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은 한꺼번에 듣기를 추천드려요♡)
"한빈이오, 김한빈."
내 이름을 말하며 살짝 웃어보이니 무표정한 얼굴로 날 흘깃보다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뭐야, 나 무시하고 그냥 간거야?
"어이, 처자! 이보게!"
목청껏 불렀건만 들은 체도 않는다. 원래 성격이 저러나? 괜히 의기소침해져 있는데 얼마 안있어 위에 올라가있던 그녀가 내려와 내 앞으로 걸어왔다. 정면으로 봐도 곱구나, 참. 내 앞에 딱 선 혜선은 주위를 슬쩍 바라보다 날 보며 조심스레 입을 뗐다. 그렇게 조심스러워하지 않아도 될텐데. 어차피 보이지 않는 몸이건만.
"제 이름을 아시는 것이, 제게 볼 일이 있으신 듯 하온데."
"... 아, 볼 일."
당연 볼 일 있어 널 찾았지, 그냥 찾았겠냐. 날 귀찮다는 표정으로 일색하더니 얼른 말하라며 손짓한다.
"... 어서 말하시지요, 곧 손님들이 들어오셔요."
급하기는. 그나저나 뭐라 말해야하나. 내가 저승사자다! 는 좀 아니고. 아, 물론 맞는 말이긴 하거늘. 아니면, 곧 석 달 뒤 너는 죽을 것이다. ... 아, 이건 진짜 아니다. 사실이긴 해도.
"용건 없으시다면 저는 이만, ..."
"아, 아니! 있네, 있어."
"... ?"
"... 어, 여기서 ... 먹고 자고 다 하는 것인가?"
"기녀들이 그럼 기방에서 먹고 자지, 어디가서 잔답니까?"
"아, 그.. 그래. 그렇겠구나."
"재미있으십니다, 나리."
픽 웃고는 다시 돌아 가버리는 것에 겸쩍어 입맛만 다셨다. 처음 하는거 티 내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말해야되나 ... 나 참. 혼자 앉아 한참 고민하던 차에, 우물가 처녀에게 다시 걸어갔다. 아까 들어가서는 아직도 안나오는게 단단히 삐친 모양이던데.
"어이, 처자! 나와보게."
물가가 살짝씩 흔들리는게 안에 있기는 한데.
"아 그러지 말고 나와봐, 응?"
"... 나 데리고 갈거잖아요."
망령인데도 귀엽네. 애써 웃음을 참아보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 알았어 알았어. 니 한 풀 때까지 나 안데려갈게. 그러니 나와서 나 좀 도와줘봐."
"진짜죠?"
"어, 진짜."
약속한다는 말에 곧바로 훅 튀어나와 놀래킨다. 여기 터에 있는 애들은 이리 성격이 급한가?
"뭘 도와드려요?"
방긋방긋 잘도 웃으며 뭘 도우면 되냐고 묻는 것에 턱 끝으로 혜선을 가리켰다. 혜선을 한번 흘깃 바라보고는 혀를 찬다.
"왜?"
"아까워서. 쟤가 여기서 다섯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가장 인기 좋은 기녀거든요."
"... 차갑기만 하더만."
"그게 매력이니까."
차가운 매력. 난 모르겠던데.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우물가에게 저 혜선에게 어떻게 말하면 될 지를 물어봤다. 나름 저도 죽기 전에 사신이랑 한마디 정도는 주고 받았을테니까.
"그냥 솔직히 말해, 뭘 숨겨요 숨기긴."
"법도책엔 미리 죽음을 발설해서는 아니될 것이라 명시되어있다고."
"나는 그냥 말해줬는데?"
... 됐다, 말을 말자.
됐다며 고개를 돌려버리니 자기 혼자 중얼대며 다시 우물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도움 좀 받으려했건만. 그렇게 가만히 얼마나 서있었을까. 곧 영주각의 문이 열리고 양반은 물론 궁의 파렴치한 대신들까지 하나 둘 이 곳을 찾기 시작했다. 한 명, 한 명 보며 대충 명줄이 어떨지 감이 온다. 저 자는 내일 모레. 저 자는 한 두해 정도. 어느 정도 다 나이가 있다보니 그럴 수 밖에. 팔짱을 끼고선 나 혼자 중얼거리며 그들의 명줄을 세고 있는데 내 쪽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짐에 고개를 들자, 혜선이 날 한심하다는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직도 여기 계십니까?"
"... 너는 준비한다면서 여기는 왜 나온건데."
"저야 손님들 모셔야 하니까 그렇죠. 얼른 가보세요. 어느 집 사내이시길래 여기서 이러고 계신단 말입니까?"
