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일러
[ profiler ]
일반적인 수사 기법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연쇄살인사건 수사 등에 투입되어
용의자의 성격, 행동유형 등을 분석하고, 도주 경로나 은신처 등을 추정하는 역할을 한다.
귀신이 보이는 무당? NoNo 프로파일러 : 물벼락
어젯밤부터 하늘이 꾸물꾸물 하더니 결국 아침부터 장댓비가 쏟아져 내렸다. 덕분에 심부름 하기로 했던 것이 캔슬되면서 오늘 하루종일 시간이 비게 되었다. 마침 잘됐지. 오늘 김혜숙씨 만나기로 했었으니까.
일어나기는 싫은데 배는 고파 누군가가 나에게 밥을 떠먹여 줬으면 싶었다. 눈만 뜬 채 숨을 쉬고 있는데 때마침 김민석이 내 위로 지나갔다.
"평소에도 이지랄이냐?"
"아씨, 놀래라. 일어났으면 일어났다고 말을 하던가."
"너는 눈뜨자마자 어익후 김민석님 지금 일어나십니다. 라고 하냐?"
"죽은 지 100년이나 지났는데 잠을 자겠냐?"
"지랄."
엿을 날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캔슬되었다는 것을 확인한게 오늘 오전 7시. 확인하고 다시 자고 일어난 지금은 오전 8시. 배고플 시간도 아닌데 왜이렇게 배가 고프디야. 침대 밑으로 발을 내리는데 그 사이로 김민석이 들어와 침대에 손을 짚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 다리 사이로 들어와 반무릎 꿇고서 침대에 손을 짚고 날 올려다 보고 있는 중이라는 거다.
"아침부터 이게 뭔 포즈야."
"취소하시지?"
"뭐? 지랄?"
"응."
"영감. 내가 그냥 여자야?"
팔을 들어 그대로 김민석 목을 감았다. 거의 김민석에게 매달려있는 지금 당황스러워하는 김민석을 보며 한껏 비웃어 줬다. 그러게 누가 과거 경력이 화려한 나를 건드리래? 나름 막 산 인생이라서 이까짓거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어쩐지 내가 되게 불쌍해졌다. 보통 여자였으면 당황해서 뒤로 물러났겠지.
"그럼 나는 가만 있겠냐?"
그대로 허리를 숙여 날 눕히는 그의 스킬에 박수를 쳐 주고 싶었다. 어쩌다 내가 아침부터 얘랑 이 지랄을 하고 있는 건지, 괜히 약올렸네.
"아, 알았어. 취소할게. 비켜."
"싫어. 이미 달아올랐는데?"
"어, 혼자 풀어."
뒤로 물러나 침대에 올라온 후 아직도 그 자세 그대로 있는 민석이의 등을 토닥여주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언젠가 하고 만다."
"어, 백날 노력해봐. 영감이랑은 할 생각 없으니까."
방문을 열고 나오니 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는 변백현을 볼 수 있었다. 얘는 지네 집 안간데? 가끔 잔심부름 시킬때 필요해서 둔다고는 하지만, 이딴식이면 곤란한데. 변백현을 보며 물었다.
"니 한 풀러 가라니까?"
"너가 도와줘어. 제발. 부탁 좀 하자."
"니도 안 할 걸 아나보지? 계속 그런식으로 누워서 말하는 거 보니까."
"무릎을 꿇어도 안돼. 손을 모아도 안돼. 징징거려도 안돼. 맨날 안된다고만 하니까 그러지."
입이 댓발 나와서는 툴툴 거리며 말하는 변백현이었다. 내가 왜 얘 찡찡거리는 걸 받아주고 있는 거지..? 변백현은 신경끄고 밥을 먹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 언제 일어난건지 따라오며 찡찡거리는 변백현.
"제발, 제발 딱 한번만. 정 뭐하면 그새끼들한테 뜯어! 만원이라도 벌어..!"
