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ost - The Game Is On
프로파일러
[ profiler ]
일반적인 수사 기법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연쇄살인사건 수사 등에 투입되어
용의자의 성격, 행동유형 등을 분석하고, 도주 경로나 은신처 등을 추정하는 역할을 한다.
귀신이 보이는 무당? NoNo 프로파일러 : 프로파일링
시끄럽게 울려대는 핸드폰에 베고 있던 베개 밑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주 오랜만에 꿀 같은 주말을 보내고 있는데 누가 나의 꿀을 방해하는 거야. 짜증나게.
"야, 전화 좀 받아라."
김종인의 짜증이 가득 섞인 말에 그 자세 그대로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손만 뻗었다. 곧 내 손에 잡힌 핸드폰에 베개 밑에서 나와 번호를 확인해 보았다. [김형사님] 누가봐도 비지니스 관계같은 이름이지만 나는 좀 달랐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아 큼큼, 몇 번씩이나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00씨? 지금 일어나셨어요? 죄송해서 어쩌죠..?
에라이. 그렇게 내 목소리가 잠겼었나. 내가 듣기엔 상당히 맑은 목소리였는데. 아, 네. 방금.. 잔뜩 가라앉은 나의 대답에 김형사님의 장난스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무안하게 거기다 대고 웃으시다니.. 짓궂으셔라.
-다름이 아니라 사건이 터져서요. 혹시 오늘 시간 되나요?
"아, 잠시 만요."
탁상 위 달력을 보았다. 그 달력은 나에게 있어서 스케줄러 같은 거였다. 그런 달력의 오늘 날짜를 살펴보니 딱 오늘만 비어있었다. 내일도 바쁘고 모레도 바쁘네.. 짜증나게.
"네. 시간 비네요."
-와, 다행이다. 그럼 오늘 서로 나와 주실 수 있으신가요?
"네. 준비해서 바로 갈까요?"
-네. 정말 감사해요.
"아니에요. 서에서 봬요."
전화를 끊고 나니 뭔가 허무해졌다. 김형사님이라서 나름 목소리도 예쁘게 해서 받았더니 자다 일어난 취급이나 받고. 뭐 물론 자다 일어난 것이 맞지만. 그래도 나름 가다듬은 거였는데. 더 이상 생각해봤자 좋을 게 하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침대에서 내려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쌓인 피곤을 떨쳐내기 위해 개운한 기지개를 켜니 문을 통과한 민석이가 예의없이 머리통만 들이민 채 물었다.
"오늘 일 없지?"
"방금 생겼네."
"....뭔데?"
"뭐긴. 프로파일링 하러 가지. 간만에 수입 짭짤해지겠다."
예의없이 들이밀었던 머리를 밀어버리고 문을 여니 김민석이 이마를 문지르며 날 보고 있었다.
"그러게 누가 대가리만 들어오래? 나도 여자라서 무서워."
"옘병."
지나가며 말하는 김종인에게 발차기를 차려 했지만 백현이가 말렸다. 아주 오늘도 역시나 활기차네.
***
내가 정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자주 자문으로 있는 어느 강력2팀. 이 팀은 주로 강력범죄, 그 중에서도 살인사건을 전담하고 있다. 그런 곳에 자문으로 있으려면 대단한 깡과 꿀리지 않는 말빨이 필요한데, 그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김종인이다. 워낙에 싸가지가 없어서.
"00씨는 여자로써 강력팀에 있기 힘들 텐데, 안 힘드세요?"
나에게 보고하기 위한 자료 정리가 끝날 때까지 무료하게 의자에 앉아 있으니, 따뜻한 녹차를 건네며 묻는 김준면형사님이셨다. 이 분은 강력2팀의 팀장이며 나이는 서른셋이다. 아까 전화 걸었던 분이기도 하시고. 보기와 같이 팀에서 따뜻함을 맡고 있으시다. 오늘도 역시나 따뜻함을 가득 담아 물어오는 물음에 나 또한 상여자가 되어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어유, 아니에요. 어차피 매일도 아닌데요, 뭐."
