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5년, 천상계
"너 이제 내려가봐야되지 않아?"
"안부르는걸 어떡해."
"아직도 안부르셨어?"
끄덕이는 한빈이에 쯧쯔, 혀를 차던 준이 한빈의 등을 토닥였다. 동갑내기 준은 이미 사신 정 4품까지 올랐건만 한빈은 아직까지 사신계에 발도 못들이고 있었다. 기세등등한 준에 비해 한빈은 여간 어깨가 좁아질 수 밖에 없었다.
"야야, 괜찮아. 그거 일찍 해봤자 좋은거 아니다?"
"그럼 난 여기서 놀기만 하라고?"
"그, 그게 더 좋을 수도 있... 지!"
준의 말에 입을 쭉 내밀고 애써 천상계 법도책만 만지작거린다. 그런 한빈에 그저 머리만 긁적이는 준이다. 그런 것도 잠시, 누군가 오는 소리에 먼저 뒤를 돌아보던 준이 예의를 갖춘다. 그 모습을 본 한빈도 따라 일어나 예를 갖추고 살짝 얼굴을 보니, 사신계를 담당하는 사황제였다. 여긴 왜 오신거지? 나도 이제 일시켜주려고 그러나? 한빈의 손에서 괜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한빈?"
"... 예, 예 폐하."
"내 가만히 듣자하니 사신이 되고 싶어 어쩔 줄 몰라하더구나."
그럼요. 내가 얼마나...!
"아.. 아닙니다 폐하. 적당한 때가 되었을 때에 하계로 내려주신다면 저는 바랄 것이 ..."
"그 때가 되었다."
"... ... 예?"
"하계로, 내려갈 때가 되었단 말이다."
사신
'이름은 혜선이다. 영주각의 기녀. 나이는 열여덟이고, 석 달이다. 그 동안 잘 수련해왔으니, 믿어보도록 하겠다.'
혜선, 열여덟. 기녀. 석 달이라... 어린 나이에 안됐네.
기억을 더듬으며 영주각 근처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꽤나 큰 규모의 기생집인 것에 혜선이라는 이 처자 또한 이 동네에선 유명하겠거니 했다.
[永主閣]
'영주각'
"영원한 주인."
영원한 주인이라는 뜻을 가진 '영주각' 을 한참동안 멍하니 보고 있다, 그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섰다. 아 물론, 조심스레 들어갈 필요도 없다. 혜선, 그녀의 눈에만 내가 보일테니. 들어서자마자 준비로 인해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기녀들이 보인다. 뭐 저자들 중에 있는 것 같지는 않고. 뒤뜰에 슬쩍 가보니 여기도 없는 듯 하고. 여기 있기는 한거야?
"누굴까... 혜선. 혜선."
이거 뭐, 물어보지도 못하고 원. 아, 저 자한테 물어볼까? 우물가에 앉아서 사람들 구경이나 하고 있는 처녀귀신이 보임에, 가까이 다가가니 화들짝 놀라는 눈치다. 올라가지도 않고 여기서 뭐한다냐 얘는. 걱정말라는 손짓에 조금은 경계를 누그러뜨린듯 싶다.
"나 너 데리러 온거 아냐. 뭐 물어볼거 있어서."
"... 뭔데요."
"여기, 기생중에 혜선이라는 여인이 누군가."
"혜선이면... ... 저..기요."
손짓을 따라가니, 고운 한복자태를 뽐내며 햇볕을 받고 있는 그녀가 보인다. 저 자가 혜선인가보군. 곱상히 생긴게 죽기엔 너무 이른듯 싶은데. 얼마간 혜선을 바라보다, 눈길을 거두고 다시 우물가 처녀귀신에게 물었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생전에 기생노릇 좀 했나본데.
"근데, 자네는 왜 여기 이러고 있는가."
"지도 원래 기생이였습니다. 맘껏 못 푼 한이 쌓여 이러고 있는게지요."
"무슨 한."
"매번 월매라는 계집한테 밀려난게 서러워서는. 언젠가 내 그 월매년을 이 우물가에 빠뜨려버릴겁니다."
"월매 죽이기 전에, 내가 너부터 데리고 올라갈 터이니, 그리 알거라."
내 말에 도와준 보람이 없다는듯이 인상을 팍 쓰며 우물 안으로 쏙 들어가버리는 것에 피식 웃어버렸다. 매일같이 천상계에서 지루하게 있다 이렇게 내려오니 재미있는게 참 많거늘. 아녀자도 확인했으니 주위나 돌아볼까, 하다 내려오기전 준이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너 근데 명심해야돼. 명줄 얼마 안남은 아녀자들은 악귀가 설친다고. 그거 잊고서 하계 내려갔다고 이래저래 싸돌아다니면 너 다시 올라오는거다?'
그 말이 생각 나 주변을 흘깃 바라보니 저어기 뒷간에 한 놈, 부엌간에 한 놈. 위를 올려다보니 나무에도 한 놈. 죄다 그것들이 쳐다보는게 저저 햇빛 아리땁게도 받고 있는 혜선이라는 것. 그것들에 입김을 한번 후, 부니 그대로 슥 사라져버린다. 여자라서 좋아했건만. 좋아할게 아니였네.
"준이 말대로 진즉에 사내새끼를 맡았어야했는데."
"... 나리는 누구십니까?"
아쉬운 마음에 인상을 쓰며 중얼거리는데, 뒤쪽에서 날 부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보인다는건, 내 말을 듣고 내게 말을 건다는 건.
"... 누구시길래, 아직 열지도 않은 이 곳에 오신 것입니까."
"... ... 혜선인가."
"... 제 이름은 어찌..."
이왕 걸려버린거. 소개나 해야하지 않나. 잠깐 큼큼, 목을 가다듬다 그녀를 향해 올려다보며 입을 떼었다. 올려다봐도 고운 것이, 암만봐도 아깝구나. 일찍 가기에.
"... 처음뵙겠소."
석 달후, 그대를 데리고 갈.
"한빈이오, 김한빈."
그렇게, 위험하고도 아찔할 첫 임무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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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52 입니다
정말 오랜만이죠! ㅠㅠ (더울 때 다시 오겠다는 말, 저 지킨거 맞죠?) 이번 새작에서는 천상계, 하계와 같은 세계관도 나오다보니 독자님들께서 꺼려하시면 어쩌나 싶네요 (눈물 그래도 한빈이니까! 한빈이 로맨스니까! 재미있게 봐주시길 바래요 (하트)
새작 '사신'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무서운 내용 아니에요... 저도 무서운거 싫어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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