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월백입니다.
인스티즈에는 처음으로 인사드리는데, 사실 조팝나무님과 친분이 있어서 제 크루즈 살인사건이 인스티즈에 올라왔단 얘길 듣고 찾아왔어요.
이렇게 글 쓸 수 있게 기회를 주신 조팝나무님.... 늘 사랑하는거 아시죠ㅠㅠ
(여신님의 노예가 되라면 노예가 되겠어요 말로만 여신님이 아니라 여신님은..... 진짜 여신님이니까요...... 이 여신님 진짜 상여신이세요 bb)
크루즈 살인사건은 원하시는 분께 메일로 보내드릴테니 못 받으신 분 있으면 댓글로 메일주소를 적어주세요!
여기 올리는 닥터스는 타 카페, 개인 홈, 트리플 홈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곶아손이라... 의학관련 종사자가 아니라서 의학 지식이 부족할 수 있고 잘못된 것이 나올 수도 있어요ㅠㅠ
허나 얌전한 지적 부탁드려요 너무 거칠게 다루시면... 웁니다, 울어요 <
모쪼록 잘 부탁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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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스(The Doctors) Op. 1
Rrr- Rrrr-
어두컴컴한 방 안. 창문 사이로 어스름하게 새벽 빛이 스며들었다. 아직은 이른 듯한 새벽 시간. 일찍부터 방 안에는 요란스러운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침대 위에 놓여진 스마트폰 액정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A.M 5 : 10. 알람이었는지, 화면에는 핸드폰 바탕화면인 걸그룹의 사진이 떠 있었다. 더듬더듬. 침대 위 이불 속에서 손 하나가 쑥 튀어나왔다. 배게 오른 쪽을 더듬더듬 거리던 손이, 마침내 핸드폰을 잡고 종료 버튼을 몇 번이고 꾹꾹 눌러댔다. 알람이 꺼지고, 숙직실 안에는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 이불 사이로 얼굴이 쑤욱 나왔다. 머리는 까치집으로 엉망이 된 채 눈은 퉁퉁 부어 마치 괴물의 몰골을 한, 우현이었다. 우현은 이불을 훽 걷어버리고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러자마자, 천장에 머리를 쾅 하고 박았다. 2층 침대라, 위가 낮게 내려와 있었던 것이다. 우현은 아! 아! 아오, 진짜- 하며 온갖 짜증을 다 내고는 침대 밑으로 내려왔다. 아침부터 아주, 상쾌하고 좋다. 우현은 핸드폰으로 시계를 보고 침대 위로 휙 던져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배터리를 분리 수거해 버리고 싶지만, 또 한 번 늦었다가는 본인이 분리 수거 당할 것 같은 위기감에 어쩔 수 없었다. 알람 소리를 못 들어 늦은 것만 해도 몇 번인지 셀 수 없었다. 아마, 병원 인턴 생활을 하면서 우현이 가장 힘든 것이 바로 ‘늦잠’ 이었다.
“야, 일어나! 니들은 어떻게 나보다 늦게 일어나냐?”
우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2층 침대를 흔들흔들 흔들었다. 그런데 어쩐지 평소보다 조용- 한 것이,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야 이거? 우현이 순간 이상함을 느끼고 2층으로 기어 올라갔다. 삐걱삐걱, 쇳소리가 마치 나무 소리처럼 들려왔다. 고개만 빠끔히 내밀어 위를 살피던 우현은, 쿵 소리와 함께 계단에서 바닥으로 뛰어 내려왔다. 그의 표정이 짜증난다는 듯 일그러져 있었다. 이런 배신자들. 깨우지도 않고 지들끼리 간다 이거지? 우현은 시선 건너 편으로 보이는 또 다른 침대 하나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한숨과 함께 화장실에 있는 거울 앞에 섰다. 아직 그래도 시간이 남았으니까, 머리라도 정리하고 가야겠다. 우현은 거울 앞에 서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빗을 찾았다. 저번에 동우가 쓰고 어디다 던져 놓았던 것 같은데… 어디다 놨었지.
그 때, 핸드폰 벨이 다시 요란스럽게 울렸다. 우현은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수면 부족으로 인해 상한 피부를 훑어보았다. 아이씨, 피부 미남 남우현이 피부 상하면 남는 건 시체밖에 없는데. 오, 라임 좀 있네. 거울로 비친 본인의 얼굴을 보면서 손으로 대충 일단 머리를 가라앉혔다. 그래도 부스스하게 붕 떠 있었다. 빗이 어딨더라. 그 와중에도 벨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우현은 짜증내면서 침대 위에 던져 놓은 핸드폰을 노려보았다. 우씨, 아까 분명히 알람 껐는데.