"00씨 오면 칙칙하던 분위기가 밝아져서 매일 부르고 싶은데, 위험한 일이니 그럴 수가 없네요."
사람 좋게 웃으며 기분 좋은 말을 건네는 김형사님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같이 웃게 된다.
"좀 생긴 남자라고 좋댄다, 아주."
김종인만 없더라면 핑크빛이 더 진해졌을 텐데.
***
부르고 싶지만 자주 못 부르는 내가 여기 와 있다는 것은 사건이 터졌다는 거겠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어느 정도 정리를 끝낸 화이트보드 앞으로 걸어갔다. 부담스럽게도 쳐다보는 팀원들 덕에 걸음걸이 신경 쓰느라 혼났네. 어디보자, 적어놓은 것을 보니 칼에 찔려 죽은 건데,
"칼에 찔려 죽었는데 용의자로 보이는 사람이 많다는 거지?"
그래. 내가 하려던 말이었다. 어느새 내 옆으로 와 같이 보고 있는 김종인은 집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눈빛이 빛났다. 김종인에게 향해있던 시선을 화이트 보드로 돌려 더 자세히 정보들을 보았다. 가운데 피해자를 중심으로 용의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5명. 보통 한, 두 명인데, 더럽게 많고 지랄이네. 평소 원한 살 짓을 많이 했나. 하나하나 특징을 살펴보았다.
▶용의자 후보
A양 → 피해자에게 큰 액수의 돈을 빌렸다.
B군 → 피해자에게 최근 여자친구를 빼앗겼다.
C양 → 현 여자친구.
D군 → 피해자에게 자주 맞았음.
E양 → 피해자의 어머니
"이상하지? 어머니가 용의자라니."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종인은 곧 생각에 잠긴 듯 멍하니 그 관계를 살펴보았다. 어머니가 용의자라는 것도 이상하긴 한데, 이거 누가 정리해서 적어논거야? 관계를 쓰려면 관계만 쓰고, 동기를 쓰려면 동기만 써야지. 중구난방하게 써놔서 걸리적거리네.
"어떤 개자식이 쓴 건지, 내가 모근으로 써도 이것보단 잘 썼겠네."
후.. 김종인 말에 웃음 참느라 혼났네. 너무 공감되는 말이라서 더 웃겼나 보다. 뒤로 돌아서 이렇게 혼날 만한 짓을 한 팀원들을 보며 물었다.
"이거 누가 쓰셨나요?"
"네? 아, 저희 팀에 새로 들어온 막내가 썼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어떻게 된 게 단 한사람도 이것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을 안 한 거지? 바빴나? 애초에 우리가 적어놓던 방식과 아예 다른데. 차라리 바빠서 못 보았던 거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말해줬다.
"여기 현 여자친구처럼 피해자와의 관계를 쓰려면 관계만 쓰고,"
"...."
"돈을 빌렸다는 것처럼 범죄 동기를 쓰려면 범죄 동기만 쓰셔야지 보기도 편하고 생각하기도 편한데,"
"...."
"되게, 걸리적거리네요."
내 말이 끝날 때까지 이곳은 조용했다. 자문으로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다들 내 성격을 파악했나보다. 난 변명이 싫었다. 구질구질하게 주절주절 말하는 꼬라지를 보면 속이 뒤집힐 정도로 싫었다. 확실히 조용하니까 좀 낫네. 처음 들어와 내 신경을 거스른 막내를 보았다. 자존심이라도 상했는지, 아님 실수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는 그를 보며 넓은 아량을 베풀어서 말해줬다.
"고쳐야겠죠? 원래 이렇게 차근차근 배워가는 거니까 너무 존심 상하지 마시고, 이름이 뭐예요? 우리 꽤 자주 볼 텐데."
"..오, 세훈입니다."
흠, 딱 부러지는 성격은 아니네. 말을 더듬는 것을 보니까 꽤 소심한 편이고. 긴장을 자주 하나? 옆에 있던 형사의 질린다는 표정을 보니 확실한 것 같군. 하긴, 주변 모두가 선배니까 저러는 것은 어쩌면 일반 사람으로서 당연한 걸지도.
