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과 조련남 박지민
: 내 남자의 첫사랑 엿보기 下
(첫 번째 BGM)
야, 박지민 어딜 그렇게 봐.
아, 아니 그냐앙….
오늘 밤에 애들 모인대. 너도 가족이랑 밥 먹고 바로 넘어와라. 알겠지?
으응.
졸업식이라고 멋을 부린다며 패딩을 집에다 쳐박아두고 온 김태형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말하고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수다를 떨기 위해 몸을 돌렸다. 괜히 한숨이 쉬어졌다. 도대체 왜 없는 거지…. 오늘은 꼭 말할 거라며 거울을 보고 수십번을 되뇌였건만, 정작 주인공인 OO는 아무리 찾아도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 친하지도 않았던 친구에게 작별인사를 한답시고 헐레벌떡 3반에 갔지만, 보이는 건 빈자리 뿐이었다. 괜한 패딩 끝자락만 만지작거리는데 단상 위에서 교장 선생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급하게 3반을 돌아보는데, 아직까지도 한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이상으로 졸업식을 마치겠습니다.
한참을 삐딱하게 고개를 비틀고 단상만 바라보기를 1시간 째, 사회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환호성을 지른 아이들은 저마다 꽃다발 하나씩을 들고 친구들과 모여 사진 찍기에 바빴다. 야, 너 빨리 안 올래 박지민? 사진 찍는 것도 미룬채로 3반만 힐끔거리고 있던 나는 결국 김태형에게 끌려가 웃음 아닌 억지 웃음을 지으며 고등학교를 추억할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머리 속에서는 온통 OO 이름만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그 덕에 아직까지 내 졸업식 사진은 서랍에 쳐박혀 먼지만 쌓이고 있다.
야, 저녁 다 먹고 연락해?
알겠다니까, 진짜아.
잊어버릴까봐 그러지. 잘 가라, 박지민.
내 어깨를 툭툭 친 김태형이 가족들과 함께 강당을 나섰다.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여지껏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았고, 강당 이곳저곳을 둘러봐도 어디에도 OO는 없었다. 지민아, 우리도 이제 나가자. 하필이면 졸업식과 친척의 결혼식이 겹쳐 마음이 급했던 아빠와 엄마는 서둘러 강당을 나섰고,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교실에 놔두고 왔던 이어폰이 생각나 어머니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선 교실로 얼른 발걸음을 뗐다. 아, 그거 입학 기념으로 비싸게 주고 산 건데 진짜…. 툴툴대며 한적한 복도에서 발을 쿵쿵 구르며 교실로 향했다. 고맙게도 아까 학교에 일찍 도착해 노래를 듣는다며 꺼내놓았던 이어폰은 곱게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아, 다행이다. 이어폰을 주머니에 쑤셔넣는데, 기다리다 못한 엄마의 전화가 걸려왔다. 금방 간다니까….
… 어, 아, 안녕 지민아?
핸드폰을 멍하니 귀에서 떼냈다. 늦잠을 잤는지 살짝 젖은 머리를 한 OO가 숨을 살짝 헥헥거리며 가방끈을 꼭 쥐고 내 앞에 서 있었다. 순간 꿈인 줄 알았다. 설마 나 수능 대박난 것도 꿈은 아니겠지. 주머니 속 꼬인 이어폰을 쥐고 있던 손으로 허벅지를 꼬집었다. … 이거 꿈 아닌가 봐아. 핸드폰을 쥔 손으로 어색하게 나도 손을 흔들었다. 아, 안녕. 그러자 OO는 여느때처럼 환하게 웃어보였다. 여전히 예쁘다 OO는. 흘러내린 옆머리를 귀에 꽂은 OO가 머뭇거리다 주머니 안으로 손을 넣어 꼬물거렸다.
이, 이거 먹을래?
으응?
그냥, 음…. 졸업식 선물?
졸업 축하해, 지민아. 초코맛 사탕이다. OO와 처음 마주한 순간이 기억났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 사탕을 조심스레 받았다. 한겨울에도 손에 땀이 흥건했는지 사탕이 복도로 떨어졌다. 옅게 웃은 OO가 쪼그려 앉아 사탕을 주워서는 다시 내 손에 쥐어줬다. OO의 손과 내 손이 겹쳤다. 그냥 스친 건데도 부르르 몸이 떨렸다. 괜히 민망해 멋쩍게 웃어보이는데, 제 두 손을 마주잡고 땅으로 시선을 두고 있던 OO도 고개를 살짝 들고는 나와 마주보고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아, 말…. 말 해야지. 할 거야, 지금.
