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과 조련남 박지민
: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답니다
어, OO야 왔어? 지민이가 너 한참을 찾던데. 연락도 안 된다고 하고.
아, 저 실기 연습한다고 못 봤나봐요. 고마워요, 선배.
오냐. 근데 이지은 어디있는 줄 알아?
표정 관리 잘하자, OOO. 애써 웃음을 유지한 뒤 입을 앙 다물고 고개를 내젓자 알겠다며 호석선배는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어우, 하마터면 다 털 뻔 했네. 오늘도 나는 친구의 목숨을 지켰다! 뿌듯한 마음으로 동아리실의 문을 열자, 옹기종기 모여있는 선배들의 모습이 보였다. 뭐야, 평소랑은 다르게 분위기가 어수선하네. 그 속에서도 지민이를 찾으려 두리번 대자 저기 구석에서 노란색 담요를 뒤집어 쓰고 무언가를 들고 꼼지락대는 지민 아니, 토끼가 보였다. … 미친, 저 토끼 머리띠는 뭐야?
야, 지민아. OO 왔다.
색종이를 만지작거리던 윤기 선배가 입을 헤 벌리고 있는 날 발견하고 한심한듯 쳐다보다 큰 소리로 지민이를 부르자, 인상을 찡그려가며 열중해있던 지민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머리띠에 달려있던 토끼 귀가 살랑하고 흔들렸다. 아, 미친 어떡해 귀여워…. 씨, 씹덕사. 시, 심쿵. 나도 모르게 옷소매 끝을 꼭 쥐고 있는데, 반가운듯 지민이가 활짝 웃으며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나를 끌고 자리에 앉혔다.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됐어, 기다렸잖아 응?
아, 아니 근데 지민아 너 그거…
응? 뭐, 아 뭐야 윤기 선배!!!
손가락으로 토끼 머리띠를 가르키자 지민이가 손으로 제 머리를 더듬다 툭하고 걸리는 머리띠를 급하게 벗어제끼고 열분을 토했다. 아오, 내가 이 선배를 진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을텐데! 남준 선배와 얘기를 하고 있던 윤기 선배가 힐끔 나를 바라봤고, 나는 지민이 몰래 슬며시 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민선배, 나이스.
뭐해, OO야?
그런 나를 의아하게 보던 지민이에 의해 급하게 돌아 앉고 방금 바닥에 내팽겨쳐진 토끼 머리띠를 만지며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자 지민이가 울상을 하고는 한숨을 푹 내쉰다. 아니, 이번에 실습을 가는데 교수님이 수업 과제로 동화구연을 넣으신 거야…. 아, 그래서 유교과 애들이 색종이를 들고 돌아다니는 거였구나. 워낙 체대와 사범대가 가까워 수업을 들으러 돌아다니다 보면 유교과를 많이 마주치는데, 오늘만 해도 색지 들고있는 애들을 5번은 본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자 유교과 애들이 동아리 사람을 한 명씩 끼고 풀칠, 가위질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동아리방이 풀이었구만?
그래도 방금 태형이가 도와주고 가서 나 얼마 안 남았어!
아, 진짜? 다행이네 우리 지민이.
근데에…
밝은 표정으로 나에게 소품들을 늘어놓으며 자랑을 하기에 나도 마주보고 웃어 보이는데, 갑자기 지민이가 말꼬리를 늘리며 몸을 베베 꼬기 시작했다. 왜, 왜 이러는 거야 얘 또? ※ 갑작스러운 박지민의 잔망스러움은 심장의 무리를 줄 수 있어 주의를 요합니다. ※ 당황스러운 마음에 푹 수그러진 동그란 머리통을 냅다 쓰다듬자, 제 머리를 내어 준 지민이가 입술을 쭉 내밀며 내 두 손을 맞잡더니 제 앞으로 나를 쑤욱 끌어당겼다. 내 어, 엉덩이. 평소에는 잔망잔망하던 애가 이렇게 힘을 쓰면 되게 당황스럽고 내가 건장한 23세 청년과 연애를 하는 게 맞기는 맞구나, 하고 또 한 번 자각을 하게 된다. 우, 우리 지미니는 포도 스티커가 다가 아니라구!
이게, 소품 만드는 건 쉬운데 구연이 너무 어려워….