"그래요, 오세훈 형사님. 편하게 오형사님이라 불러도 될까요?"
"네. 편하실대로 하셔도 됩니다."
"우선 우리 용의자를 써놓는 방법부터 배워봅시다."
"네."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하고 오셨는지 모르겠는데 저희 같은 경우는 그냥 이름과 나이, 관계 정도만 씁니다."
"아, 네."
"나머지는 전 막내셨던 저기 이영웅 형사님이 브리핑했고요."
아, 알겠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누가 봐도 막내 티가 절절 흐르는 대답을 하며 화이트보드 앞으로 가는 오세훈 형사를 눈으로 쫒았다. 계속 눈으로 쫒는 것은 어쩐지 흥미가 돋아서였다. 매번 지겹도록 보는 형사님들 대신 싱싱한 막내 한명이 들어오니 흥미가 돋는 것은 당연했다.
그나저나 오형사는 듣자마자 바로 시정하네. 이런 거 보면 똑 부러지는 성격인데, 대립되는 2가지 성격이 단시간 만에 나타났다라, 진짜 자신의 성격을 감추고 있는 건가. 그런 거면 낯을 많이 가리나 보네.
오세훈 형사의 성격 파악이 끝나니 흥미가 떨어져 그가 고쳐 적고 있는 것을 다시 살펴보았다.
▶용의자 후보
A양 → 김진솔. 21세. 나이트 죽순이 (보기완 다르게 표현이 다소 거친 편이네. 역시, 성격을 숨기고 있나보다)
B군 → 유은석. 36세. 직장 동료
C양 → 김다혜. 34세. 현 여자친구
D군 → 임지민. 29세. 직장 동료
E양 → 이현숙. 61세. 피해자의 어머니
다 적은 것을 차분히 보았다. 이것만 봐서는 딱히 나오질 않는데, 김종인을 보니 새로 들어온 정보를 입력하느라 바빠 보였다. 그럼 그동안 프로파일러답게 입이나 털어볼까. 비교적 하는 일이 없어 보이는 오형사님을 보자 눈치 보느라 지진 났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본다. 별일은 아니라고, 안심하라고 살짝 웃어준 후 그도 긴장을 풀 때 물었다.
"왜 피해자의 어머니를 용의자로 둔거죠?"
"아, 그거 빼야 합니다. 저희가 찾은 단서와 안 맞는 부분이 좀 있었습니다."
"어느 부분이죠?"
"이따가 현장 가보면 아시겠지만 피가 튄 자국을 보면 범인이 오른손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근데 그분은 왼손잡이라.."
"그리고요?"
"그리고 그분이 연세도 있으시고, 지금 왼손에 깁스를 하고 계셔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약하신 상태십니다. 건장한 성인 남성을 상대하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겠죠?"
"그렇겠네요. 왼손으로 전력을 다해도 모자란데 깁스라니."
그럼 일단은 가장 마지막 후보로 두고, 우선 피해자 신상부터 알아야겠다.
"뭐, 용의자보단 피해자부터 알아보죠."
나의 말에 이영웅형사님이 급하게 일어나셨다. 일어날 때 책상에 아슬하게 걸쳐져 있어 불안하던 파일이 우수수 쏟아졌고 그 모습에 김종인이 혀를 찼다. 무의식중에 그 소리를 듣고 나도 모르게 혀를 찼다. 아이코, 죄송해라. 그렇지만 그게 내 본심이었다. 대충 주워서 책상에 올려놓은 이형사님이 화이트보드 앞으로 와 브리핑을 시작했다.
"피해자 이신혁씨 살인사건입니다. 이름 이신혁. 나이 38세. 직업은 반백수. 가끔씩 나이트에서 주방 일을 했다고 합니다. 발견 장소는 나이트 주방이구요, 최초 발견자는 여기 용의자 D군인 임지민씨입니다. 보시다시피 주방에서 같이 일하던 직장 동료였구요."
"아, 참고로 임지민씨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예요."
"나머지는 직접 가서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실까요?"
"그러죠."