"줄 거 같냐? 웬 여자 하나가 와서는 죽은 니 운운하면서 연주 한번만 해주십쇼. 해서 연주해줬더니 이번엔 갑자기 돈을 달라네? 퍽이나 주겠다."
할 말이 없는 지 입을 꾹 다문 변백현이 휙 어딘가로 가버렸다. 저래봤자 저녁이면 돌아오겠지 뭐.
***
셜록 4 OST - The Reichenbach Ballad
(음악을 재생해 주세요..!)
밥을 먹자마자 서로 왔다. 김혜숙씨가 지금 밖에 시간이 안난다고 한 게 그 이유였다. 아직 10시밖에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인간적으로 말이야, 오전시간이나 밥먹는 시간은 피해서 와야 되는 거 아니야? 매너라고는 쥐똥만큼도 없네.
"오셨어요? 아이고. 밖에 비도 많이 오는데.. 다 젖었네요.."
김형사님이 나에게 다가와 어깨에 묻은 빗물을 털어주었다. 그 표정에 걱정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나는 이상하게 매너 운운하면서 막상 이렇게 대해주면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더라. 남의 선의가 불편하다고 해야하나. 워낙 나에겐 차갑던 사람들이었으니.
"이정도쯤이야 뭐, 그나저나 김혜숙씨는요?"
"아. 지금 취조실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지금 바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십분?"
"..네?"
"십분만 있다가 들어가죠. 확인하고 싶은 것이 생겨서요."
이 아줌마가 아침에 취조를 하겠다는 이유.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이거 같아. 이 시간이면 이제 출근을 해서 아직 몸도 마음도 준비가 안 된 상태. 과거 권투를 했던 사람답게 그런 것을 좀 아는 것 같았다. 준비운동 없이는 당하기 쉽상이니까. 누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뒤를 돌아 확인하려 하는데 김종인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지마. 나야."
아.. 어디갔다가 이제 온데.
"듣기만 해. 김혜숙이야. 확실해. 간이 안좋다고 했었지? 그리고 갑자기 피를 토했다고 했고. 아마 피해자는 간문맥항진증을 앓고 있었을거야. 그거에 인한 합병증은 식도정맥류고. 그게 말이야 주먹 한방이면 안에 식도정맥류가 터져 토혈을 하든 하혈을 하든 과다출혈로 죽는거거든."
"아.. 주먹.."
"네?"
"지금, 당장 취조해야겠어요."
"아, 네..!"
김형사님이 급하게 파일을 준비해줬고 난 그걸 가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일어나려던 김혜숙씨가 나를 보며 말했다.
"시간이 없어서 가봐야 겠네요."
"5분이면 끝납니다."
"...시간이 없다구요."
"5분도 없나? 왜? 찔리는 거 있어요? 강력하게 김우진씨를 용의자로 지목하셨으면 당당해 지셔도 되는데."
자리에 앉아 파일을 펼쳤다. 그에따라 김혜숙씨도 마지못해 다시 앉았다. 이름 김혜숙. 나이 30세. 피해자의 아내. 이딴 건 다 필요없었다. 특이사항에 산부인과 진료기록이 있네?
"산부인과?"
"네."
"뭐때문에요?"
"그, 그냥.. 혹시나..."
"혹시나? 민성환씨는 무정자증이던데. 뭐, 하긴 무정자증도 노력하면 되기도 하더라구요."
"....."
"근데, 그 이유 때문 아니잖아요. 임신 때문 아니에요? 김우진씨 애 인가요?"
"....무, 무슨 말도 안되는..!!"
"어어, 그렇게 흥분하시면 애기 놀라요."
김혜숙씨는 급하게 자기 배를 감쌌다. 저렇게 티가나다니. 그냥 찔러본 거였는데. 이제 슬슬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자아 또 시작해볼까? 갑자기 김종인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임신했다며. 놀랄 거 아니야."