침대로 타박타박 걸어간 우현이 침대 안쪽으로 상체만 들이밀고 이불을 들춰 핸드폰을 집었다. 순간 습관적으로 종료 버튼을 누르려던 그는, 화면에 뜨는 전화번호를 보고 놀라 황급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핸드폰 너머에서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고함보다 더 무서운, 낮게 깔린 목소리가.
“네! 여, 여보세요!” [ 너… 제 정신이야? 인턴 주제에 아직까지 퍼질러 자? ] “네? 아, 아직 시간이…” [ 너 좀 더 쉬겠다고 환자 죽일 생각이야? 내가 올라갈까, 아님 얌전히 내려올래. ]
히익- 내, 내려가겠습니다! 우현이 놀라서 급하게 종료 버튼을 마구 눌렀다. 그리고 상체를 훅 들은 우현이 연속해서 침대 천장에 머리를 박았다.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상체를 밖으로 뺐지만, 지금은 아파할 시간도 없었다. 아오, 머리 빗 찾지 말고 그냥 내려갈걸. 우현은 급하게 침대 옆 의자에 던져져 있던 가운을 집어들고 숙직실을 뛰쳐나갔다. 아침부터, 아니- 새벽부터, 파란만장하게 시작하는 하루였다.
* * *
“느,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응급실. 새벽인 것이 무색하게, 이른 시간부터 병원 안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마치 시장통을 연상케 하는 광경이었다. 우현은 놀라 뛰쳐 내려온 후, 응급실 안에 가득 찬 사람들을 보며 한 번 더 놀랐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우현은 허둥지둥 안 쪽으로 뛰어들어갔다. 한 쪽에, 우현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서 있었다. 심실세동(ventricular fibrillation : 심장의 박동에서 심실의 각 부분이 무질서하게 불규칙적으로 수축하는 상태) 보다 더 무서운, 일명 응급실 악마.
“너… 한 번 더 늦으면 잘라버린다고 했냐, 안 했냐.” “넌 눈이 옹이 구멍이냐?”
예? 신랄하게 들려오는 악마, 아니- 명수의 말에 우현은 벙 쪄서 명수를 쳐다보았다. 바보처럼 어리숙하게 대답한 우현이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명수는 한 손에 스파츌러(Spatular) 를 손에 들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우현이 의아해 하며 시선을 돌려보니, 명수의 뒤에서 우현에게 열심히 신호를 보내는 동우의 모습이 보였다. 뭐, 뭐야…? 왜 그러는데?
“너 지금 응급실 상황 안보여?” “당장 안 튀어갈래? 환자 죽이고 너도 죽고 싶냐? 지금 사람들 피 흘리는 거 안보여? 너도 저렇게 만들어줄까? 그러고 싶어?”
우현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저 독설은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우현은 황급히 치프 레지던트(Cheif resident : 레지던트 의국장)인 명수에게 인사를 하고는 옆 쪽으로 뛰어갔다. 사실은 도망치는 것이 맞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동우는 명수의 뒤에서 한 숨만 푹 내쉬었다. 저 바보, 저러니까 맨날 갈굼 당하지. 그 때, 명수가 휙 뒤로 돌았다. 동우는 순간 놀라서 흐에,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명수가 차가운 눈빛으로 동우의 위 아래를 훑었다. 그는 옆에 서있던 간호사에게 스파츌러를 건네고 드레싱 도구를 받아 동우에게 던지듯 건넸다. 동우는 얼결에 받아 들고는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명수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환자 드레싱(Dressing : 상처를 소독하고 치료하는 일) 하고, FX(Fracture : 골절) 있는 것 같으니까 일단 흉부외과 콜 해.” “예, 알겠습니다.”
동우는 드레싱 도구를 든 채 고개만 주억거렸다. 명수는 동우를 미심쩍게 한 번 쳐다보고는 다른 쪽으로 사라졌다. 동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응급의학과 인턴 일 한지도 한 달이고, 이제 곧 있으면 로테이팅 인턴쉽(Rotating Internship : 짧은 기간 여러 개의 과를 돌아다니면서 수련하는 우리나라의 인턴 제도) 도 거의 끝나서 마지막 흉부외과만 남겨두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무섭고 두려운 것이 많은 인턴인 것이 사실이었다. 동우는 명수가 사라진 쪽을 힐끔 보고는 간호사에게 말했다.
“블리딩(Bleeding : 출혈) 은 심하지 않으니까 포비돈(Povidone)으로 상처 소독만 해주세요. 저는 흉부외과 콜 할게요.”
드레싱 도구를 간호사에게 넘긴 동우는 그 곳을 빠져 나와 고개를 휙휙 둘러보았다. 갑자기 응급 환자가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는 바람에 응급실은 완전히 포화 상태였다. 새벽부터 이게 무슨 난리람. 동우는 사람들 틈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다. 동우는 곧바로 뛰어가듯 걸어서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의 어깨를 잡았다.