김형사님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건물을 나섰다. 생각을 끝냈는지 곁에서 따라오던 김종인이 자기가 생각했을 때 이상한 점을 말해줬다.
"정보가 너무 얕아서 모르겠지만 우선 김다혜. 현 여친이 용의자인 게 이상하고, 이신혁 어머니인 이현숙씨. 여전히 이상해."
하긴, 나도 이상하긴 했다. 현재 여친이라면 싸이코가 아니고서야 현 남친을 죽일 리가 없을 텐데. 어머니도 모성애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거든. 아무리 철없던 여자라도 애를 낳으면 아주 작지만 그래도 모성애라는 것이 본능적으로 생기는 법이니까. 그런 두 여자가 왜 용의선상에 오른 건지 진짜 모르겠네. 이렇게 생각난 것은 바로바로 물어봐야 직성이 풀렸다.
"피해자 어머니는 왜 용의자로 올랐던 거예요?"
"아, 이신혁씨가 나이트로 첫 출근을 한 뒤로 어딘지 변했다고 해요. 작은 일에도 짜증을 잘 내고 폭력적이며, 거친 말을 서슴없이 해서 자주 큰소리가 오갔다는 인근 주민의 제보도 있었어요."
그래서 홧김에 저질렀을 거다?
"그거 가지고 용의자로 오른다고요?"
"물론 아니죠. 그 어머니가, 아들이 죽었는데도 별 감흥이 없었어요. 마치 알고 있었다는 태도도 있었고요. 근데 이게 또 이현숙씨가 들어본적도 없는 한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라서, 그것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는 있어요."
김종인은 김형사님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도 부족해. 역시나 나에게 더 캐묻길 간접적으로 원해왔다.
"그래도 부족하네요. 아무나 용의자를 갖다 붙여서 지금 용의자가 5명씩이나 되는 겁니까?"
"아, 아닙니다. 가장 큰 건 그날 알리바이를 입증할 사람이 없습니다. 혼자서 아들을 키웠고, 사망 추정 시간이 새벽 4시라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CCTV도 주방쪽엔 없었구요."
오형사님 말을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최근에 큰소리가 자주 들렸는데 사건 당일 날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없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하긴 한데 알리바이가 없다는 것으로 일단 두고.
"이현숙씨 다시 용의선상에 두겠습니다. 그럼 현 여자친구라는 김다혜씨는요?"
"아 그분은 강제로 여친이 되었다고 해요. 아무래도 피해자가 폭력적이어서 몇 번 맞은 적도 있다고 했고. 이분 역시도 그 시간에 알리바이가 이상해요. 말할 때마다 바뀌는데 능구렁이처럼 넘어가고."
"왜 바뀔까, 일단 알았습니다."
"직접 만나봐야 알 듯."
그러게. 김종인도 아직 거기까지는 모르나 보다.
***
현장에 도착했다. 흠, 피가 신발에 묻어서 찌른 후의 경로 파악이 쉽네. 찔러 죽인 후 당황했는지 한번 미끄러져 넘어져 손에 피가 흥건하게 묻었겠지. 초범이 그렇듯 자신의 손에 가득 묻은 피가 소름 돋아서 바로 씻으려 싱크대로 갔을 거야. 넘어지느라 옷에도 묻어서 저쪽 탈의실 쪽으로 갔, 아니네? 좀 방황했던 흔적이 언뜻 보였다. 들어온 문 말고 보이는 문이 총 3개인데, 탈의실 쪽 방을 가장 마지막에 간 것 같이 보이는 족흔이라. 이곳을 잘 모르나 보네.
"신발 사이즈가 작아."
김종인 말에 선명히 찍힌 신발 자국을 다시 보았다. 진짜네? 성인남자치고는 사이즈가 꽤 작아 보였다. 여자 평균 사이즈 정도? 그럼 용의자가 점점 좁혀지네.
"용의자 추리겠습니다. 남자는 다 빼세요. 아, 신발 사이즈 작은 남자는 넣고."
"...아, 그러네요. 신발 사이즈가 작은 편이네요."