뭔 상관이야. 애를 가졌으면 이딴 짓을 하질 말았어야지.
"알아. 애를 가졌으면 살인을 하질 말았어야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강하게 나갈 필요없어. 인간다워봐, 좀."
인간다워봐..? 그 말을 내가 왜 귀신 한테 들어야 하지? 나참 어이가 없네. 먼저 인간취급을 안한 건 인간들이야. 사람들이 먼저 날 인간취급 안했다고. 어릴적부터 귀신 본다고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에게 귀신새끼라고 불렀던 건? 그 사람들은 나한테 상처줘도 되고, 나는 그런 사람들한테 상처주면 안돼..?
"그런 뜻이 아니었어. 따뜻해져보라고. 꼭 그렇게 삐뚤게 생각해야해? 이 사람이 너한테 그런 말한 게 아니잖아."
"김혜숙씨."
야. 김종인이 날 불렀지만 난 그런 김종인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잠시나마 너네가 날 걱정하고 있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 였어. 등신 머저리였다고.
"네?"
"김우진씨와 불륜을 저지르고 덜컥 아이를 가져버린 당신은 어제 밖에 나갔다 들어온 민성환씨에게 그 사실을 말합니다. 아기가 가지고 싶었던 당신은 그 아기를 지우기 싫어 민성환씨에게 사정하지만 민성환씨는 방금 김우진씨와 싸우고 온 터라 정신이 더 나갔었겠죠."
"...."
"정신나간 민성환씨는 정말 정신나간 짓을 저지릅니다. 당신의 배를 때리기 위해 달려든 거죠. 왕년에 권투를 했던 당신은 가볍게 피해 그대로 민성환씨 배에 주먹을 꽂았을 거에요. 그때 김우진씨가 들어와 사과를 하고 민성환씨는 배를 맞은 충격으로 식도정맥류가 터져 결국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됩니다."
"....허,"
"평소 민성환씨의 병을 알고 있던 당신이지만 배 한방 맞았다고 죽을 줄은 몰랐겠죠."
"....흐윽, 그.. 그럼.. 전..흡.."
가득 고였던 눈물이 떨어져 내리며 테이블을 적셨다. 김종인은 그 모습을 보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감정, 가지지 말라니까 진짜.
"....정당방위. 그럴 수 있었어요. 그게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죽지 않았겠죠. 그렇지만 과잉방위였습니다. 민성환씨의 병을 알고 계셨을테니."
"그.. 그것은.."
"...정황에 의하여 형이 경감, 면죄 될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럼, 이만."
오열을 하는 김혜숙씨의 등을 어색하게 두드려 준 뒤 그곳을 나오기 위해 몇 발자국 내딛었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지 김종인이 뛰쳐 들어오더니 가만히 서서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김종인이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김종인을 통과해 다가온 것은 오형사였다.
"오형사, 님..?!"
갑자기 날 끌어안더니 토닥이는 것이었다. 뭐, 뭐야 이사람.. 나한테 진짜 왜이래..?!
"드디어, 아주 작은 거였지만 인간다웠던 행동이었어요. 잘했어요.."
자신의 진심을 전하고 있다. 나를 토닥이는 그는 나에게 진심을 전하고 있었다.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
사건이 잘 마무리 되어서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변백현이 돌아오지 않은 지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 워낙 지들이 보이는 나한테 관심이 많아 자주 오갔어서 걱정이 안 될 줄 알았는데,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워낙 죽은지 얼마 안되서 어디가서 사고쳐 가지고 악령이 되지는 않았을까, 엄한 무당에게 잡혀서 강제로 승천당한 것은 아닌가. 강제로 승천당하기 싫어 울고불다가 사라지는 변백현을 상상하니 내가 다 무서워져 벌떡 일어났다. 곁에 있던 김종인이 놀랐는지 움찔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떼며 나를 보고 물었다.
"어디 가게?"
"응."