OO야, 그러니까. 있잖아. 내가….
두서없이 급하게 꺼낸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저 멀리서 우당탕탕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야, OOO! 코치 쌤이 밥 사준대, 빨리 와. 전에 보았던 OO의 친구였다. 쟤는 항상 타이밍을 저렇게 잘 맞추더라. OO 몰래 그 친구를 살짝 쏘아봤다. 고개를 돌려 그 친구에게 긍정의 표시를 한 OO가 다시 나를 마주봤다. 그렇게 거울 앞에서 다짐을 했음에도 말이 한 번 막히자 꼭 목에 뭐가 꽉 차 있기라도 한 듯 원하는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 아니야. 너도 졸업, 축하한다구.
아, 응 너도!
그럼, 나 부모님 기다리고 계셔가지구…. 먼저 갈게. 잘 지내.
결국 용기 없이 먼저 등을 돌렸다. 박지민 멍청해. 찌질해. 짜증나. 애꿎은 머리만 통통 때렸다. 이상한 건 내가 복도의 끝을 걸어갈 때까지도 뒤에서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
얘들아, 이번에 호석 선배가 체대랑 과팅 잡았대. 나갈 사람 나한테 톡 좀.
전공을 듣고는 피곤해진 몸으로 급하게 짐을 싸들고 몸을 일으키는데, 우리를 멈춘 과대가 급하게 말하고는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흔들었다. 원체 과 안에 여자가 많아 보통 잡히는 과팅은 여자 동기들을 위한 거였고, 금새 흥미를 잃은 내 친구들은 다시 짐을 싸고는 강의실을 나서려 했다. 그러자 그런 우리를 바라보던 과대가 서둘러 나와 남자 동기들 앞에 멈춰서더니 소리를 질렀다.
아, 사람 말은 좀 끝까지 들어라!
…?
이번 과팅은 남자 애들만! 체대에서도 여자 애들만 나온대.
시끄럽던 여자 동기들은 에이 뭐야 하곤 실망한듯 툴툴대더니 금새 조용해졌고, 아까의 상황과는 다르게 금새 얼굴을 붉힌 남자 동기들은 서로 침을 튀기며 입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손으로 금방 떨어질 듯한 전공책을 고쳐잡은 나는 그런 동기들을 기다리기 위해 책상 위에 살짝 걸터앉아 핸드폰을 들었다. 과팅 같은 거 뭐하러 해. 속으로 툴툴대며 잠금을 풀자 강의실 앞이라며 얼른 나오라고 재촉을 하는 김태형의 톡 덕분에 상태바가 복잡했다. 고개를 살짝 들어 열나는 토론을 하는 남자 동기들을 힐끔 바라봤다.
지민이 너는 특별히 빼달라고 윤기 선배한테 말했어. 나 잘했지?
남자 동기들 옆에서 팔짱을 끼고선 흐뭇하게 바라보던 과대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급하게 내 옆에 뛰어온 과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 고, 고마워어…. 몸을 살짝 떼어내곤 말했다. 그러자 금새 과팅에서 나로 주제를 바꾼 남자 동기들이 이번 과팅에 나온다는 체대 사람들이 크게 확대된 사진을 핸드폰에 띄운 채로 나에게 다가왔다. 아, 망했어 진짜아.
야, 지민아 너 진짜 안 나가?
냅둬. 지민이 개총 때 좋아하는 애 얘기하면서 울고불고 했던 거 기억 안 나?
그래도. 야, 근데 이번 애들은 진짜 예쁜데? 특히 얘. 와, 존나 예쁘다 진짜.
핸드폰을 눈 가까이에 대고 낄낄대던 동기가 나에게 핸드폰을 건넸고, 난 어색하게 웃으며 그 손을 밀어냈다. 아씨, 앞으로는 술 안 먹어 절대로…. 평소에 술을 잘 안 먹지만 선배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들이킨 술의 결과는 처참했다. 정신을 잃은 나는 OO의 이름을 연거푸 불러가며 오열을 했고, 결국 나도 모르게 나는 유교과 순정남이 돼 가고 있었다. 물론 순정남이 아니란 건 아니지만, OO를 이제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오 쪽팔리잖아….
박지민이, 너 이렇게 친구 굶길래? 나 배고파 죽겠다니까 진짜.