"네. 그리고 범인은 이곳을 잘 몰라요. 족흔을 따라가다 보면 탈의실로 바로 들어가지 않았죠."
"와, 그럼 유은석씨와 임지민씨, 김진솔씨는 용의선상에서 제외하겠습니다. 그럼 피해자 어머니인 이현숙씨와 현 여친인 김다혜양이 남습니다."
"아뇨, 김진솔씨는 넣어야죠. 죽순이도 주방까지는 모를테니."
"아, 네. 시정하겠습니다."
오, 막내가 정리를 잘하네. 전 막내는 내가 말해야 정리했는데. 빠릿빠릿해서 좋은데?
"거기에 발 사이즈가 작은 남자는 넣어볼까요?"
"아, 네..!"
오형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도 잘했다는 의미로 싱긋 웃어주니 그는 또 고개를 숙였다. 저렇게 소심해서야. 그래도 이렇게 강화를 해줘야지 나중에 또 칭찬 받으려고 잘하지. 자아, 이제 어느 정도 용의자가 좁혀졌다. 그럼 유력한 그 세 명을 용의선상에 놓고 다시 봐볼까? 냉장고 아래가 피해자가 살해당한 곳. 냉장고 옆 벽에 튄 혈흔을 보면, 분명 오른손잡이다. 혈흔의 방향이 오른손잡이라고 말하고 있어. 하지만 어딘가 이상해. 뭐가 이상한 걸까..
"오른손잡이가 맞는데, 뭔가 딱 오른손잡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는 방향이야. 어설퍼."
그래. 그거였어.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김종인과 대화할 땐 이렇게 고갯짓이나 작은 손짓으로 했다. 남들이 보기에 이상하니까. 허공에다 대화하는 사람을 어떻게 자문으로 써. 정신병원에 안 쳐 넣으면 다행이지. 그나저나 왜일까, 왜 어설플까..?
"아까 이현숙은 왼손잡이라 했지? 오른손잡이 아니니까 제외."
역시. 김종인은 대단해. 기억력도 좋고 현장 보는 능력도 남달라. 이래서 얘는 꼭 필요하지. 자문료가 그다지 돈이 되는 편이 아닌데 자주 들어와서 꽤나 짭짤한 편이었다. 그런고로 내 소중한 돈줄이라는 거야, 김종인은. 아, 또 입 털어야지.
"이현숙씨는 왼손잡이라 하셨죠? 제외하면 유력한 용의자는 두 명 남았네요."
"와, 역시.."
"네?"
"아, 아닙니다. 지금 김다혜씨와 김진솔씨 연락해보겠습니다."
내 추리를 보고 역시라, 나를 동경했었나? 막내라 그런 건지, 자신의 속마음이 밖으로 다 내비치는 성격 탓인지 귀엽네. 변백현이랑은 사뭇 다른 귀여움이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애들은 뭐하고 있으려나.
"집중해. 딴 거 생각할 시간 없어. 니 집중력 한 시간도 안 가잖아."
그렇게 콕 집어서 말해야 하나. 입을 삐죽이며 주방을 좀 돌아다녔다. 오면서 들으니까 범행에 쓰였던 칼에는 지문이 너무 많아서 감식할 수가 없다고 하고, 아. 그런 거 보면 추리 드라마 따위를 안보나 보네. 대부분은 이상할 정도로 깨끗이 닦거나 가져가던데 말이야.
"이상한 점 좀 보고 올게."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주방을 구경했다. 오, 칼 겁나 뾰족하네. 푹 찌르면 그냥 들어가겠어.
"그게 이상하십니까?"
"예? 아, 아뇨. 그냥 이렇게 뾰족한 칼은 어떻게 쓰이는 건가 해서요."
"아, 그건 Boning knife라고 뼈랑 살 발라낼 때 쓰는 칼입니다."
"오, 오형사님은 박식한가 봐요. 이런 것도 알고 계시고."
"감사합니다."
