왜요?" 하고 되물어왔다.
"너 목에 단추…."
"아, 이거. 오늘 나오다가 떨어졌어요."
"회사에서 달지 그랬어."
"그럴 여유가 없었던 걸요."
말을 마친 김태형이 고기를 제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꼴깍, 고기를 삼킨 김태형이 내게 물어왔다.
"술 마실래요?"
"지금?"
"네. 삼겹살엔 소주가 딱인 거 알잖아요."
"그렇긴 한데…."
잠깐 망설인 내가 말을 이었다.
"너 차는 어떡하고?"
"여기 두고 택시 타고 가죠, 뭐."
"그럼 뭐."
알아서 하겠지. 그러자, 라는 의미로 김태형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대답에 김태형이 직원을 부르려는 듯 손을 들었다. 저기요.
Oh my boss 2
부제 : 자고 갈까?
내일도 출근을 해야하기 때문에 둘 다 술은 딱 기분이 좋을 만큼만 마시는 걸로 합의를 봤다. 분명 조금만 마시기로 약속을 하고, 실제로 먹은 양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술기운이 조금씩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몸이 안 좋아졌나봐."
"왜요?"
"겨우 요만큼 먹었는데 약간 몽롱해."
내 말에 김태형이 피실 웃으며 말했다. 이제 슬슬 갈까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릎 위에 덮고 있던 재킷을 김태형에게 내밀었다. 내가 내민 재킷을 받아든 김태형이 자연스럽게 계산서를 챙겼다.
"어어, 계산서는 왜 가져가."
"제가 사야죠."
"됐으니까 이리 줘. 내가 너한테 어떻게 밥을 얻어먹어."
쬐끄만 병아리가. 웃으며 계산서를 가져가려는 내 행동에 김태형이 제 팔을 위로 쭉 뻗었다. 가까이 선 김태형은 생각보다 키가 컸고, 그런 김태형에 비해서 나는 키가 작았다. 내 손이 닿지 않을 높이로 계산서를 올린 김태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살게요, 탄소 씨."
"…에?"
"아직도 제가 고등학생인줄 아시나 본데, 저 본부장이에요."
"뭐야…. 지금 본부장이란 직위를 이렇게 남용하는 거야?"
내 말도 못 들은 척,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 한 김태형이 한 쪽 팔에 걸쳤던 재킷에서 지갑을 꺼내며 카운터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 김태형의 뒷모습을 보면서 입술을 삐죽이다 못 이기는 척 피실 웃으며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그래. 고등학생도 아니고, 따지고보면 나보다 돈도 잘 벌테고, 한 번 쯤은 얻어먹어도 뭐….
계산을 마치고 가게 밖으로 나오자 여름이 온다고 생각했는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날씨가 쌀쌀했다. 추워서 몸을 살짝 움츠리는데, 김태형이 제 팔에 걸쳤던 재킷을 폈다. 그리고 그 재킷을 내 어깨 위로 덮어주었다.
"이것도 여자들 꾀는 매너들 중에 하나?"
내 말에 김태형이 피식 웃었다. 그리곤 갑자기 내 어깨를 제 한쪽 팔로 감싸안아왔다. 야, 뭐야아…. 놀란 내가 김태형의 팔을 밀어내기 위해 어깨를 꿈틀거리자 태형이는 제 팔이 떨어지지 않도록 내 어깨를 꽉 잡아왔다.
"이런게 여자들 넘어오게 하는 행동이죠."
"가만 보면 너도 은근히 카사노바야."
"제가요?"
"그래. 너 여자친구도 되게 많이 바꼈었잖아."
"그거야 뭐, 다 예전인 걸요. 지금은 없어요."
"없어?"
"네. 솔로에요."
그말에 의외라는 듯 한 말투로 답했다. "너 솔로인 거 처음 보는 거 같아." 그 말에 김태형은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김태형은 여전히 내 어깨를 감싸안은 채로 자연스레 우리 집 쪽을 향했다. 집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가게라 그런지 얼마 걷지 않아 익숙한 길이 눈에 들어왔다. 가로등도 많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어깨에 올려진 김태형의 팔을 툭 치며 김태형을 향해 말했다.