동기들에게 억지웃음을 짓고 있는데 강의실 문이 벌컥 열리며 가방을 둘러맨 김태형이 쿵쿵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강의실 안으로 걸어왔다. 나를 둘러싼 남자 동기들의 시선이 김태형에게로 집중됐다. 야, 태형아 이번에 너네 과랑 우리 과랑 미팅한다? 대학에 올라와서도 붙어다니던 김태형은 금새 나의 과 친구들과도 친해졌다. 낯을 가려 김태형이 속한 체대와는 전혀 얼굴 마주하지 않은 나와는 달리. 김태형은 웃으며 동기들의 말에 맞장구를 쳤고, 가만히 그걸 보고있던 나는 시간이 늦어지자 결국 책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동기들이 그런 나에게 눈을 돌렸다.
야, 니 친구 지민이는 언제 짝사랑 청산한대냐?
어? 박지민이 왜.
또 과팅 안 나가신댄다, 그 짝사랑 덕분에.
… 미친 놈이.
작게 욕을 읊조리던 김태형이 내게로 다가와서는 뒷통수를 소리나게 때렸다. 아, 아아! 김태태 진짜아…. 한 손을 들어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쏘아보자, 엄한 표정을 지어보인 김태형이 내 손목을 잡고는 끌고 동기들 사이에 데려왔다. 야, 박지민 그냥 명단에 추가해. 카톡을 확인하던 과대가 김태형의 말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미쳤어, 김태형? 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나 아직 조, 좋아하는 거 알면서…. 인상을 찡그리자 그걸 바라보던 김태형이 안절부절하던 과대의 어깨를 툭툭쳤다. 부탁할게, 과대야. 박지민 꼭 넣어줘. 속사포로 말을 뱉어낸 김태형이 내 손목을 잡고 급하게 강의실 밖을 나섰다.
야, 아 진짜아! 김태형 너 지금 뭐 하냐, 응?
학교 안에 위치한 공원 앞에서 간신히 김태형의 손을 뿌리친 나는 머리를 헝크리며 말했고, 그런 나를 보던 김태형이 엉망이 된 내 머리를 투박하게 쓰다듬었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짝사랑에 집착하고 있을 건데. 너 가만 보면 OO, 걔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짝사랑을 즐기는 것 같다? 김태형의 말에 마음이 울컥했다. 내 진심을 모독했어, 김태태…. 원망스럽다는 듯 김태형을 쳐다보자 어깨를 으쓱한 김태형이 내 핸드폰을 턱짓으로 가르켰다.
사탕 그게 뭐라고 껍질까지 케이스에 끼워서 보관하고, 걔가 준 거라고.
… 야.
그러니까, 짝사랑은 이제 좀 끝내라고. 보는 내가 안쓰러워 죽겠으니까.
괜히 핸드폰을 쥔 손을 등 뒤로 감췄다. 내 마음도 모르고 말을 하는 김태형이 너무 미우면서도 나를 걱정해주는 걸 알기에 아무 말도 못한채로 입을 앙 다물었다. 나도 그게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걸 어떡해…. 우물쭈물하던 나를 보던 김태형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어깨를 툭툭 내리쳤다. 너는 진짜 나중에 이 형한테 감사해야 할 거다. 뭐라는 거야. 복잡한 상황에서 장난을 치는 김태형이 짜증나 어깨에 내려진 손을 툭 쳐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짝사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을 때까지 OO랑은 만날 일 없을 건데. 괜히 마음이 침울해졌다.
어, 박지민이지 쟤? 박지민!
결국 깜깜해진 저녁 하늘에 고개를 숙이고 풀이 죽어있던 나를 보던 김태형은 편의점으로 가 맥주를 사왔고 한 모금, 두 모금 캔을 비워가던 나는 알딸딸한 상태에 도달했다. 가벼워진 맥주캔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고개를 번쩍 들자, 손을 붕붕 저어가며 나에게 뛰어오는 호석 선배와 그 뒤를 귀찮다는 듯 터덜터덜 따라오는 윤기 선배가 보였다. 술기운에 눈이 풀린 나는 꾸벅 고개만 숙였고, 금새 선배들은 우리 옆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박지민 너 과팅 나가기로 했다며, 과대한테 들었다.
아, 아 저어기….
얘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하지 않았어?