“성종아. 우현이 어딨어?”
동우가 붙잡은 것은 같은 동기로 들어온 성종이었다. 환자의 침대를 옮기고 상태를 확인했다. 환자는 머리 쪽에 블리딩이 심한 상태였다. 성종은 환자의 배 쪽을 세게 꽈악 꼬집었다. 순간 환자의 몸이 아주 살짝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성종은 환자의 모습과 사진을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크. 동우는 순간 눈치를 보며 슬슬 너스 스테이션(nurse station : 간호사실) 쪽으로 이동했다. 드레싱도 넘긴 채 여기서 이러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또 응급실 악마에게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랐다. 동우는 평상 시 장난기 넘치던 성종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언매치 되면서 아직도 이런 모습이 익숙하지 않았다. 처음 인턴이 되었을 때 장난기 많고 붙임성 있는 성격에 그저 천방지축으로만 봤는데, 알고 보니 과 수석을 도맡아 했다는 말을 듣고는 놀라서 넘어가는 줄 알았다. 동우는 슬며시 움직여서 전화기 앞에 섰다. 우선은 흉부외과에 콜 먼저 하고.
“응급실 인턴 장동우입니다. 34세 남성, TA(Traffic Accident : 교통사고) 환자입니다. 립프랙쳐(Rib Fracture : 늑골 골절) 의심됩니다. 그 외에도 지금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버스 추돌 사고 때문에 TA 환자들이 ER(Emergency room : 응급실)에 가득 차 있습니다. 지금 내려와서 봐주세요.”
동우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재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가 이번에 찾은 것은, 우현이었다. 한 쪽에서 우현이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동우는 우현 쪽으로 달려갔다.
“뭐하는거야?”
아니나 다를까, 드레싱까지 남에게 맡기며 우현을 찾은 이유가 있었다. 아직까지도 우현은 환자를 혼자 상대하는 것이 서툴었기 때문에 으레 동우가 옆에서 도와주곤 했다. 동우는 당황하는 우현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하는 수 없지. 동우가 재빨리 환자에게 다가갔다. 환자는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였는데, 얼굴이 창백하고 머리와 목 사이로 피가 응고되어 있었다. 정신을 잃은 상태인 듯 싶었다. 옆에 있는 심전계(electrocardiograph : 심장의 활동에 의해서 발생하는 생체 전기를 검출하여 기록하는 장치)를 확인하던 동우의 표정이, 순간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우현의 손목을 덥썩 잡으며 떨리듯 말했다.
“…우현아.” “어?” “어레스트(Arrest : 심정지)야.”
우현의 두 눈이 경악하듯 동그랗게 커졌다. 젠장! 우현은 놀라서 급하게 간호사에게 소리쳤다.
“CPR(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 심폐소생술) 들어갈게요! 혹시 모르니까 제세동기(Defibrillator : 심장 박동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전기 충격을 가하는 데 쓰는 의료 장비) 세팅해주세요!”
말이 끝나자마자 동시에, 우현이 침대로 달려들었다. 두 손을 꽉 움켜쥐고 여자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하나, 둘, 셋. 우현이 심호흡을 하면서 CPR을 시작했다. 그 때, 옆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제세동기는 무슨. 인턴 주제에 벌써부터 요령이야?”
옆에 있던 동우가 당황한 듯 꾸벅 인사했다. 흰 가운을 입은 채 목에는 청진기를 두르고 있는 응급의학과 과장, 이호원이었다. 그는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머리와 옷 매무새를 한 채 서있었다. 응급실 악마인, 응급의학과 치프 레지던트 명수보다 더 악명 높은 사람이 있었다면 호원이었다. 악마에 이은 마왕의 등장이라고 할까. 동우는 떨리는 마음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숙이고 서있었다.
“넌 뭐해? 환자가 여기 하나 뿐이야? 손가락 빨고 구경하고 있을거야?” “아, 아닙니다!”
호원의 냉기 섞인 말에 동우는 당황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급하게 그 자리를 뛰어서 벗어났다. 아무리 평상시에 착하고 늘 웃는 얼굴인 동우라지만, 그런 그도 호원과 명수는 무서웠다. 호원은 마뜩찮은 듯 CPR을 하는 우현을 쳐다보다가 눈썹을 찡그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 사이에, 동우는 울음소리가 가득한 곳으로 아무 곳이나 뛰어들었다.
“흐익.”
그리고 당장에 후회했지만.
“선생님! 아이고, 우리 아가 좀 봐주이소. 애가 피가 철철 난다 아입니꺼. 우리 아가 죽는기 아입니꺼, 아이고. 좀 도와주이소!”
동우가 서 있는 베드 위에는 7살 가량 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누워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창백했고, 복부에 출혈이 보였다. 동우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눈 앞에, 아이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저, 저는… 그게…” “아이고, 선생님. 우리 아 죽습니다, 죽어요.”