"늦지 않게 와라. 요즘 그 수금업자 자주 오더라."
"알았어."
어차피 그 사람 안무섭다니까. 옷을 대충 챙겨입고 밖으로 나왔다. 쌀쌀해진 기운에 내 긴장감이 더해졌다. 하, 어디로 찾으러 간다냐. 이 새끼가 하도 집에만 있어서 어딜 나다니는지 알아야지. 아니 근데 내가 왜 귀신 한마리 때문에 무서움도 느끼고 그래야 해? 하, 참나. 이건 순전히 죄책감 때문이야. 아니지? 내가 죄책감이 왜 들어? 혼자 갈팡지팡 하다가 한 명이 머릿속에 떠오름과 동시에 빠르게 내 핸드폰을 들어 번호를 찾았다. 아씨, 그때 저장 안했나? 이름이 뭐였더라. 이럴줄 알았으면 잘 기억해뒀어야 하는데.
한참을 뒤지던 그때 꽤나 그럴싸하게 저장되어 있는 이름을 찾았다. [.] 딱 온점 하나였지만 누가봐도 되게 귀찮아서 저장한 것 같은 이름이었다. 변백현이 하도 그 번호를 줄줄 외우기에 저장하는 척하기 위해서 이따위로 저장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한참이나 가도 안받아서 끊을까 했지만 때마침 멈춘 연결음에 여보세, 까지 말했다. 그러나 웬 언니의 소리셈으로 연결된다는 말이나 흘러나왔다. 그래. 해보자 이거지?
씨발. 벌써 6통째이다. 이쯤 되니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심산으로 계속 걸게 되었다. 이제 7통 째. 드디어 중간에 연결음이 멈췄다. 잠에 잠긴 건지 원래 목소리가 그런건지 꽤나 낮은 남자 목소리의 여보세요. 가 들려왔다. 그 음성엔 약간의 화도 담겨 있던 거 같다. 그럼 잠 때문이 아니라 화가나서 어금니 꽉 깨문 음성이었나보다.
"아, 여보세요?"
-누구신데 이 시간에 계속 전화를 걸어요?
잔뜩 꼬인 사람인가. 잘못 걸었을 수도 있는데 지라고 확신하는 거 보면 도끼병도 좀 있나보네.
"혹시 변백,"
-그런 사람 몰라요.
전화는 매몰차게 끊겼다. 오, 7통이나 건 끝에 받았으면서 고작 19초 통화해? 이거 순 상도덕이 없는 사람이구만? 이젠 변백현이고 뭐고 오기만 남았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금방 받더라고. 그러나, 그런 사람 모른다고 했어요. 다시 또 매몰차게 끊겼다. 아이씨.. 이 사람 이름이라도 알아야지 내가 뭐라도 할텐데.. 그 밴드에서 아는 건 변백현이라는 이름 뿐이니..
아, 좋은 생각이 났다. 인터넷에 들어가 변백현을 검색해보았다. 다른 연예인들은 0000년 00월 00일~ 이런식으로 되어 있는데 변백현은 마침표가 찍혀있네. 그래, 지금은 귀신이어도 산사람이었겠지. 아, 아니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밴드이름과 멤버가 중요하지. 밴드이름은 프로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쿵짝밴드..? 진짜 밴드 이름이 이거야..? 어후, 역시 변백현은 내 스타일이 아니야. 쿵짝밴드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다시 검색을 해보았다. 검색 결과는 꽤나 놀라웠다. 변백현이 죽은 이 시점에서도 온통 변백현 뿐이었다. 이정도로 같은 밴드 안에서 인지도 차이가 컸나.
아, 멤버도 다 찾았다. 김성우, 이규민, 박찬열. 각각 베이스 겸 키보드, 드럼, 기타였다. 좋아. 우선 김성우 이름을 대보자. 다시 전화를 걸었다. 받자마자 대뜸 소리를 질렀다.
"김성우씨 되세요?!!!"