예쁘게 웃어 보이는 오형사님이었다. 웃는 게 예쁜 경우는 또 처음보네. 칼을 제자리에 꽂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나를 통과해 지나가는 귀신 때문에 소름이 돋아서 움찔했다. 그 바람에 벽에 걸려있던 칼에 손등을 베어버렸다. 아. 칼을 정말 잘 갈아놨나 보네. 그 살짝 스친 거에 이렇게 피가 많이 날 정도로 베이다니.
"괘, 괜찮으세요?! 하, 하필 그 칼만 잘 갈려 있어서.. 흉지면, 어떡하죠..?"
놀라서 묻는 오형사님에 내가 다 놀랐다. 어휴, 놀래라. 놀란 속을 다독이며 다른 칼들을 살펴보았다. 아, 그러네. 이나간 칼도 있고..
"범행에 쓰였던 칼은요?"
"아, 그건 정말 잘 갈려 있는 칼이었어요. 그리고, 지금 범행이 중요해요?"
김형사님께서 내 손을 살피며 걱정했다.
"아, 뼛속까지 프로파일러인가봐요. 거기 가방에 헝겊 좀 줄래요? 지퍼백 안에 있을 거예요."
"허.. 헝겊이요? 네, 네..!"
허둥지둥 내 가방 속에 있는 지퍼백의 헝겊을 건네주는 오형사님. 그것을 꺼내 상처에 잘 대었다. 원래는 야매 무당 짓 할 때 쓰는 건데. 마침 잘 됐네.
"아, 현장 어질러지겠네요.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같.. 같이 가 드리겠습니다..!"
"아뇨. 괜찮아요. 이정도 가지고 뭘."
가방을 챙겨 급하게 화장실로 들어왔다. 아오, 미친.. 드럽게 아프네. 급하게 뛰어가는 나라도 본건지 같이 뛰어 들어왔던 김종인이 내 손등 위를 덮고 있는, 어느새 붉어진 헝겊을 보더니 대뜸 소리쳤다.
"어디서 이런 건데?! 아니, 누가 이런건데?!!!"
"말 걸지 마.. 아파 뒈지겠으니까."
"병원을 가야지 왜 여기로 왔냐고!! 머리가 없냐? 띨빵한 거 자랑해?!!"
핏대까지 세우며 나를 몰아가는 김종인을 째려보다 징하게도 아려오는 손등을 지혈했다. 방금 갈은 헝겊이 붉게 물드는 것은 순간이었다. 나름 예쁘다고 자부했던 손에 난 성처에 가장 속이 상하는 것은 나였다. 그런 나에게 저렇게까지 몰아붙일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지금은 이 피를 멎게 하는 것이 먼저였다. 나는 그 방법을 모르니 김종인을 가만히 바라보자 한숨이 섞인 해답을 줬다.
"하, 손 위로 들어."
"뭐?"
"심장보다 높게 하라고."
가만히 김종인이 하라는 대로 했다. 헛소리를 하는 놈은 아닌지라 손을 번쩍 들고 다음 말을 기다리는데 아무런 말이 없었다. 붉게 물든 헝겊에서 시선을 내려 내 앞에 있는 김종인을 보았다. 왜 저렇게 띨빵하게 있는지. 야. 야야. 얌마. 아무리 불러도 대답조차 없다. 그러다 갑자기 정신이 든 건지 움찔거리기에 또 멍해지기 전에 급하게 물었다.
"또?"
"......"
"야, 제발.."
"저걸로 다시 갈고 더 꾹 눌러. 아프다고 살살 누르지 말고."
그거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나? 김종인 말대로 헝겊을 갈고 꾹 눌렀다. 진짜 뒈지겠네. 내 인생 중 이렇게 깊은 상처는 처음이었다. 상처는 너무 아프고 혼자서는 두려운 이 상황에서 침착할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내 앞에서 온갖 짜증이 가득담긴 표정으로 내 손등을 보고 있는 김종인 덕분이겠지.
"고맙다."
"헛소리 하지말고 더 꽉 눌러."
"이러다 상처 안으로 헝겊 들어갈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누르면 어떡하냐?!!!!!"
