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국.
"아 벌써 2학기야."
"시간 참 빨리도 간다."
무념무상. 고3에게 시간은 하루는 길고 1년은 짧은거지. 이럴 때보면 예체능하는 애들이 부럽다가도 걔네 얘기들어보면 그건 또 아닌 것에, 참 살기 갑갑하다는 생각 밖에 안든다. 개학하자마자 바꾼 자리는 운동장이 훤히 보이는 창가 옆이 였다. 자기 딱 좋네, 이 자리. 맨 뒷자리에다, 옆 자리는 비어있기까지 하고말야. 수업 시작 하기 10분전. 지루한 선생님의 조례 소리를 듣다 그대로 엎어져 자리잡고 자려는데, 저어기 멀리 정문에서 훈남삘 한 명이 들어온다. 우리 학교에 저런 애가 있던가. 그럼 뭘해, 난 고3인데. 아 우울해.
"몇 분 남았지?"
"10분이요!"
"음... 어..."
손목시계를 바라보다 교실 시계를 한번 바라보다. 뭐가 그렇게 불안한건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쌤이다. 언제나 완벽주의를 추구하시는 분이다보니 뭐 하나라도 엇나갔다가는 그 날 하루종일 다크해진다. 그런 때에 괜히 건들였다가는 ...
'1번부터 10번까지 복도 벽, 바닥 쓸고 닦고 광내고!!! 나머지 교실 쓸고 닦고!!! 창틀 하나하나 먼지라도 껴있으면 ...!!!'
새끼 손가락으로 창틀 사이사이를 슥, 만져보고, 칠판 위에도 슥. 뒤 게시판 위에도 슥.
"으윽."
생각하기도 싫네.
"쌤 뭐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아.. 아 오늘 전학생 오기로 했는데."
"... 전학생이요?"
전학생이라는 소리에 눕혀졌던 몸이 자동적으로 일으켜진다. 전학생? 자동적으로 아까 보았던 운동장으로 다시 고개가 돌아간다. 느긋하게 잘 걸어오다 잠깐 멈춰서는 고개를 들어올린다. 쟨가, 설마?
"....."
".....!"
들어올린 그 아이의 얼굴과 딱 마주보고 말았다. 깜짝 놀라 눈을 피하려는데, 저 먼저 피하며 피식 웃는다. 혹시 날 본게 아닌가 싶어 앞 줄을 보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 나보고 웃은거야 지금?"
그 생각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제발, 제발 전학생 아니여라. 그냥 왠지 부끄러운 마음에 남몰래 그러기를 바라고 있었다.
2015, 천상계
"이야, 나보다 늦게 시작했으면서 벌써 정 1품이야?"
"... 뭘."
"정 1품이면 이제 특사인가?"
"... 뭐, 그렇지."
"나도 빨리 정 2품 딱지 떼고 싶다. 이게 몇 년째인지 몰라. 한 50년 됐나?"
특사. 특별 사신의 줄임말로, 정 1품에 달하는 사신들은 더 이상 망령을 데려가지 않는다하여 특별 이라는 호칭이 붙은 것이다. 한빈은 월등한 성적으로 1785년 이후, 약 230년 만에 정 1품이 되었다. 한빈은 정 1품을 받아도 그렇게 기쁘지 않았다. 그저, 그랬다. 오히려 지금 옆에 있는 준이 더 기뻐하고 있었다. 그런 준에 그저 살짝 웃어보이다 곧 한빈은 내려갈 채비를 했다. 옆에서 준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하고 한빈을 봤다.
"뭐야. 너 벌써 가게?"
"가야지, 그럼."
"야, 임명 받자마자 가는게 어디있냐?"
"정 1품은 망령은 안데려가도, 악귀 잡느라 바빠. 더군다나 내가 맡은 데는 더더욱."
"하여튼간 저 직업 정신. 뭐로 내려갈건데?"
내려가려다 만 한빈이 멈춰서, 준이를 향해 살짝 입꼬리를 올려보이며 재미있을 것 같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고딩."