"이제 가. 혼자 갈 수 있어."
"이 시간에 혼자 다니면 위험해요. 그것도 다 큰 여자가."
"됐으니까 이 팔이나 풀고 빨리…."
"어허."
제 팔을 밀어내는 내 행동을 제지한 김태형이 어허, 하며 짐짓 무서운 얼굴로 날 내려보았다. 어쭈. 다시 한 번 김태형의 팔을 밀어내려고 내 팔을 올리자, 김태형이 "쓰읍."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어깨를 더욱 단단히 잡아왔다.
"까불지 말고 이거 풀어, 병아리."
"누나."
"왜 불러?"
"나 오늘 누나네 집에서 자고갈까요?"
"뭐?"
김태형의 말에 뭐? 하고 되물은 내 표정이 찡그려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얘가. 하지만 김태형은 내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날 내려다보았다.
"멀쩡한 네 집 놔두고 왜 우리 집에서 잔다는 거야."
"뭐 어때요, 하루 이틀인가."
"안 돼."
단호한 내 말에 김태형이 입꼬리를 쭉 내렸다. 덩달아 눈까지 축 쳐지는 게, 꼭 기운 잃은 강아지의 모습이었다. 뭐, 그렇게 보지 말란 말야. 웅얼거리는 내 말에 김태형이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해왔다.
"아, 여기서 우리 집까지 너무 먼데."
"…택시 타고 가면 되잖아."
"날도 춥고."
"…오늘 정국이 없단 말야. 너랑 나랑 둘이는 좀…."
"나 술도 마셨는데. 지금 머리도 아파요. 봐봐, 열도 막 난다니까."
"……."
"누나, 저 열 나요."
"…그래서 뭐…."
뭐라고 답을 해야할 지 몰라서 웅얼거리자 김태형이 갑작스레 제 얼굴을 내게 들이밀었다.
"자고 가도 돼요?"
"…야, 너무 가깝잖아."
"자고 가도 돼?"
"……."
"자고 갈까?"
"……."
"자고 간다?"
은근슬쩍 말을 놓는 김태형에게 뭐라고 한 마디 하려는데, 김태형의 얼굴이 가깝다. 가까워도 너무 가깝다. 눈꼬리를 내리고 나를 바라보던 김태형과 눈이 마주치자 나는 재빨리 그 시선을 피했다. 내가 시선을 피함에도 불구하고 김태형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또 심장이 쿵 하는 것이 느껴졌다. 간질간질 한 느낌도 다시금 느껴지기 시작했다.
김태형의 향기가 진하게 풍겨왔다. 샴푸 향인가…. 향수는 아닌 것 같았는데. 김태형의 숨소리가 이렇게 가까이서 들려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아무런 대답이 없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태형이 피식 웃으며 내게서 멀어졌다. 멀어졌다곤 하지만 내 어깨를 여전히 꽉 안은 상태였다. 뭐가 좋은 건지 씩 웃은 김태형이 말해왔다.
"아무런 대답도 없는 건 자고 가도 된다는 거죠?"
"…그…."
"저는 정국이 방에서 잘게요."
"…그, 그러니까…."
"아, 춥다. 얼른 가자, 얼른."
능글맞게 나를 이끄는 김태형의 행동에 나는 주춤, 주춤 따라 걸으며 불이난 속을 조용히 잠재웠다.
뭐야….
대체 왜 심장이 또 쿵 하는 건데!
쿵 하는 거냐구!
*
헐 ㅠㅠㅠㅠㅠ 암호닉이 생겼어요!!! 이렇게 행복할 수가!!!
태태는 사랑입니다 the love..♡
♡ 내 사랑 암호닉 ♡
♡ 서류님 본부장님 윤기모찌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