동우는 아이의 할머니로 보이는 사람에게 등 떠밀려 아이가 누워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동우가 할머니를 흘긋 보자, 할머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두 손을 싹싹 빌고 있었다. 동우는 순간, 평상 시에는 절대로 하지 않는 욕지거리를 속으로 했다. 젠장… 대광 반사를 하려 했지만, 손이 계속해서 떨려와서 아이의 눈꺼풀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 동우는 두 눈을 감은 채 침을 꿀꺽 삼켰다. 어째서 이렇게 아이만 보면 떨리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지… 순간 환자를 앞에 둔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나 한심스러웠다. 그의 턱과 머리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제발… 제발 좀 움직여라.
“비켜.”
그 때, 동우의 귓가에서 차가운 음성이 들렸다. 누군지 확인하기도 전에 동우는 힘에 의해서 옆으로 밀려났다. 환자보다, 동우의 얼굴이 더 새햐얗게 변할 지경이었다. 동우를 밀쳐낸 남자는 아이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동우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고 누군지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저기.” “립프랙쳐로 인한 혈흉(Hemothorax : 흉막강내에 혈액이 저류한 상태)같아. 엑스레이 먼저 찍어보고 맞으면 개흉해야해.” “저…” “아까 콜했잖아. 흉부외과.”
아. 동우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남자 분은 어쩌시고… 동우는 우물쭈물거리며 옆에 서있었다. 남자는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 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동우를 돌아보고 말했다.
“너. 의사가 되겠다는 놈이 환자 앞에서 벌벌 떨면 어떡해? 의사가 떨면 환자가 얼마나 불안해 하는지 알아, 몰라?”
고개를 들고 모습을 보인 남자는, 갈색 빛의 목까지 덮는 긴 머리에 살짝 처진 눈과 함께 선한 인상을 가진, 성열이었다. 성열은 동우의 움츠러든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더 이상 말할 수 없는게, 자신도 이렇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 기분이 어떤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성열은 동우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다른 곳으로 가봐.”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너넨 그래도 괜찮은 줄 알아. 나는 치프 레지던트면서도 응급실 콜 오면 내가 직접 와야해. 너네는 이런 고생 하지 마라.”
성열이 일부러 장난치듯이 웃으며 동우에게 말했다. 그것이 동우가 기죽지 말라고 배려해주는 것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내심 동우는 그런 성열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병원 내에서는 다들 빡빡하고, 거칠고… 인턴에게 하는 취급은 다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말이다. 동우는 성열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축 처진 채 걸어가는 뒷모습이, 어쩐지 안쓰러웠다.
“심전도 반응 없습니다! BP(Blood pressure : 혈압) 안 잡힙니다!”
젠장할. 우현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CPR에 얼굴에선 땀이 줄줄 흘렀다. 심전도 그래프는 아직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우현의 눈 끝으로, 환자의 얼굴이 담겼다. 마치, 잠자는 듯이 고요하고 평온한 얼굴. 우현은 이빨을 꽉 깨물었다. 제발… 제발 부탁이니까, 뛰어줘. 제발 다시 돌아와…!
1년이 다 되어가는 인턴 생활이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것은, 남들과 다르게 우현이 정에 약하고 두려움이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순간, 환자의 얼굴 위로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갈색 머리를 가진,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여자의 모습과. 우현은 순간 두 눈을 크게 떴다. 놀라서, 그만 손을 멈춰버릴 뻔했다. 그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니가 아는 사람이 아니잖아, 남우현.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환자가 생사를 오가고 있는데, 다른 생각을 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그 때, 옆에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돌아왔어요! BP 잡혔어요!”
간호사의 말에, 우현은 그제야 손을 멈추고 심전계를 확인했다. 심전도 그래프가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 다행이다…. 우현은 그제서야 한숨과 함께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기운이 다 빠져버린 듯, 그도 모르게 옆에 있는 의자에 주저 앉았다. 그는 힘없이 기운 빠지는 목소리로 간호사에게 말했다.
“뇌 쪽에 이상 있는 것 같으니까… 신경외과로 넘겨주세요. 부탁드려요.” “네, 알겠습니다.”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너스 스테이션으로 뛰어갔다. 우현은 숨을 몰아 쉬며, 이동식 베드 위에 누워있는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갈색 머리… 순간 우현은 떠오르는 기억에 표정이 어둡게 일그러졌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환자를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그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서,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치프에게도 항상 욕을 먹었고, 다른 의사들한테도 대대적으로 찍히고 꾸짖음을 당하는 그였다. 우현은 머리를 마구 헤집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이, 무기력하게만 느껴졌다. 삐- 삐-. 심전도 소리만이 조용한 그 곳에 들려왔다. 응급실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고 많은 의사들이 급하게 뛰어다니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우현에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심장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