내 등을 떠밀며 어서 가라는 것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기는 했다만, 너 뒤의 저 악귀가 거슬려서 말야. 저거 치워버려야 되는데. 자꾸 떠미는 손을 붙잡고 그대로 멈췄다. 순간 마주친 눈에 하마터면 입도 못 뗄 뻔 했다. 호수 같이 깊은 눈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였던가. 정신 차리고, 단호히 혜선에게 말했다.
"못 간다."
"... 나리, 이러고 계시다 마님 눈에 띄기라도 하면요 저...!"
투정 섞인 말투에 이 때인가 싶어 말 사이를 파고 들었다.
"걱정 말거라. 어차피,"
"... ?"
내 손도 너만 잡을 수 있고.
내 목소리도 너만 들을 수 있고.
"난 네 눈에 밖에 보이지 않을테니."
사신
"... 그게 지금 무슨 말씀이시랍니까. 제 눈에 밖에... 보이지 않는다니요."
"거의 반나절을 그 우물가에서 하루종일 있었다. 그런데 소리 높혀 내게 뭐라 한 사람은 너 밖에 없지 않더냐. 맞지?"
"... ... 그렇긴 합니다만,"
"또한, 너가 내게 말할 때에 주변 사람들이 널 쳐다보기는 했더냐. 아마 안쳐다봤을걸. 나한테 말하는거라 아무 소리도 안들렸을테니까."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가녀린 손 끝이 조금씩 떨리는가 싶더니 이내 두 손으로 얼굴을 붙잡는다. 그대로 한참을 있다, 두 손을 떼고는 한숨을 푹 쉬다 입을 떼었다.
"... 그럼 망령이신겁니까."
망령 잡으러 온 사람한테 망령이래. 나 참.
"아니."
"... 그럼 저승사자라도 되시는 것입니까."
저 말 왜 안나오나 했다.
"... 그래, 그런거라 쳐두자."
"... ... 저를 데리러 오신 것이고요."
"... 그렇다."
그렇다는 말에 잠깐 멈칫하다, 처음 마주했을 때 지었던 그 차가운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오는 혜선이다. 피식 한번 웃던 그녀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다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조심스레 한 모금을 물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떨리던 손 끝이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싶었다. 혜선은 날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보통 그런 상황이라면 다들 무서워 한다던데, 왜 넌 아무렇지가 않은 것이냐.
"... 신기하십니까."
"... ..."
"곧 죽음을 앞두고서도 아무렇지 않아보인다는 것이요."
"..."
"혼잣말이라 생각하시지요. 그냥 듣고 넘기셔도 되고요."
그 말과 함께 혜선은 자신의 얘기를 보따리에서 하나씩 꺼내듯 말을 이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아주 어릴 적 빚쟁이들에게 쫓기다 돌아가셨다 합니다. 저는 이 곳, 한양에 두고 말입니다. 빚쟁이가 나에게까지 해코지할까 싶어 일가 친척들도, 동네 사람들도 다 저를 멀리하거늘. 그 어린 애가 어딜갈 수 있단 말입니까. 그 때 저를 거두어준 곳이 이 곳, 영주각입니다."
혜선은 그동안 아무에게나 못했던 말들이 많았는지 자신이 영주각에서 처음 기녀로 일하게 되었던 경험담은 물론, 좋아했던 선비가 자신에게 연서 한통 남기고 멀리 떠나버려 그 날 하루종일 울었던 얘기 등등 길면 길고 짧으면 짧았을 자신의 열여덟 인생을 술술 이어나갔다. 그녀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그녀를 데려가기 싫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법도는 법도인데. ... 그것도 처음인데.
"... 근데 또 이렇게 오늘, 별 경험을 다 해봅니다. 사신이라니. 제 평생 이렇게 이른 나이에 뵙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 나도 오늘이 처음이네. ... 천상계에서 명 받고 내려온 첫 날."
"... 저 좋은 곳으로 가는 거지요?"
"그야, ... 사황제님께서 결정하시겠지."
"어릴 적엔 하늘엔 염라대왕이 있다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사황제나 염라대왕이나. 뭐... 똑같다면 똑같겠지."
내 말에 신기해하며 눈이 반짝이는게 여간 열여덟 소녀 아니랄까봐 싶다. 곱게 분칠한 얼굴 속에 그 어린 모습이 숨겨져있으니. 더 애처로워 보일 수 밖에.
'혜선아, 혜선아. 여기 있어?'
"아, 월매인가 봅니다. 아무래도 침소에 들 시간이 되다 보니."
벌써 그렇게 시간이 되었나. 알겠다며, 가보라는 말에 그럼 내일 뵙지요. 나리. 라며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갔다. 텅 빈 방. 혜선이 머물다간 그 자리가 참으로 허해보인다. 첫 날부터 이러면 남은 나날은 어찌하려고. 정신 차리자, 정신. 애써 고개도 이리저리 흔들어보며 정신을 깨우려는데, 도저히 머릿속에서 아까 웃던 그 모습이 나가지를 않는다. 미쳤다. 미쳤어.