-끊어요.
에이씨.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전처럼 이규민씨 되세요?!!! 라고 물으니 끊어. 라며 끊겼다. 에이 씨벌. 말도 짧아졌네. 그럼 박찬열이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무말도 안하니 차분히 기다리는 그였다. 좋아, 많은 발전이야.
"찬열오빠, 나 기억해..? ㅇ00인데.."
-가지가지 할래?
"안속네. 무튼 박찬열씨 되세요?"
-응.
"인간적으로 내가 니보다 나이 많은데 존칭 좀 쓰지?"
-못배운 사람한테 존칭 쓸 이유 없는데?
"현피뜰래?"
-뜨던가.
"당장 거기 어딘지 불어."
그가 불러주는 주소를 외운뒤 전화를 끊자마자 폰 메모장에 적어놨다. 너는, 내가 변백현 때문에도 가지만 진짜 현피 뜨러도 간다.
***
그가 말한 장소에 도착했다. 뭐야 여기.. 달동네에 위치한 판자촌 같은데. 진짜 여기에 있는 거 맞아? 기껏 올라오긴 했다만, 만약에 말이야. 진짜 만약에 여기에 없잖아? 내가 오형사로 널 찾아서 남자구실 못하게 만들어 주겠어.
박찬열에 대해 온갖 악담을 하며 가고 있는데 어느 집 대문이 요란하게 열리면서 누가 그 안에서 날아와 바닥으로 내던져졌다. 이건 또 뭔 상황이래. 대문 안에서 소매를 걷으며 나오는 사람은 누가봐도 일수를 걷으며 다니는 사람처럼 보였다. 요란스런 무늬의 셔츠, 금목걸이, 클러치백. 완벽하게 나 일수하며 다녀요, 를 보여주는 패션에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일수 처음해보는 사람이구나? 보통 처음 해보는 사람이 좀 세보이려고 저런식으로 입거든.
"아직까지 안 주면 그건 또 곤란하지. 뭣하면 콩팥 하나라도 팔던가. 듣기엔 2개라며."
아직까지 내던져진 그대로 쓰러져 있던 남자가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옆얼굴을 살피니 마당에서 많이 맞기라도 한 듯 왼쪽 볼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근데, 그 모습이 뭔가 좀 익숙했다.
"곧 드린다니깐요.."
"그게 벌써 3일째다. 나도 위에서 쪼아대니 어쩔 수가 없는 거 알잖냐. 계속 이런식이면 나도 합당하게 받을 수 없어."
꼴에 협상을 하고 있네. 웃기고들 있다. 아, 저 얼굴..!! 드디어 생각났다. 저번 사건 해결하러 가기 전 엘리베이터에서 봤던 사람..! 그 사람을 여기서 또 만나다니, 신기하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냥 지나치려 하는데 그런 날 본건지 일수가 물었다.
"넌 뭐냐."
아, 나 원래 이렇게 정의감 넘치는 캐릭터 아닌데.
"너? 지금 너, 설마 나한테 너라고 했니? 니네 형님 누구야. 당장 말해."
"아나, 이 아가씨가 지금 장난하시나."
"와나 얘가 미치게 하네? 너 어디 불구되고 싶어?! 너 지금 나한테 깝치면, 뼈도 못추려."
"아가씨 계속 이러시면 진짜 나 안 참아요."
"니 형님 이름만 딱 대봐. 곧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줄게. 왜? 쫄려?"
"....오늘은 그냥 간다. 내일 다시 올거니까 그렇게 알아둬."
"오늘 얼만데?"
"...30."
"30만? 야, 먹고 떨어져."
손이 부들부들 떨리지만 애써 쿨한 척 그 놈 바지주머니에 내 피같은 30만원을 찔러 넣었다. 왜냐면 이래야 아직도 주저 앉아있는 이 놈이 나한테 설설 길거거든. 일수가 내려가고 이곳엔 놈과 나만이 남았다.