나를 툭 치며 장난치듯 말하는 호석 선배를 뒤로 윤기 선배가 넌지시 나에게 물었다. 그냥 일 있다고 개총을 빠졌어야 했어…. 윤기 선배의 말에 우물쭈물하다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호석 선배와 김태형은 금새 다른 주제를 찾아 수다를 떨었고, 윤기 선배는 조용히 내 옆자리에 앉았다. 옆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고, 윤기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야, 너는 절대 김교수 강의 듣지 마라. 과제 때문에 죽어난다. 그렇게 말한 윤기 선배는 기지개를 펴며 벤치에 몸을 기댔다. 나는 답 대신 꾸역꾸역 고개를 끄덕였다.
야, 근데 너 진짜 과팅 나가냐.
입을 닫고 있는 나에 지루했는지 핸드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던 윤기 선배가 내 맥주캔을 뺏어 한 모금 들이키더니 은근슬쩍 물어왔다. 괜히 몸이 움찔거려 어색하게 하하 웃어보이고는 답을 미뤘다. 솔직히 방금 전까지는 차라리 나가자 라는 마음이었는데, 또 생각해보면 아직까지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내가 다른 사람이랑 만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머뭇거리던 나를 보던 윤기 선배가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냥 친구 만드는 셈 치고 갔다 와. 꼭 사귀라는 것도 아닌데, 뭐.
….
괜히 마음 더 복잡해지지 말고.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으로 계속 남겨 둬.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연거푸 한숨을 쉬던 나의 어깨를 툭툭 친 윤기 선배가 전화를 받으러 잠시 자리를 비웠다. 점점 술기운이 더 올라오는 것 같았다. 열이 오르고, 머리가 어질어질 했다. 모르겠다, 그냥.
**
- 야, 너 진짜 깔끔하게 해서 가는 거 맞지?
김태태, 나 사귀려고 가는 거 아니라니까아.
- 아, 아무튼. 가서 잘해라, 꼭.
전화 너머로 호들갑을 떠는 김태형이 떨떠름했다. 여자 만나려고 가는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결국 며칠만에 내가 과팅에 나간다는 소문은 우리 과 전체에 퍼졌고, 빼도박도 못하게 생긴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과팅에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전날까지도 이불을 발로 차며 고민을 했던 나지만, 아침이 되서야 10통까지 온 전화를 보고서 대충 옷을 꿰어입고 집을 나섰다. 그냥 친구나 사귀러 나가는 거야, 친구만. 핸드폰 뒤에 있는 초코맛 사탕 껍질을 보며 굳게 다짐했다.
박지민, 니가 제일 늦었다. 빨리 와.
카페에 들어서자 저 멀리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남자 동기들이 보였고, 그 앞에는 쑥쓰러운듯 저마다 서로 속삭이기 바쁜 체대 애들이 보였다. 나는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테이블을 향해 빠른걸음을 했다. 야, 너 땡 잡았다. 앞에 봐, 존나 예쁘다 쟤. 허겁지겁 자리에 앉자마자 나를 끌어당긴 과대가 내 귀에 속삭였다. 어차피 친군데 예쁘건 말건. 입술을 쭉 내민 나는 아직까지 김태형의 전화가 오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꾸깃꾸깃 집어넣었고,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어….
지, 지민아?
OOO?
#OOO 였다. 내 짝사랑, 그리고 첫사랑.
아는 체를 하는 나와 OO에 아이들은 우리를 번갈아 보기 바빴고, 예전처럼 환하게 웃은 OO는 그런 아이들에게 고등학교 동창이었다며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아, 어떡해. 표정 관리가 안 돼…. 벙 쪄있는 나를 본 과대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고, 옆에 앉아있던 남자 동기는 아마 OO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듯 아쉬운 표정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질투가 나는데, 그 때는 그런 걸 신경쓸 새도 없이 심장이 쿵쿵 뛰어서 죽는 줄 알았다.
진짜 오랜만이다, 그치. 같은 대학 왔을 줄은 몰랐네.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웃음을 지어서 말하는 OO를 보니 가슴이 벅찼다. OO는 여전히 예뻤다.
**
(두 번째 BGM)
아, 그래서 김태형이 맨날 교대 건물 가는 거였구나.
너랑 같은 대학일 줄은 생각도 못했어.
으응, 나두….