"... 그나저나 아까 월매랬지?"
그 우물가 처녀가 그토록 싫어하던 기녀던데.
'매번 월매라는 계집한테 밀려난게 서러워서는. 언젠가 내 그 월매년을 이 우물가에 빠뜨려버릴겁니다.'
아무래도 월매 그 처자는 우물가로 가서는 절대 아니될 듯 싶네.
이른 아침, 벌써부터 기방 장사 준비에 여념없는 모습들이다. 어제처럼 오늘도 우물가에 앉아 그 모습들을 보고있는데, 우물에서 자꾸 물을 튀기는 것에 인상을 쓰며 말을 뱉었다.
"장난치지말고 나오려면 나와라."
"여름이잖아요, 더울까봐."
"망령도 더운걸 느끼나?"
"그냥. 사람들 입고 다니는거 보면요."
퍽이나 그러시겠어. 그러고 말을 끊으려는데, 뭐가 그렇게 궁금한건지 옆으로 와 앉아서는 어제 일에 대해 이리저리 캐묻기 시작한다. 얘가 이렇게 말 많은 앤지 진즉에 알았더라면 좋았으련만.
"어떻게 됐어요? 둘이 들어가서 뭐했는데? 알려줘요, 응?"
"더 묻다간 진짜 데리고 올라가버린다."
"아 왜요, 안데려간다며 나 한 풀 때까지!"
"그 한 말인데."
"뭐요."
갑자기 어두워진 말투에 말해봤자 또 삐치겠구나 싶어 됐다며 손사래를 치자 또 징징대기 시작한다. 아 왜이러니, 얘.
"말해도 화내기 없기다."
"말이나 해봐요."
"월매라는 처자가 너 자리를 자꾸만 빼았디?"
"그 뿐만이겠어요? 저 기지배가 얼마나 독한 년인데. 내가 쟤 때문에 죽은거라니까? 하도 서러워서. 내가 있잖..."
"어 혜선!"
우물가 말 더 듣기 전에 저기 보이는 혜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녀도 날 보며 손짓대신 살짝 미소만 지어보인다. 우리 둘을 번갈아보던 우물이 수상쩍은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뭐, 뭐.
"뭐야. 그 하룻밤 사이에 벌써 서로 웃고 그러는거야?"
"아 아냐, 그런거."
"아니긴 뭐가 아니야! 딱 보니 하룻밤에 눈맞았는데."
"그 입 한번만 나불대면 나 진짜 너 데려간다. 약속이고 뭐고 없이."
"아 그건 아니지...!"
그러니까 조용히 좀 하라고. 때리는 시늉을 하다가 일어서서는 혜선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아무래도 어제 부엌 쪽에 왠 잡귀들이 많은 듯 했던게 영 찜찜해서말이지. 자기 쪽으로 오는 걸 보고는 여기는 왜 왔냐며 묻는 혜선이다.
"여기 잡귀가 많아서. 너 조심해야돼, 특히 아녀자라서.명줄 짧은 아녀자는 잡귀가 먼저 채가기도 한다고."
"그래서 나 지켜주러 온거에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사신으로서 역할을 하는거...!"
"알았어요, 알았어. 나랑 저기 뜰에나 가요. 화환이나 만들어보게."
웃음기 섞인 말투로 알았다며 부엌을 폴짝 뛰어나간다. 그러면서 내 손목을 잡더니, 손짓으로 저 뜰을 가리키며 가잔다. 어차피 나 너 따라가야돼, 하며 중얼거리듯 말하며 먼저 발걸음을 옮기는 혜선 뒤를 따랐다. 자꾸만 마음 주려는 것이 내심 걸린다.
"처음이라 그래, 처음이라."
그래서 그런거야. 괜히 합리화를 시켜보아도 저 웃고 있는 혜선을 보고있노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아냐, 이건 진심같단 말야.
"나리! 거기서 뭐하십니까? 어서 안오시고."
"... 원, 원래! ... 멀리서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뭐 그런 법도도 있답니까?"
"..."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 마음을 주게 될까봐 그러는거지.
이틀 째. 자꾸만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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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52 입니다♡
이 습한 날씨 잘 견뎌내고 계신가요? 저는 에어컨 없이는 하루도 못 살고 있습니다 ㅠㅠ 흑.
아직 사신에서 여주는 나오지 않았어요! 과거가 꽤나 길 것 같아서 분량 꽉꽉 채워넣어야할듯 싶네요.
오늘도 사신 봐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초록글! 오랜만에 보는 초록글이네요 ㅠㅠㅠㅠㅠ 감사합니다♡ (감동)
암호닉 (암호닉은 댓글로 남겨주시면 됩니다♡)
주네띠네 님♡ 구닝 님♡ 초록프글 님♡ 핫초코 님♡ 뀰지난 님♡ 바람빈 님♡ 비비빅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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