지 말대로 해도 지랄이고 안 해도 지랄이야. 김종인이랑 말싸움을 하면 손해 보는 것은 화병 나는 나이니 대꾸를 안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편안해지면서 내 상처에 집중할 수 있었다. 확실히 피가 멎어가는 느낌이었다. 대신.. 손 들고 있느라 팔이 저려왔다. 조금씩 내려오는 내 팔을 또 아니꼽다는 듯이 보는 김종인 때문에 슬금슬금 올리니 피식, 하고 비웃는다. 그게 기분나빠 한껏 째려보며 한 마디 하려는 순간 내 머리와 손 사이에 지 손을 넣으며 말했다.
"올려. 힘들면."
바로 김종인 손에 내 손을 올리니 한결 편해졌다. 한손으로 내 두 손을 바치고 있는 김종인은 아까의 비웃음 그대로였다.
"갑자기 왜이래?"
"뭐가."
"귀신주제에 사람 배려하고 지랄이야."
"지랄이라니. 기껏 도와줘도 이러네. 멎었나 봐봐."
손을 내려 헝겊을 떼니 피가 멎었는지 흉한 상처만 보였다. 상처를 보니 더 아려오는 손등에 자동적으로 미간이 좁혀졌다. 야, 갑자기 날 부르는 김종인을 보지도 않고 왜? 라고 물으니 김종인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너 다치면, 그래서 죽으면. 우리와 이승을 연결시켜줄 사람이 없어져."
"그래서?"
"니가 우리를 이용하듯이 우리도 니를 이용한다는 거야."
"그것 참 다행이네. 그리고 다음부터는 다치지 말라고 돌려 말하지 말고 그냥 다치지 말라고 말해."
저 다행은 말로만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었다. 귀신에게 있어서 상당히 냉정한 내가 귀찮더라도 데리고 다니는 것은 그래봤자 아주 조금이지만 어느정도 정이 생겼다는 거였다. 그런 그들을 완벽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건덕지가 생긴 것이니 오히려 편안해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러나 나에게 그렇게 말한 후 고개를 못드는 김종인이었다. 지가 그렇게 말하고 미안하기라도 한거야, 뭐야. 귀신주제에 감정가지고 지랄이야.
김종인에게서 신경을 꺼버리고 가방을 뒤적여 반창고를 꺼냈다. 최대한 어여쁘게 붙이고 피가 떨어진 곳을 안 다친 한 손으로 다 닦았다. 하필 오른손을 다치냐. 이러면 불편하게 왼손으로 다 해야, 아..
"야. 아까 피가 튀어있는 정황으로 봤을 때 그 범인이 오른손잡이인데 어설프다고 했지?"
"어? 어."
나의 멋진 프로파일링으로 용의자가 한명으로 좁혀지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 Bonus
귀신들은 한 번 더 죽을만큼 노력한 것에 한하여 사람을 만질 수 있게 됩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고 한 번 만졌던 사람은 자주 만질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일반 사람들은 불가능합니다. 보인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당신과 그 네 명은 서로에 대한 접촉이 자유로운 편입니다.
사실 |
사건 수사 1도 모른다능..ㅎ 어설플 수 있는 부분은 둥글게 둥글게 넘어갑시닿ㅎㅎㅎ 이번 편은 분량조절에 실패해서 좀 많이 길어요..ㅎ 당황스러울 정도로..ㅎ
00화에 안 나왔던 세훈이와 준면이의 등장이네요! 둘다 형사라니..! 그래서 그게 어딥니까..? 개인적으로 다정한 준면이 보단 딱딱하게 존칭써주는 세훈이 좋네요(흐뭇
암호닉입니다!!!♥♥(언제나 받고 있으니까 가장 최근편에 [ 제로콜라 ]요런식으로 다가와 주세요!) 체리/까만원두/뭉이/오호랏/똥잠/구름/쉬림프/레모네이드/범블비/악마 괴물/궁디퍽퍽/선크림/바람둥이/안녕/매매/진블리/무당인듯무당아닌/도경수부인/별다방커피 코끼리/(코)라코/요맘때/정동이/콜덕/피큐PD/달수정/마틸다/비비빅/양양 뿅아리/네티큥/여리 |