얼마 안있어 교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가락 틈으로 그 쪽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다른 반 선생님이면 좋을텐데. 초조한 마음에 손가락 틈을 더 열자, ... 교복이 보인다. 그래, 전학생이니까. 전학생이니까 교복을 입었겠지.
"어어. 여기 전학생 왔네. 아슬아슬하게 왔네?"
"아, 차가 막혀서. 죄송합니다."
"아냐, 괜찮아. 시간 잘 지켰는데 뭘."
괜찮기는요. 들어오자마자 한시름 놨다는 표정 내가 봤는데요. 선생님은 그렇다 치고, 천천히 고개를 올려 밑에서부터 스캔에 들어갔다. 오, 비율 좋아. 이제 얼굴만 확인하면 되는데, 아까 그 사람만 아니면 된다. 그 사람만 아니면 돼.
"자, 소개해줄래?"
"... 이름은 김한빈이고,"
"...... 및 ...!"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대로 얼굴을 가리던 손을 내렸다. 아까 나와 눈 마주쳤던, 그 애. 걔가... 우리반 전학생이였다. 나도 모르게 뱉으려던 '미친' 이라는 말에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뱉을 뻔한 그 말에 일제히 시선이 다들 내 쪽으로 쏠린다.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전학생을 힐끔보는데, 아까 지었던 그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 잘지내보자, 한 학기 동안이지만."
... 글쎄, 내가 너랑 잘지낼 수 있을지가 의문인 것 같다. 왠지, ... 불안불안해.
"한빈이 자리는 어... 저기. 이름이 옆이 좋겠네."
"... 네?"
"왜, 너 옆자리 비어있잖아."
"아, 아니 그.... 저기 1분단에 구준회 옆자리도 비어있는데요?"
"오늘따라 말이 많다, 이름아?"
"... 예."
옆 자리 비어있다고 좋아할게 아니였다보다. 놓았던 내 짐을 내려놓곤, 뻘쭘히 창 밖만 바라보았다. 이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에 괜히 심장이 쫄깃하다. 의자 끄는 소리가 들리고, 앉는 소리가 들리고 은은한 향수 냄... 아 뭐하는거야 나. 곧이어 쌤이 나가시자마자 우리반 남자 애들이 다 이쪽으로 오기 시작한다. 구준회, 김동혁은 물론 우리반 범생이까지 다 김한빈, 얘한테 몰려서는 옆에 있는 나는 쭈구리 처럼 더더욱 창가로 붙었다. 이것들이 진짜.
"어디서 왔어?"
"해외에 있다 왔어."
"헐 해외파네, 해외파. 어디?"
"그냥 이곳저곳. 여러군데."
"오, 너네 집 돈 많아?"
저저, 구준회 철없는 질문 수준 봐라. 혀를 차며 쯧쯔 거리는데, 옆에서 김동혁이 내 쪽으로 넘어와 묻는다. 어떠냐며. 뭐가 어떠긴 어때 임마.
"얘기는 해봤어?"
"니네가 정신 사납게 둘러싸고 있잖아, 제발 꺼져줄 ..."
"야! 성이름 우리 때문에 한빈이랑 인사도 못했대, 비켜줘봐 좀."
아 새끼야,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며 부정하려 하는데, 옆으로 싹 빠지며 그대로 김한빈과 마주보고야 말았다. 아씨, 저 김동혁 진짜. 옆을 흘깃 보니 큭큭 대며 구준회랑 잘도 쪼개고 있다. 저거 어떻게 패지?
"... 하하. 안, 안녕."
"아 성이름 개어색해."
그러니까 누가 이딴 자리 만들랬냐고.
"아까도 봤는데, 나 봤지?"
"... 응? 아, 아니. 나 못봤는데..?"
"그래?"
되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니 그렇구나, 하며 또 입꼬리를 올린다. 저 표정 진짜 ... 괜히 얄미워져서는 고개를 돌리는데, 들어오는 영어쌤에 서있던 구준회, 김동혁, 범생이도 자리로 돌아갔다.
"자자, 자리에 앉고! 어? 전학생이네? 이름이..."
"김한빈입니다"
"어, 그래. 한빈이구나? 이름이는 좋겠네, 잘생긴 짝도 생기고."