"야, 30만원."
"누가, 누가 니가 내래."
"뭐? 와, 곤란한 거 같기에 내줬더니. 그럼 뭐 다시 불러서 수거해?"
"...쪽팔리게."
놈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어깨를 치고는 나를 지나쳐갔다. 여기서 일차로 빡치는데 대문 안으로 들어가서는 쾅. 소리가 나게 닫는 그 행동에 이차로 빡쳤다. 와나 뭐 이딴 개새끼가 다있어? 이 새끼 이름 뭐야 이거. 신고때려야돼. 막 대문 주변을 살피니 주소가 보였다. 익숙한 이 주소는.. 박찬열이 말했던 그 주소와 일치했다. 오호, 박찬열 이새끼.. 내 28년 평생 저딴 예상할 수 없는 놈 처음보네. 아, 아직 박찬열은 아니지. 박찬열로 추정되는 새끼.. 아니 근데, 진짜 뭐 저딴 새끼가 다있어? 대문을 열려하자 잠갔는지 열리지 않았다. 아나 씨벌 존나 빡치게 하네? 대문을 발로 쾅쾅 찼다.
"야!!!! 니 박찬열이냐?!! 나 아까 니랑 통화한 사람인데!! 니랑 현피뜨러 왔으니까 문 열고 말해!!!!"
안에서 조금 소란스럽다 했더니 문이 열렸다. 그 문을 열자마자 물 한바가지가 뿜아져나와 내 온몸을 적셨다. 본능적으로 감았던 눈을 뜨니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 나 지금 물 맞은 거니..?
"아아.. 안돼...!! 으아, 어떡해.. 괜찮아..? 그러게, 왜 여길 왔어..."
변백현? 내 얼굴을 타고 흐르는 물을 닦을 수도 없으면서 산사람이었을 때의 습관이라도 남았는지 닦는 시늉을 하는 변백현이 내 시야에 보였다. 그런 그를 옆으로 밀어버리니 대야를 든채 씩씩 거리는 그 썅, 아니 박찬열이 보였다.
"뭐하는 짓이냐?"
"변백현팬 아니야? 왜? 그새끼 죽었으니 이제와서 착한 척 하겠다 이거야?"
그 말에 자연스레 백현이를 보게 되었다. 맑게 웃으면서 박찬열을 보고 있었다. 이새끼는 속도 없어? 자기에 대한 호칭이 그새끼라는데 저렇게 속없이 웃는 거야? 이 새끼 착한 줄 알았더니 멍청한 거잖아..?
"뭔 개소리야. 내가 왜 변백현 팬인데? 그새끼 살아있을 때 쿵짝밴드인지 뭔지 하나도 몰랐어. 니도 처음보고."
"...근데 나한테 왜이러는데."
"니 진짜 꼬였구나? 사람이 시발 꼬여도 이따위로 꼬일 수도 있구나. 니 팬이었으면?"
"....."
"아님 일반인 박찬열을 좋아하던 동네 누나였을 수도 있잖아. 그래서 내가 30만원 흔쾌히 줬을 수도 있잖아."
박찬열은 입에 순간접착제라도 발랐는지 무슨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박찬열을 노려보다 계속해서 물이 흐르는 머리카락을 꽉 쥐어 물을 짰다. 후두둑 쏟아지는 물에 어이가 없어졌다. 내가, 스쳐지나가던 귀신 한마리때문에 물벼락을 다 맞네. 변백현 이새끼는 이렇게 꼬인 놈이 뭐가 좋다고 다시 합주를 하고 싶데. 이해할수가 없어.
"수건 내놔. 감기걸리면 30만원에 병원비 청구할거니까."
"...기다려봐."
박찬열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변백현을 노려보았다. 변백현도 그런 나를 보더니 다시 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을 닦아냈다. 그러나 물을 닦아줄 수 없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더니 아픈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니, 지금 니가 사람인줄 아나본데. 난 분명히 말했어. 미련갖지마."