금새 앞으로 끌어당겨진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지민이가 웅얼댔다. 꼭 실습 기간만 되면 풀이 죽는다, 지민이는. 승부욕이 센 것도 있고, 자존감이 남들보다 낮은 것도 있고. 기를 써서 좋은 점수를 받아내려고 노력은 하는데 몸이 따라주질 못하면 꼭 이렇게 풀이 죽어 몸이 축 쳐진 채로 캠퍼스를 돌아다니다 한 번 크게 아픈 뒤에야 끝이 난다. 내가 등을 토닥여주자 몸이 불편했는지 나를 한 번 떼어낸 지민이가 결국 나를 품에 안는다. 아무리 봐도 쪼그만데 안으면 나보다 큰 품이 실감이 나는 게 새삼스럽다.
그래서 말인데, 도와주면 안 될까 OO야?
내가? 괜찮겠어? 그, 태형이도 있고 지은이도 있고….
또 그래. 태형이랑 지은이 말고 OO가 도와주는 게 좋은데, 나는.
정수리에 콕하고 턱을 기댄 지민이가 툴툴댔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마음에 비해 워낙 대하는 데에 서툴러서 지민이를 따라 유치원이나 센터 봉사를 가면 꼭 한 명씩은 울리고 마는 나여서 언제나 지민이가 도움을 요청하면 태형이나 지은이를 앞세워 뒤로 숨었다. 내가 생각해도 맡기기에 나는 영 불안하니까. ' 자, 여기.' 지민이 품에 안겨 눈동자를 굴려가며 고민을 하는데 바로 곁에 윤기 선배 목소리가 들려서 얼른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지민이가 종이 한 장을 내 눈 앞에 들이밀었다.
OO 어린이, 6개만 채우면 포도 완성이죠?
옘병. 나는 동화구연에 내 목숨을 바칠 것이다.
**
그래도 너네 과방이잖아. 나 들어가도 돼?
내 여자친구라는 거 모르는 사람도 없는데, 뭐. 얼른 들어와. 빨리!
지, 지미나?
결국 급하게 바리바리 소품을 싸들고 과방으로 끌려왔다. 포도 스티커로 유혹했다는 건 이미 머리에서 지워버렸는지 그저 내가 도와준다는 사실에 신이 난 지민이가 과방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나를 끌어당겼다.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과방엔 아무도 없었고, 동화구연의 여파로 온갖 색지만 너저분하게 놓여져 있었다. … 어우, 미친 풀장인 줄 알았네. 유교과라고 지네들이 진짜 어린인 줄 아나 보다, 이것들이. 색색깔의 종이를 헤치고 어린이용 테이블에 앉은 지민이가 맞은편에 나를 앉히고는 소품이 담긴 박스를 품에 안고 왔다.
원래 토끼 역할은 석진 선배가 하는데, 오늘은 OO가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이건 네가….
박스를 옆에 놓더니 몸이 들어갈듯 안을 뒤지던 지민이가 아까 보았던 토끼 머리띠를 꺼내들더니 내 얼굴을 잡고 제 앞으로 끌어당겼다. 잠깐만, 지민아. 그러자 지민이가 으응? 하고 웃으며 흘러내린 내 머리를 조심스레 귀 뒤에 꽂아 넣고는 토끼 머리띠를 씌웠다. 미친. 내 꼬라지 어떡해. 갑자기 다가온 지민이에 놀라는 것도 잠시 어울리지 않는 토끼귀를 달고 있을 내 꼬라지가 상상이 돼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생기다 만 얼굴이라도 귀엽다고 할 어렸을 때도 공주 역할 대신 장군이나 용사 역할을 도맡아 해서 토끼는 나와 거리가 멀고도 먼 사이였다. … 무서워, 그냥 무섭고.
OO 어린이, 오늘은 토끼와 거북이 속 토끼가 되는 거예요. 알겠지?
아니, 지민아 이거는 실전이 아니니까 그래도 머리띠는….
쓰읍.
그래, 나는 이미 포도 스티커의 노예잖아. 침착해, 침착하자고. 이딴 토끼 머리띠 쯤이야. 단호하게 나를 바라보던 지민이에 결국 꼬리를 내리고 무릎 위에 곱게 손을 얹었다. 그리고 지민이를 올려다 보는데, 그런 나를 보고 있던 지민이가 벌떡 일어나 테이블을 돌아 내 앞에 서더니 나를 품에 꼭 껴안았다. 지미나, 니가 막 이렇게 갑자기 나를 껴안고 그러면 내가 … 너무 좋자나. 자꾸 기어나오려는 웃음을 속으로 꾹꾹 눌러담고 지민이의 품에 어정쩡하게 안겨있는데, 지민이의 빨개진 귀가 눈에 들어왔다. 너 귀 빨개졌다, 지민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지민이가 힘이 빠진 듯 나에게 몸을 기댔다.