".. 에?"
어이가 없어 쌤을 보니 말대신 윙크를 해보인다. 저 쌤은 맨날 저래 ... 잘생겼다는 말에 김한빈은 그저 날 흘깃 본다. 뭘 봐, 왜왜. 2학기 첫날부터 뭔가 이상하게 꼬여가는 느낌에 영어책만 성급하게 넘겼다. 한참을 넘기다, 날카로운 종이에 손이 닿더니, 그대로 베였다. 역시, 오늘은 날이 아니야.
"... 아씨..."
베인 손을 바라보다, 꾹 짜내니 피가 솟는다. 자주 넘어져 다치는 날 위해 엄마는 언제나 내 가방 앞주머니에 대일밴드를 챙겨주곤 했는데,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다 쓴 모양인지 한 개도 남아있지가 않았다. 뒤를 돌아봐도 휴지 하나 없고. 고개를 살짝 돌려 김한빈을 보니 공부는 꽤나 하는듯 쌤이 칠판에 적고 있는 말들을 꼼꼼히 적어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다 내 눈길이 느껴진건지 날 한번 보다, 그대로 내 손에 시선이 간다. 살짝 놀란듯 눈이 커지더니 이내 자기 표정을 유지한다.
"저 휴지 있..."
휴지 있냐고 묻는 것에 대답대신 피나고 있는 내 손을 가져다 자기 손으로 슥 닦아버린다. 그리고서는 자기 가방에서 연고랑 밴드를 꺼내곤 뚜껑을 열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남자애가 이런 것도 들고 다니네. 얘도 많이 다치나?
"앞에 보고 있어."
"... 아, 응.."
선생님 눈치가 보여 손을 아래로 하고는 김한빈 말대로 시선을 앞으로 고정시켰다. 무언가 발라지는 느낌이 아마 연고를 바르고 있나보다. 슬쩍 보니 새끼 손가락으로 조심조심히 바르는 모습이 마치 무슨 훈남의 정석을 보는 듯 하다. 잘생겨보이네, 좀.
"... 됐다."
연고 바른 손가락에 호호 불다 밴드까지 붙여주곤 됐다며 손등을 톡톡 친다. 이쁘게도 붙였네.
"... 고마워."
"페이지 12쪽이야."
"아, 응."
고맙다는 말에 다른 말 없이 페이지 쪽 수 부터 알려준다. 그냥 자기 성격인가? 무덤덤하면서도 세심한게. 친구들끼리 그냥 하는 말로 '아, 그런 남자 만나고 싶다. 츤데레.' 이랬었는데. 현실판이면 이러려나. 안만나봐서 모르겠다만. 잠깐 딴생각을 하다, 정신차리고 나 또한 다시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조심해, 다치지않게."
거의 수업이 끝날 때 쯤, 김한빈이 옆에서 내게 조용히 말해왔다. 태어나 또래 남자애한테 그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어본 건 정말 처음이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순간 심장이 찌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 응."
그 말을 듣고는 적어도 김한빈 앞에서는 다치면 안 되겠다,는 암묵적인 결심까지 하게 됐다. 왠지,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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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52 입니다!
만약 학교에 한빈이같은 전학생온다하면 전 그날 관짤거에요... 심쿵사로 ... 매번 사극물만 쓰다보니 BGM도 그에 맞추느라 여간 힘든 일이 아니였는데, 현재편을 쓰니 BGM 고를 수 있는 범위도 넓어져 확실히 좋네요! (행복)
이번 편에 들어간 BGM은 유승우 - Take My Hand 입니당. (좋죠, 좋다고 말해줘요)
그리고 초록글!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흐헝헝♡
암호닉! (암호닉은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당)
주네띠네 님♡ 구닝 님♡ 초록프글 님♡ 핫초코 님♡ 뀰지난 님♡ 바람빈 님♡ 비비빅 님♡ 부끄럼 님♡ 0324 님♡ 마그마 님♡ 까까 님♡ 깜냥 님♡ 준회윙크 님♡ 환생 님♡ 김밥빈 님♡ 바나나킥 님♡ 바뱌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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