"미련아니야. 그냥, 같이 합주하고 싶은건데.."
"저새끼는 니한테 악감정 있는 거 같더만. 왜 굳이?"
"나는, 악감정 없잖아. 저렇게 보여도 착한애야."
"퍽이나 착하겠다. 내가 장담하는데 저새끼가 착한거면 도경수는 바람둥이고 김민석은 고자야."
빵터진 백현이가 크게 웃었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변백현은 웃는게 웃는게 아니라는 것을.
***
변백현과 집으로 가는 길. 내 손엔 박찬열의 수건이 들려있었다. 이걸로 수건싸대기라도 날리고 왔어야 하는데, 2번 본 사이에 그럴수도 없고.. 아쉽지만 나중에라도 찾아갈 건덕지가 있었으니 그걸로 만족했다. 30만원, 반드시 받는다 내가.
박찬열을 욕하다 보니 변백현이 생각났다. 내 옆에서 따라오고 있는 변백현을 보았다. 변백현은 평소보다 더 밝은 모습으로 지금 자신의 기분을 숨겼다. 굳이 들춰낼 필요는 없다고 느끼지만, 어쩐지 계속 이렇게 감추는 변백현이 예전의 나 같다고 느껴졌다. 내가 저랬거든. 일부러 안 슬픈 척, 안 무서운 척.
"슬프면 슬프다고 말해도 돼."
"무, 무슨 소리야. 나 지금 엄청 즐거운데!"
"귀신을 속여라."
"뭐야, 내가 나라도 속인다 이거야? 웃겨 진짜."
"너가 죽기 전에 너네 밴드, 마냥 밝았던 거 아니지? 몇몇 니 팬이 멤버들 괴롭힌 모양이야? 그거 때문에 멤버랑 많이 다퉜고."
변백현은 정곡을 찔린 듯 얼굴에서 웃음을 거뒀다. 그러나 곧 다시 웃으며 대답했다.
"역시, 너는 못속여. 근데 그거랑 지금 내가 슬픈 거랑 무슨 상관이야. 안그래?"
그러네. 나의 대답에 변백현도 내가 모르는 척 한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나 보다. 변백현의 표정에 더이상 기쁨 따위 보이지 않았다. 짙게 자리한 슬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건지 우둑하니 서버린 변백현은 곧 터져나오는 울음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그런 변백현이 울음을 멈출 때까지 가만히 등지고 서있었다.
▶ Bonus
당신이 가지고 있는 빚은 11억가까이 됩니다.
정당한 법으로 대출 받은 돈이 아니여서 당신의 곁에는 항상 수금업자가 있습니다.
당신은 그 수금업자 덕에 그들의 세계에 대해서 꽤 아는 편입니다.
또한 과거 술집에서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설정 |
주인공과 종인이는 남의 감정을 읽는 것에 거의 천재적이라는 설정이 있습니다!ㅎㅎ 세훈이가 주인공에게 향하는 팬심은 진짜입니다! 우리 삐약이.. 의심받아서 맴찢..
암호닉입니다!!!♥♥(언제나 받고 있으니까 가장 최근편에 [ 제로콜라 ]요런식으로 다가와 주세요!) 체리/까만원두/뭉이/오호랏/똥잠/구름/쉬림프/레모네이드/범블비/악마 괴물/궁디퍽퍽/선크림/바람둥이/안녕/매매/진블리/무당인듯무당아닌/도경수부인/별다방커피 코끼리/(코)라코/요맘때/정동이/콜덕/피큐PD/달수정/마틸다/비비빅/양양 뿅아리/네티큥/여리/아틸다/개구락지/립밥/바람개비/손가락/우리니니/빵 GG/바닐라라떼/하트./까꿍이/청바지/진블리/젤라/순수합니다/메리미/포뇨 윤혜/선물/가글/익인/야메/징차/요정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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