나 진짜 OO 어린이 같은 아기 있으면 구연 못해, 못한다구….
지민이의 투덜댐에 머리를 쓰다듬다 급하게 의자를 끌어와 지민이를 앉혔다. 물론 정말 무게 때문이 아니다. 무거워서 그런 게 아니다. … 박지민이 또 운동을 했나 보다. 무, 무겁긴 하다. 지민이가 모르게 옷을 정리하는 척 어깨를 몰래 주무르고는 말을 하려는지 입을 달싹이는 지민이와 눈을 마주했다. 너 그렇게 막 올려다 보고 그러니까 나 아무것도 못하겠어. 너무 귀엽잖아. 지민이의 말에 오히려 내 얼굴이 더 빨개졌다. 그러니까, 그게 말이야. 음, 그러니까. 어, 어떡해요? 상황을 수습하려 얼른 구연동화 카드를 허우적대며 지민이의 손에 쥐여줬다.
지민, 지민아 우리 이거 연습해야지. 응?
…
그럼 내가 토끼 대사만 하면 되는 거지? 나, 나 토끼 빙의한다?
…
내가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붙이며 나름 깡총깡총이라고 토끼 흉내를 어설프게 내자 그제서야 지민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결심한듯 카드를 집어들고 구연을 시작하려는지 큼큼 하고 목을 풀었다. 씨부럴, 깡총깡총이고 뭐고 토끼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 나는.
옛날 옛날에 토끼와 거북이가 살았어요.
지민이의 목소리로 드디어 동화가 시작됐다. 다행히도 이 동화 속 토끼의 캐릭터는 야비함 >>>>> 귀여움 이라 열심히 구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온 힘을 다해 연기를 했다. ' 하, 커북아 그렇게 느리게 걸으면 오늘중으로 집에는 갈 수 있겠뉘?' 나는 그렇게 못미더워하던 윤기선배를 비롯해 유치원 선생님들이 존경스러웠다. 나의 발연기에도 흔들리지 않은 지민이는 꿋꿋이 동화구연을 해나갔다.
나무 밑에 누운 토끼는 잠이 왔어요. 그리고 토끼는 조금 있다가 '쿨쿨' 자기 시작했어요.
여기서는 이렇게 누워서 자는 척하면 되는 거지, 지민아?
응? 아, 응 맞아.
덩달아 구연에 집중한 나는 심지어 색지를 파헤치고 과방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아 드러누워 자는 척 연기를 했다. 토, 토끼는 어떻게 자더라. 발가락 하나하나도 연기를 해가며 자는 척을 해가고 있는데 분명히 열심히 가서 결승점에 도달해야할 거북이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진행해야 할 지민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원래 이렇게 텀을 줘야되는 건가 싶어 가만히 누워 있는데,
거북이도 참 대단해. 어떻게 토끼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지? 막 나쁜 마음도 들구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감고 있던 눈을 뜨자 지민이가 내 옆에 쪼그려 앉아 가만히 나를 내려다 보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뭐라고 지민아? 방금 나쁜 마음이라고 하지 않았니? 바른 소년 지민이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 게 신기해 꿈뻑이며 지민이를 쳐다보는데,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지민이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하더니 꼭 아기들에게 웃어주는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나는 있잖아.
…
막 나쁜 마음이 들구 그러는데.
지민이가 허리를 숙여 내 입에 입을 맞췄다. 심멎. 어, 어레스트…!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자 지민이가 손바닥으로 내 얼굴 위를 덮었다. 경주하다가 낮잠자고 있는데 눈을 뜨는 게 어딨어. 지민이가 볼멘 소리로 말했다. 이거 진짜 유치원 가서 할 거는 아니지? 결국 안절부절하다 지민이의 말에 눈을 꼭 감자 옅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이거는 이렇게 끝나는 거야. 토끼와 거북이는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답니다.
지민이가 한 번 더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암호닉 샘봄 방탄분홍머리걔 곱창 침침워(먼)더 포도센세짐니 슬요미 집순이 얏호 귀여운주사 마름달 똘똘이스머프 지민이네달빛 침침쓰 다들 감사드립니다 진챠로 ♡
댓글도 달아주시고, 이런 글에 암호닉도 신청해주시고! 제가 꼭 이 분들을 위해 완결을 하면 외전이라든가, 텍파라든가 꼭 만들게요...! (약속) ♥
+ https://youtu.be/gWf_9LG3RC8 참고한 토끼와 거북이 구연동화 (오랜만에 동화구연 들으니까 참 찰지고 좋네요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