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마마."
아침이구나, 조상궁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깨고 싶지가 않다. 눈을 뜨고 나면 또 시작될 하루하루가 이제는 조금 지쳐간다. 저하는 일어나셨을라나. 뭐, 워낙에 일찍 일어나시는 분이니 이미 일어나셨겠구나.
"마마, 이젠 일어나셔야하옵니다. 문안이 늦어 이미 마마께서 편찮으시다고 말씀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 벌써 시간이 그리 되었는가."
"예, 어디 편찮으신건 아닙니까? 오늘따라 잠이 깊으십니다."
"... 괜찮네. 물 좀 주겠는가."
조심스레 눈을 떴다. 환하게 비춰지는 천장이 내 한숨을 자극한다. 물 한 잔을 마시고서야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는 듯 하다.
"... 저하께서는 어디계시는가."
"아직 자선당에 계십니다."
평소 같았으면 아침 일찍이 규장각으로 갔을 그인데. 오늘은 조금 늦는 듯 하다. 시간에 굉장히 예민한데, 어디 편찮은 건 아닌지 또 부인이라고 걱정부터 하고 있다. 미워죽겠는데, 또 막상 그러지를 못한다.
"저하께서 어디가 편찮으신것이 아니느냐. 지금쯤이면 문안을 올리고도 규장각에 계실 시간이지 않느냐."
"오늘은 조금 늦으시는 것 같사옵니다. 건강 상엔 아무 문제가 없으시다 들었습니다."
"... 그렇다면 됐다."
'마마, 저하께서 오셨습니다'
그가 왔다는 말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궁에 들어온 지 아직 한 해도 지나지 않았으나 내 방엔 한번도 들렀던 적이 없던 그였다. 더군다나 아직 씻지도 않고 옷도 침소에 들 때 차림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어떡하지, 게으르다 생각하고 나한테 또 실망하는건 아니겠지. 아직 말도 몇 마디 나눠보지 못했는데. 망했어, 어떡해.
"옷, 옷가지를 어서..."
"... 빈궁"
"... 저, 저하."
얼른 옷을 입으려다가 그의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았다. 아뿔싸. 성격도 급하다 진짜. 대충 옷을 추스리고 있는데, 나를 보더니 내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내 이마부터 짚는다. 뭐지, 이건.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매번 사나운 눈매로 날 차갑게 대하던 그가 아니다. 지금 그는, ...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어디가 편찮은겁니까. 괜찮으십니까? 문안은 제가 올렸으니 걱정마세요. 더 누워계세요, 걱정이 되어 이렇게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 괜, 괜찮습니다 저는. 정말로... 제가 걱정이 되어 오신겁니까?"
"그럼 제가 무엇 때문에 오겠습니까."
나를 보는 눈빛이 다르다. 말투도, 손길도 하나하나 다. 물론 그가 이제 나를 받아들이는거구나, 그가 이제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구나 하는건 좋지만 하루만에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건 이해할 수가 없다. 특히 어제 같은 경우는... 참담하기 그지없다.
어제
"화원에 저하께서 계신다고 하는데... 나가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 그러자꾸나."
세자로써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를 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시간동안 나는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고. 궁 안에 들어오면 되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러기는 무슨, 재미없고 따분한 일들 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화원에 나가는 것 정도가 내 삶의 유일한 낙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내 삶의 유일한 낙의 장소에 그가 있다는 소식은 내게 또 다른 설렘을 가져다 주었다. 물론, 그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 저하!"
"..."
역시 저 눈빛 좀 봐. 쟨 또 여기 왜 왔어? 하는 표정으로 날 반긴다. 아, 반기는 건 아니구나.
"자선당에 가는 길에 화원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왔습니다. 꽃을 좋아하시는지요."
"... 예. 뭐."
"무슨 꽃을 좋아하십니까? 저는 장미꽃을 좋아하는데."
"... 장미는 아름답지만 그 미에 미혹되게 만들어 가시로 상대방을 공격하지요. 그런 얍삽해빠진 꽃이 장미말고 더 있겠습니까."
"... 뭐, 그 미에 미혹되는건 사실이오나 가시는 조심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말 하나하나 가지고 뭐라 하는건 아주 타고났다니까. 내 마지막 말에 피식 하고 웃더니 이제는 얘 봐라? 하는 눈으로 날 본다. 도대체 저 눈빛은 어디서 배운건지.
"허, 빈궁은 얍삽한걸 좋아하나봅니다? 가시는 조심하면 그만이라... 그럼 그 가시를 자르면 되겠고. 그럼 남는건 그 미혹되는 향과 자태이니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것만 가지려 하는 것 아닙니까. 어찌보면 빈궁이 더 얍삽한 듯 합니다."
"그, 그게 말이 그렇게 됩니까? 저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겠지요, 물론. 다 저의 생각 뿐입니다. 미혹되지 마세요."
역시나. 세자와 말하기는 글러먹었다. 마지막으로 미혹되지 말라는 말만 남기고 곤룡포를 펄럭이며 다시 갈 길을 가버리는 그다. 아니 왜 나한테 이러는거지? 왜?? 문안을 올릴 때는 다정하고 듬직한 아들이 따로 없는데. 나한테는 왜 그러는데?
"조상궁."
"예, 마마."
"... 다시는 저하가 화원에 있다는걸 알리지 말게."
"예, 예?"
"... 꼴도 보기 싫어죽겠네 진짜."
조선에 별빛이 내린다
어제 일을 생각하고 나니 머리가 지끈지끈 하다. 지금 내 앞에 마주보고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이 모습 또한 이해가 가질 않는다. 같은 사람 맞아? 한 숟갈 퍼서 한 입에 넣으려다말고는 먼저 말을 꺼냈다.
"이상합니다"
"... 예?"
내 말에 자기도 따라 수저를 놓고는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날 본다. 물론, 엄청나게 다정하다.
"어디가요, 또 머리가 어지럽고 그런 것입니까?"
"아니요, 저하 말입니다."
"... 제가 왜..."
쥐고 있던 숟갈을 아예 놓고는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쌀쌀맞던 분이 오늘은 왜 그러십니까? 걱정되어서 오셨다는 것 부터. 이렇게 같이 겸상을 하는 것 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이상한 것 투성입니다."
내 말에 살짝 웃더니 내 손을 잡고 숟갈을 잡게 하고, 밥을 퍼서 그 숟갈 위에 고사리를 올려 내 입에 넣게 한다. 뭐, 닥치라는건가.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 맞습니다. 제 말에 분명 말이 많아지실테니까요. 잘 들으셔야합니다."
우물우물. 끄덕끄덕.
그가 미소짓다 표정을 굳히고 조그맣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나는, 한빈이 아닙니다."
"... 나는, 원 입니다."
"이원. 이원 입니다."
더보기 |
안녕하세요! 252입니다. 이렇게 처음으로 내본 조별내! 앞으로도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인격교대 로맨스 맞아요!ㅋㅋㅋ 한빈이 모습으로 보고싶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