과대에게 얘기를 전해듣자마자 호들갑을 떨던 동기들은 결국 OO와 나에게 따로 시간을 주겠다며 손수 내 짐을 챙겨 카페에서 내보냈고, 시간이 조금 늦어 깜깜해지기 직전이었던 탓에 대충 눈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밥을 꾸역꾸역 먹고 OO를 집에 데려다 주는 길이었다. OO는 자취를 한다고 했고, 자취방으로 가는 길엔 사람이 잘 없고 한적했다. 덕분에 OO의 목소리를 오롯이 들을 수 있어서 더 설렜던 것 같다.
아기 좋아하는 것 같더니, 결국 유아교육과네?
어색한듯 설레는 분위기에 OO가 입을 열었다. … 아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니가 좋아서 인데. 말을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앓는 내가 너무 미웠다. 대답대신 땅을 보며 웃었고, 옅은 웃음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OO를 보는데, 시선을 정면으로 둔 채로 천천히 걷던 OO가 얼굴과 귀가 발갛게 물들여 있었다. 귀여워. 괜히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렇게 뛰는 심장을 뒤로한채로 걷다보니 자취방에 다다랐다. 자취방 앞에는 가로등 하나가 깜빡이며 서있었고, 그 가로등 앞에 멈춰 선 OO가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데려다 줘서 고마워. 바로 앞이 우리 집이니까 가 봐도 돼, 지민아.
아….
오늘 진짜 반가웠어.
손장난을 치며 OO가 우물쭈물 거렸다. 콩깍지가 씌였는지 그런 모습도 예뻐 보였다. 근데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은데…. 바로 앞에 보이는 대문이 야속했다. 이 참에 가로등이라도 확 꺼져라, 조금만 더 같이 있게. 아무리 세모꼴의 눈을 하고 가로등을 노려 봐도 멀쩡하던 가로등이 꺼질 리는 없을 일이니까.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OO를 마주보고 섰다. OO의 눈을 올곧이 나를 향해 있었다. … 어떡하지, 진짜.
나 들어갈게, 그럼. 다음에 연락해!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에게서 몸을 돌려서 집으로 들어가려던 OO의 손을 잡아 돌려세웠다. 당황한 듯 OO의 눈은 커져 있었고, 어깨를 움찔거렸다. 어디서 그렇게 용기가 났는 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냥 오늘이 아니면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졸업식 이후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초코맛 사탕을 꺼내 OO의 손에 쥐어줬다.
좋아했어, 그 때도. 그리고 지금도.
….
그러니까, 그게, 지금도 좋아하고 있어.
….
좋아해, OOO.
너무 늦게 찾아온 작가가 미안한 마음으로 드리는 선물 (듣던 BGM을 끄고 열어 주세요) |
우리들은 흔히 TV 속 사람들에게 환상을 가지곤 한다. 예륻 들자면, 소매를 걷어 부치고 땀을 훔치며 요리를 하는 남자에게 요섹남 이라는 별칭을 붙이고 오빠, 오빠는 요리할 때 제일 섹시해요! 하고 소리를 지른다던가 뭐 그런 거. 한 때는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우리 오빠' 의 사진을 내 방 한구석에다 떡하니 붙여놓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종이 쪼가리에다 입을 부딪히며 뽀뽀를 하고, 부엌 찬장에 숨어있던 라면을 가지고 오빠의 모든 것을 따라하겠다며 전복을 퐁당 넣어버려 엄마에게 머리채를 잡아 뜯긴 그런 기억 정도는 나도 가지고 있단 말이다. 그런데, 참 환상이란 게 빠져있을 때야 이 세상이 다 내 것 같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이 기쁘게 하는데 이게 또 깨지고 나면 인생의 어떤 비극 보다도 슬프다 이 말이다. 야, 덜렁이 어딨어. 보이면 바로 홀로 나가라 그래. 씨발, 이걸 닦았다고 내밀어 지금?! 마치, 저 멀리서부터 살기가 느껴지는 민셰프가 나의 환상을 와장창 깨트려버린 것과 같이. 씨부랄, 존나 깐깐해 민셰프 개새끼. 민셰프의 법칙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에 따르라고 하듯, 우리 레스토랑에도 어길 수 없는 법이 있다. 그걸 바로 민셰프의 법칙이라고 부르는데, 줄여서 뭐 민틀러 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법이라기 보다는 그날 그날에 따른 민셰프의 마음대로 라고 해야하나. 그러니까, 독재 정치라고 할 수 있다. 민셰프의 말이라면 다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OO야, 너 홀에 있지 말고 들어오라시는데, 민셰프가? 홀에서 서빙을 담당하고 있던 내게 쭈뼛쭈뼛 다가온 지민 오빠가 손님에게 미소를 짓고 돌아선 나에게 속삭였다. 아깐 홀에 있으라면서요…. 투덜대듯 지민 오빠에게 입을 불퉁 내밀고 말하자, 모른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 지민 오빠는 다시 주방 안으로 급하게 도둑걸음을 하며 돌아갔다. 내가 씨발 셰프건 뭐건 그냥 종이지, 종. 한숨을 푹 내쉬곤 앞치마에 손을 벅벅 닦고 주방장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누군가가 강하게 내 어깨를 잡고 돌려세웠다. 내가, 먼지, 난다고, 조심히, 행동하랬지. 아아, 솊 아파요 진짜! 아프라고 한 거야. 내 볼을 힘을 주어 꼬집 듯 잡아쥔 민셰프가 단어 하나하나마다 끊어가며 손에 힘을 주었다. 아오, 진짜 요리를 해서 그런지 손 힘은 겁나 세요. 나를 바라보던 셰프가 손을 올려 내 찌푸려진 미간을 꾹꾹 눌렀다. 덕분에 휘청거린 내가 주방장 한켠에 쳐박히며 휘청댔다. 내가 요리 나가기 전에 꼼꼼히 확인하라고 했지. 엄한 표정을 지은 셰프가 내 눈을 올곧이 쳐다보며 말했다. 내, 내 잘못이긴 한데요 그러니까 그게…. … 죄송합니다, 솊. 여기서 내가 말 한 마디 했다가는 두 발로 주방에서 걸어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를 바라보는 셰프의 눈을 피해 허리를 꾸벅 숙이다 뒷쪽에 쿵 하고 부딪혀 급하게 손으로 문질렀다. 아오, 아파. 그런 내 모습을 보던 셰프가 픽 하고 웃어보이고는 내 정수리를 꾹 눌렀다. 제발 잘 좀 해라, 어? 네, 솊. 그리고. 뭐 어쩌라는 거야. 말을 하다가 끊은 셰프가 내 뒤쪽을 뚫어지게 쳐다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 저도 꼴통인 거 아니까 그렇게 면전에 대놓고 한숨 쉬지 마시라구요. 고개를 숙이고 힐끔힐끔 셰프의 눈치를 보는데, 갑자기 셰프가 느릿하게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내 발은 저절로 뒷걸음질 쳤고, 턱 하고 막힌 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몸을 구부렸다. 셰프의 얼굴과 내 얼굴이 곧 닿을 듯 가까웠다. 뭐 하냐, 너 지금. 눈을 꼭 감는데, 어느새 멀어진 셰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게슴츠레 뜨자 한 손에 칼을 쥐고서는 삐딱하게 서서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보고 있는 셰프가 보였다. 야, 덜렁이. … 네, 네 솊?! 절도 좀 가고, 교회도 가고. 어? 느, 느에? 반성도 좀 하고, 자기 비판도 좀 하고. 낮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이듯 말하던 셰프가 씩 웃어보이며 내 머리를 툭 치고는 주방장을 나갔다. 야, 3번에 토마토 하나. … 민셰프의 법칙에 한 가지가 늘었다. ※ 절과 교회는 필수. 사람은 반성과 자기 비판을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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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죄송해요 (--)(__) 제가 일주일 동안 휴가를 다녀오느라고 쪼금 늦었습니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8ㅅ8 게다가 글도 막 써서 가지고 왔네요... 면목이 음습니다 헝.
지민이의 기나긴 첫사랑을 고작 두 편으로 간추려서 글을 쓰려니까 급전개인 점 양해 부탁드려요 ㅠㅠ 마음 같아서는 10편이 넘게 쓰고 싶다만, 주인공은 여러분이니!
오늘은 늦어서 정말 죄송한 마음으로 윤기 글을 한 개 가져와봤습니다! 요즘 제가 오나귀에 진짜 빠져서 살거든요. 이제 내일 낮에 10편 보고 밤에 11편 보고 헿.
냉부해도 좋아하구. 그래서 한번 셰프 글로 찾아와봤습니다! 정말 잘 하면 유교과 글이 끝나면 저 글로도 찾아뵐 수 있을 것 같아요. 독자님들이 좋아하신다면야…. 정말루!
늦어서 죄송하고 다음편은 일찍 오도록 노력할게요! 오늘도 읽어주신 분들 너무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